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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입은요?] 작업실 2호와 3호

쓰는 동안, 입은요? 10화 - 어떤 손님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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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낯가림이다. 공공장소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낯가림이랄까. (2023.01.12)


소설가는 마감 때 무엇을 먹을까?
염승숙 소설가와 윤고은 소설가가 글쓰기와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번갈아 연재합니다.
매주 목요일을 기대해주세요.



작업실 1호는 집.

작업실 2호는 카페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카페에 갈 때와 원고 작업을 위해 카페에 갈 때의 선택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작업실로서의 카페라면 특히 세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 

첫째, 의자에 앉았을 때 테이블 상판의 높이가 너무 낮은 곳은 피하자. 

둘째, 음악 취향은 생각보다 중요하니, 선곡이 별로면 미련 없이 떠나자. 

셋째, 채소 많이 넣은 라면을 피하자.

카페에서 웬 라면인가 할 수도 있는데, 이건 나와 L이 자주 쓰는 표현으로 '과해서 오히려 본질을 흐린다'는 의미다. 가끔 분식집에서 라면을 사 먹을 때가 있는데 우리가 선호하는 건 라면 그 자체의 자극적인 맛을 살린 것으로, 달걀이나 치즈나 대파 정도를 넣는 것은 환영이지만, 양배추나 당근을 넣으면 그때부터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라면이 아닌 것이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러 갈 때의 카페는 굳이 예쁘지 않아도 되고, 디저트가 다양하지 않아도 된다. 인기가 많아 사람이 많이 오는 곳도 별로다. 인스타 감성 카페니 이런 곳도 피하는 게 좋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최대한 적은 곳을 골라야 한다. 내부 구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왕이면 규모가 너무 작은 곳보다는 큰 곳이 좋은데, 잊혀지기 쉽기 때문이다. 당연히 카페 주인의 친절도 작가에게는 라면 속 채소 같은 것이다. 본질을 흐린다. 

작고 개성 있는 어느 카페에서 외투를 걸쳤다가 벗어서 의자에 걸어놓기를 두 차례 반복한 적이 있었다. 외투를 벗으면 서늘하고 걸치면 답답해서 나름 온도 조절을 한 셈인데 잠시 후 내게 작은 담요가 전달되었다. 외투는 무겁고 반팔은 서늘했던 사람에게 적절한 처방이긴 했으나, 그 섬세한 배려와 내 작업의 효율은 슬프게도 반비례했다. 나는 한 시간도 채 앉아 있지 못하고 그곳을 나왔다.

이런 경험도 있다. 자리에 앉고 보니 음악이 나오지 않고 있었고, 손님은 나뿐이었다. 카페 주인과 나 사이의 거리는 5미터도 안 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이 음소거 상태를 해제해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단지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카페에 왔는데, 여기 너무 조용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서서히 음악이 깔리기 시작했다. 주인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어쩐지 조심스러워진 나는 반듯하게 앉아만 있다가 그곳을 나왔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손님들이 카페에서 원하는 건 단역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음악이 없거나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해도 당황하지 않는데, 다만 자신이 관찰자라고 철저히 믿고 있어 그 믿음이 전복되면 허둥대기 시작한다. 생태계가 교란되었다는 듯이.

단골인 척하지 않는 단골들 사이에서 나도 가볍게 생략될 거라는 위안, 설령 카운터에서 "늘 마시던 걸로 주세요"라고 해도 아무도 못 알아들을 거라는 안도, 그런 믿음으로 카페에 간다. 오늘은 스타벅스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다. 눈앞에 보이는 저 블라인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혹시 블라인드 대신 문장들이 쏟아지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잠시 한다. 문단 단위로 페이지 단위로 마구마구? 그래서 절대로 블라인드 손잡이를 돌리지 않는다. 요행을 바라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저 블라인드 손잡이를 슬쩍 잡고 당기기만 하면, 그러면 이야기가 와르르르 쏟아지겠지만, 그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참는다. 참기로 한다. 요행을 바라지 않기로 한다.



작업실 3호, 호텔.

호텔에서 원고 마감한 이야기는 애초에 호텔 투숙의 목적이 원고 마감이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힘겹긴 마찬가지다. 호텔에서 느긋하게 글을 쓰는 작가도 어딘가엔 있겠지만, 내 경우엔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원고 마감을 위해 호텔에 투숙한 경우에 대해 말해볼까. 단지 시간 확보를 위해 방송국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호텔을 선택할 때가 있다. 라디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집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출퇴근 네 시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모될 에너지까지 모두 끌어모아 그야말로 영끌마감을 해야 할 때 내리는 극약 처방이다.

호텔이 작업실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당연히 책상. 거창한 책상이 아니어도 된다. 두 가지만 확보되면 충분한데, 하나는 화장대를 책상이라 우기지 말 것. 책상에 앉았을 때 그 앞에 거울이 있다면 그건 화장대다. 두 번째는 상판의 높이가 의자에 앉았을 때 내 배꼽보다 한참 위에 와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책상이지, 그거 아니면 글 쓸 때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물론 내가 의자를 포기하고 바닥에 앉을 수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마감 압박으로 몸이 너무 납작해져 절편이 되기 직전의 어느 날, 출퇴근 네 시간과 체력을 아끼기 위해 호텔 투숙을 감행했다. 밤을 홀랑 새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으로만 잘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책상이 없었고, 아주 낮은 테이블만 하나 있었다. 가장 기본 객실이 아니었음에도(단지 여닫이창이 있다는 이유로 감수했던 추가 비용이었다) 책상스러운 것은 거울이 달린 화장대뿐이었다. 거기서도 조금 작업을 하긴 했지만, 눈앞의 거울을 무시하면서 원고 작업을 하는 데에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하다. 보기 싫어, 보기 싫다고, 나를 비추지 말라고! 궁여지책으로 내가 생각해낸 건 객실에 있던 스탠드형 다리미판. 그게 책상이 됐다.

그날 내 일정 중에는 출판사 인스타 라이브를 통한 독자와의 만남도 있었는데, 그 호텔은 조명조차 너무 어두워서 간접 조명을 한곳으로 몰았는데도 밤이 되자 빛이 부족했다. 라이브 내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러저러해서 호텔에 있는데, 가장 밝은 곳이 욕실이라 그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최대한 압축되어 그 라이브에 참여했던 독자 몇 분은 내가 욕실에서 라이브를 진행한 것으로 이해하셨다.

이제 두 번째 경우.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호텔에서 원고 마감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해 얘기할까. 여행이나 호캉스를 위해 호텔을 예약했는데 체크인 시점에 마감 원고가 함께 투숙했다는, 상당히 짜증스러운 이야기다. 불청객도 이런 불청객이 없는데, 모든 건 내가 나를 너무 믿어서 벌어지는 상황들이다. 그때쯤엔 되겠지 하면서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 후에 터질 '환불불가' 여행을 지뢰처럼 매설해두는 것도 나, 그때가 되어 아 왜 지금이야 부담을 느끼지만 결코 무를 수가 없어 '여행'이 아닌 '요행'을 바라며 투숙하는 것도 나. 그 둘 사이의 치명적인 계약 관계에 의해 지탱되는 세계라고나 할까.

동행은 이미 잠들었고, 그에게 불빛이나 소리가 부담이 되지 않길 바라며 호텔방 한쪽에서 글을 쓴 경험이 더러 있다. 당시에는 피곤하고 괴로웠지만, 이상하게도 그 밤들은 잘 잊히지 않는다. 단편 「우리의 공진」(『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에 수록)은 대지진을 겪은 도시에서 최종 마감을 했던 원고인데, 새벽 네시에 내가 깨어 있었던 건 지진이 아니라 원고 마감 때문이었지만, 행간에 한 번씩 돌들을 떠올렸다. 지진으로 이 도시의 성이 무너졌을 때 퍼즐처럼 흩어진 돌들 말이다. 십만 개가 넘는다는데, 그 십만 개의 돌들이 원래 위치를 기억할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타국의 낯선 호텔, 새벽의 책상은 집중하기가 좋은 환경이라 어느 순간엔 정말 발밑이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블랙커피, 그리고 그 커피를 마시기 위한 밑작업(?)으로서의 섭취가 전부인 시간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마침내 송고에 성공하면! 간밤의 피로는 싹 날아가고 식욕이 돋는다. 마침 호텔의 아침 식사가 뷔페식이라면? 언젠가 L과 내가 각자의 접시에 아침 뷔페 음식을 담아 테이블에 마주 앉았을 때, L이 완전 신기하다는 듯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리코타 치즈 봤어? 벌써 반이 줄어있더라, 이렇게 일찍 왔는데도! 와, 사람들 진짜 부지런하다."

그것은 곧 나의 영역 표시였다. 내 접시 위에 정확히 그 반이 있었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작업실 2호와 3호에서는 내가 보이는 특정 행동들이 있다. 청소다.

특급 호텔이라고 해도 청결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나는 개인용 전기 포트를 들고 다니고, 호텔에 놓인 것은 아예 건드리지 않는다. 호텔에 놓인 컵은 헹군 후에 사용한다. 코로나 이후로는 소독제를 사용한다는 게 달라졌을 뿐, 그 이전에도 물티슈로 그렇게 테이블을 닦고 스위치나 손잡이, 세면대 수전이나 변기 물내림 버튼 같은 것을 닦았다. TV나 에어컨의 리모콘, 옷장 손잡이처럼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동선을 일단 한번 소독한다. 아니 왜 우리 집을 내버려 두고 다른 공간에 와서 청소를 하느냐고? 일종의 낯가림이다. 공공장소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낯가림이랄까.

호텔에 대해서는 좀 관대한 L은 카페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코로나 이전부터 자리를 잡으면 테이블 위를 닦는 게 필수적이었다. L은 물티슈를 사용하거나 화장실에 비치된 손세정제를 냅킨에 적셔와 테이블을 닦는다. 그러다 더 좋은 자리가 나면 우리는 그쪽으로 옮겨가고 또 닦아야 할 테이블이 생기지만 L에게 그건 자동적인 행위다. 그러다 보면 이런 소리도 들린다.

"엄마, 저 아저씨가 닦아놨어. 고맙게도!"

L이 방금 닦고 떠난 자리에 착석한 아이의 야무진 말이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윤고은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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