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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권남희 “번역가의 일상이 궁금하다고요?”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권남희 저자 이메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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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편하게 써서 읽는 사람도 편한 에세이가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합니다. 읽고 난 뒤에 ‘아, 나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다면 금상첨화겠죠.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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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마스다 미리 등 300권 가까운 책을 작업한 베테랑 번역가의 일상은 어떨까? 일본 문학 팬들의 ‘무한 신뢰’를 받는 권남희 저자의 하루는 남다를 것만 같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일상이 “바쁘면서도 무료한” 자잘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고 말한다. 번역 노하우를 들려 달라는 강연장 뒤에서 ‘무대 울렁증’을 겪고, 밴드 국카스텐 덕질에 심취하기도 한다. “나와 똑같구나”하고 마음의 빗장을 풀면, 뛰어난 관찰력과 위트 있는 농담이 보인다. 자신을 ‘번역하는 아줌마’로 소개하는 권남희 저자에게서 귀찮은 일상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법을 배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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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서 한 우물만 팠어요


『번역에 살고 죽고』 이후 9년 만에 출간된 에세이집입니다. 출간 후 기분이 어떠셨나요?

 

사실은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가 출간될 무렵, 자식처럼 사랑하는 노견이 간암에 걸린 걸 알게 됐어요. 이 책에도 노견 ‘나무’ 얘기가 나오지만, 1년 전에 실명을 했는데 이번에 간암까지 걸린 거예요. 지구의 종말이 온 것처럼 앞이 캄캄하고 슬퍼서 신간이 나와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응이 좋고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는 독자들의 리뷰가 많아서 아, 얘도 자식인데 너무 무심했네, 하고 요즘에야 미안한 마음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300권 가까운 책을 번역해 오셨어요. 한 작업에 오래 매진할 수 있었던 팁을 주신다면요?

 

제 경우는 ‘게으름 or 귀차니즘’ 덕분이어서 전수할 정도의 팁은 아닌데요. 새로운 일에 도전을 게을리하고 변화를 귀찮아해서요, 한 가지 일만 꾸준히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판 사람이 됐어요.(웃음)

 

에세이집을 읽고 작가님의 소소한 일상이 그려져 재밌었다는 평이 많았어요. 번역 작업을 하는 일과를 소개해주세요.

 

너무 단순해서 일과랄 것도 없는데요. 새벽에 잠들어서 서너 시간 지나면 개가 밥 달라고 깨워요. 그러면 밥 주느라 잠이 깨 버리죠. 깬 김에 스마트폰 좀 보다가 개한테 약을 3가지 먹이고 바로 책상으로 간답니다. 놀이터거든요. 낮잠 한숨 잘 때 말고는 새벽에 잘 때까지 계속 책상에 있어요. 춥거나 덥지 않을 때는 개 산책을 시키러 나가지만 그 외에는 밥 먹을 때 제외하고 마네킹처럼 책상에 앉아 있죠. 일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책도 읽고 놀아도 책상에서 놀아요. 프리랜서들은 그렇지 않나요?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일은 하지 않지만 일은 하고 있는 상태로 놀고 있잖아요. 이게 문법으론 말이 안 되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돼요, 그죠. 암튼 두루마리 화장지 같은 하루랍니다. 24시간을 아무 계획 없이 쓰고 싶은 만큼 잘라서 써요.
 
어떤 때, 일상의 이야기를 기록하시는지요?


작업 스케줄조차 머릿속에만 입력해둘 정도로 기록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요. 일상 이야기를 기록한다기보다 혼자 노니까 심심해서 수다 떠는 개념으로 블로그에 낙서를 하는데 그게 쌓이니 기록이 되더군요. 얘깃거리가 있으면 아무 때나 써요. 너무 자주 쓰면 없어 보이니까 좀 텀을 두려고 하죠. 비공개로 쓰면 될 텐데 제가 관종 끼가 있는지 비공개 글은 재미가 없더라구요(웃음).    

 

미우라 시온의 번역을 맡게 된 에피소드에서, 번역자로서 좋아하는 작가를 의뢰받는 것도 큰 ‘인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작업을 의뢰받고 기뻤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모든 작업 의뢰가 다 기쁜데요. 기뻐하던 상황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랍니다. 왜냐하면 나오키상 발표 순간부터 그 책을 꼭 번역하고 싶어서 제발 나한테 오라고 기도했거든요. 무교여서 특정 신에게 기도한 건 아니지만, 시크릿의 법칙대로 ‘애도하는 사람 번역이 내게 오기를’ 하고 모니터에 막 치기도 하고, 종이에 막 쓰기도 하고(웃음). 어느 출판사에서 판권을 딸지 모르니 일본어책 많이 나오는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안부 묻는 척하며 제가 그 책을 감명 깊게 읽었음을 슬쩍 흘리기도 하고 꽤 밑밥을 깔며 노력을 했죠. 그랬던 책을 의뢰받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운명이었나 봐요. 지금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번역이 탐나는 작가나 작품은 많지만 인연이면 나한테 오겠지, 하고 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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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하지 않는 글이 좋다

 

‘지랄 총량의 법칙’, ‘핑프 등 일상의 말맛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평소에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관찰하곤 하시는지요?


체통 없이 인터넷 용어 많이 썼다고 딸한테 혼났던 터라 이 질문을 읽어주었습니다. “거봐, 재미를 더했다잖아.” 하면서(웃음). 온라인 생활 역사가 긴 데다 덕질(국카스텐)을 해서 웬만한 신조어는 다 꿰고 있답니다. 아마 50대 중 상위 1%일 거예요. 제가 돈 안 되는 것, 시험에 안 나오는 것, 이런 건 진짜 잘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재미있는 속담이나 표현이나 단어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 번 들으면 글 쓸 때 꼭 써먹고. 몇 년 전 연말에 건강검진을 하러 갔는데 사람이 많으니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듯 검사 속도가 빠른 거예요. 그걸 보고 옆에 앉은 어떤 할머니가 “처삼촌 산소 벌초하듯 하네.”라고 하시는데, 그 적확하고 기발한 속담에 속으로 ‘오, 대박!’ 하고 왕건이 건진 듯 기뻐했답니다. 꼭 써먹어야지 했는데 이제야 써먹네요.

 

편집자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님이 일하는 방식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업무 미팅 시, 작가님이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나요? 


아, 업무 미팅이란 건 거의 하지 않고, 계약서에 도장만 찍는 편집자 미팅도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하답니다. 보통 메일과 택배로만 일해서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편집자가 대부분이죠. 제가 전화 통화를 좋아하지 않는 게 소문났는지 거의 메일이거든요. 그래도 어쩌다 편집자 만날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무슨 선물을 갖고 갈까’ 하는 것입니다. 하핫.

 

딸 정하와의 관계가 마치 좋은 친구 같았습니다. 딸과 좋은 관계를 맺는 작가님만의 방식이 있다면요? 


조카손녀가 다섯 살 때, “고모랑 이모할머니랑 친구야?” 하고 진지하게 물어서 웃은 적이 있는데요. 제가 너무 가벼운 인간이어서 엄마로서의 위엄이나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야자만 트지 않았지 거의 맞먹는 사이거든요. 굳이 노력하는 거라면 ‘내가 네 마음이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잔소리를 줄이려고 하죠. 그리고 지금 정하가 26살인데 여전히 “우리 강아지 예쁘네.” 하는 말을 자주 해요. 근데 이 글을 딸이 보면 역겨워할 것 같아요. 어진 엄마인 척한다고. (웃음)

 

나만의 에세이를 쓰고 싶어 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무레 요코, 마스다 미리의 책 등 훌륭한 에세이를 많이 번역해 오셨는데요. 작가님은 어떤 에세이가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척하지 않는’ 글이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식한 척, 잘 쓰는 척, 세상을 다 포용하는 사람인 척하는 그런 글은 본인만 모르지 읽는 사람은 척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읽기 불편하거든요. 무레 요코나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는 그런 척이 없어서 읽기 편하죠. 예전에 유명작가의 에세이를 번역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야후 재팬에서 검색하는데, 책과 똑같은 문장이 있어서 놀란 적이 있어요. 복붙은 진짜 최악이잖아요. 번역하는 내내 그 책이 불편했는데, 그렇게 아는 척, 좋은 사람인 척하는 글이 많아서였던 거예요. 아무튼, 에세이(아, 책 제목 같네요)는 작가가 편하게 써서 읽는 사람도 편한 에세이가 좋은 에세이라고 생각합니다. 읽고 난 뒤에 ‘아, 나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든다면 금상첨화겠죠.

 

평소 번역을 잘하려면 ‘독서’를 많이 할 것을 강조하셨지요. 일본 서적뿐만 아니라 국내소설도 두루 읽으신다고요. 작가님의 독서 스타일과 최근 주목하는 작가가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시는 책을 주로 읽다 보니 독서 스타일이라고 할 게 없는 잡식성인데요. 개인적으로 구입하는 책은 거의 국내 소설입니다. 제가 읽어보고 좋았던 소설은 딸한테도 권하기 때문에 저희 모녀는 좋아하는 작가가 같은데요. 정세랑 작가님과 권여선 작가님 작품을 특히 좋아합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찾으신 것 같아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좋아하는 일’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 같으면 폼 나는 조언을 좔좔 읊었을 텐데요. 취준생 엄마잖아요. 좋아하는 일은 고사하고 ‘일’을 갖는 자체가 힘든 현실임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들으나 마나 한 번지르르한 소리는 염장만 지를 것 같아서 딸한테도 그냥 ‘닥치고’ 있답니다. 다만 ‘좋아하는 일’과 ‘돈이 되는 일’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 처음부터 둘 다 좇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장기 백수 되기에 십상이거든요. 번역가를 꿈꾸는 분들은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게 평소에 꾸준히 읽고 쓰고 번역 연습하며 실력을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일을 꿈꾸는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죠. 

 

 

 

* 권남희


일본 문학 팬이라면 믿고 보는 번역가이자 이름 자체가 추천 기능을 하는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스물다섯 살이었던 1990년 대리번역으로 번역을 시작해서 1991년 호시 신이치의 『신들의 장난』,을 번역하여 출판사에 소개해, 처음으로 자기 이름의 번역서가 세상에 나왔다. 그 후로는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아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직접 기획하여 번역한 무라카미 류의 소설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오디션』,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러브레터』가 베스트셀러가 되며 번역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무레 요코의 소설과 에세이를 비롯해 수많은 일본 현대 작가의 작품을 우리 말로 옮긴 28년 차 번역가. 2014년, 번역 생활 이야기와 번역 팁이 넘쳐나는 『번역에 살고 죽고』,를 발표하여 지금까지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애독서가 되고 있다.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권남희 저 | 상상출판
번역과 관련된 글들은 그의 경험이 짙게 녹아 있다. 300권이 넘는 일본 문학을 번역하면서 권남희 작가가 겪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모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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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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