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우X정희원 칼럼] 인간의 삶과 이동성
전현우X정희원의 거대도시에서 이동하기 4화
지하철에서는 노쇠한 사람이나 지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들이 이동성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았기에 지하철이라는 사회적 자원으로부터 배제당한 것일 뿐이다. (2023.06.23)
기후 위기 시대, 도시의 이동을 탐구하는 교통, 철학 연구자 전현우와 도시인의 이동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크로스 에세이.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
의학적 관점에서 사람의 이동성(mobility)은 삶 그 자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성장과 발달, 노화와 노쇠, 죽음은 이동성의 궤적으로 그려낼 수도 있다. 태어나기 전의 사람(태아)은 엄마의 자궁이 이동 가능한 영역으로 결정된다. 이렇게 0점에서 시작하여, 점차 기고 걷게 된 사람은 독립적인 사회적 기능 수행이 가능해짐에 따라 점차 거주지를 넘어서는 지역까지도 스스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노화나 질병, 그리고 환경적 요인에 따라 이동성은 다양한 궤적을 그리며 감소될 수 있다. 이동성은 사람의 신체, 인지, 정신 사회적 기능 전반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치매를 앓게 되면 설령 신체 기능은 정상적이더라도 이동성은 점차 0을 향해 수렴하게 된다. 상당한 전반적 기능 저하를 야기하는 주요 우울증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지체 장애(mobility disability)를 경험하게 되면 인지 기능이나 정서 등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원활한 이동이 어렵게 된다. 노년기에는 이동성의 정도에 따라 기저귀가 필요해지거나,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해지거나, 때로는 요양원이나 요양원 생활이 필요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동성을 결정하는 함수에는 환경적 요인도 들어간다. 현대의 이동성은 사람의 근력에만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화에 따른 여려 변화를 고려한 연령-친화 설계를 따르면 지금의 교통 환경에서는 도시 내의 이동 수단이 자동차로 제한될 경도 인지 장애나 신체 노쇠가 있는 사람들도 대중교통을 원활히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접근성을 올바르게 고려한 대중교통 사용환경 조성이 뒤따르면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원활하게 이동성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이동성은 개인적, 사회적으로 어려가지 요인이 어느정도 갖춰졌을 때에 원활한 사회 활동을 위한 기능으로 사용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사람의 이동을 이동성의 관점에서 천착하는 이는 우리 사회에 많지 않아 보인다. 몇 달 전,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20kg가량의 바퀴 달린 짐을 다른 지하철역으로 옮기게 된 일이 있었다. 두 역 모두 꽤 번화한 역이었으나 내가 시작한 곳과 도착해야 하는 곳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계단들이 꽤 있었다. 큼직큼직한 곳에는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그 승강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휠체어라면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몇 칸 정도의 애매한 계단들이 반복되었다. 중량물은 승강기를 사용하라는 글귀가 계단에 붙어있었지만, 승강기는 승강장 내에 100미터 가까이 떨어져 있는 곳도 있었다. 지체 장애와 신체 노쇠를 포함하여 어떠한 면에서든 수직 이동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은 대중교통의 이용에서 기본적으로 배제당하는 환경이다. 지하철에서는 노쇠한 사람이나 지체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들이 이동성을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았기에 지하철이라는 사회적 자원으로부터 배제당한 것일 뿐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환자의 과반을 차지하는 상급 종합 병원을 평일 낮에 방문해 본 이들이라면, 놀라운 교통 정체와 주차난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 모두들 자동차를 타고 병원에 오고 있는 것일까? 일단 지하철 출구나 버스 정류장은 이런 큰 병원들과 노쇠한 어르신들이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노쇠한 어르신들이 대중교통 자체를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노약자석에 그려진 전형적인 '노인'의 그림이다. 허리가 굽고 지팡이를 짚은 해당 그림의 모습은 노인의학적으로는 '노쇠 전단계(prefrailty)'에 해당하며,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신체 기능이 떨어진 단계에 해당한다. 사람마다 궤적은 다르지만, 평균적으로는 70대 중반 정도에 해당한다. 여러 지병이 있고, 관절이 좋지 않으며, 걷는 것이 어려운 이런 어르신들의 이동은 어느 정도는 지체 장애와 비슷한 정도의 난이도가 있는데, 실제 노인의학에서는 '400미터 정도는 걸으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아니오'로 대답하면 노인의학적 개념에서 이동성 장애가 있는 것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노인의 모습에 함께 그려진 그림에는 비슷한 정도로 이동이 불편한 이들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노약자석에 붙어 있는 스티커로는 이동성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배려하는 듯하지만, 지하철이라는 철옹성을 가로막는 수많은 계단들은 애초에 이들의 이용을 상당 부분 배제한다.
비슷한 경험으로, 은행의 영업익을 높이기 위한 오프라인 점포의 폐지나, 코로나19 시기 가속화된 대면 업무의 키오스크화를 들 수 있다. 지하철의 문제와 다른 점은, 지하철의 경우에는 접근성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책임 방기의 문제가 있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취약한 인구 집단의 접근성을(의도치는 않았겠지만)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취약성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여러 자원에 접근하고 활용하는 데에서 배제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는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무척 심각한 문제다.
2020년 국토 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19년 한 해 동안 수집한 교통카드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표한 경기도-서울의 편도 출근 시간은 1시간 24분이었다. 인천-서울은 편도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퇴근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면, 하루 3시간을 이동에 사용하는 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이렇게 3시간이 된다. KT의 휴대전화 통신과 서울시 대중교통 이용 등 행정 데이터를 조합한 서울 생활 인구 데이터에서, 서울 외 지역에 살면서 출근이나 통학을 이유로 서울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2018년 기준 최대 165만 명이었다. 165만 명에 동수의 가족을 더하고, 평균 가구원인 3명으로 나누면 110만 세대가 된다. 하루 8시간 일하고 7시간 자는 사람의 시간표에서 매일 3시간은 정말 큰 시간이다. 24시간에서 일하고 자는 시간, 직장에서 보낸 점심시간 한 시간을 빼면 8시간이 남는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출퇴근(주로 지옥철이나 만원 버스다)에 사용해버리게 되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2016년 잡코리아에 따르면 서울 직장인들이 꼽은 출퇴근길 최고의 스트레스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은 만원 버스·지하철(22.4%)'이었다. 흥미롭게도 그 뒤를 바로 따른 것이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내 몸(21.6%)'이었다. 이렇게 조사 데이터를 읊지 않더라도, 현대 한국인들에게 길고 과밀화된 이동은 큰 고통이라는 사실을 모를 이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런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승용차를 이용한 출퇴근을 시도한다. 그리고 끔찍한 정체를 경험한다.
대중교통의 개선과 공급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예비 타당성 조사의 절차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수요나 사회적 편익이 낮은 곳에 과잉 투자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다. 하지만,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사람들의 스트레스 저감, 만성 질환 예방, 여가 시간 확보를 통한 삶의 질 개선을 비롯한 무형적이고 간접적인 변수들은 고려되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활용하는 것은 신체 활동의 증가와 연관되어 있으며, 잠재적으로 만성 질환의 예방 효과가 있을 수 있음이 해외에서의 여러 관찰 연구들을 통해 보고된 바가 있다.1) 이동 자체를 놓고 들여다본 구체적 연구는 없지만, 만성적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대사 체계를 악화시켜 복부 비만을 낳고, 식욕을 높이는 등 여러 가지 나쁜 결과를 만들 수 있기도 하다. 미국의 연구들에서, 질병과 노쇠가 이동성을 감소시키고, 반대로 이동성의 감소는 또 질병과 노쇠를 낳음을 보인다. 서로 복잡계처럼 엉켜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건강한 성인, 노인, 장애인을 비롯한 모두에게 더 나은 대중교통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수백만 명의 한국인들이 더 건강해질 수 있도록 만드는 문제일 수 있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는 일이겠지만, 길게는 큰돈을 아끼는 일이다. 이동성의 문제는 결국 모든 이들의 삶 문제다.
1) Xiao C, Goryakin Y, Cecchini M. Physical Activity Levels and New Public Transit: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m J Prev Med. 2019 Mar;56(3):464-473. doi: 10.1016/j.amepre.2018.10.022. PMID: 30777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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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문의를 취득했다. 현재는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과대학 시절, 호른을 연습하던 중 근육 유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근감소증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이후 내과 실습을 돌며 노인의학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내과 전공의 시절 노쇠에 대해 연구하다가 공부에 대한 갈증이 생겨 의과학대학원에 들어가 이학박사를 취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