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해로운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왜 자꾸 술을 마실까요? 쓴맛과 단맛의 오묘한 조화, 절제하면 기쁨을 주지만 과하면 숙취를 남기는 술은 여러모로 인생과 참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술도녀’ 신드롬을 일으키며 도시인의 희로애락을 술잔에 맛깔나게 담아낸 미깡 작가가 새로운 술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술꾼답게 실제로 마신 술과 술맛 돋구는 추억을 안주로 능숙하게 차려낸 『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작업 이야기를 전합니다. 과도한 음주는 건강에 해롭습니다만, 아주 가끔은 좀 취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작업 후기
책은 최근에 나왔지만 실제 제 손에서 원고가 마감된 건 지난 2월 말이었어요. 작년부터 학교 일을 하고 있어서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겨울방학에 일을 마치고 싶어 꽤 서둘렀죠. ‘사람이 이런 스케줄로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몰아쳐서 개강 전에 완성해 넘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개월 지나 교정지를 받아 봤는데, 남의 작품을 보듯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제가 썼지만 제가 봐도 재미있었고요. (웃음) 작품을 쓸 때는 아무래도 스스로가 푹 빠져 있고 뜨겁잖아요. 이번에는 탈고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독자의 시선을 갖게 되면서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고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작가님 소개란에 ‘만화가, 에세이스트 그리고 술꾼’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술꾼’의 정체성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동안은 술 이야기를 그만하려고도 했어요. 술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스트레스와 긴장을 풀어주는 등 장점도 많지만 건강에는 나쁜, 1급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잖아요. 술 예찬이 되지 않으려고 늘 신경 쓰지만, 술 얘기를 하면 필연적으로 ‘술이 땡긴다’는 반응으로 이어지니 조심스러웠죠. 하지만 저 자신이 술꾼인 걸 어쩌겠어요? 제 일상을 담은 에세이 만화를 그려보자 했을 때 술이 빠질 수가 없었죠. 아무리 부정해도 제 안에는 술에 대한 이야깃거리가 너무나도 넘쳐났고요. ‘그래, 나는 술꾼이다. 깨끗하게 인정하자’는 마음으로 그 단어를 넣었습니다.
이번 책은 ‘술 만화 백과’라는 소개에 걸맞게 술에 관한 폭넓은 정보가 담겨 있어요.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시나요?
AI 시대지만 저는 여전히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또는 작업을 하다 막힐 때 도서관으로 달려갑니다. 관련된 책을 잔뜩 빌려와서 바닥에 펼쳐놓고 이리저리 조합도 해보고 두루 살펴보죠. 그러다 보면 전체 개요가 머릿속에 그려진달까요. ‘한 챕터에 술 한 잔씩을 담아내자, 대략 이런 술들이면 되겠다’는 큰 계획이 잡히면, 그 다음부터 세부 사항은 인터넷으로 자료 조사를 하는 식입니다. 처음부터 ‘백과사전’을 염두에 둔 건 아닌데 20종을 모아 보니 다채롭고 꽤 묵직해서 나중에 이름을 붙이게 되었어요.
각 술의 장이 열릴 때마다 격언처럼 한 문장씩 적혀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한의원 원장님의 명언(?) “술은 과하면 좋지 않다! 하지만 나는 과하다!”를 읽고는 깔깔 웃었는데요. 작가님의 주류 생활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내일도 마실 수 있을 만큼 마시자.”
이제 슬슬 가을 냄새가 납니다. 요즘 날씨에 잘 어울리는 술과 안주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시원한 생맥주와 하이볼이 여름의 술이었다면,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니 몸이 따뜻해지는 약주가 생각나네요. 제주 감귤로 만든 ‘니모메‘를 추천합니다. 산뜻하면서도 달콤해서 여름과 겨울 사이, 지금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제가 귤(=미깡)이라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기도 하고요.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그림을 그리고 편집하는 등의 작업은 작업실에서 할 수밖에 없지만, 이야기를 구상할 때만큼은 가급적 밖에 나가려고 했어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게 아니라 과거에 실제 있었던 일을 상기하는 일이어서, 제 흐릿한 기억을 톡톡 건드려줄 외적 요소가 많을수록 좋았죠. 그러니 당연히 그 장소는 술집이어야겠죠? 혼자 바에 앉아서 홀짝홀짝 이 술 저 술 마시고, 음악을 듣고, 냄새를 맡고,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듣다 보면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떠오르곤 했어요. 『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만큼은 술집이 작업실이었습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반려 운동? 반려 산책?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책에 가장 의지했어요. 짧은 기간 동안 고강도 작업을 해내야 했는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꼼짝 않고 하루 종일 작업만 하면 몸이 어떻게 되는지는, 과거 웹툰 연재를 할 때 혹독하게 배웠거든요. 바쁠수록, 힘들수록 몸을 일으켜서 움직여야 병이 나지 않기 때문에, 2~30분씩이라도 꼭 밖에 나가서 걷고 왔어요. 그 덕에 큰 탈 없이 마감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마감 후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바다 보기! 제가 양양, 강릉 이 동네를 정말 좋아해요. 작업 하나가 끝나면 탁 트인 바다를 좀 보고 와야 일을 완수했다는 실감, 그리고 다음 작업을 이어서 할 힘을 얻어요. 이번에도 마감하고 나서 얼른 양양에 다녀왔습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애플TV 시리즈 <세브란스: 단절>을 재미있게 봤고요. 사실 작업이 한창일 때 새로운 콘텐츠를 보면 에너지를 많이 쓰게 돼서, 이미 봤던 걸 또 틀어놓는 일이 많아요. <덱스터>, <마인드헌터>, 이런저런 범죄 다큐멘터리를 주로 틀어놓고 있습니다. 책은 찬호께이, 시라이 도모유키의 추리소설들을 읽었고요. 음. 전체적으로 뭔가 다크하네요. (웃음)
“그래, 같이 가자. 새로워지고 싶은 나도. 여전히 술을 좋아하는 나도.” (19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술꾼도시여자의 주류 생활
출판사 | 이야기장수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급정색ok
2025.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