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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의 살다보니 SF] 로봇은 운동 같은 거 안 하던데
나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서 고통을 자처하고 있을까
그렉 이건의 ‘디아스포라 우주’ 세계관에서는 인간이 3가지 형태를 취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강화된 몸을 지닌 육체인(flashers), 인간 정신을 기계에 탑재한 글레이즈너 로봇(gleisner robots), 그리고 완전히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된 시민(citizens)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딴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사실 SF는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답니다. 심완선 SF칼럼니스트가 풀어내는 일상의 딴생각 이야기. 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
얼마 전 다른 평론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일 많이 하는 사람치고 안 아픈 사람이 없더라. 조심해야 해.” 예전에 도수치료를 받으러 정형외과에 갔을 때는 이런 말도 들었다. “1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15분씩 걸어주세요.” 나는 당황해서 속마음을 그대로 말했다. “어… 그렇게 많이요? 안 되는데요.”
물론 1시간마다 몸을 풀어주는 일이 안 되면… 안 된다. 인간의 척추는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를 버티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는 자세도 안 좋다고 한다. 인류가 갈 길이 멀다.) 아무리 집중을 끊기가 싫어도 중간중간 일어나 움직여주어야 한다. 알아서 쉬지 않으면 고통 때문에 쉬어야 하는 몸이 된다. 비록 육체를 많이 쓰거나 고된 환경에서 일하는 데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글쓰기도 병환이 생기기 쉬운 작업이다. 허리도 어깨도 목도 눈도 순식간에 상태가 나빠진다. 너무 흔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체력 부족과 통증은 워낙 고통스럽고도 흔한 문제다 보니, 작가들이 모이면 운동 이야기를 곧잘 한다. 황정은 작가는 컴퓨터 옆에 바벨을 둔다고 했다. 허리 디스크 질환을 겪은 후로 매일같이 데드 리프트를 한다는 글도 『일기』에 썼다. 그 글에는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복직근, 복횡근, 기립근, 둔근.” 천선란 작가는 헬스장에서 천국의 계단을 오르며(운동기구 이름으로, 우리가 육체를 지닌 채로는 절대 천국에 오를 수 없음을 깨우쳐준다) 생각을 정리한다고 했다. 원래도 튼튼하고 일 많이 하는 작가였는데 본격적으로 운동을 재개하며 더욱 강력해진 것 같다. 김성일 작가는 헬스를 시작하더니 쇳덩이를 일평균 10톤씩 드는 사람이 되었고, 자기는 허리가 아픈 적이 없다고 했다. 나도 부러운 마음으로 주문을 외워 본다. 복직근, 복횡근, 기립근, 둔근. 그리고 허리 디스크 수술비용 700만 원.
내 경우엔 의자 옆에 요가 매트를 두었다. 펼치기만 하면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 마사지 볼로 근육을 풀어주거나, 데드 버그로 복근을 단련할 수도 있다(죽어가는 벌레처럼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동작인데, 의외로 어려워서 자신의 하찮음을 절감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드러눕는 짓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또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누워 있기만 했다. 눈을 감고 이렇게 한없이 누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야, 그건 죽는 거잖아!
부랴부랴 집 근처 헬스장을 찾아가 PT를 신청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자신의 부족함을 일찌감치 인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점점 하루에 50보도 걷지 않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 또 PT 30회 가격이 평균적인 허리 디스크 치료비보다 저렴했다. 그렇게 1주일에 2회씩 트레이너 선생님이 날라주는 쇳덩이를 보며 “그걸요? 진짜요? 될까요?”라고 질색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신비롭게도 선생님은 매번 그게 진짜 되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슬프고 지쳐도 도망칠 수가 없다. 운동 끝나고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인간은 왜 힘들게 운동을 해야 하는 걸까. 로봇이나 외계인이 운동하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서 고통을 자처하고 있을까.
배부른 소리를 한다는 자각은 있다. 움직이면 움직여지는 몸을 지닌 것은 행운이다. 원활히 기능하는 몸이 누구에게나 당연하진 않다. 하지만 솔직히 나한테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굳이 인간형 신체로 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은 인간형 신체가 열등하게 취급되는 사회를 가정한다. 작중의 먼 미래에서 지구에 존재하는 지성체는 오로지 로봇뿐이다. 무엇이 건강하고 기능적인 몸인지는 당연히 로봇 기준으로 정해진다.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므로 어떤 모델이 인간형이라는 사실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족보행 로봇은 고장 나기 쉬운 몸으로 태어나는 안타까운 존재다. 심지어 머리의 섬유처럼 영문 모를 부품이 달려 있기까지 하다. 주인공 ‘케이’는 다른 로봇들의 견고하고 기능적인 몸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케이가 아무리 허약해봤자 나보단 육체능력이 뛰어날 것이다. 현실의 이족보행 로봇을 참고하면,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개발한 로봇 ‘캐시’는 100m를 25초 이하로 주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의 나에겐 만만찮은 상대다. 같은 회사에서 개발한 ‘디지트’는 무릎과 팔꿈치 관절이 있어서 다양한 운동 동작을 취할 수 있다. 팔굽혀펴기 100개, 스쿼트 100개를 한들 조금도 지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만화 『원펀맨』의 주인공은 팔굽혀펴기 100개, 스쿼트 100개, 윗몸일으키기 100개, 10km 달리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머리카락을 잃고 초인적인 힘을 얻는다. 그리고 로봇도 머리카락이 없다. 머리카락은 일부러 구현하기에는 지나치게 인간적인 부위다. 영화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에서 맞붙는 두 외계 종족도, 에일리언은 두상이 매끈하고 프레데터는 인간의 머리카락 같은 타래가 있다. 작중 에일리언들은 프레데터 둘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혹시…? 아니, 역시…?
뭇 소설에서 다루듯 인간의 미래는 인간형이 아닐 것이다. 육체를 마음대로 재구성할 수 있다면 ‘표준형’ 인체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찰스 스트로스의 『유리감옥』에서처럼, 팔이 4개여서 안 될 게 뭐람? 그렉 이건의 ‘디아스포라 우주’ 세계관에서는 인간이 3가지 형태를 취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강화된 몸을 지닌 육체인(flashers), 인간 정신을 기계에 탑재한 글레이즈너 로봇(gleisner robots), 그리고 완전히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된 시민(citizens)이다. 아직 제대로 읽진 못했는데, 시민들은 육체를 경멸하는 모양이다. 나도 내 몸뚱이가 힘겹다. 젊은 시절이 지나면 딱히 아프지 않더라도 근육이 점점 사라진다는 사실이 무섭다. 타고난 피부와 잇몸을 평생 사용해야 한다는 점도 걱정된다. 그래서 더욱 다른 몸을 희망하는지도 모른다. 소설에서처럼 별달리 신체를 단련할 필요가 없는 세상에 친숙해지면 특정한 동작을 반복해서 근육을 강화한다는 개념이 오히려 주술처럼 느껴진다. 그게 현실인데도.
작가들 이야기로 돌아오면, 워낙 삐걱거리는 사람들이다 보니 ‘눈을 교체하고 싶다’든가 ‘몸을 기계로 바꾸고 싶다’는 말도 종종 한다. 그러나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김원영과 김초엽 작가가 썼듯 실제로는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첨단 기술은 비싸다. 줄기세포 치료법처럼 획기적인 기술은 실현될 가능성도 적다. 현실에서 곧바로 소설 속 미래로 도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 미래는 멀지만 헬스장은 가깝다는 사실도 안다. 하루하루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다음 달에는 강한 몸이 된다는 예언도 믿는다. 요가 매트를 바로 옆에 두었다는 점도 잊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오늘은 진짜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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