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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X정희원 칼럼] 자동차와 도로 : 편안한 지옥과 가짜 그린카의 세계

전현우X정희원의 거대도시에서 이동하기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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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는 한 번에 더 멀리 갈 수 있는 차를 원한다. 200km 전기차가 팔리면 300을, 300 시대가 되면 400을. 늘 '더 멀게'를 외친다. 배터리가 커지고 차가 무거워지며 효율은 떨어진다. 그래서 배터리를 더 키운다. (2023.06.30)


기후 위기 시대, 도시의 이동을 탐구하는 교통, 철학 연구자 전현우와

도시인의 이동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크로스 에세이.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언스플래쉬

지금까지 여러 회에서 엿보았던 우리들의 이동에서, 철도나 대중교통을 결국 이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남는 선택지는 결국 자동차다. 도로만 연결되어 있으면 언제든,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로움을 넘어, 자동차는 아주 자본주의적인 이동 수단으로서의 특징을 여럿 가지고 있다. 그중 으뜸은 '배제(exclusivity)'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차지하는 도로의 공간은 나만이 이용할 수 있다. 주차를 해 놓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내부의 공간도 마찬가지로 오롯이 나와 내가 허락한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안쪽 공간은 거주 공간의 연장으로도 볼 수 있다.

혹자들은 그렇기에 주거용 부동산의 가격이 아주 비싸고 자동차의 보유 비용은 낮은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도로나 주차 사정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차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더 쾌적하고 편안한 것이 상품성이 되고, 더 많은 소비를 부르는 특성도 소비 자본주의의 정신적 역동과 잘 일치한다. 반자율 주행 장치를 비롯한 수많은 편의 장비가 마케팅되고, 또 이런 장비를 장착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크고 비싼 차량 모델과 이른바 '상위 트림'을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든 자유롭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은 그렇게 무한 증식하다가 두 가지 벽을 만난다. 첫째, 남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므로 결국 평균 이동 속도가 낮아지며, 자동차의 이동 수단으로서의 가치가 점차 소실된다. 둘째, 자동차의 탄소 발자국은 지금의 지구가 금성처럼 뜨거워져가는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든다.


편안한 지옥

자동차의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예상 도착 시간이 무한히 증가되는 교통 상황에서는 움직임을 금지당한 채, 다리가 부어오르는 벌을 받아야만 하는 지옥에 머무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전현우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서울의 시내 평균 통행 속도는 매년 느려지는 추세다. 그러는 와중에 도로가 넓어지고, 또 새로운 도로가 계획되고 건설된다. 로스엔젤레스와 비슷한 구조의 자동차 도시로 만들어져 온 서울은 걷기나 자전거로 15분 내에 웬만한 일상을 해결할 수 있는 '15분 도시'의 컨셉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직주 근접성'이 떨어지고 대중교통이 어차피 지옥인 이상 많은 이들이 교통지옥으로 차를 몰고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악순환을 낳는다.

헨리 그라바(Henry Grabar)는 최근 그의 책에서 사람들을 거리에서 실내로 몰아내게 되는 도시 내 주차 공간의 상한이 전체 대지 면적의 9% 정도임을 제시했다. 디트로이트는 거의 30%의 시내 면적이 주차에 사용된다. 이렇게 많은 공간을 자동차에 배정하면,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외부 공간에서 스스로가 주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결국 실내로 들어가게 된다고 헨리 그라바는 주장한다. 2014년 조선일보 기사에서, 당시 서울의 도로 면적은 83.6㎢였고, 주차장 면적은 약 45.1㎢(376만 461면)이었다.1) 이 면적은 강남 3구의 면적보다 넓고, 서울 전체 면적(605.2㎢)의 1/5 수준이다. 해당 기사는 서울시의 보도가 늘어나는 속도는 매우 더딘데 비해 도로와 주차 면적은 빠르게 증가됨을 지적했다. 참고로 2022년의 총 주차면수는 그동안 더욱 증가되어, 4,501,875 면이 되었다. 자동차가 대형화되고 폐쇄적 주거 형태인 신축 아파트의 가치가 천정부지가 되는 움직임에는 이러한 도시 환경의 기여분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교통지옥 속 사람들의 심리는 어떨까? 더 쉽고 빠르게 무언가를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가 그대로 나타난다. 교통 법규 3대 위반 행위가 '꼬리 물기(신호 위반)', '끼어들기', '지정 차로 위반'으로 꼽히는데, 구조적으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옥을 벗어나려는 심리다. 상대방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더 크고 무섭게 생긴 자동차가 작은 자동차를 밀어붙이거나 제압하는 현상이 빈번히 벌어진다. 대형 차량, SUV형 차량에 대한 선호가 극에 달하는데, 이러한 심리는 고가 차량의 판매로 더 많은 영업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완성차 업계의 이익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의 자유는 도로에 차량이 적을 때만 얻어질 수 있듯 대형 차량의 비교우위는 내 차가 상대적으로 클 때만 확보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교통지옥에서는 '거함거포주의' 현상의 악순환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거함거포주의'는 세계 제 1차-2차대전 동안 이어졌던 전함 대형화의 악순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적국의 관통력이 좋은 새로나온 대형 함포를 막기 위해 우리편 전함의 규모를 더 키우며, 동시에 더 큰 함포를 장착하는 현상을 이른다. 결국, 이편과 저편이 모두 무한히 더 큰 배를 만드는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이다. 매일경제의 분석에 따르면, 경차와 소형차를 제외하는 경우 지난 20년 동안 국내에 판매되는 차량의 평균 전장은 4.7%, 전폭은 2.2%, 공차 중량은 13.4% 늘어났다.2) 해당 기사에서도 비슷한 비유를 든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도로 위 군비 경쟁'도 가속화되고 있다. SUV는 세단에 비해 차고가 높아 운전 중 시야가 넓고, 꽉 막힌 도로에서도 답답함이 덜하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이는 상대적으로 차고가 낮은 세단 운전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SUV 차량으로 인해 시야가 가로막히고 있다는 뜻이다.

시야뿐일까. 경차와 소형차를 오랫동안 보유했던 나는 큰 차의 경적과 상향등에 정말 이골이 났다. 결국, 지금 우리나라의 도로는 모두가 더 비싸고 뚱뚱한 자동차의 단절된 쇠와 유리의 공간 속에서 교통 정체를 경험하며 스마트폰을 스크롤하고 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가짜 그린카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수송 부문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약 16%인데, 이 중 3/4인 12%가 도로 교통에서 나온다. 현재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전기차다. 그런데, 바츨라프 스밀은 그의 책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에서 SUV가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비극을 분석한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SUV가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는데, 통상적으로 SUV는 이산화 탄소 배출이 세단형 자동차보다 25% 많다. 이 차이에 전 지구적 SUV 대수를 곱하면, 2040년을 시점으로는 전 세계에 1억 대의 전기차가 절감한 탄소배출 효과를 SUV가 상쇄해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바츨라프 스밀이 아직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다. 이미 '전기차'라는 것이 우리가 옛날에 생각하던 작고 친환경적인 그런 녀석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2023년 6월 말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1kWh의 전기를 만드는 데는 평균적으로 483g의 이산화 탄소가 배출된다.3) 공차 중량이 2355kg인 메르세데스 벤츠 EQE350 전기차는 90.6kWh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471km를 주행할 수 있다. 1kWh로 5.2km를 주행할 수 있는 셈인데, 한국의 전력 그리드 환경에서 1km를 주행하는데 92.9g 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격이다(92.9g/km). 비슷한 실내 공간에, 차량 가격이 1/3 정도에 불과한 현대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79g/km이다. 

전기차는 산업 금속을 채굴하여 배터리를 만들고 이를 여타 부품과 조립하여 차량으로 만드는 데에 통상적 내연 기관 차량이나 하이브리드 차량에 비해 탄소 발자국이 월등히 높다. 그 차이를 주행에서 얻어지는 탄소 배출 절감으로 상쇄하여 생애주기 전반의 친환경성을 확보하는 것이 주요 전략인데, 어이없게도 주행 중의 탄소 배출마저 동급 전기차가 높아져 버리는 상황이다. 산업 금속을 채굴하는 데는 탄소 배출을 넘어서는 환경이나 노동의 이슈도 있다. 

이런 비극에도 '거함거포주의'가 개입한다. 사람은 불편을 싫어한다. 마케팅 부서에서 잠재 고객 조사를 해 보면, 소비자는 한 번에 더 멀리 갈 수 있는 차를 원한다. 200km 전기차가 팔리면 300을, 300 시대가 되면 400을. 늘 '더 멀게'를 외친다. 배터리가 커지고 차가 무거워지며 효율은 떨어진다. 그래서 배터리를 더 키운다. 지난 7년 사이 주요 제조사 차량들의 평균적 배터리 크기가 3배 커졌다. 공차중량 역시 1400~1500kg이던 것이 2250~2500kg이 된다. 그런 결과로 기술은 발달했지만 개별 차량의 전비(1kWh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2016년 출시된 구형 아이오닉의 전비는 6.3km/kWh인데, 7년 뒤인 지금의 두 배쯤 비싼 중형 전기차들보다 전비가 낫다니, 기술의 진보가 무상할 정도이다. 소비자와 제조사의 욕망이 영합하는 지점이 또 있다. 바로, 대형화된 SUV 형태의 차량을 좇는 것이다. 효율은 다시 한번 떨어지고, 배터리는 더욱 대형화된다. 

1억 원에 달하는 기아의 최신 SUV 전기차 EV9의 최고 사양은 전비가 3.8km/kWh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 나오는 크고 효율이 나쁜 전기차들은 최소한 인류와 생물권의 멸망을 지연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거함거포주의' 추세는 차량 가격 역시 끊임없이 상승시켜, 전동화 기술을 부유층의 장난감으로 계속해서 묶어놓는다는 해악도 있다.


결론

자동차는 아주 자본주의적인 재화다. 그 말은 사람의 자유롭고 편안하고자 하는 심리를 업계가 영악하게 활용하여, 자동차라는 기본적으로는 가치 중립적인 기술을 정작 보편적인 인류의 복지에는 반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어가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재화가 이동하고 사람들이 소통하기 위한 도로는 정체가 거듭되어 고체처럼 굳어져 버린 쓸모없는 인프라로 전락하기도 하고, 세상을 구할 것 같았던 전동화 기술은 오히려 그린카의 탈을 쓴 반환경 사치재의 추진 수단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올해도 역사상 가장 덥지만, 또 다가올 해 중에는 가장 시원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전기차를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한 지구인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간다.



1) [도시人, 걸어야 산다] [2] 서울 '자동차 공간(도로·주차장)'은 9.3㎢, 보행자 공간(보도)은 1㎢ 늘었다.

*참고: 서울시 주차장 확보율 통계: //data.seoul.go.kr/dataList/10357/S/2/datasetView.do


2)  한국인 '대형차 사랑'에…20년간 24㎝ 길어진 쏘렌토

3) //app.electricitymaps.com/zone/KR - 2023.6.23 기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바츨라프 스밀 저 | 강주헌 역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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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희원(노년내과 의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를 취득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과대학 시절, 호른을 연습하던 중 근육 유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근감소증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이후 내과 실습을 돌며 노인의학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내과 전공의 시절 노쇠에 대해 연구하다가 공부에 대한 갈증이 생겨 의과학대학원에 들어가 이학박사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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