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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서사는 없다

어느 쪽이든 한 번쯤 돌아볼 시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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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목적에 동원돼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했던 개인의 피해회복을 위해 힘을 합쳤던 이들이 결국에는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지리멸렬하게 찢어졌다. (2017.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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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나는 홀로코스트에 꽤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홀로코스트에 관한 나의 관심은 요즘 사춘기 청소년들이 일부러 잔인한 동영상을 찾아보는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안 그런 요즘 건전한 청소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인류의 야만적인 이면을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쫓았을 뿐이다. 한 번은 어머니와 서점을 갔을 때였다. 어머니가 책 한 권을 유심히 살펴보시더니 “네가 좋아할 것 같다”며 덥석 계산을 하셨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였다. 뭐 이런 만화책이 다 있나 싶었다. 아무리 홀로코스트의 상징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지만, 칸마다 빽빽한 대사를 훑어보며 틀림없이 따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트 슈피겔만은 자신의 아버지 블라덱의 증언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의 암울한 상황을 재구성했는데, 책에 등장하는 유대인은 내가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유대인과 사뭇 달랐다. 또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폴란드인은 유대인과 같은 수용자 신세였으면서 게슈타포만큼 악랄했고, 수용소 내에서는 유대인끼리의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인류의 야만적인 이면은 그 야만적인 이면이 상대적 약자를 향할수록 더 교활하고 잔인했다. 블라덱도 별 수 없었다. 블라덱은 게슈타포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폴란드인 카포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고, 게슈타포의 군화를 수선해주고 받은 소시지를 허겁지겁 먹으면서 기뻐했다. 또한 생전에는 가족들과 끊임없이 불화했고, 평소에는 주변의 흑인을 경멸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트 슈피겔만 역시 아버지를 향한 연민과 증오가 뒤범벅된 내적갈등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블라덱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고 있던 아들에게 수용소 생활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살고 싶으면 (상대가 강자일수록) 친절한 게 좋단다.”

 

나는 블라덱의 이 말이 섬뜩하게 와닿았다. 말하자면 적어도 『쥐』를 통해서는 선량한 유대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유대인이 있는 그대로 그려졌을 뿐이다. 블라덱이 비열했든 선량했든, 누가 그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을 함부로 얘기할 수 있을까. 그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을 다른 말로 하자면, ‘존엄’이 아닐까. 그 존엄한 몸부림이 없었다면,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문명사회가 너무나도 쉽게 야만적인 폭력에 휩쓸린다는 고발도 존재할 수 없었다.

 

지난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 기림일이었다. 그리고 그 8월 14일은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처음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기자 회견을 통해 증언했던 날이라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는 이튿날 광복절과 맞물려 세계 위안부 기림일과 관련된 여러 행사가 있었다.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지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전면 부정하며 일본 정부가 건넨 위로금 명목의 10억 엔을 돌려주자는 100만 시민모금운동 선포식이 있었다. 서울의 한 운수업체는 시내버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기도 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 소녀상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서는 소녀상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합성하는 프로젝트도 있었고, <평화의 소녀상 네트워크>는 위안부 피해자 기림주화 제작을 위한 국민모금을 진행 중이다. 또 시민들 사이에서는 최초 증언자로 알려진 김학순 할머니를 추념하는 손글씨 릴레이도 이어졌다.

 

그런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린 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김학순 할머니가 아니다. 1975년 오키나와에서는 배봉기 할머니가 자신이 한때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렸다. 배봉기 할머니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재편입되면서 강제추방 당할 위기에 놓였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982년 국내에서는 이남임 할머니가 한 여성지를 통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 박순단 할머니의 존재도 이남임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1984년 타이에서는 노수복 할머니가, 또 노수복 할머니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는 배옥수 할머니가 연달아 자신의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 누가 최초의 증언자였는지 가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김학순 할머니 이전에 우리 사회는 이미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당시에는 지원단체도 전무했고, 한국 정부는 박정희 정권 시절 한일협정을 통해 일본 정부로부터 경제협력의 명목으로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챙긴 상태였다. 다시 말해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여러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었던 배후에는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일본 정부가 주변국에게 전후 보상을 철저히 약속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국회의 결의를 통해 법적 책임을 지길 바랐다. 그들은 자신의 조국이 진정한 사과와 속죄를 통해 거듭나길 바란 셈이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때마침 활발해진 한국의 지원단체도 그들과 손을 맞잡았고, 한국과 일본의 여러 학자들도 그 연대에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하지만 그 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고노 담화 이후 일본 정부가 우회적으로 관여한 민간 차원의 아시아여성기금이 갈등의 원인이었다. 아시아여성기금에 참여했던 일본의 학자와 활동가들은 자신들과 당시 일본 정부의 의도가 왜곡되지 않길 바랐지만, 한국의 지원단체와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아시아여성기금을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로 해석했다. 아시아여성기금을 둘러싼 대표적인 해석의 차이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한겨레>에 게재된 서경식 교수와 와다 하루키 교수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어느 쪽이 잘했고 어느 쪽이 못했다고 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감히 이들을 평가할 주제도 안 되고, 꺔냥도 안 된다. 다만 너무 안타깝다. 국가의 목적에 동원돼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했던 개인의 피해회복을 위해 힘을 합쳤던 이들이 결국에는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지리멸렬하게 찢어졌다. 그리고 그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은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피해당사자들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도구화한 면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아시아여성기금을 둘러싼 해석의 차이는 피해당사자들의 다양한 증언을 이른바 ‘중심 서사’와 ‘주변 서사’로 구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몇몇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아시아여성기금을 받고 싶어 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중심 서사에서 배제됐다. 아시아여성기금에 관련됐던 일본의 활동가 우스키 케이코 씨는 정신대대책협의회의 요구로 입국이 거부당하기도 했다. 아시아여성기금에 관해 한국와 일본 사이에는 그만큼의 온도차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원단체와 피해당사자, 혹은 피해당사자끼리도 내부적으로 갈등이 심했다.


중심 서사의 대표적인 예는 어린 소녀가 일본군인에게 강제로 끌려가는 이미지, 즉 평화의 소녀상이다. 반면 주변 서사의 대표적인 예는 면장이나 업자의 꾐에 넘어가거나 혹은 취업소개소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여성들이다. 학계에서는 위안부 모집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은 ‘불가역적’인 주지의 사실이므로 주변 서사와 중심 서사를 비교적 동등하게 다루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에게 주변 서사는 중심 서사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편이다. 요컨대 대다수 국민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은 여전히 평화의 소녀상이다. 한일 양국 학계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연구를 지원단체의 운동이 따라잡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앞서 열거한 김학순 할머니, 배봉기 할머니, 이남임 할머니, 박순단 할머니, 노수복 할머니, 배옥수 할머니의 증언은 모두 주변 서사에 해당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할머니들의 주변 서사가 없었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나마 지금까지 올 수도 없었다. 바꿔 말하면 그 주변 서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이 희석되는 일도 없고, 역사 수정주의도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주변 서사의 주인공들은 어쨌든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자기 일처럼 매달려 각고의 노력을 아까지 않는 분들께는 송구한 얘기지만, 어느 쪽이든 한 번쯤 돌아볼 시간이 아닌가 싶다. 선의로 출발한 이 싸움이 행여 피해당사자들의 존엄을 훼손한 적은 없나, 파렴치한 일본 정부를 비난하고 도처에 소녀상을 세우는 일은 피해당사자들에게 얼마큼 도움이 될까, 우리는 혹시 우리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 번쯤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소녀상을 철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소녀상의 무한공유를 통해 단순히 파렴치한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을 불편하게 만들 목적이라면, 그 과정에서 피해당사자들은 또 다시 외면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피해당사자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데, 공허한 피해자상 하나만 우두커니 남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쥐』에서 블라덱과 불라덱의 아내 아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한 날,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슈타포는 남자와 여자를 따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아트 슈피겔만은 그 시점에 어머니 아냐의 일기가 자신의 작업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블라덱에게 아냐의 일기를 요구하지만, 블라덱은 아냐 역시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며 대충 둘러댄다. 알고 보니 블라덱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냐의 일기 속 기억들이 너무 괴롭다며 아냐의 유품을 모두 태워버렸다. 아트 슈피겔만은 자신의 아버지를 “살인자”라고 비난한다. 말하자면 <쥐>는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의 기억이 묵살된 반쪽짜리 기록이나 다름없고, 아트 슈피겔만은 그 지점을 내내 안타까워한다.


일본군에 의해 동원됐던 전시 위안부가 8만 명이라면, 8만 개의 증언 모두 중심 서사다. 20만 명이라면, 20만 개의 증언 모두 중심 서사다. 주변 서사는 있을 수 없다. 간혹 어떤 주변 서사가 때로는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데 불리하게 작용하더라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지 않나. 이기는 것보다 피해당사자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먼저다. 또 우리가 이 싸움을 통해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건, 복수심이 아니다. 성별을 떠나 어떤 개인이든 두 번 다시 국가의 목적에 함부로 동원되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경고다. 만약 이 두 가지 가치를 잊지 않는다면, 이 싸움은 아무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결코 헛되지 않다.

 

※ 참고한 기사와 자료들


- 우리가 잊어버린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03614.html
- 우리가 잊은 할머니들: //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03616.html
- 서경식 교수의 편지: //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734569.htm
- 와다 하루키 교수의 답장: //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736924.html
- 우스키 케이코 씨의 인터뷰: //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19/2015071901967.html
- 위안부 논쟁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news.donga.com/3/all/20170324/83491602/1
- 주변서사의 또 다른 대표적 사례_배춘희 할머니: //parkyuha.org/facing-history
- 일본군 위안부를 기록한 일본인들: //youtu.be/8fVzWfHgJOk
- 아시아여성기금 홈페이지: //www.awf.or.jp/
- 고노 담화 전문: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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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권용득(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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