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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가 사랑에 빠진 그림책] 잘 지내. 특히 마음 조심해

<월간 채널예스> 202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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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독립출판물 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이 책 『마음 조심』을 만났다. 작가의 이름은 '윤지' 낯선 이름이었다. (2021.06.04)


주인공 소라게는 아주 소심한 편이라 작은 일에도 조금 큰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란다. 그러다 매우 크게 놀랄 때면 소라껍데기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그런 소라게가 사람들 틈에 치이며 출근을 한다. 전철 속 구둣발에 밟혀도 엘리베이터 새치기를 당해도 '다들 사정이 있겠지' 이해하며 출근을 한다. (화를 낼 자신이 없어 상대방을 이해해 버리는 마음에 공감하는 분, 손!) 힘들게 도착한 회사에서 겪을 어려움은 안 봐도 짐작이 간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고깃집에서 만난 소라게와 친구들 (딱딱한 껍질 속에 언제든 숨을 준비가 된 친구들)은 식당에서도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지만 결국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하며 굿바이 인사를 나눈다. "안녕! 잘 지내. 특히 마음 조심해."



몇 해 전 독립출판물 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이 책 『마음 조심』을 만났다. 작가의 이름은 '윤지' 낯선 이름이었다. 그때 나는 심각한 심드렁 병에 걸려있었다. 어떤 작업을 봐도 '그래... 작업이군요...' 라는 생각만 들었다. 감동도 감탄의 순간도 드물었다. 나의 메마른 마음을 깨워줄 무언가를 찾아 매일 헤맸고 노력의 한 가지로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갔던 것이다. 윤지 작가의 아담한 탁자 위에는 드로잉,  만화책, 그림책, 조물조물 오브제가 가득 놓여 있었다. 색감이 무척 화려했고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없었다. 조심스레 그림책 한 권을 펼쳐보니 나랑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라게가 그려져 있었다. 한참을 그곳에서 머물다 나오면서 나의 심드렁함이 나의 소라껍데기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멋진 작업에 심드렁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그런 상태. 동시에 내 소라껍데기가 조금 흐물흐물해지는 것도 같았다. 나도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예상대로 소라게는 조금씩 잊혔고 그래서였을까 나는 다시 모든 일, 정확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권태를 느꼈다. 그러던 중 윤지 작가의 새 책 소식을 들었다. 신작 『식빵 유령』은 식빵 속에 사는 유령과 얼룩 고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매일 밤 빵 가게 주인이 퇴근하면 식빵 속에서 빠져나온 식빵 유령이 가게를 청소하기 시작한다. 뜬금없이 왜 청소를 할까? 유령이 사는 식빵 속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유령은 아주 단순하게 꾸며진 먼지 한 톨 없는 집에 살면서 실내복(식빵 안)과 실외복(식빵 밖)을 정확하게 구분해 입는 깔끔한 성격이다. 그런 성격 때문에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고 매일 밤 가게를 청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령이 매일 쓸고 닦는 그곳에 어느 날 골칫덩이 얼룩 고양이가 등장한다. 고양이는 밀가루를 쏟고 그릇을 깨는 등 우당탕 가게 안을 어지럽혀 유령을 힘들게 한다. 치우면 어지럽히고 또 치우면 또 어지럽히는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던 고양이와 유령의 관계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최근 기대했던 일이 어그러지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다. 나는 다시 소라껍데기 속으로 슬며시 뒷걸음치는 중이었다. 그렇게 딱딱해지고 있는 나의 마음에 식빵 유령과 얼룩 고양이가 들어왔다. 책의 내용은 내가 겪은 상황과 전혀 달랐지만, 위로를 주었다. 멋진 이야기는 어떤 방향으로든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 맞나보다. 나도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새롭게 했다.



어지럽히고 치우기를 반복하는 식빵 유령과 고양이처럼 내 마음에도 항상 반복되는 아웅다웅 이 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라는 마음과 '소용을 만들어 보자'라는 마음의 반복이다. 한껏 심드렁해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건 항상 다른 이가 만든 좋은 작품이다. 이야기에 빠져 웃고 울다 보면 나도 독자를 웃고 울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다시 내 마음이 심드렁해질 때 그때도 마법처럼 윤지 작가의 새 책이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찾아가고,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을 주문하는 최소한의 의욕까지 소진되지 않도록 항상 마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음 조심
마음 조심
윤지 글그림
웅진주니어
식빵 유령
식빵 유령
윤지 글그림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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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수신지(만화가)

서양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많다. 만화책 <3그램>, <며느라기> 등을 펴냈으며, 여러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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