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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의 광대뼈 : 때론 비상하기 위해 먼저 추락해야 한다

광대뼈가 빚어내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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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3초 동안, 우리는 무언가를 갈망하듯 차게 타오르며 직진하던 엄태구의 눈빛이 광대를 기점으로 갈 곳을 잃고 아래로 추락하는 얼굴의 드라마를 경험하는 것이다. (2017.08.14)

엄태구 - 복사본.jpg

영화 <택시운전사>의 한 장면

 

* 영화 <가려진 시간>과 <택시운전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굴 하나로 드라마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엄태구가 그렇다. 붓으로 그린 듯한 짙은 눈썹과 자기 주장이 강한 형형한 눈빛이 주는 인상은 그의 광대뼈를 기점으로 근사한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정면을 향해 달려오는 눈가의 인상에 사로잡혀 그의 얼굴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광대뼈 아래로 살이라곤 한 점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움푹 들어간 볼과 암반처럼 투박하고 강인한 하관이 펼쳐지는 장관에 놀라게 된다. 사람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3초 동안, 우리는 무언가를 갈망하듯 차게 타오르며 직진하던 엄태구의 눈빛이 광대를 기점으로 갈 곳을 잃고 아래로 추락하는 얼굴의 드라마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광대뼈에 주목한 이들이 이미 여럿 있었던 건지, 엄태구는 자신과 함께 작업한 감독들이 자신을 두고 “진짜 배우 같은 배우”라고 칭찬해 줬다는 이야기에 쑥스러워 하며 괜히 말을 돌린다.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면 제 광대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광대뼈가 빚어내는 드라마 덕분이었는지, 엄태구는 화면 속에서 종종 길 잃은 격정을 토해낼 곳이 없어 헤매는 청춘으로 분하곤 했다. 형 엄태화 감독과 함께 작업한 <잉투기>(2013)의 ‘칡콩팥’ 태식은 능력도 없고 자신을 받아주는 곳도 없는 세상에서 한 줌의 인정을 받아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잉여인생이었고, <차이나타운>(2015)의 우곤은 일영(김고은)에 대한 마음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면 좋을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어줍잖게 밴드나 건네는 청년이었다. 편집에서 날아가긴 했지만 <밀정>(2016)의 악역 하시모토 또한 독립군들이 활동하던 의주 출신 청년으로, 뼛속까지 일본인이 되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고민과 혼란을 짐작케 할 만한 전사의 소유자였다. 그의 몸을 빌린 청년들은, 그처럼 복잡다단한 감정을 세상에 잘 풀어 설명할 방법을 몰라 몸부림치다가 결국 가장 어리석고 나쁜 방법을 빌리곤 했다. <가려진 시간>(2016)의 태식이 그랬듯,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격정을 뿜어내다가 결국 길을 잃은 채 천 길 아래로 추락하고 마는.
 
복잡한 감정을 어찌 갈무리하면 좋을지 몰라 헤매다 추락하는 이들에게 얼굴을 빌려줬던 엄태구는, <택시운전사>에서는 광주에서 나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군인 박중사로 분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죽음을 불사한 이들과 사람답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좋을지 숙제를 떠안고 울었던 이들의 시간이 교차했던 1980년 5월의 호남 땅, 만섭(송강호)의 택시 트렁크에서 서울 택시 번호판을 발견한 박중사의 눈빛 앞에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찰나가 영원 같은 침묵, 상부의 명령과 인간의 존엄 사이에서 고민했을 박중사는 눈빛을 광대 아래로 떨구며 못 본 척 길을 열어주는 쪽을 택한다. 명령에 불복하고 길을 내준 박중사의 행동은 군인으로서는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중사는 군인으로서 추락함으로써 그 해 5월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가끔은 비상하기 위해 뛰어내려야 할 때가 있다. 늘 추락하던 엄태구의 청춘은 그렇게 솟구쳐 올라 관객의 하늘 위를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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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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