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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아 “며느리는 가족일까요, 손님일까요?”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악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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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통해 새롭게 얽매인 관계 속에서 체증을 느낄 때,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저 같은 불량 며느리도 잘 살고 있음을 떠올리고 힘을 내주면 좋겠어요. (2019.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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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매스컴을 통해 이 시대 며느리 이야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월드의 비정규직 신세가 되고 마는 여성들의 한숨은 여전하다. 어디서도 받아본 적 없는 은근한 무시와 멸시, 막말, 차별 대우, 대가 없는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 환경 속 서러운 비정규직 말이다.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의 저자는 가부장제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만들어진 결혼생활 속에서 예쁨을 받는 ‘아가’가 아닌 ‘악아(惡兒, 나쁜 아이)’가 되길 자처한다. 착한 며느리의 길을 포기한 것이다.

 

“며느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사랑받으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며느리 역할에 충실하기 전에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먼저다”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답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저자, 악아를 만나보았다.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 는 어떤 책인가요? 필명인 ‘악아’는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해요.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 캐릭터를 득템한 후 시가에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시가 식구나 남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기혼여성으로서 사회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도 담았어요. 결혼한 분들이라면 ‘어머, 내 얘기야’라고 느끼실 테고, 아직 결혼 전이라면 ‘결혼생활 맛보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악아’는 ‘惡兒(나쁜 아이)’라는 뜻이에요. 착한 며느리가 되길 포기한 저의 선택이 누군가에게는 막돼먹은 며느리처럼 보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거죠. 물론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혼자만 노력하고 애쓰고 참아서 좋아지는 관계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착한 며느리가 되길 포기하고 나니, 어머님이 평소처럼 저를 ‘아가’라고 부르시는데 그게 꼭 ‘악아’라고 들렸어요. 제 나이나 덩치를 생각하면 아가보다는 악아가 훨씬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브런치에 처음 글을 연재했을 때부터 독자들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어요. 책을 내면서 특히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댓글로 응원의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공감도 해주셔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사했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반대로 제 생각이나 행동에 언짢음을 느끼신 분들도 많았어요. 지금껏 당연하게 여겨지던 개념이나 행동, 그래서 정답처럼 통용되던 모든 것들에 반기를 드는 제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 해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왜 며느리는 대접하고 사위는 대접받는지, 부부가 함께 사회생활을 해도 남편이 집안일을 하면 ‘도와준다’라고 말하는지, 남편은 몰라도 괜찮은 시가 제사를 왜 며느리가 잊으면 큰일이 되는 건지 말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장래희망도 참 많았지만 한 번도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저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사랑받는 며느리’라는 꿈과 희망이 일괄 적용되더라고요. 사랑받지 못하면 마치 결혼을 실패한 듯 치부하고, 문제적 며느리라 손가락질 받으니 말이에요. 사회생활도 그래요. 며느리가 되었으니 일보다는 시가 제사나 경조사, 김장 등을 우선순위로 두길 바라죠. 이제는 며느리의 강요받은 희생과 일방적인 인내에 대한 점검이 필요해요. 며느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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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 착한 며느리가 되길 포기해요. 이후 작가님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요.


시가 식구들과 마음이 잘 맞아 정답고 사이좋게 지낸다면 정말 좋겠죠. 하지만 제 경우에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저 혼자서만 아등바등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혹여 시가 식구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눈치 보고, 상처가 되는 말을 들어도 웃어넘기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도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눈감았죠. 하지만 어느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맞추고 노력해서 만들어지는 관계는 너무 위태로워요. 그걸 위해 포기해야 할 것도 너무 많고요. 지금은 착한 며느리,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기 위해 불편한 행동을 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마냥 참으며 속앓이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게 시가와의 거리감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길게 본다면 훨씬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거든요. 어떤 관계든 너무 가까우면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요.

 

‘결혼 후 따로 또 같이의 균형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결혼을 통해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은 ‘가족’인 것 같아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가족’이라는 관계로 엮이는 과정은 생각보다 굉장히 험난하더라고요. 하루하루가 충돌의 연속이죠. 평소 외로움을 타는 편이 아닌데 결혼 후 생각지 못했던 외로움에 힘들었어요. 결혼하면 늘 남편과 함께할 거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갈등을 겪었어요. 결혼을 하더라도 남편과 저 모두 각자의 삶이 있는데 그걸 모두 지우고 새로 시작한다고 착각했죠. 남편뿐만 아니라 시부모님, 시누이 등 다른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서로의 삶이나 방식을 인정하는 게 먼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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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아닌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겐 이 책이 어떻게 읽히길 바라나요?


언젠가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남편이 친정에서 설거지를 했다고 말하니 남자 동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제가 시가에서 설거지를 했다고 말했을 땐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이요. 한 남자 선배는 제게 ‘어른인 시어머니를 도와 설거지를 하는 건 당연하게 아니냐’고 말했는데, 장모님을 돕는 사위의 모습은 왜 그렇게 기이하게 바라보는 건지 의문이었어요. 하물며 ‘기특하네’ ‘착하네’라며 남편을 칭찬한 것도 아니고, 설거지를 하도록 내버려 둔 저와 저희 가족을 이상하게 바라봤죠. 결혼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차별은 가부장제에서 시작돼요. 때문에 남성들이 며느리의 시가 고충을 단순히 고부 갈등으로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남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내가, 여동생이, 그리고 엄마가 어떤 이유로 상처받고 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훗날 엄마 혹은 시누이가 되어 차기작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가 담기길 바라나요?


모두가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따뜻한 얘기라면 좋겠어요. 속 터지는 에피소드도 없고, 악역도 없는 착한 주말 드라마 같은 느낌? 이번 생에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조금씩 희망이 엿보이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뭐 저런 것까지 불편해하나 싶은 것들, 그냥 포기하고 넘길 수 있는 부분도 한 번 더 고민해보려고요. 제 여동생 혹은 언젠가 태어날 수도 있는 제 자식은 저와 같은 마음을 한 번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수백 년을 당연하게 여기던 가족 호칭 문제 등도 개선의 움직임이 있잖아요. 그깟 호칭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것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 아닌가요? 저도 책에서 ‘시댁’을 ‘시가’로 고쳐 말하는 사소하지만 큰 변화를 줘봤어요. 이렇게 작은 용기와 변화가 모이다보면, 미래의 제 딸에게는 이 책이 아주 이상한 얘기처럼 들리는 날이 오리라 믿어요. ‘옛날에는 이런 이상한 일도 있었어?’라며 믿지 못한다면 아주아주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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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 귀한 딸인 이 땅의 모든 며느리에게 하고 싶은 한마디도 부탁드려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강요된 희생으로 상처받으면서 살지 마.” 저와 달리 ‘착한 며느리’의 정석이었던 저희 엄마가 해주신 말씀이에요. 저희 엄마는 시부모님 말씀에 토를 단 적도 없고, 손 하나 꿈쩍 않는 시가 식구들 사이에서 혼자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앓아눕기를 반복했어요. 그런데도 미안하다, 고맙다 같은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세요. 나만 참으면 ‘나를 뺀’ 모두가 행복해요. 며느리는 가족일까요, 손님일까요? 며느리나 사위나 똑같이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 왜 사위만 백년손님일까요. 딸 같은 며느리는 될 수도, 굳이 될 필요도 없어요. 그렇다면 어차피 나 행복하자고 한 결혼인데, 이왕이면 나답게 행복한 방식으로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요? 그 방법으로 저처럼 살아보라고 부추기는 건 절대 아니에요. 각자 상황이 다르고, 제가 찾은 해답이 누군가에겐 오답일 수 있으니까요. 다만 결혼을 통해 새롭게 얽매인 관계 속에서 체증을 느낄 때,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저 같은 불량 며느리도 잘 살고 있음을 떠올리고 힘을 내주면 좋겠어요. 모두의 행복을 위해 일단 나부터 행복해져야 합니다. 나 자신의 마음을 먼저 돌보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니까요.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악아 저 | 봄름
결혼 후 새롭게 얽힌 관계 속에서 체증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든 남의 집 귀한 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풍자와 해학이 깃든 재치 있는 필치로 통쾌함을 넘어 짜릿함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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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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