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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바꾸지 않는 한 실현할 수 없다

『지배당한 민주주의』 김현철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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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시도는 대단히 유의미한 작업이지만, 그것이 시도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결실을 맺으려면 또다시 같은 형태의 적폐가 쌓이지 않도록 잘못된 제도를 수정해야만 한다. (2018.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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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대중의 정치 참여가 이루어져야 완성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으로 진화되어야 한다. 인류 문명의 진보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정치의 진화는 정치권력을 점차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런 진화의 동력은 ‘피지배자들의 주권 의지’이며, 진정한 주권 의지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토론과 합의로 해결하고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건설적인 도전과 개혁의 길로 나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정치권에 입문할 생각이 있는가?

 

처음 이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지인들의 첫 질문은 “정치하려고?”였다. 선거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책을 쓰고 북 콘서트를 하는 게 흔한 일이니 당연히 그런 질문을 받을 만하다고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의미를 생각할 때 적잖이 씁쓸한 질문이었다. 이 책은 대중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 즉 ‘피지배자의 자격을 유지한 채’ 지배자들의 정치에 개입할 방법에 관해 말하고 싶어서 썼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피지배자의 자격’을 유지하고 싶다.

 

공학도 출신이 법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고, 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첫 책으로 정치 분야의 책을 썼다. 특별한 동기가 있나?

 

이른바 ‘386’의 마지막 세대로, 그 시절 많은 학생들이 그랬듯 민주화 운동으로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후 사법시험을 치르고 변호사가 되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한 것은 노무현 변호사와 같은 인권변호사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생계에 휘둘리느라 처음에 꿈꿨던 대로 살지는 못했다. 대신 마음의 부채감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까 해서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 공익소송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진상조사단, 서울시 공익변호사단에서 작은 일들을 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헌법이 국민주권의 근거만을 규정하고 주권의 행사에 관한 규정에는 공백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 뒤로 국민이 진정으로 주권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줄곧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치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자들의 저서를 찾아가며 답을 찾고자 했는데, 어떤 책을 읽어도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계속 남았다. 공학에서는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주장이 더 확실한 힘을 가지는데, 법학이나 정치사회학에서는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권위가 훨씬 지배적인 힘을 가질 때가 많더라. 물론 어떤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이론적 작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는 그 주체인 시민들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용적인 논쟁이 꼭 필요하다. ‘대중의 정치참여’라는 말은 ‘민주주의의 실현’과 같은 말이니까 당연히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데 대중의 정치참여라는 명제가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지금껏 많은 책들이 식상하도록 ‘대중의 정치참여’를 실현 또는 확대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뜬구름 같은 이상적인 주장 말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이 책을 쓴 동기이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을 보면서, “왜 우리는 한 인간에게 모든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가?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이 문제를 그들끼리 결정하는 게 정당한가?” 등의 의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기사에서 스페인의 ‘포데모스’라는 정당이 창당된 지 몇 년도 되지 않았는데 종전의 양당체제를 깨트리고 집권을 노리고 있으며, 비슷한 사례로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아이슬란드의 ‘해적당’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이들 나라의 정부형태는 모두 비례대표제-다당체제의 연립정부형 의원내각제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때부터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어떤 제도가 더 나은 제도인지 〈지배자를 ‘좀 더 쉽게’ 교체할 가능성〉을 기준으로 판단한 이유와 탄핵으로 대통령을 교체할 수 있는데 대통령제를 폐지해야 할 제도로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피지배자 입장에서 실패한 지배자를 통제하는 방법은 새로운 지배자로 교체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배자는 지배 집단 즉, 지배 정당을 뜻한다. 따라서 양당체제 아래에서 실패한 대통령 한 사람을 끌어내린 것을 두고 교체라고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실패한 정치인’을 쫓아냈을 뿐, ‘실패한 정당’ 자체를 축출하지는 못했다.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심각한 정책 실패와 부패 스캔들 이후에도 새로운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 재집권을 반복해 왔다. 정권의 교체는 이전 집권당의 실패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지 현재 집권당이 과거 집권 당시에 저질렀던 오류를 수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것으로 모든 정치적 책임이 종결된 것처럼 대중을 속여 왔을 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과제는 지배 정당의 교체를 좀 더 쉽게 하는 것을 넘어서, 실패한 정당을 영원히 축출할 수 있는 제도를 찾는 것이다.

 

박근혜가 탄핵되었다고 끝난 게 아니며, 문재인이 집권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제는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권력의 남용으로 언제든지 심각한 부패와 무능에 빠질 수 있다. 우리가 훌륭한 대통령을 선출하여 청렴하고 능력 있는 역량으로 5년의 임기를 마친다고 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또 선량하고 능력 있는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 현재의 통치 구조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같은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이 언제든지 다시 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시도는 대단히 유의미한 작업이지만, 그것이 시도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결실을 맺으려면 또다시 같은 형태의 적폐가 쌓이지 않도록 잘못된 제도를 수정해야만 한다.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다음 정권에서 혹은 그 다음 정권에서 똑같은 적폐가 반복되는 것을 결코 막을 수 없다. 이제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당, 부패한 정당, 실패한 정당을 정치권에서 축출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적 책임이 종결되며, 그것이 진짜 정권 교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주의’는 ‘대통령제’, ‘대중의 정치참여’라는 주제와 어떤 식으로 연결되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독재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는 바로 그 지도자에 대한 영웅주의이다. 지난 정부의 실패 원인은 ‘박근혜’라는 한 개인의 부패와 오류 때문만이 아니다. 박근혜를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복종했던 추종자들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런데 이런 영웅주의 현상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있었고,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동반되고 있다. 이 책은 대통령제와 영웅주의를 연결하여 문제점을 서술하고, 제도를 바꿔 대중이 주권의지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영웅주의에서 벗어나야 함을 역설하였다.

 

대중이 정치에 참여할 방법은 무엇이며, 그것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지배자의 교체 가능성을 높인 통치 구조라고 하더라도, 대표자들의 권력을 시민이 제어할 수 있어야만 그들의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다. 대표자들의 권력을 제어할 가장 유력한 통제 수단은 대중이 직접 참여하는 시민발의와 국민투표이다. 시민발의와 국민투표는 힘 있는 집단과 힘 없는 집단 사이의 관계와 갈등들이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을 토론과 대화로 바꾸어 놓는다. 이로써 직접민주주의는 권력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지배와 피지배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또한 시민발의와 국민투표는 새로운 정치 엘리트를 만들어 내는 유력한 공급처가 될 것이다. 시민발의를 주도하는 활동가들은 본질적으로 시민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고, 문제의 제기와 법안 구성을 통해 전문성을 가지게 될 것이며, 토론의 과정을 통해 합의의 정치를 훈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시민발의와 국민투표는 시민을 주권자로서 훈련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대표자를 시민 속에서 태어나게 하는 제도이다. 직접민주주의에서 시민은 정부 및 의회와 함께 정치 무대 위에서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다음 집필 계획이 있다면 주제는 무엇인가?


이 책의 한 주제로 포함시키려다가 다음으로 미룬 주제가 있는데, ‘전자투표와 디지털 민주주의’이다. IT 분야에서 가장 큰 보안문제는 외부로부터의 해킹인데 반하여, 전자투표에서는 외부가 아니라 관리자의 조작가능성이 문제이다. 따라서 “관리자의 위변조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가 디지털 민주주의의 핵심적 주제인데 그 해결의 실마리를 블록체인 기술과 연결 지어 풀어나갈 계획이다. 한편 최근 이슈인 무지와 탐욕 사이에 위태롭게 서있는 비트코인, 즉 암호화폐에 관한 입법론적인 규제와 관리도 함께 논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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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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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당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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