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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X정희원 칼럼] 운전면허 없는 남자

전현우X정희원의 거대도시에서 이동하기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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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면허가 없다. 무면허자가 이동하려면 결국 대중교통이 가장 편하다. 사회적 압력이 없었을 리 없고, 돈 문제도 이제는 없음에도 그렇다. (2023.07.07)


기후 위기 시대, 도시의 이동을 탐구하는 교통, 철학 연구자 전현우와
도시인의 이동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크로스 에세이.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언스플래쉬

지난 퇴근길에 들춰 본 5화는 대부분 내가 공감하는, 그리고 실제로 계산을 시도해 보았던 주제를 다룬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은 나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문장이다. 철도와 같은 대중교통을 택할 수 없을 때 남는 선택지가 승용차라는 말이 문제다. 

나는 면허가 없다. 무면허자가 이동하려면 결국 대중교통이 가장 편하다. 사회적 압력이 없었을 리 없고, 돈 문제도 이제는 없음에도 그렇다. 자동차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게 조금 알려져서 그런지, 아니면 단순히 조금 나이가 들어서인지, 면허도 따지 않은 무책임하고 무능한 놈이라는 일장 연설을 들을 일은 이제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속으로는 정말 운전면허도 없다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림 1. 한국의 연령별 인구와 운전면허 소지자, 2021년 기준
출처 : 「운전면허소지자현황」, 경찰청. 총인구는 주민등록인구, 행정안전부.

내친김에 조금 더 찾아본다. 정상적으로 경제 활동을 벌이는 30대 후반 남성에게 면허가 없는 것이 정말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 그림 1은 여기에 아주 강하게 긍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면허자 비중이 가장 낮은 연령이 바로 21년 당시 내 나이였던 35세(무면허 비율 5.76%)이다. 하긴, 어릴 때부터 자동차 지배 속에서 살아온 데다, 이동 수단을 이용해 어린이나 노인을 돌보아야 하는 책임도 지고 있는 연령이 바로 이들이다. 

그림 1.은 내 이야기를 다른 수백만 명의 한국인들로 넓히는 창이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노인층에게서는 운전면허 소지자보다 무면허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21년 당시 72세였던 1950년생보다 어린 사람들만 운전면허 소지자가 더 많다.(그림에서 운전면허 소지자와 무면허자의 곡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들 1950년대생은 10대 초반~20대 초반에 경부고속도로 개통(1970년)을 보았다.(마침 연재일인 7월 7일 오늘은 경부 고속 도로 개통 53주년이다) 경부 고속 도로를 아주 젊은 시절 충격으로 받아들인 연령대부터 무면허자의 비중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뜻이다.

21년도 당시 60대 중반~50대 초중반 사이이던 1960년대생으로 넘어오면, 무면허자는 그 절대량조차 줄어든다. 이들이 20대를 보내던 1970~80년대 개발된 강남을 시작으로 한국의 도시는 자동차 지배 속에 잠기기 시작했다. 

21년도 당시 30~40대, 즉 1970~80년대생은 이렇게 자동차가 당연한 도시 속에서 성장한 세대이다. 이들 사이에서 무면허자의 비중은 10% 미만이고, 특히 1978~1987년생의 경우 무면허자는 약 6%에 불과하다. 2000년대 들어 전국토를 그물망처럼 덮게 된 고속 도로망과 함께 성장한 이들은, 자동차 지배 속에서 일상과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무면허자 비율이 아직 10%를 넘던 21년 당시 20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앞으로 자동차가 '거함거포주의'를 타고 계속해서 비싸져 부유층의 장난감에 점점 더 가까운 것이 되어갈수록, 1990년대생과 그 이후 사람들은 면허를 덜 따게 되리라는 예상 이상을 내놓는 건 섣부를 것이다.


하차감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분명 나는 2023년 현재 자동차를 권하는 압력이 가장 강했던 세대에 속해 있다. 세대 말고 다른 요인을 감안해도 내가 면허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예상하는 건 어렵다. 성별? 남성 면허자가 여성 면허자보다 1.5배는 많다. 지역? 인천은 승용차 통행이 대중교통 통행보다 배로 많은 지역이다. 나이가 같은 사람 가운데 6%만 면허를 따지 않은 거라면, 계급 문제도 아니다. 신체 문제도 물론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는 승용차를 택하지 않았다. 

이 선택의 이유를 생각해 본다. 결국, 시작은 자동차 운전이 사회에 끼치는 비용에 대한 어렴풋한 자각이었던 것 같다. '자본주의적 재화'의 대표이자, 사회에 큰 부담이 되는 선택이 바로 승용차라는 이야기들을 용케도 찾아 읽었다. 단순히 읽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내가 높이 평가하는 이동의 틀을 잡는 데 활용했다. 숫자를 더 찾아보면서, 자동차의 비용은 더욱 또렷해 보였다. 차량 소유와 운전이 자기가치감을 오히려 갉아먹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역시 세상은 요지경. 나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말이 요사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말았다. 하차감.1) 차량에서 내렸을 때 주변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쏠려 얻을 수 있는 우쭐한 감각을 가리키는 말. 중고차 업체들에 따르면 이 감각은 차량이 어떤 메이커에서 제조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승용차는 이동력을 제공하는 기계일 뿐만 아니라, 위계와 지위를 과시하는 재화로서도 기능한다는 현실이 이 유행어에 담겨 있다. 

하긴, 이런 유행도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똥차 가고 벤츠 온다"라는 속언도 있으니... 하필이면 여러 자동차 메이커 가운데서도, 특히 무식하게 큰 미국차에 비해서는 날렵한 독일 메이커의 차량 가운데서도 덩치 있기로 유명한 벤츠가 이렇게 좋은 것을 나타내는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바로 그 벤츠는 디젤 게이트의 한 주인공이었다. 디젤 게이트란 2010년대 일련의 독일 차량 메이커들이 담합하여 디젤 승용차의 배출 가스 저감 장치 성능 정보를 속였던 사건이다. 깨끗하고 멋진 이미지 위에 서 있던 '벤츠'가 실은 오염 물질을 내뿜는 '똥차'였다는 게 밝혀진 사건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관료화된 대기업이 이런 스캔들에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일 리가 물론 없다. 한국 공정위도 벤츠에게 기만 광고를 이유로 과징금 202억 원을 부과했을 정도이다.2)  구질구질한 것이 '똥차'의 특징이라면, 현실의 벤츠는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그럼에도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신화는 여전히 대중의 입에서 계속 쓰이며 재생산되고 있다.


환상 속의 벤츠

"하차감", "똥차 가고 벤츠 온다"는 모두 승용차가 인간의 미묘한 감정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감정의 힘은 너무나 견고해 디젤 게이트 따위로는 흠집조차 가지 않는 듯하다. 하물며 수십 년 뒤에야 청구서가 날아올 건강의 붕괴, 미래 수백 년간 이어질 기후 붕괴라면? 

다차원적 위기를 읽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비용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이미 아주 복잡한 자동차 주변의 사물에 이를 평가할 기준이 될 여러 개념적 틀과 정보를 추가로 덧씌워야 한다. 도시 시스템, 에너지 시스템, 다양한 재료 조달 시스템, 이들을 종합해 내는 숙련 노동, 기후의 안정성, 인체의 역량, 시간의 구조, 공간에 대한 권리, 그리고 길 주변에서 이뤄지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 이들 틀에 대해 주입식 교육이라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정직한 내 심경이다. 하지만 그게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국 출발점은, 자동차 산업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살피는 데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줄이면, 자동차 산업은 환상을 판다. 이 환상은 벤츠를 사면 당신도 '벤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환상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관련 산업계는 심지어 금융의 힘까지 빌려 사람들에게 바람을 불어넣고 거품을 만들어 낸다. 무슨 거품이냐고? 2010년대 들어 자동차 리스 금융 상품이 생긴 이후 '카푸어'가 다수 나왔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카푸어를 만들어내는 리스 상품의 구조에 대해서는 지금껏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디젤 게이트처럼 인과적 증거조차 또렷하지 않은데 왜 그렇게 하겠는가? '하차감'을 누리려고 했던 개인이, 분별력 없이 소비를 일삼았던 후과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싸늘한 시선. 그 시선을 엄폐물 삼아, 리스 상품은 시중에서 계속 판매 중이다.

분별력 없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문제들이 이처럼 자동차를 둘러싼 환상 곁에는 득실댄다. 리스 금융과 카푸어는 물론, 앞서 살핀 속도의 물신, 이상한 운전, 괴이한 주차, 정체를 유발하기 위해 도로를 메우러 나온 사람들, 교통사고를 부르는 난폭 운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 자동차가 팔아 온 환상의 그늘 속에는 수많은 문제가 방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도로와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야를 넘어서는 폭넓은 시공간으로 확장된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자동차 지배 덕에 마주하게 된 여러 위기의 정체이다.

이 위기가 눈에 띈 이상, 나는 앞으로도 면허를 따지 않을 것이다. 면허가 없든 있든, 자동차 지배 시대를 사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나는 요청하고 싶다. 자동차가 팔고 있는 환상이 실제로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곰곰이 따지기. 좀 더 침착하고 냉정하게 자동차를 바라볼 수 있도록 더 많은 정보와 관점을 제시하라고 책임 있는 주체에 요구하기. 그렇게, 우리 사회 전체가 일종의 '카푸어'로 전락하지 않도록 돌보기.



1) 승차감보다 중요한 하차감? 수입 중고차가 인기있는 이유, 헤이딜러, 2022. (바로 가기)


2) 벤츠, 1차 디젤게이트 후에도 기만 광고 지속, 중기이코노미, 2022-02-07.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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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현우(교통, 철학 연구자)

서강대학교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자연종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교통, 철학 연구자. 과학 철학을 연구하던 중, 대규모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사람들을 매일같이 끌어들이는 교통 시스템의 마력 덕에 본격적으로 교통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연구소에서 교통에 대한 관심을 더 발전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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