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색 아이템으로 만나는 일상의 자본주의
『자본주의 인문학 산책』 조홍식 저자 인터뷰
일상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움직이고 변화시켰는가? 『자본주의 인문학 산책』에서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2023.08.29)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21세기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내는 제도는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의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일상의 영역에서 그 요소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당대의 문화적인 시대상과 사회상이 담겨 있고, 역사·미학·경제학적 의미까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지구촌 물질문명을 매개로 자본주의와 문화의 상호 작용을 관찰해보면,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운 발견이 많을까? 우리 일상의 의식주를 시작으로 유통, 화폐, 금융, 건강, 스포츠, 예술, 관광, 교육, 전쟁, 정치까지... 인류 역사상 중요한 23가지 테마별로 자본주의 세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들여다보는 작업은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일상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움직이고 변화시켰는가? 『자본주의 인문학 산책』에서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아프리카로 이동해 국제적 유목민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능하면 다양한 사회를 경험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유럽이나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회 과학을 연구하면서 유럽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정치 경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전공이 정치학이지만 인근 사회 과학이나 인문학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또, 직업은 학자지만 대중과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언론의 글이나 책을 통해 소통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를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으신 지도 벌써 30여 년이 되셨다고 들었어요.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정치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30여 년...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사실 프랑스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제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주제는 작게 보면 한국과 프랑스, 크게 보면 동아시아와 유럽을 비교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석사 논문 주제는 '근대화'였습니다. '어떻게 유럽에서 시작한 근대화가 동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것이죠. 그리고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당시 세계적으로 떠오르던 일본에 대한 유럽의 대응으로 정했습니다. 유럽과 일본의 관계에 비교의 관점을 적용해서 '어떻게 일본의 부상이 유럽의 통합을 가져오는데 기여했는가'에 대해 연구하자는 심산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부상은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현상이었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정치경제의 관점으로 유럽과 일본을 비교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신간 『자본주의 인문학 산책』이 집필하시며 가장 재미를 느꼈던 책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일까요?
현대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너무나 당연한 제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해보면 자본주의는 정말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아주 특수한 제도이고 생각입니다. 21세기에는 자본주의의 원칙에 속하는 서로 주고받는 일, 즉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불과 몇 세기 전에는 '기브 앤 테이크'라는 생각 자체를 불순하고 천박하다고 여겼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는 행위, 베푸는 일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을 때, 그 은혜를 너무 빨리 갚으려고 하면 오히려 어색하고 거북하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지금과는 정말 다른 세상이었던 셈이죠. 이런 변화들을 추적하는 일은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지적인 여정이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살펴보는 데 왜 문화의 관점이 필요한지 궁금해요.
앞에서 말씀드린 사례에 대해 인류학자들은 '선물(膳物)의 논리'가 '교환의 논리'로 대체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자본주의는 자연스러운 제도도 아니고, 인류 보편의 생각도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이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모든 사회 관계에 주고받기의 사고를 적용하고, 개개인이 무엇을 선택한다는 느낌을 주거든요. 진짜 선택을 하는 것인지, 느낌만 그런 것인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지만요. 아무튼, 경제의 시각만으로 자본주의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문화의 관점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종교적 태도가 자본주의의 기원에 결정적이었다는 주장은 이미 막스 베버가 100여 년 전 강하게 피력한 바 있습니다. '창조적 파괴론'으로 유명한 자본주의의 이론가 조지프 슘페터 역시 20세기 중반 자본주의란 문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요. 문화와 자본주의는 실과 바늘처럼 함께 움직이는 장치입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개인주의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만큼 전 세계의 대중이 똑같은 것을 소비하는 사회는 없었거든요. 청바지와 티셔츠는 지구촌의 유니폼이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외딴 마을까지 침투한 소비의 문화를 인류가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왜 사람들이 청바지와 티셔츠를 자발적으로 입으려 하고,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게 되었는지 문화적 설명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신간의 부제 '23색 아이템으로 만나는 일상의 자본주의'가 흥미롭게 느껴져요. 본문 내용 중 하나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스팸 통조림과 명품 자동차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식품은 경공업에 속하고 자동차는 중공업에 속하지요. 둘 다 자본주의를 통한 치밀한 제조 과정을 갖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돼지나 소 등 가축을 거대한 공장의 자동화 작업 체인에서 부위별로 절단하는 분업의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시카고가 그 중심이었죠. 20세기가 되면서 작업 체인의 아이디어를 자동차 산업에 적용하게 됩니다. 다만, 분해가 아니라 조립하는 정반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돼지가 체인에 들어가 머리, 목살, 갈비, 삼겹살 등으로 분해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엔진, 핸들, 바퀴가 체인으로 들어가 완성된 자동차로 나온다는 차이지요. 시카고에서 돼지 통조림 산업이 흥했다면 자동차 산업은 인근 디트로이트에서 발전합니다. 이처럼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미국처럼 광활한 영토에서 생산이 집중되면서 만들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만든 통조림과 디트로이트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뉴욕부터 LA까지, 즉 대서양부터 태평양까지 소비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 분업의 체인이 작동하는 공장은 이후 거의 모든 산업에 적용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갑니다. 아침에 먹는 통조림이나 출퇴근하면서 사용하는 자동차는 모두 일상의 아이템이죠. 이들이 똑같은 자본주의 생산 문화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22세기의 한국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책에도 잠시 언급하셨지만, 100년 뒤에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는 경제 사회 시스템으로 존재하고 있을까요?
미래에 대해 언급할 때는 큰 겸손이 필요합니다. '모른다'가 기본적이 답이겠으나 그렇다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현재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태도가 합리적입니다. 자본주의가 그냥 단순한 경제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적 변화를 동반한 일종의 문명이기에, 다른 시스템으로 가기 위해서는 장기적 변화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변화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22세기의 한국은 아주 멀어 보이나 사실 2020년대 태어나는 아이들이 직접 경험할 미래입니다.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는 잘 사는 사회일수록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역설입니다. 자본주의를 동반하는 개인주의 문화의 병적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지요. 개인의 관점에서 모든 분야의 물질적 손익을 계산한다면 자식을 낳는 일이 인생의 가성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서가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 자본주의에 뒤늦게 뛰어들었으나 기록적으로 낮은 결혼 및 출산율이 보여주듯 개인주의 경향은 최첨단입니다. 사회의 균형이 깨질 위험이 무척 큰 상황이지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자본주의를 찬양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찬양이나 비판에 앞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일이 사실은 급선무입니다. 이 책이 시도하는 작업은 자본주의가 얼마나 깊숙이 우리 삶의 소소한 일상에 자리 잡고 있는지, 역사를 통해 관찰하는 일입니다. 자본주의는 쉽게 떨쳐버릴 수 있는 제도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자세히 보면 매우 강한 자본주의적 욕망을 품고 있거든요. 민족주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시도가 자본주의보다 더 강한 사회적 불평등을 낳은 이유지요. 자본주의를 이해한 다음에 필요한 과정은 아마도 반성일 것입니다. 개인 중심의 물질적 풍요와 축적은 밑 빠진 독이고 채울 수 없는 갈증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사회적 관계와 정신적 풍요라는 균형추가 필요하다는 반성 말입니다.
*조홍식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루이대왕고등학교 졸업 후 파리정치대학에 진학해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1993년 유럽통합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에는 중앙일보, 세종연구소, 가톨릭대학교 등을 거쳐 2006년부터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경제와 유럽정치를 가르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중국 북경외국어대학교, 프랑스 파리 판테온소르본대학교,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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