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책의 날 특집 – 국경을 넘는 한국 문학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문학, 특히 여성 작가들의 책이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해외의 다양한 독자와 만나는 모습을요. 언어의 장벽을 넘은 책은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닿고 있을까요? 국경 너머의 독자들과 연결되는 경험, 그 환대와 오해, 얽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언젠가 나는 꿈에서 사람들을 가득 채운 고속버스 안에 있었다. 바깥은 위험한 도시였다. 서로 다른 도착지를 가졌으나 버스 안이라는 공간에 일시적으로 함께 있게 된 사람들 사이에는 내가 평소에 사는 게 영 불안하다고 생각한 친구도 타고 있었다. 그 친구는 술에 많이 취해있었고 몸에 유리 파편이 박혀있었다. 자신과 타인을 모두 날카롭게 찌르는 유리 파편을 몸에 지닌 채 그는 버스 안에서 점점 더 엉망으로 굴기 시작했고 그런 소란으로 인해 사람들은 다치기까지 했다. 그가 점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자 나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앞장서서 그를 버스 바깥으로 내보냈다. 버스에서 내려진 그는 여전히 미친 채로, 이번엔 심장에 유리파편이 박힌 채로, 비를 맞으며 바깥을 돌아다녔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그를 추방하는 일로 대동단결 됐다. 나는 버스 운전석 옆에 서서 창문 바깥 넘어 그를 흘깃 보면서 우리 행동이 얼마나 정당한지에 대해 소리쳐 말했다. 내가 쏟아내는 문장은 아름답고 힘이 넘쳤다. 옳소 옳소 사람들은 크게 동조했다. 그러는 동안 버스 바깥에서 휘청대며 걷던 그가 쓰러졌다. 나는 연설 중 놀라 버스에서 내려 그를 구해왔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를 더욱 칭찬했다. 쓰레기 같은 인간도 구해내는 윤리적인 인간이라며 박수를 쳤다. 나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동안 나는 별안간 꿈의 등장인물로서 또 서술자로서 내가 하고 있는 짓에 소름이 돋았고 경악하다가 잠에서 깼다.
잠이 덜 깬 채로 침대에 앉아 혼자 질문을 던졌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 동시에 두 명 이상의 서술자가 존재할 수 있을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동시에 허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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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한국 여성으로 살기에 놀라우리만치 운이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오랜 기간 염원하던 첫 책을 출판한 이후 나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지내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2025년에 한국 국적의 여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인지를 실감한다. 190개국 이상에 무비자 혹은 도착 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데다가 공항이나 이민청에서 테러리스트, 마약상, 불법체류자로 오인 받을 일도 상대적으로 적다. 여행자 보험에 들 때, 외국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할 때, 거주 비자를 신청할 때도 중동이나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이민청은 신청인의 국적에 따라 아예 비자 문제를 처리하는 부서를 달리 두고 일의 진행 속도도 다르다.
한국인으로서 얻는 특혜는 그뿐만이 아니다. 가장 피부로 와닿는 점은,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에게 호의적이라는 것이다. 한류의 영향으로 문화적 이미지가 긍정적이라 실제로 해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전보다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 덕을 볼 때가 많다. 투박하게 말하자면 한국인을 세련되게 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마치 아시아의 백인이라도 된 것처럼.
나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게다가 애도 남편도 없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대부분 미리 정착한 한국인이 있어서 혼자서 맨땅에 헤딩하지 않아도 된다. 이전 세대의 어른도 있지만, ‘탈조선’한 또래의 여자들도 미국 혹은 유럽에 많아 노력하면 상부상조할 새로운 네트워크를 현지에서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내가 한국 여성으로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한국 여성을 가장 반기지 않는 곳이 한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러한 행운은 내가 뛰어나거나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시대적인 행운이다. 또 이것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행운일 뿐이니까. 그러니 건방 떨지 말고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하자고, 내 삶에 충실한 것이 앞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뒤에 올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낸다. 그런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틀고 나면 타지살이의 막막함이나 고단함, 외로움, 인종 차별 같은 것은 사소한 것이 된다. 인종차별? 한국에서 겪었던 성차별, 빈곤 혐오에 비하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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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다양한 이유로 모국을 떠난 이상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언젠가는 레바논에서 온 친구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직업(이를테면 목수나 테라피스트가 되고 싶었다)을 다시 얻거나 학교를 다시 가거나 하면서 커리어를 새롭게 쌓는 동안 카페나 식당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에서의 경력이나 학위가 소용없을 테니까. 내 얘기를 듣던 친구가 글쓰기 수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에이, 내가 어떻게 여기서 글쓰기 수업을 해? 그랬더니 친구가 물었다.
“너 한국에서는 뭐로 돈을 벌었는데?”
“글을 쓰고 글쓰기 수업을 했지.”
“여기라고 왜 안돼?”
친구는 내 책을 영어로 번역해 보자고도 했다. 에이, 영어권 화자가 한국 여성의 우울증에 왜 관심을 갖겠어. 그러자 친구가 다시 반문했다.
“너는 미국 여성의 우울증 이야기 많이 읽었잖아.”
나는 왜 한국에서의 경력이나 학위가 독일에서 소용 없거나 더 낮게 평가받을 만한 것이라고 여겼을까? 설령 제도가 그렇게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제도 밖에서 내가 만들어갈 길은 다를 수도 있는데. 친구와 대화하며 나는 내 안의 뿌리 깊은 식민성을 발견했다.
첫 책인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성들』의 부제는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이다. 한국에서 여성 운동에 참여하면서, 여성 우울증을 오래 연구하면서 나는 사회가 고통을 선별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슬퍼하며 책을 썼다.
한국 바깥으로 나오면서 ‘인간이 고통을 선별적으로 인식한다’는 관찰 내용은 더 복잡하고 넓어졌다. 그러니까 고통을 선별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한국 여성에 편향되어 이들의 고통을 더 크고 깊이, 더 중요한 것으로 느껴왔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베를린에서 열리는 여성의 날 행진에 참여하다 보면, 한국 여성의 고통을 입 밖에 꺼내기가 도저히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그것은 무척 마땅해 보였다. 이란에서는 여성들이 히잡을 벗고 머리를 자르는 자유를 얻기 위한 시위에서 하루에도 수십 명이 사망하고 있고 라틴 아메리카의 여성 활동가들도 수없이 암살당하고 있으니까. 또 어떤 여성은 자신의 고통을 여성이라는 범주 아래에서 이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여성으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소름이 끼쳐요. (...) 이스라엘의 문화부장관은 여성입니다. 하지만 파시스트들 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파시스트예요. 여성으로서의 내 권리만이 아니라 모든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여성입니다.” (2023년 10월 길동무 문화학교 세계문학교류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문학의 대지’ 팸플릿에서 인용)
쉬블리에게 젠더라는 범주는 유럽적인 것이다. 말하는 능력에 있어서 젠더 차이가 있다는 주장 자체가 특권적인 것이고 그것은 팔레스타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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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쓴 책이 번역 출간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알리기 위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부단히 연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중국 여성들이 한국어로 쓴 나의 인스타그램 포스팅마저 중국어로 번역하여 중국 소셜미디어로 실어 나르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편한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권력이라는 것을, 그것을 우리는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자신이 편하지 않은 언어를 부단히 갈고 닦아 그것으로 인정받는 것에 급급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러니까, 한국 문학이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고 세계로 뻗어(?) 나갈 때마다 나는 자부심이나 자랑스러움을 느낀다기보다 그간 늘 존재했으나 자각하지 못했던 우리 안의 뿌리 깊은 식민지성을 확인한다. 베트남이나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권에 진출할 때 유독 자랑스러워지는 이유는 무엇인지도 반문하게 된다.
특정 국가의 문화적 성공은 해당 국가의 경제적 힘과 연동되어 있다. 내가 쓴 책이 번역되는 경험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번역되어 내게 도착한 책들이 어떤 책들이었는가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왜 그토록 많은 미국 책을 읽어왔을까? 왜 그토록 ‘그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을까? 실제로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어딘가에서 우리가 겪는 세계를 동시에 쓰고 있을, 다른 서사를 가진 낯선 서술자를, 그가 우리가 아는 세계를, 우리의 영웅 서사를 부숴주기를 기다린다.*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출판사 | 동아시아

하미나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저서로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2021), 『상처 퍼즐 맞추기』(공저, 2022), 『아무튼, 잠수』(202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