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유시민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시민
『국가란 무엇인가』펴낸 유시민과 독자들의 만남
민주주의자가 부족하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룩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 제도를 잘 이해하고 생각하고 활용할 수 있는, 민주주의자들 말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시민의식과 행동 양식입니다.
지난 2월 23일, 홍대입구역 가톨릭 청년회관 5층에서 작가 유시민의 신작 『국가란 무엇인가』 북토크가 열렸다. 많은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뤄 작지 않은 강연장을 꽉 채웠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로도 생중계되어 더 많은 독자가 스크린으로나마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강연장은 내내 훈훈한 분위기였다.
국민국가 단위로 편성된 현대 사회와 민주주의
유시민은 먼저 70억이 넘는 인구가 국민국가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어떤 존재여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국가와 관계를 맺으면 되는가에 관해 이야기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나타난 게 20만 년 전입니다. 하지만 대개의 국민 국가 단위가 나타나게 된 것은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체 인류 역사에서 2000분의 1이니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생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현재 지구상에는 200개 정도 되는 국민국가가 있습니다. 국민국가에는 세가지 구성 요소가 있죠. 국민, 영토, 주권. 이 3요소가 국민 국가의 구성요소인데, 어떤 국가가 영토를 보유하고, 영토 안에 국민이 있어 스스로 외국의 간섭과 지배를 받지 않고 나라의 운명, 자기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게 국민국가가 하는 일입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 국민국가가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계인이 쳐들어와 세계 국가의 단위가 출현하기 전까지는요. (웃음) 그래서 국가는 중요합니다. 지역 국가의 가능성, 희박하죠. 일본 중국 한국이 지역 국가가 되겠습니까? 위안부, 독도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는데요?"
또한 아랍에미리트, 북한 등의 독재국가가 ‘잔존’하지만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문명의 대세가 되었다고 말했다. 소련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면서 문명의 기반이 민주주의가 되었고, 2차 세계 대전에서 제국들이 모두 민주주의 국가에 패배했다. 물리적 충돌을 동반한 전쟁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능력과 자원, 지식, 정보와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따져보면 민주주의 체제가 더 효율적인 이유를 세 가지로 들어 설명했다.
"좋냐 싫냐는 취향의 문제지만 이 체제가 객관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거겠죠. 민주주의에는 세 가지 층위가 있습니다. 원리원칙, 제도, 의식.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의적 명령이 아닌 민주적 절차와 법에 따라 법을 행사하게 하는 법치주의입니다. 기본권의 불가침, 시민의 기본권은 법으로 제한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죠. 개인들이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이상 자기도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정치 제도의 기본 정신과 원리입니다.
두 번째는 제도입니다. 다수결, 의사결정, 집단적 의사결정은 다수결로 합니다. 입법기관의 원칙이죠. 권력 제한, 분산, 상호견제, 임기가 있고 때가 되면 나가야 합니다. 삼권 분립으로 권력의 제한, 분산, 상호견제를 이뤄주고요. 민주주의의 제도적 측면을 보면 다수의 지배를 확정해주는 것, 다수의 지배가 제한 없이 아무 방식으로나 나갈 수 없도록 권력을 획득한 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게 쪼개고 나누고 대립하게 했습니다. 시민들을 권력에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죠.
세 번째 차원이 바로 의식인데요. 똑같은 민주주의 헌법과 제도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도 차이가 나타나죠. 어떤 나라는 그 제도를 통해 경제 발전도 이룩하고 문화도 잘 발달시키고 문제를 순조롭게 해결시켜 나가지만, 어떤 국가는 국회에 오함마, 전기톱, 멱살잡이가 이뤄집니다. 큰 틀에서 보면 민주주의의 제도는 거의 비슷하거든요. 독일과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볼까요, 독일은 근로자 대표들이 기업 이사회에 다 참여하도록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반 시장주의, 친북, 좌빨 등등 별 얘기가 다 나옵니다. 그러니 독일이 경제 성장률, 고용률, 다 더 높죠. 일인당 국민 소득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일하는 시간은 우리나라의 2/3입니다. 독일은 민주주의를 유능하게 잘 운영합니다. 차이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민주주의를 대하는 의식과 관행입니다. 독일, 히틀러 뽑았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나라 지금 이상한 대통령 뽑았지만, 히틀러만큼 나쁘지는 않아요."
유시민은 민주주의자가 부족하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룩할 수 없다며, 제도를 잘 이해하고 생각하고 활용하는 민주주의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자의 가장 큰 차이는 시민의식과 행동 양식이었다.
국민과 시민
다음으로 유시민은 국민과 시민에 관해 말했다. 국민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민주주의의 주체가 아닌 구성 요소일 뿐이다. 하지만 시민은 국민으로서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의무를 해야 하는지 알고 그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으로 차이를 들었다.
"시민들이 있는 나라에서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국민의 생각을 반영합니다. 인간의 욕구 중 제일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부터 시작해 안전에 대한 욕구, 어디엔가 속해 사람들과 교감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마지막 단계에 자아실현 욕구가 있죠.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은 겁니다. 원초적 욕망을 해결하자 점차 집단을 만들기 시작하고, 자아실현을 하게 됩니다. 발전했다기보다는 원래 있던 욕망 가운데 가장 긴급한 것부터 순차적으로 실현해왔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고요. 주권자로서 마땅한 권리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확실하게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얼마만큼의 참여를 하고 능력을 발휘하느냐가 그 민주주의의 능력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수준이 높은 민주주의는 유능합니다. 수준이 낮은 민주주의는 지도자의 수준이 낮고요. 프랑스에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수입하자는 포스터가 붙었더라고요. 오바마가 훌륭한 지도자였다는 뜻입니다. 국민의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지도자. 어느 나라나 그래요. 민주주의가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정치제도로서 가치도 중요하지만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한 거거든요. 옛날부터 이거에 대한 논쟁이 많았죠. 민주주의가 좋긴 한데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증거가 없어요. 아리스토텔레스를 오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서 사형시켰죠.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좋은 결과를 낳을 때도 있었지만, 그 뒤로 엉망이 돼서 나라가 망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에 희생됐는데 그 제자 플라톤이 좋아할 리가 없죠.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싫어했습니다. 그는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메리토크라시' 덕이 있고 유능한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요. 민주주의가 잘못 가면 덕이 없고 인기만 있는 사람이 선출되기 십상이거든요."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유시민은 어떻게 현명하고 덕 있는 사람이 통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민주주의를 통해 낼 수 있을지 질문했다. 예시로 든 참여정부, 민주정부는 아주 민주적이었으며, 민주주의의 원리와 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유능하게 작동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민주정부를 이끈 지도자에게서만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덕 있고 유능한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가 우리의 중심적 고민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일상생활 공간에서 비민주적인 여러 문화와 관행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른바 미시 파시즘이라고 하죠. 대학 신입생은 선배들이 사발주를 강요해도 뿌리칠 수 있어야 하고 입회 신고식을 한다고 해도 거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직장인들이 생활공간 안에서 타인에게 독재적 행태를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 일상 안에서 우리는 모든 이를 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잘못된 관행과 문화와 싸워야 합니다. 사회적, 정치적 공간에 참여해야 합니다. 시민운동, 서명운동,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세요. 정당, 선거, 참여하세요. 아무리 똑똑하고 현명한 국민이 많으면 뭐합니까, 참여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소수의 권력자가, 자긍심이 부족한 사람들을 조작하고 동원해서 권력을 재생산하고 사익을 취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강연의 시간은 30분을 전후해 끝났고 그 뒤로는 계속 독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작가 유시민에게 ‘시민’으로서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고 그는 모든 질문에 성실히 답변했다. 팔이 아파 사인은 해주지 못했지만 북 토크가 끝나고도 사진 촬영을 위해 긴 줄을 선 독자들 모두와 사진을 찍어주며 그가 가진 냉철한 판단력과 따뜻한 면모를 동시에 보여줬다.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저 | 돌베개
2011년 한 정당의 대표였던 유시민은 정의롭고 바람직한 국가가 무엇인지 모색하는 과정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출간한 바 있다. 올바른 국가의 모습이 무엇인지 질문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운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에게,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국가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가닿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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