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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의 짧은 소설] 모나카

김지연의 짧은 소설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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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손에 든 모나카를 물끄러미 보다가 잠깐 울었다. 울음을 그치고는 몇 개를 꺼내 이모 손에도 쥐어주었다. 또 올게, 하고 엄마는 이모를 안아주었다. 더는 이모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다는 듯한 포옹이었다.


우리가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웃고 떠드는 일이었다. 검은 상복을 입고 조문객들을 맞아 인사를 하고 손을 맞잡고 국밥을 나르고 배웅을 하고 난 다음에 손님들이 뜸한 한갓진 시간에는 모두 벽에 몸을 기댄 채 다리를 펴고 앉아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커피를 타 마시고 과일을 깎아 먹고 자주 보지 못했던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해 묻고 따지고 피차 귀담아 듣지 않을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았다. 산발적으로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는데 누구도 우는 사람을 말리지도 달래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울음이 시작될 때에는 잠깐 정적이 흘렀고 모두들 우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는 했다. 아, 운다. 하고 생각한 다음에 외할머니와 그 사람의 관계를 돌아보면 나도 괜히 찡해졌다. 하지만 이모가 울기 시작했을 때 미경 언니는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쟨 왜 운대. 하고 속삭였다. 그야 외할머니가 죽었으니까, 하고 생각했지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이모는 진짜 이모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누군지는 큰외삼촌도 작은외삼촌도 엄마도 정확히 몰랐다. 외할머니는 알 테였지만 알려주지 않고 죽었다. 큰외삼촌의 막내딸인 미경 언니보다 세 살 어린 막내이모는 일고여덟 살 때 외가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때는 모두 결혼을 해 따로 살고 있어서 그런 사정을 모르고 있다가 그해 추석에 외가에 들러서야 알게 되었다. 집안에 모르는 여자아이가 있어 얜 누구예요? 물었더니 외할머니가 내 딸이다, 했다는 것이다. 나는 막 태어났을 때라 그 일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온 집안에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온 자식이 아닐까 의심했으나 계산이 맞지 않았다. 당시는 외할아버지가 죽은 지 십 년도 더 된 때였다. 그래서 외삼촌들도 의심을 받았다. 자식이 저지른 일을 무마하려고 외할머니가 뒤집어쓴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그런 의심 때문에 외삼촌들은 막내이모와 거의 말도 섞지 않았고 엄마는 처음으로 애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한번 시기를 놓치니 친해질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어차피 외가를 찾는 일도 명절 때로 일 년에 한두 번뿐이라 나 역시 이모와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

핏줄이 아니라고 해도 20년 넘게 함께 살면서 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던 사람이 죽었는데 울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싶었지만 미경 언니는 이모가 우는 것이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미경 언니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큰외삼촌은 이혼을 했는데 이모가 거기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믿는 눈치였다. 이모의 정체를 외할머니가 아무에게도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모는 외할머니를 조금 닮기도 했는데 그건 결국 큰외삼촌을, 또 작은외삼촌을 조금씩 닮았다는 뜻이기도 해서 숙모들은 모두 혹시나, 혹시나, 하는 의심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래도 작은외삼촌은 그런 의심을 살 만한 짓을 할 위인이 못 된다는 점을 누구나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반듯한 사람이었기에 쉽게 의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큰외삼촌은 원체 사람을 좋아하고, 특히 여자를 더 좋아했던 사람이라 그전부터도 종종 외숙모의 의심을 샀다. 그래도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던 탓인지 갈라서지는 않고 한 지붕 아래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모 때문에 자주 싸웠고, 자주 싸우다 보니 밖으로만 나돌다가 이번에는 진짜로 다른 여자랑 눈이 맞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맨 처음 바람을 피우다 걸렸을 때 이혼을 했으면 더 일찍 평화가 찾아왔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큰삼촌네는 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반복 속에서 살다가 결국 지쳐 헤어지고 만 것이 이모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외할머니가 속시원히 정체를 밝혀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집안 돌아가는 꼴을 보다 못한 엄마가 나서서 유전자검사를 했는데 확실히 이모는 우리 외가 핏줄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모는 누구란 말인가? 가족들은 모두 할머니가 죽기 전에는 밝히고 떠나지 않겠는가 믿었던 모양이지만 외할머니는 어느 날 밤 평소처럼 잠들어서는 다음 날 아침 깨어나지 않았다. 가지런하고 고요한 죽음이었다. 

장례를 치른 후 엄마는 사흘을 앓아누웠다. 그 3일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엄마에게 의지하고 있었는가를 깨달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엄마는 그야말로 내 수발을 들고 있었다. 고3이라는 이유로 쌓인 스트레스를 맘놓고 푸는 대상이기도 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아침밥을 챙겨 먹고 출근하던 아빠가 손수 아침밥을 차린 건 결혼 후 거의 처음이었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을 꺼내 그릇에 담고 계란을 하나 굽는 게 다였지만. 너네 엄마 아직 누워만 있냐? 누워 있는 거 같긴 한데, 아빠가 보고 와. 너 요새 점수는 잘 나오냐? 성적표 갖고 온 거 안 봤어? 엄마가 빠진 식탁에 앉아 우리는 듬성듬성 이가 빠진 것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가 깨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외할머니 이야기를 나누다가 운 것이었다. 내가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안방 침대에 걸터앉아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고 있어 이모의 목소리가 엄마의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언니, 울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해요. 나는 외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엄마와 이모가 어떤 사이였는지를 떠오르자 엄마가 조금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삼촌들처럼 이모와 완전히 거리를 두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다. 가끔은 나이가 차도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할머니댁에 붙어 사는 이모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릴 때야 의지가지 하나 없는 것이 가여워 데려와 돌봐주었다고는 해도 다 큰 다음에도 독립하지 않고 함께 사는 것은 이상했다. 이러다 고향집이며 논밭이며 다 그애한테 물려준다고 하는 거 아냐? 어느 날엔가는 큰외삼촌과 통화하다가 그런 이야기도 했다. 실제로 이모가 물려받은 것은 없었다. 외할머니는 고향집을 엄마에게 물려주었고 나머지를 삼촌들이 나누어 가진 것 같았다. 그래서 장례가 끝난 후 삼촌들은 매일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 집 어쩔 거야? 그 애가 계속 살게 둘 거야? 나도 엄마가 그 집을 어떻게 할지 궁금했다. 어쩌면 처음 이모에게 전화를 건 것도 그 집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울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종종 엄마는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왜 그렇게 이모랑 자주 통화해? 그럼 너네 외할머니 얘기를 누구랑 하겠니? 외삼촌들은 함께 수다를 떨기에 적합한 인간들은 못 되었고 외할머니의 유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외할머니의 사랑은 있는 대로 다, 자신의 것까지 빼앗아 다 받았으면서 외할머니를 향한 마음은 그다지 살뜰하지 않은 인간들이었다. 엄마는 이모에게 외할머니의 마지막 며칠이 어땠는지를 세세히 묻고,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이모에게 고마워하고, 울고, 또 이모를 달래고, 그러다 또 같이 울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느 주말에 외가에 다녀올 계획인데 나더러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차로 네 시간은 가야 해서 망설이며 할머니도 없는데 뭐 하러 가냐니까 이모를 보러 간다고 했다. 아빠는 엄마를 혼자 보내는 게 걱정되는지 내 등을 떠밀었다. 하루이틀 다녀오는 건 괜찮지 않냐고 너도 바람을 좀 쐬야 한다면서. 

외가로 가는 길에는 가을이 와 있었다. 도심에 살면서는 잘 느낄 수 없는 가을이 쉽게 느껴져서 공간을 이동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시외버스를 타고 내린 다음에 시내버스로 갈아탄 다음에도 한 시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콧속으로 느껴지는 공기도 어쩐지 서울에서보다는 훨씬 더 가을에 가까운 것 같아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도착했을 때는 두 시가 다 되었는데 버스를 타고 오느라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하니까 이모가 밥상을 차려주었다. 엄마는 아직 나이도 어린 이모가 외할머니 손맛을 꼭 닮았다며 부러워했다. 아니, 부러워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그리워한 것 같다. 엄마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울외장아찌를 먹었다. 에이, 언니. 엄마 손맛을 어떻게 따라가요. 그건 엄마가 만든 거예요. 그래도 내가 레시피는 다 받아놨어요. 엄마는 이모가 무어라 말할 때마다 잘했다, 잘했다, 추임새처럼 곁들였는데 그저 울음을 참으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엄마와 이모는 또 한참 수다를 떨었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었으므로 낮잠에서 깨서도 대화에 끼지 못하고 티브이를 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잠들었다. 저녁 먹으라는 소리에 깨어보니 또 밥상 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엄마는 이모와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쳐 잠들었다. 나는 종일 버스에서 가만 앉아 있기만 하고는 먹고 잔 것밖에 한 게 없어 그런지 몸이 조금 찌뿌듯한 것만 빼면 기운이 났다. 그마저도 마당을 오가며 스트레칭을 몇 번 했더니 개운해졌다. 숨을 크게 들이켜고 또 내쉬면서 서울에서보다 조금 더 일찍 가을을 맞이하는 기분을 만끽했다. 모기가 달려드는 것 같아 방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오랜만에 확 트인 하늘에서 보이는 달이 신기해서 마당의 평상에 앉아 달 구경을 했다. 이모가 나와 안 추워? 하고 묻기에 안 춥다고 했지만 이모는 얇은 담요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이모는 달 예쁘다, 하며 내 옆에 앉았다. 오늘 보름인가 봐. 소원 빌어, 소원. 나는 달 기운을 빌어 오래전부터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이모는...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됐어요?”

별로 불러본 적이 없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라 이모라 부르는 게 어색했다. 

이모는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여덟 살쯤이면 기억이 있을 텐데 외할머니댁으로 오기 전에는 어디서 누구와 살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모는 웃었다. 우습게도 그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희미하게라도 남아 있는 장면조차 없다고 했다. 외할머니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리 물어도 너는 내 딸이다,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날 때부터 여덟 살이었던 걸로, 태어났더니 이미 여덟 살이나 먹었던 걸로, 엄마의 딸로 태어난 걸로, 그렇게 여기기로 오래전에 마음먹었어.”

“그런 게 어딨어요.”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에 이모는 또 웃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런 건 없지.” 

“정말 기억이 안 나요? 다들 엄청 궁금해하잖아요. 할머니도 얘기 안 했어요?”

이모는 고개를 저었다. 

“제일 오래된 기억은 넌 도대체 누구냐고 묻는 삼촌들이야.”

“우리 엄마는 언니면서 삼촌들은 또 삼촌이에요?”

“내가 자기들 없는 자리에서라도 오빠라고 부른 거 알면 기겁할걸?”

“그건 그렇네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제일 궁금할 사람은 나 아니겠어? 삼촌들이 명절마다 와서 그 난리를 쳤으니 내가 이 집 핏줄이 아니라는 건 뻔히 아는데 내가 어릴 때 기억은 없고. 중학교 2학년 때쯤인가. 하루는 엄마가 나를 앉혀놓고 궁금한 게 있으면 다 알려주겠다고 물어보라는 거야. 그때가 기회라는 걸 알았지. 정말 다 말해줄 것 같았거든. 대신 오늘 묻지 않는 건 평생 비밀로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어. 다시는 궁금해하지도 말라고.”

“그래서 물어봤어요? 할머니가 뭐래요?”

“안 물어봤어.”

“왜요?”

“그럼 더는 엄마랑 못 살 것 같았거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모는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어딘가 결연해 보이는 할머니의 표정이 그런 예감에 휩싸이게 만든 것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던 진실을 갑자기 밝힌 다음에는 또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진실을 알게 되면 감당해야 하는 일도 뒤따르는 법이니까. 어쨌든 이모는 묻지 않는 걸 택했다. 호기심을 이기는 무언가가 있다니 나로서는 놀라운 선택이었다. 

다음 날 정오에 우리는 떠나기로 했다. 이모는 점심을 먹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버스 시간을 생각하면 그럴 수가 없었다. 잠깐만요, 하고 안으로 들어간 이모는 모나카 한 봉지를 가져왔다. 엄마가 드시던 건데 가면서 드세요, 하고 손에 쥐어주었다. 엄마는 한사코 사양하다가 결국 받았다. 엄마는 손에 든 모나카를 물끄러미 보다가 잠깐 울었다. 울음을 그치고는 몇 개를 꺼내 이모 손에도 쥐어주었다. 또 올게, 하고 엄마는 이모를 안아주었다. 더는 이모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다는 듯한 포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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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연(소설가)

198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2018년 「작정기」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9년 첫 책 『빨간 모자』를 시작으로 『마음에 없는 소리』, 『소설 보다:여름 2022』(공저), 『함께 걷는 소설』 등을 썼고, 제12회,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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