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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아의 카페 생활] 다시 만난 느긋한 순간 - 아이들모먼츠

임진아의 카페 생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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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고 조용하게 박수를 쳤다. 다시 시작하는 사람, 다시 찾는 사람, 새로이 모일 사람 모두를 위한 박수였다. (2023.05.04)


격주 금요일, 임진아 작가가 <채널예스>에서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소개합니다.
‘임진아의 카페 생활’에서 소개하는 특별한 카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2014년의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여름엔 경청한 풍경이, 가을에는 온화한 풍경이 이어졌다. 당시 회사 상사였고 현재 친한 언니인 S와 나는 틈만 나면 이 거리를 거닐기 위해 나서는 산책 메이트였다. 평일의 볕 시간을 몽땅 회사 안에서 사용하기로 작정했던 우리지만, 마음의 여유를 중요시하고 그러기 위해 부지런히 환기를 시키는 점 또한 닮았던 우리였다.

은행나무길에는 맛있는 분식집 '김밥 마을'이 있었다. 김밥 마을은 우리 둘뿐만 아니라 회사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분식집이었다. 어느 날, S 언니와 은행나무길을 산책하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김밥 마을 위를 바라봤다. 2층 창문이 활짝 열려있던 것이다.

S 언니는 자신에게 딱 맞는 맞춤 심상을 그리는 데에 맑은 에너지를 쓰며 그 길로 씩씩하게 향하는 사람이라 만나게 될지도 모를 나중 이야길 곧잘 꺼냈다. 종종 김밥 마을 건물 2층이 작업실이면 좋겠다고, 이런 벽돌 건물은 흔치 않다고, 게다가 2층에 앉으면 은행나무가 보이니 얼마나 좋을지 상상을 좀 해보라고 나에게 들뜬 말투로 떠들곤 했다. 우리가 나눴던 대화에 늦은 답이라도 하듯 창문이 열려 있었다. 당장 2층으로 올라가겠다는 걸 말릴 수 없었다. 언니는 생각한 김에 바로 행동하는 사람이니까.

건물 안에 들어가 계단을 오른 건 처음이었다. 2층으로 다다르는 분위기는 방과후 학교 복도처럼 그리운 기분이 들었고 회사가 있는 마을이 아닌 다른 마을로 진입한 듯했다. 밖은 한여름인데 계단에서는 여름이기에 존재하는 시원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2층에 올라가니 카페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고 언니는 이미 문을 열고 있었다. 그 순간, 상상할 줄도 모르던 2층의 풍경이 눈에 가득 담겼다. 2층에는 부드럽고 나른한 볕이 우리 몰래 드리워져 있었다. 김밥 마을에서 전투적으로 식사하며 참치김밥에 쫄면을 싸먹을 때는 몰랐는데, 오후의 햇볕을 알뜰하게 사용할 줄 아는 건물이었다니.

이날이 서교동 시절 아이들모먼츠와의 첫 만남이었다. 오래도록 나에게 한가한 틈을 선사해 주던 카페 아이들모먼츠. 아직 카페를 열기 전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던 날이 첫 만남이었다. 오늘 당장 이곳의 커피를 마실 수는 없지만 앞으로 전에 없던 시간이 생기게 되어 기뻤고, 이런 기쁨을 또 기가 막히게 맛볼 줄 아는 게 우리였다.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입간판을 바라보자 핸드 드립, 푸딩, 토스트 세 글자에 눈이 갔다. 앞으로 누리고 싶은 시간들이 선명히 그려졌다.

며칠 뒤 평범한 오후. 아침부터 표정이 좋았던 S 언니는, 오늘은 아이들모먼츠에 가기 위해 오후 반차를 쓴 거라고 말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어땠는지 말해줘요!"

손을 흔드는 마음으로 회사 밖의 시간을 응원했다. 이후 나 또한 오후 반차를 쓰거나 빠른 퇴근을 하는 날에는 아이들모먼츠로 향했다. 2층 창문을 바라보며 연유 토스트에 부드러운 핸드 드립 커피를 맛보는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흐른 2018년 가을. 평일의 시간이 생긴 프리랜서가 되어 아이들모먼츠 근처에서 살기 시작했건만, 이웃으로서 아이들모먼츠를 온전히 즐긴 기간은 고작 3개월뿐이었다. 도보로 혹은 자전거로 금방 도착해 2층 계단을 오르면 노란 은행잎이 온통 내 것 같던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고, 몇 년 후 예쁘디 예쁘던 벽돌 건물은 내 눈앞에서 부서졌다. 이럴 때면 어딜 보고 울어야 할지 몰라 눈물을 꾹 참는다.

여전히 은행나무길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비엔나커피를 주문하면 생크림 치는 소리까지 제공받던 곳', '계절의 파이와 계절의 롤케이크가 계절을 알려주던 곳', '가을에 은행나무를 가까이하기 좋은 곳', '그런 아이들모먼츠가 있던 곳'. 그리운 것들의 목록이 끝도 없는 사람은 별 게 다 각별해서 쉬이 슬픈 표정을 짓는다. 가을만 되면 노란 은행잎을 잔뜩 보여주는 은행나무들도 아이들모먼츠의 창문을 그리워할 것 같다. 그렇게라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공간을 그리워하는 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는다.

2023년 봄, 아이들모먼츠의 SNS 계정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서교동 2층 건물의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손님들을 바라보던 한 사람의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애써 마음을 부풀리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고, 이미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사진을 바라본 사람이 많았다. 내 예상은 어쩐 일인지 어긋나지 않았다.

아이들모먼츠가 다시 연다는 소식은 봄에 핀 꽃처럼 당연하지만은 않은 기쁨이었다. 틈틈이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지내다 보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선물을 받게 된다. 다시 시작하는 장면을 통해 그립던 어제는 다시 오늘이 된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이 아닌 종로구 청운동에 열었다는 소식은 단지 좋아하는 카페에 다시 갈 수 있다는 기쁨만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쁜 만큼이나 고마운 마음이 솟구친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에는 계속하기로 작정한 계기들이 매일 촘촘하게 놓여 있었을 테니까. 계속하기로 한 다짐과 시작하는 장면은 묵묵하게만 느껴지는 나의 일상에 응원이 되고야 만다.

계단을 오르지 않는 대신 멋진 산을 바라보며 언덕길을 오르면 도착하는 오늘날의 아이들모먼츠.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느긋한 세상으로 진입하는 듯 고요해지는 기분만큼은 그때 그대로였다. 창문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자리들이 넉넉한 점도 여전해서 좋았다. 청운동의 아이들모먼츠에서 고른 건 따뜻한 핸드 드립 커피. 왠지 아이스커피보다는 따뜻한 커피가 오늘 내 마음 같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들모먼츠에서의 반가운 시간을 겪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이의 시선을 그려본다.



책방 타이틀 점주의 뭉근한 서점 운영 일지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에서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만난 적이 있다. 일본 구마모토에 위치한 카페 겸 서점인 다이다이 서점은 구마모토 지진 이후 한차례 이전을 하게 된다. 책방 타이틀 점주는 다이다이 서점의 점주에게 질문을 던진다. 장소를 옮기며 다시 서점을 열면서, 이전 전후에 변함없이 같은 서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이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기도 했다. 다이다이 서점 점주는 이렇게 대답한다.

"서가 앞에 서 있는 손님들을 보고 같은 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방에서는 서가에 비치된 책을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때 서점으로서 존재하고 카페도 다르지 않다. 한 잔의 커피 시간을 위해 찾아오는 이가 있다는 것. 여기에서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있을 때 카페는 환해진다. 그리고 손님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빈 잔으로 그려 넣고 나간다.



김밥 마을이 있던 건물과는 전혀 다른 건물이었지만 아이들모먼츠에서의 시간은 변함이 없었다. 어떻게 매번 이런 건물을 찾고 고유의 공간을 만드는 걸까 감탄하며 아이들모먼츠를 빠져나왔다. 다이다이 서점 점주는 자신의 책 『다이다이 서점에서』를 통해 처음 카페를 열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왜 무작정 카페를 시작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 장소를 봤기 때문이다."

서점을 연 이유는 또 어떻고. 카페로 쓰던 공간이 너무 넓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내고 싶은 공간의 등장은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가장 만나고 싶은 동기일지도 모른다. 시작하는 데에 필요한 힘은 막연하고 아득할지라도 움직여지는 것 아닐까. 공간에 마음을 빼앗길 줄 아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들은 짧지만 뾰족한 여유를, 느긋한 순간을 만난다.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다시 여신 거 너무 축하드려요."

나는 작고 조용하게 박수를 쳤다. 다시 시작하는 사람, 다시 찾는 사람, 새로이 모일 사람 모두를 위한 박수였다.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쓰지야마 요시오 저 | 정수윤 역
돌베개
다이다이 서점에서
다이다이 서점에서
다지리 히사코 저 | 한정윤 역
니라이카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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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진아(일러스트레이터, 작가)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그리거나 쓴다. 일상의 자잘한 순간을 만화, 글씨, 그림으로 표현한다. 지은 책으로는 『사물에게 배웁니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 등이 있다.

ebook
다이다이 서점에서

<다지리 히사코> 저/<한정윤> 역10,500원(0% + 5%)

구마모토 뒷골목의 작은 서점, ‘다이다이’책장 너머 가냘픈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서점지기가담담한 필치로 써 내려간 서른세 편의 사람·책·일상 이야기2020년 제41회 구마모토 출판문화상 수상작다양한 목소리가 깃든 서점 이야기영미문학과 블루스 음악을 좋아하고 짓궂은 농담을 잘하는 70대 노인, 지우개 도장으로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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