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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진 “SF로 철학에 엣지를 더하고 싶었어요”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이원진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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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새로워지고 있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가치를 찾고 싶은 분들, 철학이라는 플랫폼을 타고픈 분들은 블랙 미러 호에 탑승하시면 좋겠습니다. (2019. 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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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오리지널 SF 시리즈 <블랙 미러>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기술이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 옴니버스 드라마다. 파격적인 소재와 충격적인 결말로 전 세계에 마니아를 형성한 이 작품은 특히 유명 크리에이터들이 열광하는 콘텐츠로도 유명하다. 아이유, 이랑, 공유, 조디 포스터, 스티븐 킹, 유발 하라리, 마르쿠스 가브리엘 등 가수와 배우부터 작가와 철학자까지, <블랙 미러>를 ‘띵작’으로 꼽는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블랙 미러>가 당신을 매료시킬 SF 철학서가 되어 돌아왔다.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  는 드라마 <블랙 미러>를 철학 코드로 풀어내며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서양의 철학 사상을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뒤통수 당기는 고강도 뇌 근력 운동 드라마 <블랙 미러>가 전하는 이야기를 내 것으로, 내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은 독자들에게 더없이 반갑고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이 흥미로운 철학서를 쓴 이원진 박사는 철학을 공부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폭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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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진 박사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 여러 잡다한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그래도 철학을 제일 좋아하는 일명 ‘and 철학’ 연구자 이원진이라고 합니다. 원래 프랑스 문학, 서양철학 공부를 하다가 그만두고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고요. 여러 사람과 역사를 접하면서 결국 동서고금 모든 게 철학 코드로 꿰뚫어질 수 있다는 신념이 확실해지면서 다시 동양철학 공부로 돌아왔어요. 저는 사실 엄청난 낙관론자인데요. 저 자신에 대해서도 낙관이 너무 높아 일상은 맨날 떨어지고 깨지고 난리예요. 그러다 보니 한때 조울증에 시달려서 너무 힘든 적도 있었는데, 철학 하면서 그래도 뭐든 해보자는 마음 근력이 좀 단단해진 것 같아요. 이제는 나에게만 집중하기보다 진짜 세계를 공부하고 싶어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블랙 미러>에 빠져들게 되셨나요?

 

이제는 그래도 아이들이 조금은 컸는데, 예전에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그 고충을 나누는 ‘씽투 육아’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했어요. 그때 아이들에게 어떻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제가 정말로 ‘믿고 보는 엄마’들이 <블랙 미러>가 ‘띵작’이라며 추천했어요. 게다가 철학적으로 원래 ‘거울’ 상징도 좋아했기에 뭔가 강렬한 호기심에 새로운 세계로 인도된 거죠. 사실 그전까진 SF보단 로맨스물만 좋아하던 ‘초딩 취향’이었는데 넷플릭스에서 심지어 호러, 폭력물로 분류된 <블랙 미러>에 완전 홀렸고, 이걸 제 언어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이 생기더라고요. 몇 번이나 돌려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고 1시간 단위로 다 다른 주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게 멋졌어요. 뒷머리가 트인 거죠. (웃음)


뭐랄까. 철학은 인간 내면을 탐구하는 주제잖아요. 제가 공부하는 퇴계철학도 심성론을 얘기하기 위해 우주론을 제일 먼저 언급하거든요. 제가 젤 좋아하는 말이 “우주엔 은하가 1000억 개 있고 인간 뇌 속엔 뉴론 세포가 1000억 개 있다.”라는 말인데요. 그만큼 우주와 인간의 구조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블랙 미러>가 바로 그 점을 건드리는 것 같았어요. 과학기술이 초래한 우주적 문명(‘부활절 달걀 사냥’ 같은 평행세계)을 최전선에서 짚어보긴 하는데, 그 부조리를 가상현실에서 곱씹는 인간 내면의 사고실험이랄까요. <블랙 미러>가 다루는 SF는 분명 머리가 간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고 다층적인 드라마였어요.


해외에서는 <블랙 미러>를 철학적으로 연구하고 해석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례들이 있나요?

 

영미권에서야 워낙 이미 학계에서 SF를 연구하는 흐름이 있지요. 원래 영국에서 시작된 SF의 움직임이 20~30년대 ‘펄프픽션’이라 부르는 펄프 잡지에 실리면서 크게 대중화됐거든요. <블랙 미러>가 2011년 영국에서 시작돼 지금 미국으로 제작권이 넘어온 것과 비슷하죠. 지금도 미국 출판계에서 SF로 철학적 시도를 하는 크게 두 흐름이 있어요. 하나는 오픈코트 출판사의 ‘Popular Culture and Philosophy series’  로 2000년부터 지금까지 125권을 출간했어요.


두 번째는 지금 <블랙 미러>가 출간 준비되고 있는 곳인데, 윌리-블랙웰 출판사가 펴내고 윌리엄 어윈이라는 철학 교수가 총편집을 맡고 있는 ‘The Blackwell Philosophy and Pop Culture Series’라는 시리즈물, 이름하여 ‘앤 필로소피(and Philosophy)’ 시리즈예요.  그러니까 이곳에서 <블랙 미러>는 제목이 ‘Black Mirror and Philosophy’로 출판될 것 같아요. 지난해 말까지 원고를 접수했으니 아마 지금쯤 작업해서 내년에 나오지 않을까요. 저도 여기 원고를 투고하고 싶었는데 못 했어요. 어윈 교수는 대중문화로서의 철학, 대중문화의 철학(Philosophy as/and/of Popular Culture)을 주창한 사람인데요. 한국에서는 슬라보예 지젝과 함께 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스타 철학자’들도 <블랙 미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던데요?

 

네, 그 밖에도 유발 하라리라든가 독일의 신예 가브리엘 마르쿠스도 <블랙 미러>를 필수 교양물로 자기 책에서 얘기하고 있어요. 가브리엘 마르쿠스는 사변적 실재론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사람인데 이제 철학과 SF의 만남이 상당히 의미 있다는 거죠. 사실 철학은 사고 실험적 요소가 강한데 철학이 너무 사변적이라 실체 없이 느껴졌다면, 거기에 내러티브라는 육체를 입혀서 실제 사고가 살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듯해요. 그래서 저는 사변물, SF물과 철학의 결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블랙 미러>에 철학적으로 접근한다고 생각할 때는 보통 서양 철학을 떠올리기 쉬운데요.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 는 플라톤이나 미셸 푸코, 기 드보르, 악셀 호네트 같은 서양 철학자뿐만 아니라 퇴계, 공자, 노자, 맹자 등의 동양철학으로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를 해석한다는 점이 신선하고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시도를 하게 되셨나요?

 

네, 위의 시도들이 다 좋은데 그중에 동양에 관한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반쪽이죠. 작년 말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학교 사회학과의 샘 리처드 교수가 BTS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이제 동양문화의 엣지를 모르고서는 마케팅을 할 수 없다.”고 말해 화제가 됐는데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학자에 의해  『BTS 예술혁명』  등의 책이 나와서 해외 출간 계약까지 됐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전 세계 문화에 대한 성덕들이 많이 나왔으니, 이를 편집해서 우리의 해석과 시각으로 결과물을 낼 때가 됐죠. 동양철학, 동양문화, 동양 드라마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굳이 얘기하면 한류라기보다는 동학에 더 가깝다고 할까요. 사실 동서 개념 자체가 지도를 거꾸로 돌리면 바뀌는 거니깐 큰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요, 여태까지는 한쪽으로만 지도를 본 거죠. 그간 서양 배우기(서학)에 집중해 있던 사람들이 터널을 나와서 동양의 ‘쿨한 엣지’를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제 바야흐로 ‘지구적 근대’의 시기에 들어갔다는 의견도 있거든요. 그동안의 근대가 포스트모더니즘을 포함해 반쪽짜리 서양의 ‘어쩌다 근대’였다면, 이젠 포스트휴먼을 논의해야 하는 이 시대에 휴먼으로서 각성하면서 제대로 근대를 추구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럴 때 그 매체가 BTS를 들뢰즈로 해석하듯이, 또 BTS가 미국 최첨단 마케팅과 만나듯이, <블랙 미러>를 퇴계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철학적 사고의 메시지는 하나거든요. 논어로 말하면 ‘일이관지’이죠. 그걸 문화마다 다른 언어와 다른 매체로 표현해왔던 게 다시 교차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낳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앞으로 개봉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정세랑 작가 등이 넷플릭스가 가장 공들이는 한국 작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스카이캐슬로 철학하기’ 등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  의 한 꼭지인 <블랙미러> 시즌3 ‘샌 주니페로’ 편은 2017년 에미상 2관왕, 영국 아카데미상 2관왕 등을 수상하며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샌 주니페로 편에서는 어떤 철학 코드를 읽어 볼 수 있을까요?

 

퀴어를 중심으로 가상 불멸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블랙 미러>가 워낙 디스토피아적으로 느껴지다 보니 <블랙 미러> 첫 입문으로 심리적 저항감을 낮추기 좋은 삼삼한 에피소드 아닌가 해요. 평도 제일 좋은 편이고요. 영생을 살아갈 포스트휴먼이 리얼월드에서 받았던 온갖 편견을 이기고 가상현실에서 원하는 사랑을 찾고 성취한다는 건데요. “퀴어가 많을수록 창조적인 도시가 된다.”는  사회학자 리처드 플로리다의 게이지수(Gay Index) 이론도 있었잖아요? 휴머니즘의 병폐였던 인간 육체를 기준으로 만들어놓은 편견의 덫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세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 또는 트랜스페미니즘적 요소가 다분해요.


또 ‘의식 업로딩’이라는 과학계에서도 가장 핫한 이슈를 다루고 있어요. 근데 왜 다운로딩이 아니라 업로딩이라고 할까요. 만약 우리가 육체를 떠나 가상공간으로 영혼을 전송한다면 그건 약간 종교적 의미가 있는 거죠. 다들 승천하고 싶은 거니까요. 영생을 꿈꾸는 우리가 유전생명공학시대에 가져야 할, ‘종교성을 넘어선 영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죠. 


<블랙 미러> 시즌 4는 여성들이 남자주인공의 보조 역할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고, 특히 이번 에피소드에서 페미니즘과 퀴어의 시선을 극명하게 강조하고 있어요. 1970년대 작인 여성의 단성생식 사회를 대담하게 그린 SF인 조안나 러스의 <변했을 때>를 시작으로 해서 페미니즘 SF가 시작됐거든요. <블랙 미러>의 퀴어판 SF라고 생각합니다.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 , 어떤 분들이 보시면 좋을까요?

 

눈만 뜨면, 숨만 쉬면 새로워지고 있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가치를 찾고 싶은 분들, 매일 매일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데 맨스플레인도 아니고, 휴먼플레인도 싫고, 더 다양하게 변형된 이야기 내러티브 옷을 입고 세상을 즐기고픈 분들. 때로는 독자로, 또 때로는 창작자로 철학이라는 플랫폼을 타고픈 분들은 이 오래된 미래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  호에 탑승하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모여 얘기할 때 더 재밌을 거 같아요. 우리가 함께 만들 ‘팝컬쳐 앤 필로소피’ 시리즈를 상상하면서요.

 

 

*이원진


아침 출근길 헐레벌떡 ‘철학 플랫폼’에 올라타 모든 시대, 모든 이야기를 기웃거린다. 차창 밖 풍경에 웃고 울 땐 조울증을 의심하나 철학에서 해독 코드를 발견하면 세상 부러울 것 없다. 모든 생각은 동서고금 하나로 통한다고 믿는데 난맥(亂脈)에 부딪힐 때마다 편견 없는 글쓰기 기계가 되는 꿈을 꾼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에 입문, <중앙일보>에서 10여 년 동안 기자로 일하다 다시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쓰고 번역한 책으로 『열 살 전에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라』(공저), 『니체』(공역)가 있다.

 

 


 

 

블랙 미러로 철학하기이원진 저 | 우리학교
[블랙 미러]를 보고 나서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 풀리지 않는 의문에 혼자 고민했던 독자라면 반갑게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롭고 충실한 대중 교양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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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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