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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마니아가 사랑한 세기의 여주인공들

『드레스는 유니버스』 저자 송은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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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걸작을 번역해 온 송은주의 문학과 여주인공 이야기.


『위키드』 (그레고리 머과이어),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설득』 (제인 오스틴),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클라우드 아틀라스』(데이비드 미첼)을 비롯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우리가 날씨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등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국내서를 모두 번역해 온 송은주가 이번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덟 명의 고전 속 여주인공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벽돌 책 같은 두툼한 고전 읽기를 즐기며 같은 책을 여러 번 음미하고 또 음미해 온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고전 속 여주인공들은 누구일까?

그가 사랑하는 여주인공 중 바람직한 모범생은 별로 없다. 독립심 넘치는 제인 에어, 로맨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살려고 가정을 내다 버리는 에마 보바리, 삶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부잣집 딸 데이지 뷰캐넌, 남편의 약에 독을 타는 테레즈 데케루 등.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도발적이고 위험한 여덟 여주인공의 매력을 파헤쳐 본다! 



고전 속 여주인공들만을 다룬 『드레스는 유니버스』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왜 이 여주인공들에 대해 알면 좋은지 가르쳐주세요.

좋은 건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깝잖아요. 열성 신도는 주변인들에게 전도하고, 덕질에 빠진 덕후는 남들이 자기 ‘최애’의 매력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저 또한 수십 년간 고전에 빠져 살아온 고전 덕후로서, 혼자만 알기 아까운 여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독자와 나누고 싶었어요. 

예전에 제겐 고전의 여주인공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요, 그것도 본받을 만한 모범적이고 완벽한 여주인공들이 아니라 에마 보바리나 테레즈 테케루처럼 욕구 불만 가득한 현실 부적응자들, 혹은 블랑쉬 드보아 같은 소위 ‘루저’들이었어요. 

이 책 속의 여덟 여주인공은 사실 사고뭉치, 문제아, 반항아에 가까워요. 그들은 금지된 것을 원하고, 자신의 좁고 한정된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죠. 잘못된 장소에 너무 늦게, 혹은 이르게 도착하는 여자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면서도 어딘가로 가기 위해 헛되이 분투하는 이들. 저는 항상 그런 여주인공들의 좌절된 꿈과 부질없는 열망에 공감했고, 예정된 실패와 몰락에 연민을 느꼈어요. 독자님들도 그들의 이야기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평소 출판 인세를 얼마 받는지 꼼꼼히 따졌고, 그의 모든 소설에서 돈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경제적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요? 만약 그렇다면 이는 당시 여성 작가들에게 흔한 현상이었을까요?

제인 오스틴만큼 돈 얘기를 많이 하는 작가도 없을 거예요.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에겐 연 수입이 얼마고 가진 땅과 재산이 어느 정도이며 물려받을 유산이 얼마나 있는지, 혹은 유산을 줄 만한 늙은 친척이 있는지 세세한 설명이 붙습니다. 

저는 오스틴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가 이런 뜻밖의 반전에 있다고 생각해요. 흔히들 오스틴을 로맨스 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지만, 그의 소설의 밑바탕에는 세끼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냉혹한 현실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날카로운 현실 감각이 오스틴의 로맨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여성이 공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당대 분위기 때문에 여성 작가들의 집필 활동을 가벼운 심심풀이 여가 활동 정도로 치부하려는 시각들이 있었지만, 당시의 여성 작가들은 진지하게 글을 쓰고 자기 글을 시장에서 팔려고 애썼던 프로들이었습니다.

 『제인 에어』를 다룬 편에서, 가진 것 없지만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애교로 남주인공을 비롯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캔디’와, 예쁘지도 않고 애교도 없고 미움받기만 하는 제인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제인이 오랜 세월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여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제인의 어떤 점이 작가님의 마음을 끌었나요? 혹시 제인과 같은 여주인공을 당대의 다른 문학 작품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까요?  

미모가 뛰어나거나 신분이 높거나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졌거나, 그런 특별한 장점을 가진 여주인공들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 뭔가 그런 남다른 점이 있어야 여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고들 생각하죠. 그런데 제인 에어는 그런 여주인공의 자질 중 어떤 것도 갖추지 못한 평범 이하의 인물입니다. 그런 면이 오히려 제인을 특별한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항상 다시 태어나도 저렇게 될 수는 없을 것 같은 다 가진 여주인공보다는 못생기고 외롭고 가난한데 성깔 있는 제인에게 더 공감했거든요. 결핍이 많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독립성, 사랑받지 못한대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강단에 끌렸던 것 같아요. 

제인과 같은 여주인공은 제가 아는 한에서는 찾기가 어렵네요. 샬럿 브론테의 동생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의 여주인공 캐서린 언쇼도 성깔 있지만 예쁘고 귀족 출신이고, 제인 오스틴의 여주인공들도 다들 예쁘거나 발랄한 매력이 있다거나, 전통적인 여주인공다운 무기를 하나씩 갖고 있지요. 화려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파티장을 압도하는 귀족 영애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구석에 조용히 서 있는 초라하고 못생긴 가정교사가 여주인공인 소설은 『제인 에어』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주목받지 못하는 가정교사의 영혼 속에 얼마나 많은 분노와 격렬한 열망이 숨어 있는지 아무도 몰랐겠지요. 그것이 어쩌면 『제인 에어』가 당대에 큰 반응을 일으키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요.

 『드레스는 유니버스』 속 여덟 여주인공은 각각 자신만의 꿈과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십, 수백 년 전 인물들인 그들의 꿈과 욕망은 과연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고전이라고 하면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져서 다시 볼 가치가 없거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옛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이 책의 여덟 여주인공은 우리처럼 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우리보다 거침없이 선을 넘어갑니다. 읽어보면 그 발칙함과 뻔뻔함에 놀라실 거예요. 시간을 견디고 오래 살아남은 고전들은 인간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면들을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은 크게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수백 년 전 여주인공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때, 우리가 하는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유니버스’와 우리의 ‘유니버스’는 수백 년의 시간과 서로 다른 공간을 넘어서 어느 부분에서인가는 반드시 겹칩니다. 서로 다른 세계와 만나서 겹칠수록 우리의 세계의 지평은 넓어지고, 나와는 전혀 다른,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라고만 여겼던 남의 얼굴에서 나의 숨겨진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덟 여주인공 중 한 명과 실제 삶에서 ‘베스트프렌드’가 될 수 있다면 누구와 친해지고 싶은가요? 

사실 이 여주인공들 대부분이 상당히 심란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서… 친구가 된다면 저까지 피곤해질 것 같기는 합니다. 옆에 있다면 “왜 그러고 사니” 하며 등짝 스매싱을 날릴지도… 

그래도 한 명을 꼽는다면 『이성과 감성』의 엘리너입니다. 겉으로는 차분하고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삐딱하고 냉소적인 시선을 숨기고 있는 모습이 저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도 자신과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고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최선의 것을 찾으려 노력하는 현명함을 배우고 싶어요.

책의 부록으로 고전 속 40명의 여주인공을 정리한 ‘여주인공 큐레이션’ 리스트를 만드셨습니다. 이 리스트 속에서 다음에 독자들에게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생각한 여주인공이 있나요? 그리고 여주인공이 해피엔딩을 맞이해 독자들이 안심(?)하고 읽을 수 있는 고전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책에 여덟 명으로는 아쉽다고 느낄 독자들을 위해 만든 리스트라고 설명을 적었지만, 저 또한 여덟 명으로만 이야기를 끝내기는 아쉽습니다. 이디스 워튼의 『환락의 집』의 릴리 바트도 제가 사랑하는 여주인공 중 한 명이에요. 경국지색의 미모를 타고났으면서도 '지팔지꼰'의 대명사라 할 만한 여주인공이죠. 매번 잘못된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 터지면서도 그게 이해가 되어서 더 안타까워요. 감수성 풍부한 제 친구는 릴리의 비극적인 결말을 읽을 때마다 운다고 하는데 저는 감성이 메마른 T지만 친구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많은 고전의 여주인공들이 릴리처럼 불행한 결말을 맞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고 싶다면 제인 오스틴 작품 중 어느 것이든 추천합니다. 모든 작품이 여주인공의 결혼으로 끝나니까요.

 『드레스는 유니버스』를 읽으실 독자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든, 책이든 좀 꼼꼼히 고르는 편이에요.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고전은 그야말로 검증된 책들입니다. 긴 시간을 거치고 살아남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고전이 훌륭하다거나 재미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다 보면 단시간에 후루룩 끓여낸 인스턴트 식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수백 년 전의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이라고 해도 의외로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합니다. 오래된 고전들이 여전히 읽히는 까닭은, 그것들이 죽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끈질기게 사로잡고 있는 꿈과 욕망 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세계가 유니버스로 확장되기를 바랍니다.

작가님의 다음 활동에 대해 살짝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늘 해오던 대로 계속해서 번역과 글쓰기를 계속할 거예요. 다음에 번역하기로 한 작품 중에 샬럿 브론테의 『셜리』가 있습니다. 대학원생 때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인데 아직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지 않았어요. 길이가 만만치 않고 초역이라 살짝 부담이 되지만 샬럿 브론테의 특별한 여주인공을 또 한 명 소개해 드릴 생각에 기대가 됩니다. 

고전 번역과 더불어 제가 연구하는 포스트 휴머니즘 관련 책들도 집필 계획 중입니다. 그중 한 권은 ‘종말’이 주제예요. 생각해 보면 고전은 과거의 이야기이고 포스트 휴머니즘은 미래의 이야기군요. 과거든 미래든,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쓰고 싶습니다.




*송은주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위키드』 『모든 것이 밝혀졌다』 『광대 샬리마르』 『클라우드 아틀라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종이로 만든 사람들』 『선셋 파크』 『블랙스완그린』 『겨울 일기』 『술라』 『시대의 소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등이 있다. 『선셋 파크』로 제8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



드레스는 유니버스
드레스는 유니버스
송은주 저
'ㅁ'(미음)
폭풍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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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 저 | 이신 역
앤의서재


제인 에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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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럿 브론테 저 | 유종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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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저 | 윤지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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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 저 | 전승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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