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문학장 안에서 SF는 가장 주목받는 장르이다. 출간 종수와 판매량, SF 작가진 규모의 급증은 SF 서사를 향한 대중들의 열띤 관심과 애정을 증명해준다. 그러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 반해, 작품의 의미를 길어 올리고, 잠재된 가능성을 실현케 하는 SF 비평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SF 애독자이자 SF 평론가로서 국내외 SF의 궤적을 성실하게 따라온 심완선은 두 번째 비평서를 통해 독자적인 비평 세계를 세상에 내놓는다. 『SF와 함께라면 어디든』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비중 있게 다루어 급성장세에 있는 한국 SF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 유용함을 더한다. SF를 새롭게 정의하고, 170여 편에 달하는 국내외 작품들을 들여다보는 심완선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SF 여행자들은 낯선 세계를 향한 두려움과 경계를 풀고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SF 평론가로서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책에는 "어떤 이슈를 접할 때 종종 '그거 이미 SF에서 이야기한 건데'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근에 선생님께서 접하신 이슈가 무엇인지, 어떤 SF 작품과 연관 지어 보셨는지 궁금해요.
최근 태국 치앙마이에 갔어요. 국수를 잔뜩 먹었습니다. 어느 국숫집은 우주를 테마로 잡았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가게 한쪽에 우주선이나 달이 그려져 있었어요. 그리고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 국수를 먹고 있는 거예요. 우주선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아니면 달 표면에 깃발을 꽂고서, 헬멧을 쓴 채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어요. 말도 안 되죠. 얼굴이 막혀 있는데 어떻게 밥을 먹어요.(물론 인간이 아니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SF 독자가 생각하기에는요)
하지만 우주에서도 밥은 먹어야 하긴 하죠. 우주선의 식량을 다룬 SF 소설이 자연스럽게 생각났습니다. 『식스웨이크』를 보면 우주선에 꾸역꾸역 찻잎을 챙겨간 사람이 있어요. 티백도 아니고 찻잎이에요. 어떻게 보면 사치스럽죠. 그만큼 중요한 소지품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찻잎은 사람들이 진정하고 대화를 나눌 때 요긴하게 쓰입니다. 사람에겐 필수 영양소 외의 뭔가가 필요해요. 「미싱 스페이스 바닐라」는 우주선에 실렸던 바닐라 아이스크림 이야기입니다. 진짜 아이스크림은 아닙니다. 바닐라 착향료가 들어갔을 뿐, 맛은 비슷하지도 않은 퍼석한 물건이에요. 그래도 식량을 준비한 사람들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라며 실었어요. 지구에서, 한때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곳에서 먹던 물건이니까요. 작중 지구는 전쟁과 재난으로 멸망하는 중입니다. 이름만 아이스크림인 물건이라도 사람들은 그걸 포기할 수 없었던 거예요. 다른 선택지도 없고요.
지구에서도 점점 선택이 제한되고 있죠. 환경 오염이 더욱 심각해지면 나중에는 정말 어떻게든 헬멧을 쓴 채로 밥을 먹어야 할지도 몰라요. 적어도 인공 식품은 일상이 되겠지요. 『다이아몬드 시대』는 자연산 재료가 사치품으로만 남은 시대를 다룹니다. 어쩌면 '자연산'은 비윤리적이라고 인식이 변할 수도 있어요. 영화 <옥자>나 「한 터럭만이라도」에는 육식에 관한 질문이 들어 있어요. 아니면 동식물이 거의 사라져서 사람들이 인간 클론을 먹는 소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도 포함할 수 있겠네요. 지금 우리는 콩고기를 먹어요. 인공 계란이나 우유도 개발되는 중입니다. 점점 배양육을 먹게 될 테죠.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타협, 납득, 만족을 해야 할 거예요. 그렇다면 그런 변화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할까요? 제가 바로 답할 만한 질문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SF를 통해서 보는 질문입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적어도 우리의 결과물이 너무 맛없지 않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전갈의 아이』를 보면 주인공이 국경에 머무를 때 가혹한 아동 노동에 시달리거든요. 그러면서 이상한 해조류를 가공한 맛없는 물건을 먹고 지내요. 다행히 제가 치앙마이에서 먹은 국수는 맵고 맛있었어요.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싹싹 먹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르는 곳에서 외국 음식을 먹으며 우주인 그림을 보다니, 메뉴판에서 제일 친숙한 게 음식 이름이 아니라 우주 왕복선 그림이라니, SF 관련해서 꼭 이야기해야겠더라고요.
SF 평론가로서 할 일은 'SF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일과 사람들을 SF로 초대하는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SF만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저는 "SF 독자는 기대하지 않은 결말을 기다린다"는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미 많은 말들이 나와 있어요. SF를 좋아하는 선배님들이 정리해놨습니다. 예를 들어 로맨스가 로맨스 서사를 본질로 삼는다면, SF는 서사보다는 SF 세계가 핵심입니다. SF의 서사는 아주 다양한 결말로 흐를 수 있어요. 처음에는 비슷비슷하고 익숙한 모습에서 출발하더라도요. 예를 들어 우주선, 외계인, 로봇은 SF에서 흔히 쓰는 소재잖아요. 우리는 그게 뭔지 알아요. 하지만 그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는 예상하기 어렵죠. 생각도 못 했던 세계가 보이면 제일 신나고요.
그러니 SF는 참신함에 익숙해지기 좋아요. 저는 미스터리와 판타지를 잔뜩 읽었고, 웹 소설의 시대가 된 후로는 현판과 로판을 잔뜩 보고 있지만, 저의 세상을 차지하고 있는 장르는 계속 SF네요. 자꾸 다음 SF를 찾게 돼요. 내가 사전에 형성한 기대를 뛰어넘기 때문에, 내 생각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기 때문에. 게다가 많이 볼수록 재미있어요. 장르가 움직이는 궤적이 보이거든요. 책의 「시간여행과 대체역사」 파트에서 『타임머신』과 『타임십』을 같이 다루었는데요. 둘의 출간연도가 딱 백 년 차이예요. 그동안 시간여행 SF 아이디어는 엄청나게 늘었죠. 그렇게 후속하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타임머신은 계속 생명력을 얻고 있는 거고요.
SF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SF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으신다고요. 낯설게 느껴졌던 SF 장르의 선호도가 높아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당연히 SF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은데, 이렇게 끝내면 좋은 대답이 아니겠죠. 우선 SF가 정말 잘하는 이야기들이 있고, 그게 매력적이에요. 기후위기로 인한 포스트아포칼립스를 다루려면 SF가 좋아요. SF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이야기고요. 가상현실, 환경오염,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죠. 지금 우리가 궁금해할 만한 주제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두 가지가 관련이 있어요. 하나는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SF 작품이 가시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장르가 섞이는 건 현재 곳곳에서 보이는 현상이잖아요. 예전에는 어떤 작품이 SF에 속하면 다른 장르가 아니었고, 다른 장르면 SF가 아니었어요. 그렇게들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복합장르가 흔해졌어요. 창작자든 독자든, 하나의 작품에 여러 개의 해시태그를 붙이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요. 장르와 비장르도 많이 섞였죠. 장르 요소를 쓰는 분이 늘었고, 독자는 '저기에는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거야'라고 기대하는 분들이 보여요. 그런데 마침 눈앞에 한국 SF가 나타난 셈이에요. 한국 SF 자체는 계속 있었지만, '마니아의 장르'가 아니라 한국 문학의 일부로 읽히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찾아보기 쉽게 된 지도요. 그래서 많이들 시도해보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저 두 요인은 인과 관계보다는 상관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쇄적인 피드백 고리를 통해 양쪽 다 강화되는 중으로 보여요. 가벼운 예를 하나 들면, 사람들이 SF를 찾으니까 출판사도 마케팅에서 'SF'를 지우지 않아도 돼요. 그러면 SF가 많이 보이죠. 찾기가 쉬워지고, '나도 읽어볼까' 하는 사람이 늘어요. 그러면 또 다른 SF가 기회를 얻고요. 선순환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확장되는 세계'부터 '로봇과 클론'까지, 이 책은 12가지 키워드를 통해 SF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12가지 키워드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을까요? 또, 키워드의 배치 순서에도 따로 의도하신 바가 있었을까요?
'SF' 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를 자르고 붙이다 보니 12개가 되었어요. 그리고 친숙하고 오래된 것에서 점점 미래 지향적인 것으로 배치했습니다. SF의 출발점인 '확장되는 세계'가 맨 처음이에요. 그중에서도 '다른 세계를 향한 낭만'부터 이야기하고요. 중요한 부분인데 한국에서 잘 이야기되지 않아서 꼭 넣고 싶었어요. '왜 사람들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열광했을까?'에 대한 저의 답이기도 합니다.
'낭만'에 관해 부연하자면, SF라는 이름은 '과학적 로맨스', 혹은 과학을 사용하는 '새로운 종류의 로맨스'로 출발했어요. 영국이나 미국에서는요. 여기서 로맨스는 로맨틱한 관계를 다루는 장르가 아니라 문학 이론에서 노벨과 대비되는 장르를 말합니다. 낭만주의 작가인 너새니얼 호손의 말을 빌리면 '실제 땅덩이'가 아니라 '머리 위의 구름'에 가까운 것입니다. 예전 사람들이 SF를 로맨스로 여겼던 이유가 납득이 가죠. 왜 SF가 지금까지 매력적으로 살아있는지도요.
물론 SF가 새로운 로맨스였던 이유는 과학 때문이에요. 하지만 SF는 과학 자체가 아니라, 현재 현실의 과학 다음을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쓰였더라도 SF의 목표는 픽션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SF는 아무리 픽션이어도 과학적이어야, 적어도 합리적이어야 해요. 물론 아주 많은 예외와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과학 때문에 SF를 두려워하진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덧붙여 SF를 하드/소프트로 나누는 건 잘못된 분류라는 점도요. 그 분류는 수명이 끝났고, 이제 와서 쓰기엔 이상해요.
나머지 키워드는 SF의 또 다른 기원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낯섦과 차이', 그리고 '점점 크고 멀리 있는 것'으로 흐르죠. 예를 들어 '지구 탐험' 다음에는 '우주 여행'이에요. 마지막에는 인류의 미래로 끝납니다. 그런데 이들 키워드는 모두 현재성이 있습니다. 책에 언급했듯 전부 신간이 있어요. 이렇게 과거에 나왔던 이야기가 참신하게 재생되는 점이 SF의 매력이고요.
청소년 소설에서도 다양한 키워드의 SF 소설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SF를 어렵게 느끼는 청소년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선생님 혹은 학부모 독자들이 부담 없이 SF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SF를 꺼리는 분들이 많이 하던 말씀이 '허무맹랑하다'와 '어렵다'예요. 전자도 그렇지만 후자는 정말 해소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책, 나와 가까운 책부터 읽으면 좋아요.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주인공이 나오거나, 내가 아는 소재를 다루는 책이 접근하기 쉽겠죠. 요즘은 청소년 SF도 많이 나왔고요. 만약 어렵다 싶으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도 돼요. SF 소설은 아주 많이 있으니까요. 물론, 모두가 SF를 좋아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이 있어요. 전부는 아니라도 누군가는 확실히 SF를 재미있어해요. 그게 당신일지도 몰라요.
'SF에 새로이 진입하는 독자'들을 위해 흥미와 재미 위주로 작품을 골라주셨는데요. 청소년, 성인 독자를 위해 각각 1권씩 추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너무 어렵습니다. 작품을 하나만 고르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문이 막혀요. 정말 최고의 최선을 고르고 싶은데, 그건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게다가 제가 청소년기에 흥미롭게 읽었던 책과, 어른으로서 청소년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달라요.
이에 관해 앤 패디먼의 '다시 읽기'라는 글이 생각나는데요. 엄마인 저자가 자녀에게 『나니아 연대기』를 읽어줘요. 엄마는 이런 고전에 담긴 인종 차별적 한계를 압니다. 그래서 읽기를 자꾸 멈추고 첨언을 해요. 하지만 어린이는 멈추지 말고 계속 읽어달라고 합니다. 이야기에 매혹되어 있으니까, 막힘없이 달리고 싶으니까요. 멈추기와 달리기, 이렇게 둘의 읽기 방법이 다릅니다. 나이보다는 경험의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처음에는 몰입해서 달려보고, 다음에는 멈춰서 찬찬히 둘러보는 쪽이 좋죠. 영화를 여러 번 볼 때도 그렇게 하잖아요.
그러니 청소년, 혹은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분들께는 금방 읽히는 페이지 터너를 추천하고 싶어요. 너무 뻔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대중적일 작품이면 좋겠는데, 혹시 『작은 친구들의 행성』은 어떨까요? 쉽게 읽기 좋은 여러 요소가 있어요. 웃기고 뻔뻔하고 머리 좋은 주인공, 많은 농담, 낯설지만 어렵지 않은 용어들, 귀여운 생물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 그리고 웃음과 긴장과 결정적인 반전이 나옵니다.
성인, 혹은 독서에 익숙한 독자분들께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 좋겠죠. 그런 작품도 정말 많지만 『블러드차일드』가 생각나네요. SF가 독자의 시야를 바꿔준다면, 이 단편집은 SF 독자의 시야를 한 번 더 바꿔줍니다. 이만큼 특출해야 그때 활동할 수 있었구나 싶고요. 버틀러는 상당히 오랫동안 미국에서 유일한 흑인 여성 작가였거든요.
제목에 여러 의미가 담긴 것 같아요.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읽히기도 하고, 어디든 '좋아'라고 읽히기도 하는데, 독자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로 가 닿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 저는 하루에 3권씩 소설을 읽었어요.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하교하자마자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눈이 침침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책에 푹 잠겼다가 빠져나오면 현실감이 애매해져요. 내 정신이 내 몸과 같은 곳에 있지 않다는 느낌이에요. 그건 도피일지도 모르지만, 해방이기도 했어요. 여기가 어디든, 여기가 아닌 곳으로 갈 수 있다고요. 제목의 원래 의미는 '갈 수 있어'였지만, 여러분은 '좋아'로 나아가면 좋겠네요. 저는 하필이면 SF를 잔뜩 읽은 덕분에 낯선 세계를 좋아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가치관, 사고방식, 취향, 경험을 해석하는 관점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어디로든 여기가 아닌 곳으로 가보는 일의 좋음을 알았어요. 다른 분들도 경험하셨으면 합니다.
*심완선 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 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칼럼, 리뷰, 비평, 해설, 에세이 등을 쓰며 대담, 인터뷰, 강의 등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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