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내가 편집자라면, 이 저자와 꼭 작업하고 싶다!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28회) 『사랑은 무한대이외다』,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짐승일기』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3.02.16)
불현듯(오은) : 최근 들어 진행된 주제 중에 가장 어려웠어요.(웃음) 이번 주제는 '내가 편집자라면 이 저자와 꼭 작업하고 싶다'입니다.
김명순 저 / 박소란 편 | 핀드
이 책의 저자는 돌아가셔서 새로 작업할 수는 없겠지만요. 여전히 생생한 책이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실 것 같은 작품입니다. '김명순'이라는 이름을 혹시 들어보셨나요? 저는 한 대학교에서 '한국 현대문학사'라는 수업을 맡았을 때 알게 됐어요. 현대 문학사를 다룰 때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김명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이분은 꼭 다뤄야겠다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때는 주로 시 작품들을 읽었다면, 이번에 에세이집이 나와서 바로 읽어봤습니다.
이 책은 1918년부터 1936년까지, 그러니까 19년 동안 쓰인 김명순의 글들 중 일부를 뽑아서 실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핀드'라는 출판사의 첫 책이기도 해요. 출판사의 첫 책으로 김명순의 에세이를 내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도 하면서 책을 읽었죠.
책 날개에 김명순 작가의 소개가 들어있는데요. 처음 세 문장만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896년 1월 20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17년 단편 소설 「의심의 소녀」가 <청춘>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로 불린다. 등단 이후 김명순, 김탄실, 망양초, 망양생, 별그림 같은 필명으로 시, 소설, 산문, 평론,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했다.' 엄청나죠. 게다가 글만 잘 쓰신 게 아니에요. 번역에도 능하셔서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 번역가이기도 해요. 피아노도 잘 치셔서 독일 곡을 연주하기도 하고, 작곡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 문학사를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은 이상, 그리고 책들을 유심히 살피지 않은 이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던 셈이죠.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책 같아요. 김명순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랑에 대한 신념만큼은 확고부동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작가는 모든 감정은 '나'로부터 시작되니까 나를 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감정에 뿌리에 나 자신이 어떻게 들어가 있는지를 봐야 된다고 말을 하죠.
책을 읽고 핀드 출판사의 첫 걸음으로써 김명순의 에세이가 출간된 것이 아주 빼어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잘 모르시거나 혹은 이름은 들어봤지만, 한 번도 펼치지 않은 김명순의 에세이를 이번 기회에 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나아가서 김명순 시인의 시도 참 좋거든요. 엄청 생생하고, 당시 조선 땅에서 사는 여성들의 현실이 어떠했는지를 관통하듯 보여주니까요. 시들도 꼭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장강명 저 | 유유히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특징을 생각해 봤어요. 저는 일단 고집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게 확고하고, 눈치 보면서 말 안 하는 사람보다는 조금 피해를 입더라도 얘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 소신 있고 자존심이 센 사람을 좋아해요. 그리고 마감을 잘 지키는 사람이 좋죠.(웃음) 장강명 작가님 역시 그런 분이어서 좋아하는 작가님 중 한 분이고요. 편집자라면 이 작가님과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 책의 출발과 나오기까지의 과정들을 조금 먼발치에서 지켜봤어요. 2019년 여름, <월간 채널예스> 창간 4주년을 맞아 출판계와 잡지, 서평 등에 대해 대담을 했거든요. 그때 오셨던 분이 지금은 안온북스 대표님이신 서효인 시인님, 당시 위즈덤하우스에서 일하고 계셨던 김은주 편집장님, 그리고 장강명 작가님이었어요. 그 대담이 끝날 무렵에 작가님께 에세이나 칼럼 연재하실 의향 있으신지 물었죠. 그러자 작가님이 흔쾌히 응답을 해주셨어요. 연재하던 칼럼 제목도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이었고요.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새로운 점도 있었네, 소설가가 이런 생각을 이렇게 깊이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탐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습니다. 단순히 '나 힘들어, 왜 자꾸 사인본을 많이 해달래, 북토크 하기 싫어' 이런 게 아니거든요. 작가님 스스로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탐구하고 있으며,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담겨 있어요. 날카로운 이야기도 많고요.
예전에 봤던 문장인데도 다시 읽어도 재밌었고요. 밑줄도 많이 그었는데요. 가장 감동했던 이야기가 있어서 한번 읽어볼게요.
나는 내가 만드는 물건이 단순한 소비자 이상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소비자 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아도 된다.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게 장강명 작가님은 사회를 많이 바라보신다는 거예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사회적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문제, 짚어야 될 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를 해주실 때마다 굉장히 즐겁고 흥미로워요.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히 있는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지승 저 | 난다
이 책을 오늘 주제에 가지고 온 이유가 있어요. 제가 이 책의 저자 북토크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요. 그때 아주 인상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이 책은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되었던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이 된 책인데요. 연재가 결정되고 나서 작가님께서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죠. 그러니까 병원에서 이 연재를 하게 된 거예요. 너무나 예측 못한, 힘든 상황이었을 텐데요. 병원에서도 마감을 하셨대요. 마감을 다 지키셨다고 하더라고요. 이에 북토크에서 작가님이 어떻게 말씀을 하셨냐면요. 아픈 사람, 아파 본 사람은 아픈 사람으로만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안다, 그래서 쓰는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라는 거였어요.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묵직해지면서 병원에서 마감을 했던 마음에 대해 여러 번 곱씹었어요.
제목에 담긴 '짐승'이라는 것은 아마 소외된 존재들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이 글들은 김지승 작가님이 아픈 몸으로 살면서 쓴 글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 글들을 보면 글이 얼마나 솔직한지 뜨끔하기도 해요. 또, 정말 중요한 기록이다 싶기도 했죠. 당사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내용입니다.
"아픈 사람에게는 가끔 이대로 끝나버렸으면 하는 열망, 타인의 병력을 자기 삶의 드라마로 각색하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 통증을 줄일 수 있다면 세상의 멸망 따위 상관없을 것 같은 마음 모두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다."
사실은 작가님이 이 책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말씀을 하세요. 그리고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요. 어떤 감정은 아무리 애를 써도 100% 완벽하게 글로 써낼 수가 없잖아요. 사실 많은 감정이 그럴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내가 어떤 한 시절에, 공교롭게도 병원에 있어야 되는 그런 시절에 일기를 연재하겠다고 한 것은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동반하는 일이었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썼던 이유를 기록하는데요.
말하기는 분열하기이고 실패하기이다. 말하면서 그 말에 먼저 다치고 마는 것도 나다. (중략) 책 같은 건 쓰지 말 걸 그랬다 나를 말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로는 실패조차 실패한다. 다만 세상 어딘가에 자신을 겨우 감당하고 사는 나 같은 이가 시시때때로 더럭 겁을 내면서도 전진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놓지 못해서다. 그들이 외롭지 않았으면 해서, 나를 알아봐줬으면 해서, 가끔 민망하긴 해도 잘못하고 사는 건 아니니까 부끄럽지 않았으면 해서 일단은 쓴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생각했던, 혹은 뭐가 문제인지 몰랐던 틈새에 있는 장면들을 쏙쏙 건드려주는 글이라서 정말 탁월하고 특별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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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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