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대중문화 > 김윤하의 전설이 될 거야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 케이팝 팝업 스토어
우리들만의 신기루
팬이라면 무조건 가보고 싶은 공간이자, 딱히 팬은 아니더라도 몇 시간의 기다림을 감수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적인 장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곳. 그곳이 이제 막 활발히 조성되기 시작한 케이팝 팝업 스토어 생태계의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2022.08.31)
비 오는 평일 오후 2시. 이 정도 악조건이라면 그렇게까지 붐비지는 않겠지 생각한 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기계에 휴대폰 번호를 넣고 메시지로 받은 웨이팅 번호는 954번, 앞에는 459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웨이팅 예상 시간은 245분. 순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SNS에서 찾아본 정보를 되뇌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오후 2, 3시면 이미 예약이 끝나는 주말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았다.
먼저 현장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실제 웨이팅 시간은 전달받은 시간보다 훨씬 짧고, 대기 인원수도 생각보다 빨리 줄어드는 편이라고 했다. 메시지로 받은 링크를 누르면 실시간 웨이팅도 확인할 수 있으니, 근처에서 커피 한 잔도 하고 아이 쇼핑도 하고 있으면 금방 순서가 돌아온다는 위로도 받았다. 무수한 선배님들의 증언은 사실이었다. 숫자의 충격을 딛고 잠시 카페 의자에 걸터앉아 도대체 이 평일 오후에 이 많은 사람이 어디에서 쏟아져 나온 걸까, 생각하는 사이 대기 인원이 수십 명씩 빠르게 빠져나갔다. 8월 12일부터 31일까지 '더 현대 서울'에서 열린 어도어 레이블의 신인 그룹 '뉴진스'의 팝업 스토어 이야기다.
번호 등록에서 입장까지 3시간 정도 걸린 팝업 스토어 내부는 기대보다는 소박한 규모였다. 한쪽에는 커다란 화면에 뮤직비디오가 반복 재생되었고, 뉴진스를 대표하는 토끼 캐릭터와 로고로 꾸며진 거울 벽이 사방을 비추며 작은 공간을 답답하지 않게 비췄다. 팝업 스토어가 막바지에 달한 탓에 스티커 팩이나 배지 같은 인기 품목들은 거의 매진되었고, 미니 포스터나 키링처럼 멤버 별 버전으로 제작된 물품 가운데에는 재고가 떨어진 종류도 많았다. 온라인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매진된, 일명 '가방 앨범'으로 화제를 모은 한정판 앨범도 특정 컬러만 구매가 가능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건, 사실 어떤 물건을 직접 사서 소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케이팝 팝업 스토어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적어도 3시간 이상의 기다림 끝에 그 공간 안에 들어선 이들의 눈빛에는 사고 싶은 물건을 획득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동시에 '내가 이 공간에 있다'는 만족감이 훨씬 크게 떠올랐다. 사고 싶었던 것들을 신중하게 장바구니에 담는 사람만큼 그룹과 관련된 이미지로 도배된 크지 않은 공간을 몇 번씩 돌며 사진을 찍고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의 숫자가 훨씬 많았다. 물론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케이팝 팝업 스토어는 무릇 그런 존재다. 팝업 스토어 자체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소매 공간으로 그 기간에만 특정 물품을 사고 파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케이팝 팝업 스토어는 한정 머천다이즈만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 형성된 연대감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자기장이 중심이다. 실제로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 완화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케이팝 팝업 스토어 대부분이 그러한 공동체적 유희와 결집에 초점을 맞췄다. 대부분의 케이팝 팝업 스토어가 팬덤 화력이 가장 뜨거워지기 마련인 새 앨범 발매를 기준으로 열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난 5월 정규 2집 <Glitch Mode> 콘셉트에 맞춰 오락실을 테마로 한 '글리치 아케이드 센터 팝업 스토어'를 성수동에 오픈했던 NCT DREAM이나 음반 판매와 함께 포토 카드 키오스크 운영, 무대 의상 전시를 함께한 에이티즈의 <THE WORLD EP. 1 : MOVEMENT> 발매 기념 팝업 스토어가 대표적인 경우다.
케이팝 팝업스토어의 궁극적 목적이 '판매'라는 데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름부터 '팝업 스토어' 아닌가. 실제 매출도 상당하다. 지난 6월 멤버들을 동물화한 캐릭터 '스키주'로 팝업 스토어를 연 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경우, 실제 멤버들을 활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팝업 스토어 기간 동안 2만 2천 여 명에 가까운 누적 방문객과 해당 장소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 사상 일일 매출, 누적 매출 모두에서 최고 수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물론, 이렇게 증거로 남은 숫자도 중요하지만, 사실 케이팝 팝업 스토어가 남기고 가는 기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그렇게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우리들만의 공간'이 얼마나 멋지고 즐거웠느냐는 점이다.
고의가 느껴질 정도로 극단적으로 한정된 수량과 품목마다 빠짐없이 적용된 랜덤 사양은 순간의 수익을 높일 수는 있을지언정 케이팝 팝업 스토어가 가진, 그룹과 팬덤의 사기 진작을 위한 특별한 공간으로서의 매력은 그와 정확히 반비례 곡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케이팝 팝업 스토어는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이자 해당 가수와 음악에 대한 이미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다. 팬이라면 무조건 가보고 싶은 공간이자, 딱히 팬은 아니더라도 몇 시간의 기다림을 감수할 수 있게 만드는 매력적인 장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곳. 그곳이 이제 막 활발히 조성되기 시작한 케이팝 팝업 스토어 생태계의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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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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