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한국 유일의 SF 무크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오늘의 SF #1』 정소연 편집위원 인터뷰
특별히 ‘이것은 한국적이다’라고 받아들이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이미 있는데 발견되지 않았던 한국 SF의 여러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2019.12.24)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정소연 작가
‘한국 유일의 SF 무크지가 창간되었다.’ 이 한 줄의 정보만으로도 SF를 사랑해온 독자들은 열광했다. 『오늘의 SF #1』 은 더는 ‘한국 SF는 무엇인가?’를 묻지 않아도 되는 토양 위에서 탄생했다. 식상한 질문에 답을 내리기에 한국 SF는 이미 너무나도 다채롭다. 2019년 기준 온라인 서점의 장르문학 판매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듀나, 배명훈, 김초엽 등 뛰어난 SF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한국 SF의 결을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때다. ‘지금, 여기의 SF’를 말하는 이 무크지에는 어떤 고민이 담겼을까?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정소연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지금, 여기의 SF
창간 계기 및 과정이 궁금합니다.
SF를 중심으로 하는 지면을 만들자는 것은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작가연대) 설립 시부터 SF 작가들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이었습니다. ‘1기 임원진 주력 사업’으로,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예지 창간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해 1기 임원진(정소연, 배명훈, 김초엽)이 여러모로 형태와 방법, 출판사나 플랫폼 등을 고민하고 만나보았습니다.
2018년 11월 SF작가연대에 운영위원회가 신설되면서, 정세랑 작가가 출판 부문 운영위원으로 합류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정세랑 작가의 경험과 아르테의 기획과 출판 역량이 더해져 『오늘의 SF』 창간이 구체화되었고, 2019년 봄에는 편집위원 구성이 결정되고, 편집위원들과 출판사 담당자들이 논의하여 코너를 결정하고 원고 청탁을 시작했습니다. 2019년 4월경부터 SF작가연대 회원들은 잡지 창간을 예상하고 내부 엠바고를 걸고 창작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오래 준비하고 장기적인 기획으로 진행해, 필진들에게 마감까지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던 것도 무크지의 질적 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SF는 ‘소수 덕후’를 위한 장르문학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SF 작가도 늘어나고 작품 수도 많아졌습니다. 단순히 양적인 성장 외에, SF를 바라보는 관점, 향유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느끼시나요?
좋은 작품이 온전히 평가받는다는 인상은 받고 있습니다. 한국 SF는 질적으로는 항상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이었는데, 아무리 좋은 SF 작품도 제대로 언급이 되지 않거나, SF에 대한 추상적인 인상평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가시화되었다는 차이를 느낍니다. 사실 정말로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기보다는, 양적으로는 원래 컸는데 가시화가 비로소,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실제 크기에 맞게 보는 분들이 늘어났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이 질문의 전단에 있는 ‘인식’이 다소 허상이었고, 그 허상이 마침내 깨지고 있다고나 할까요?
미국, 중국, 일본 등에는 SF 전문 매거진이 있다고 들었어요. 해외의 SF 전문지도 참조하셨는지요?
저는 영미권의 여러 SF 잡지를 2000년대 초반 종이책 시절부터 오랫동안 구독했습니다. 《Asimov’s》나 《FSF(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 같은 역사가 긴 잡지는 물론이고, 독립출판 계열에서 시도한 소책자 등도 아주 많이 읽었습니다. 기획 과정에서 제가 가진 독자로서의 이런 경험의 영향이 전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만 특정한 잡지를 참고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한국의 SF 창작자들이 제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춰 역구성하는 방식으로 논의했습니다.
아르테 담당 편집자의 기획력도 있었고, 정세랑 작가의 문예 출판계 전반에서의 경험, 듀나 작가의 풍성한 콘텐츠와 분명한 방향성, 과학잡지를 오랫동안 만드신 고호관 작가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판단 등도 두루 영향을 미쳤고요. 문예지로 방향을 정했기 때문에 해외의 SF전문지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문예지의 영향이 결국은 더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순문학을 읽어온 독자, SF 장르 문법에 익숙한 독자 등 독자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요. 『오늘의 SF』가 꿈꾸는 타깃 독자의 모습은요?
활자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들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늘의 SF』 를 즐겁게 읽으리라 생각합니다.
미니멀한 디자인에 다양성을 담았다
책 디자인이 미니멀해요. 목록만 있는 표지, 뒷면의 바코드만 있는 단행본 형태가 인상적입니다. 의도하신 것인가요?
편집부 | 『오늘의 SF』 디자인에는 기존 문예지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SF다운 새로움을 시도하려고 했던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많이 반영되었습니다. 편집부에서는 새롭게 선보이는 무크지인 만큼 독자들에게 기대감을 심어 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고, 기존에 ‘SF’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우주, 사이보그, 외계인 등)는 사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방향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의 SF』 에 참여하신 쟁쟁한 작가분들의 면면과 이 책이 담고 있는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글만으로도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겠다고 생각해 이러한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검은 면에는 SF를, 흰 면에는 비소설을 실으셨어요. 지면의 색을 달리하여 구성하신 이유가 있나요? 앞뒤로 인터뷰 및 칼럼, 비평이 있고, 중간에 소설이 들어가게 순서를 정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편집부 | 『오늘의 SF』 에는 중편 1편, 단편 4편, 초단편소설 2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200페이지가 넘어 한 권의 앤솔러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크지/잡지로 분류되긴 하지만 『오늘의 SF』 의 메인은 소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고요. 그런 이유로 순서상의 배치도 중앙에, 지면도 검정으로 디자인해 무게감을 주려고 했습니다.
정소연 | 편집위원으로서 덧붙이자면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이북을 많이 보는 사람 입장에서 더미 북을 봤을 때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북디자인은 전문가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없는 한 의견 제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1호인 만큼, 잡지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필진을 섭외하는 것에 고심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원칙이 있었나요?
다양한 즐거움! SF 작가 풀이 워낙 크기 때문에 사실 필진을 섭외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풍이나 주제 의식, 방법론 등이 조금씩 다른 필진으로 구성하기 위해 신경을 썼습니다. 그리고 신인 작가들을 위한 지면 안배도 고민했습니다.
편집위원 전원이 ‘작가론’을 강조하셨다고요. SF의 현재성을 위해 ‘작가론’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둑 격언 중에 “(큰 곳보다) 급한 곳을 먼저 두라”는 말이 있습니다. SF 전문지를 만든다면 아마 큰 곳은 소설 파트일 것이고, 급한 곳은 비평 파트일 것입니다. 더 부족하고 더 급한 것이라서요. 그런 면에서 작가론을 우선했습니다.
“테마에 맞춰 소설을 청탁해 주제와 소재를 제한하기보다, 작가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 글을 싣겠다”고 하셨어요.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혹시 장기적으로는 각 글의 개성이 강해서 잡지의 일관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걱정도 조금은 하셨나요?
보통 문예지를 보면 특별한 기획호가 아니라면 창작자에게 소재 등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우리 『오늘의 SF』 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요.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지금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창작자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작자를 존중하고, 창작자에게 높은 자유도를 부여하면 당연히 더 좋은 결과물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SF라는 장르를 명확히 정한 지면이므로 일관성이 흔들릴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이런 방식이 ‘SF는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같은 단정이나 편견을 해소하고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SF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SF 비평’은 단순히 SF를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고, SF만의 새로운 독법, 관점을 필요로 합니다. 기존 문단에서 SF를 비평하는 것과 SF의 비평 장을 새롭게 만드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SF도 이미 정립된 장르이기 때문에, 비평에서도 SF의 비평 이론이 있고, 이데올로기가 있고, 비평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 없이 SF를 비평하는 경우, 장르 비평에 꼭 필요한 준거가 하나 비어 있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뭔가 빠졌거나 방향이 지나치게 다르거나 무언가를 보지 못할 우려가 있지요. 한국 SF는 한국 문학인 동시에 SF입니다. 한국 SF를 읽을 때에도 SF라는 장르의 역사와 맥락, 무엇보다도 기존 SF 비평 이론을 전제한 비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성실한 비평 장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실린 전혜진 작가의 에세이와 듀나 작가의 단편소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생활공간을 SF에 끌어들이는 시도는 이제는 새롭다고 하면 민망할 만큼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SF 작가들이 한국적인 공간을 다루고, 독자들이 자신에게 친숙한 공간을 SF적인 곳으로 상상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요?
한국 SF 작가들이 한국적인 공간을 다루는 것은, 필요하다기보다는 창작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창작물이 이미 아주 많고요. 독자님들도 특별히 ‘이것은 한국적이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는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앞 질문에 대한 답과 비슷하게, 다만 다소 비가시적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미 있는데 발견되지 않았던, 혹은 발견되지 못했던 한국 SF의 여러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독자들에게 『오늘의 SF』 와 한국 SF를 더 재미있게 읽는 팁을 주신다면요?
아껴 읽고 서점에 별5개 남겨 주세요!
* 정소연
서울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현재 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이자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이다. 2005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스토리를 맡은 만화 「우주류」로 가작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한 이래 소설 창작과 번역을 병행해 왔다. SF 단편집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백만 광년의 고독』, 『아빠의 우주여행』 등에 작품을 실었고, 『미지에서 묻고 경계에서 답하다』(공저), 『옆집의 영희 씨』, 『이사』 등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허공에서 춤추다』, 『어둠의 속도』, 『화성 아이, 지구 입양기』,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초키』, 『플랫랜더』 등이 있다.
오늘의 SF #1정소연, 전혜진, 정보라, 연상호, 이다혜 저 외 16명 | arte(아르테)
한국 SF 무크지로, ‘현재성’, ‘다양성’, ‘감수성’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비평, 창작 등 여러 분야의 필진, 인터뷰이와 함께 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텍스트로 독자들을 만난다.
관련태그: 오늘의 SF #1, 정소연 편집위원, SF, 한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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