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비혼 여성으로서 자녀교육 책을 팔면 어려운 점이 많다. 아이를 키우지 않으니 책이 실제로 도움되는 정보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고, 주 타겟이 이용하는 채널을 몰라 효과적인 홍보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효용을 느끼고 있는데, 하나는 내가 왜 이런 모양의 결핍을 가지게 되었는지 스스로의 성장 과정에서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배운다는 점이다. 딸이 엄마를 부모의 마음으로 대한다니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나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영화 〈비밀은 없다〉의 한 장면

영화 〈비밀은 없다〉 속 딸은 엄마에 대해 이런 말은 남긴다. “우리 엄마는 멍청해서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 엄마도 그렇다. 멍청하다. 내가 그 멍청함의 증거다. 아빠랑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으니까. 아빠랑 매일 밤 지지고 볶으면서도 엄마는 다음 날 정성스레 아침상을 차렸고, 아빠는 그 밥을 먹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늘 자고 있었다. 간밤에 자신과 딸 둘을 지키기 위해 마음을 졸였으니까. 자기 한 몸 못 챙기다니 멍청해. 제일 멍청한 건 아빠랑 결혼할 일이야. 너무 멍청한데 그 덕분에 내가 살아 있다. 그러니 나도 곁에서 엄마를 지켜줘야 해. 엄마를 혼자 두어선 안 돼.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별다른 비행 없이 착하게 자라왔다.

그러나 속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엄마의 멍청함으로 비롯된다는 사실에 여러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다음은 엄마와 내가 불쌍했고, 더 나중에는 포기하고 견뎠다. ‘엄마 아빠처럼은 안 살 거야.’라는 명제를 되새겼다. 수행처를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도를 닦으려면 가정불화가 적당히 녹아 있는 집의 아이로 살면 된다. 이렇게 작고 친밀한 갈등도 해결할 수 없다니 인간이란 참으로 하찮고 삶이란 덧없구나. 인간 미물설과 우주 삼라만상을 받아들이게 되니까.

하지만 밥벌이를 시작하며 가장이자 (내가 원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섹슈얼리티를 공인받은 비청소년 여성으로서 살면서 곤혹스러운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의 선택을 이해하고 마는 순간들이다. 이해한다는 말이 곧 그 선택이나 행동이 옳다고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던 사건이 그들이 어리석거나 이기적이기 때문만으로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내가 그 선택을 하면서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아빠가 왜 그리 가계부에 집착했는지, 엄마가 왜 내 친구 관계에 신경을 곤두세웠는지. 혹시나 정치적으로 그른 사람과 어울리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조금이라도 더 젊은 사람과 어울리길 부추기고, 엄마가 지난 주에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이야기할 때 귀를 쫑긋 세우는 나를 보며 흠칫 놀라곤 하는 일. ‘엄마 바보!’ 소리 지른 후 방문을 닫을 때에는 짐작도 못했던 일.

한편으로 이제는 다른 의미의 보호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버거킹 무인 주문기 앞에서 혼자 햄버거 하나 시키기도 어려운 디지털 문맹이 되어가고, 가짜뉴스가 돌아다니는 카톡방에서 깜깜이가 되어가는 엄마를 보며, 엄마를 바보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생각.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결심보다는 나 없이도 다른 누구에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하겠다는 마음. 우리 엄마는 멍청하지만 그렇게 살아온 이력마저 멍청한 건 아니니까. 아마도 필패할 결심이겠지만.

그렇게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어떤 선택의 과정을 짐작해보는 일로 보호자로서의 보호를 시작해본다. 아이의 말을 판단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아이를 믿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질문해보라는 자녀교육서를 읽으며 엄마에게 질문을 해보자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는 왜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 나이 든 사람들이 모인 곳을 더 편해 하지? 엄마는 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않고 에둘러 얘기해서 더 피곤하게 하지? 엄마는 왜 이렇게 나한테 계산 없이 잘해주지? 엄마는 왜? 왜? 왜?

그리곤 에두른 질문으로 하브루타 부양 대화를 시도한다. 물론 자주 실패한다. 몇 겹의 욕망과 상처가 덧대어진 속내를 엄마는 바로 말하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에두른 답변을 들으며 나 혼자 짐작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기도 하면서 엄마 삶의 퍼즐을 맞춰본다. 함께 햄버거를 시키고, 메신저 이모티콘을 선물하면서 새로운 퍼즐 조각도 만들어본다. 그리고 기록한다. #엄마일기로는 아이 사진만 가득한 세상 속에서, 엄마 부양 일기를 시작해본다. 함께 나이들어가는 딸의 특권으로 ‘엄마 바보’라는 조각을 비밀스럽게 간직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