칼럼 > 대중문화 > 김윤하의 전설이 될 거야
요즘 케이팝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의 화두는 ‘확장’이다. 마구 던져지는 물음표 사이 한때 ‘제2의 OO’를 찾던 때와 비슷한 심리랄까, 모범 답안을 최대한 빨리 찾고 싶은 질문자의 초조함이 느껴진다. 확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건 케이팝의 몸집이 유례없이 불어난 상황 때문일 것이다. 팬과의 직간접적 교류를 중시하는 특성에 이제 막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 바이러스에 발목을 잡히며 미래를 어둡게 점쳤던 케이팝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버렸다. 팬데믹으로 인한 3년간의 공백은, 케이팝이 그 언제보다 열정적으로 전반적 체질 개선에 힘쓰도록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현재 케이팝과 확장이 신나게 만나 한창 파티 중인 곳은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영역이다. 특히 케이팝의 본업, 음악 파트의 팡파르가 화려하다. 올 한 해 케이팝 피지컬 앨범(LP, CD, 테이프) 판매량은 총 1억 장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역대 초동 기록 1위부터 3위까지를 차지한 스트레이 키즈, 세븐틴, NCT DREAM의 앨범이 모두 올해 발매작이다. 각각 460만 장, 455만 장, 365만 장이 팔렸고 이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였다. 단일 앨범 판매량만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케이팝 신에서는 보통 신보와 함께 구보 판매량이 늘어나는 현상을 실질적 팬덤 증가로 분석하는데, 올해 케이팝 구보 판매량은 총판매량 상승세에 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던 앨범 수출 의존도가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영미권 국가들의 선전으로 인해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다. 한마디로 적어도 지금, 케이팝은 양과 질 모두에 있어 순풍을 타고 있다.
또 다른 의미의 확장도 자주 언급된다. ‘어디까지가 케이팝이냐’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교포 출신이나 외국인 멤버를 적극 영입해 어딘가 세련된 이미지와 해외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노력하던 시절은 얼마나 평화로운 질의응답의 시간이었나. 현재 이 방면의 케이팝 확장은 사람 몸으로 비유하면 1년에 15센티미터씩 키가 크고 이차 성징이 나타나 목소리도 분위기도 본격적인 성인이 되어가는 폭풍 성장기에 가깝다. 전 멤버가 외국인으로 구성된, 그러나 자신들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케이팝이라 강조하는 그룹, 한국 기획사와 세계 각국의 해외 미디어가 합작해 만든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탄생한 그룹, AI나 버추얼 기술을 통해 활동하는 케이팝 그룹. 확장이라는 말이 느긋하게 느껴질 정도다.
시시각각 크기와 색깔을 바꿔 가는 케이팝의 외연에 모두가 정신이 팔린 사이, 실질적 재미와 의미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건 내부라는 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해도 부족하지 않다. 차트 순위, 판매량, 산업 규모, 자본력, 기술 융합, 국가주의. 케이팝을 검색했을 때 마주치는 대부분의 말과 글에 담긴 내용이다. 수치와 성과를 중심으로 고속 성장해 온 나라답게 문화를 이야기하면서도 관습적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 주류 논의가 자주 안타깝다. 대중음악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역사상 유례없는 폭넓은 사랑을 받는 시기여서 더욱 그렇다. 누군가 케이팝의 확장을 물을 때 멤버 구성이나 노랫말 속의 영어 사용 비중이 아닌 그 음악의 어떤 부분이 어떻게 좋고 시대와 어떻게 호응하고 있는지 더 자주 말하고 싶다. 지난달 발매된 앨범 가운데 어떤 앨범이 가장 많이 팔렸고 빌보드 순위는 몇 위였는지가 아닌 어떤 앨범이 가장 높은 완성도로 의미 있게 완성되었는지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덧붙여 본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발매된 케이팝 앨범 가운데 기회가 된다면 영케이(데이식스), 김세정, 키(샤이니), 뷔(방탄소년단), 던(DAWN)의 솔로작들을 꼭 한 번씩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잘나가는 그룹의 1/N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지금 얼마나 뚜렷한 개성으로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음악가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음악가의 고른 성장만큼 신을 탄탄하게 확장할 수 있는 건 없다. 목표 달성과 비즈니스라는 커다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던 케이팝 확장의 근본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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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