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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 6인이 기억하는 ‘여자 어른’ 이야기 -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단편소설 엔솔로지 『나의 할머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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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노인이기 때문에. 그러한 이중으로 소외된 인물을 소설로 드러내는 게 어쨌든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느꼈습니다. (2020. 06. 08)

(왼쪽부터) 윤성희, 최은미, 손보미, 강화길, 백수린 작가와 북 토크를 진행한 임현주 아나운서


“이 소설들을 읽노라면 스스로도 해석이 잘 안 되는, 늙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과 복잡한 내면의 지형도가 보이고 또한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가파르게 살고 있는 딸이, 내가 향해 가고 있는 시간들을 어쨌거나 살아냈던 어머니가 확연히 보인다.” _ 오정희(소설가)

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 작가가 쓴 『나의 할머니에게』는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하지만, 어려운 시절을 충실히 살아낸 우리 시대의 소중한 어른으로서 ‘할머니’들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한국 문단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여성 작가 6명(윤성희, 백수린, 강화길, 손보미, 최은미, 손원평)이 유해한 시대를 무해한 사랑으로 헤쳐 나온 이들의 믿지 못할 삶의 드라마를 각자의 고유한 감각과 개성으로 그려낸 작품집이다. 



이중으로 소외된 ‘할머니’란 존재에 대해 

앤솔러지 제안이 왔을 때, ‘할머니’라는 주제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흔쾌히 수락하셨는지 조금 고민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윤성희 청탁을 받을 즈음 할머니를 화자로 소설을 쓰는 일이 조금 즐거우던 참이었습니다. 앤솔러지에 참여하는 일이 부담되긴 했지만, 하고 싶은 할머니 이야기가 있어서, 약간 고민하다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백수린 ‘할머니’는 제가 좋아하는 인물 유형이지만, 할머니가 등장하는 소설을 이미 두 편 썼던 터라,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또 쓰는 게 좋을지 살짝 고민이 되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안을 수락하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는데요. 여성 작가들이, 지금껏 소외받았던 ‘할머니’라는 존재를 전면에 내세워 한 권의 소설집을 묶는다는 콘셉트 자체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강화길 처음에는 고민을 했어요. 잘 알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쩌면 내가 한번 써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손보미 제안을 수락한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한 가지는 작가 노트에도 썼지만 최근에 할머니 집에 맡겨진 손녀에 대한 이야기를 몇 편 썼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전면으로 드러나는 소설은 써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쯤 그런 소설을 써보는 게 재밌는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청탁 전화를 받았을 때 편집자님에게도 말씀드렸는데, 할머니가 이중으로 소외된 인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노인이기 때문에. 그러한 이중으로 소외된 인물을 소설로 드러내는 게 어쨌든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느꼈습니다. 

최은미 주제가 할머니라면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흔쾌히 참여 의사를 전했습니다. 우리 곁에서 오래 살아온 여성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원평 제안받았을 당시 바쁜 상황이었는데요, 듣는 순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정을 확인한 뒤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도 궁금했고요. 다른 갈래의 이야기도 생각해보다가 현재의 이야기에 이르게 됐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셨을 텐데요. 독자로서 어떤 느낌으로 읽으셨나요? 

윤성희 한국문학은 이렇게 풍성하구나. 뭐 그런 생각이요. (우리끼리 칭찬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동료들의 좋은 소설을 읽는 일은 늘 행복합니다.

백수린 똑같이 ‘할머니’라는 소재를 받았는데도 모든 작가들이 완전히 다른 작품들을 써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각 소설을 쓴 작가들의 이름을 가리더라도 누가 쓴 것인지 쉽게 유추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요. 소설가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개성을 살려 소설을 쓰다 보니 주제적 측면에서는 물론 서사적 재미 측면에서도 앤솔러지가 무척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강화길 당연히!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작가분들의 개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면서, 동시에 할머니들이 똑같이 등장하니까요. 그걸 읽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그러니까 독서 자체가 정말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손보미 일단 한 번도 서로 나는 이런 주제나 이런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쓸 거야,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다양한 할머니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 게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그냥 늙은 여자, 정도로 뭉뚱그려진 개념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생생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할머니라는 존재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손원평 기대한 것 이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할머니’라는 테마 안에 담길 수 있음에 놀랐고 흥미로웠습니다. 단순히 정겹고 그립고 따뜻한 우리의 할머니들을 넘어서, 이야기 안에서 그려진 서늘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다채로워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최은미 각 작가들의 고유한 색깔이 잘 담긴 단편들이어서 그 작가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쁜 독서였습니다. 이런 문장들을 만날 때 특히 즐거웠습니다. 


“유치원이 없어진 게 속상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갈치조림집은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윤성희, 「어제 꾼 꿈」) 

“할머니가 탄성을 질렀다. 마치 경이로운 일을 난생처음 목격한 사람처럼.” 

(백수린, 「흑설탕 캔디」) 

“할머니는 자신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무엇일까.” 

(강화길, 「선베드」) 

“불길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정적.” 

(손보미, 「위대한 유산」)

“늙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몰라. 변한다는 걸 빼곤 확실한 게 없으니까.”

(손원평, 「아리아드네 정원」)


(왼쪽부터) 손보미, 강화길, 백수린 작가


(왼쪽부터) 윤성희, 최은미 작가

7명 소설가 각자의 작품 이야기

윤성희 작가님은 「어제 꾼 꿈」을  쓰면서 할머니가 된 작가님을 상상해보았을 것 같아요. 화투점을 보는 할머니와 들꽃 이름을 외우는 할머니. 이건 작가님이 되고 싶은 할머니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무엇이 될까요?

윤성희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막연하게 잘 늙고 싶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만 말한다면 자기 전에 달을 한 번씩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잘 지나갔다, 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노인이 되고 싶습니다.


백수린 작가님은 「흑설탕 캔디」를 발표하셨습니다. 노년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오래도록 품으셨다고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어떤 해소, 즐거움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백수린 말씀하신 것처럼 오래전부터 노년의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구상했습니다. 물론 한국 여자와 프랑스 남자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지만요. 할머니를 1인칭 화자로 내세워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싶었는데, 이번 소설에서 그러지 못했다는 점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손녀딸을 경유하는 방식으로라도 화창한 봄날, 소녀처럼 두근거려 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이번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괴로운 날들보다 행복한 날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강화길 작가님은 「선베드」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강화길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요양원에 볕을 쬐는 시간이 있다는 말이었어요. 그 순간 그 풍경을 상상했고, 그 장면을 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할머니의 관계는 어떤 느낌일까요? 선을 지키지 않는 관계였을까요? 

강화길 글쎄요. 저에게 할머니는 늘 모르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 같아요.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고민하는 거겠죠.


손보미 작가님은 「위대한 유산」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손보미 처음에는 돌아가신 할머니네 집에 왔다가 동네에 있는 (이제는 폐업한) 피아노 가게에 갇힌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했었습니다. 아마도 할머니와 주인공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싶었던 것 같은데, 쓰다 보니까 할머니네 집에서 일을 했던, 손주를 가지고 싶었지만 가지지 못했던 아주머니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공포스럽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 어쩐지 읽은 친구들이 다 무섭다고 해줘서…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작가 노트에서 “모든 사람은 결국 할머니가 된다”는 말을 쓰시려다 “모든 사람이 할머니가 되진 않는다”고 하셨어요. 이것이 소설을 쓴 이유라고 하셨고요. 작가님은 할머니가 되실까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나요? 

손보미 내 바깥의 것,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좋아하는 행위만으로 가치가 있는 그런 대상에게 계속 애정을 품을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최은미 작가님은 이번 작품 「11월행」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템플스테이를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최은미 네, 절에 묵는 걸 좋아해서 언젠가 한 번쯤은 템플스테이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로 이어진 세 명의 여자들에게 이들이 일상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타인들과 섞인 공간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셋만 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얘기들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고 싶었어요. 

언젠가 작가님도 할머니가 되실 텐데요. 어떻게 늙고 싶나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나요?

최은미 나이가 들어도 궁금한 게 계속 생기는 할머니였으면 좋겠어요. 약을 별로 안 먹어도 되는 할머니, 탁구를 잘 치는 할머니, 무엇보다 체념하지 않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손원평 작가님이 쓰신 「아리아드네 정원」을 읽고 요즘 젊은 세대, 노년 세대를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현실적이면서 또 비현실적인 느낌도 들고요. 이런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나 동기가 있을까요?

손원평 ‘할머니’ 테마를 익숙한 듯 생경하게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할머니가 아닌, 내가 할머니가 됐을 때의 시대상을 상상해보게 되더군요. 상상의 과정은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근미래 SF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현재의 할머니들이 지난한 세월을 거쳐 21세기 초반 현재에 느낄 법한 감정과 상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쓰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동시에 그려보고 싶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렇게 늙고 싶다' 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손원평 젊은이들은 기성세대, 나아가 나이 든 어른에 대해 실망감이나 답답함을 느끼곤 하죠.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 나이가 들어 기성세대가 되고 노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늙는다’보다는 ‘성숙한 어른이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나이 들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스스로를 성찰하고 세계를 살피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고 싶습니다. 말은 쉽지만 정말로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나의 할머니에게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백수린,강화길,손보미,최은미,손원평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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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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