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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지식수입국형 사고 방식 벗어나야"

『탁월한 사유의 시선』 펴낸 최진석 교수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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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까지 생각의 독립을 갖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나라는 지식을 생산하는 나라고, 생각을 따라하는 나라는 지식을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아직까진 지식 생산국이 아닌 지식 수입국입니다.

최진석 교수 강연회1.JPG

 

지난 2월 9일 을지로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서강대학교 철학과 최진석 교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 출간기념 강연회가 열렸다. 대중과 소통하는 철학자로 명성이 높은 최 교수의 강연회를 찾은 독자들로 100여 명 규모 강연 홀이 가득 찼다. 이날 최 교수는 강연에서 '탁월한 시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청중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 책에는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사는 모습, 행복, 자유, 평화, 인정과 존경이 전부 그 사람의 높이에서 나온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생각의 높이 이상을 살 수 없습니다. 사회 역시 그 사회가 공유하는 생각의 높이를 살 수 없습니다."

 

생각의 높이는 어째서 중요한가

 

최진석 교수는 최근 발생한 동탄 주상복합 건물 화재 사건을 언급하며 우리나라에 유독 후진국형 재난이 빈번한 이유를 추적했다.


"우리나라는 후진국형 재난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이번에 동탄에서 주상복합 건물 화재 사건도 그렇습니다. 왜 사고가 일어났나? 관리자가 화재경보기를 꺼놓은 겁니다. 그럼 왜 관리자는 경보를 껐나? 이게 오작동하면 매출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우리가 후진국형 재난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후진국형으로 관리된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지금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결국 한 사람의 모든 행동은 그의 생각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최진석 교수는 주장했다. 단순한 생각의 중요성을 넘어 '관점의 중요성' 역시 함께 언급했다.


"왜 시선의 높이가 중요하냐? 인간은 두 세계에 삽니다. 하나는 인간이 만들지 않은 세계고, 하나는 인간이 만든 세계입니다. 인간이 만들지 않은 세계를 자연이라 부르고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세계를 문명 세계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문명 세계와 자연 세계 두 세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연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이과 학문이라고 부르고 문명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문과 학문이라고 부릅니다. 문명 세계에서 인간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죠. 가족, 친구, 볼펜, 컵, 지하철, 제도들, 민주, 독재.... 모두 인간의 의식과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이 생각의 초점으로서 발현하는 것을 관점, 혹은 시선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생각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입니다. 가장 근본적이고 높은 차원에서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생각을 추적하는 것입니다."

 

최진석 교수는 제대로 된 나라는 생각을 연구하는 집단과 기관을 지원한다고 했다.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근본에 닿는 일이기 때문이다. 철학과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최진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의 박사학위 논문 패턴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의 사고 방식을 '훈고적'이라고 정의했다.


" 그 나라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보려면 국립 철학과의 생각 수준을 보면 됩니다. 국립 서울대학교 철학과가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가를 알면 대한민국의 생각 수준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존재해 본 적이 없는 논문을 쓰는 일을 우리는 창의적 글쓰기라고 부릅니다. 반면 이미 존재하는 관점의 생각을 확장하는 식의 글쓰기를 훈고적 글쓰기라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미셸 푸코가 아직 우리에게 없었던 창의적인 논문을 발표하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서 그것을 확대, 심화하는 논문을 써왔습니다. 이를 전반적으로 말하면 훈고적 논문이라고 할 수 있죠. 창의적 논문과 훈고적 논문은 매우 다른 차원입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학위 논문은 99%가 전부 훈고적 논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 훈고적임을 반증합니다. 확장해서 말하면 우리의 문명이 훈고적이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의 생각 전체가 훈고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가 '따라하기'의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어떻게 가능한가


최 교수는 선진국과 선진국이 아닌 나라의 차이를 '창의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판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 정부 기관이나 조직마다 '창의'를 구호로 내거는 현 상황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창의적이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선진국은 없는 길을 여는, 장르를 만드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훈고적 삶을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이것을 꼭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그 어떤 나라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후진국에서 중진국까지 가장 빨리 도달했다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의 생각, 습관 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에 이미 도달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중진국 단계의 한계를 돌파하느냐 못하느냐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에 있습니다. 탁월한 시선이란 다른 말로 하면 철학적, 미학적, 예술적, 수학적 시선입니다. 이 탁월한 시선을 통해서만 독립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약 20년 전부터 모든 기관에 ‘창의’라는 구호가 있습니다. 이 구호를 자꾸 외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에게 창의가 아직 없다는 뜻이죠. 신촌 로터리를 가면 돌비석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 '바르게 살자'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구민들은... 좀 바르게 살 필요가 있다는 뜻이죠. (웃음) 그렇다면 창의라는 것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우린 일반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한다'고 하죠.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창의력은 발휘하는 게 아니라 '발휘되는 것'입니다. 창의력은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창의력이 튀어나온다는 것은 그의 내면에 창의력이 발휘될만한 인격적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사회로 확장해 생각해보면 한 사회가 창의적이라는 것은 이 인격적 준비가 된 사람이 많다는 뜻이고, 창의적이지 않다는 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죠. 따라 하기만 하는 중진국 레벨까진 지능이 중시됩니다. 이미 있는 것을 잘 따라 하기만 하면 됩니다. 헌데 따라서 할 것이 없는 단계에 도달한다면? 내가 길을 열어야 합니다."

 

대답 대신 질문을 택하는 용기


따라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은 대답을 잘 한다. 이미 있는 지식을 누군가 요구할 때 그대로 뱉어내면 된다. 그러나 ‘누가 더 빨리, 많이, 정확하게’ 대답을 내는지 중요한 사회에서는 모든 판단이 ‘원래와 일치하는가’라는 진위 논쟁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질문마저도 뭔가 옳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훈고적 사고방식의 전형이죠. 질문마저도 무엇인가 더 높은 기준에 맞아야 한다고 믿을 정도로 우리는 퇴화된 사고 방식을 가진 겁니다. 행복지수가 나날이 떨어지는 이유는 자기가 자기 눈으로 반성하지 않고 외부의 눈으로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것으로 인해 좌우되고 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종속적 인간은 항상 타인을 신경 씁니다. 능동적, 독립적 인간은 항상 자신과 경쟁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경쟁한다고 할 때의 상태를 독립되어 있다고 부릅니다."


끝으로 그는 필리핀과 아르헨티나의 예를 들며 한국이 예전의 후진국으로 퇴보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니지 못한 국가에 퇴보는 정해진 순서라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자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꿈을 향해 나아가는가. 내가 꾸는 꿈은 지금 어디에 가 있는가. 이것이 인간과 사회를 독립적으로 만드는 매우 큰 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후퇴가 시작된다면 우리는 이것에 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안 된다면 자녀들이라도 독립적 인재로 길러내야 합니다. 독립적 문제 해결을 갖춘 인재로 자식 세대를 키워내야 합니다. 결국 제 책은 '우리 정말 여기까지 살다가 가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입니다. 감사합니다."

 

1시간 가량의 강의가 끝난 뒤에는 독자와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탁월한 사고, 높은 사고라는 말을 계속하셨는데 높다는 것은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사칙연산만 하는 사람과 방정식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시선의 높이가 다르겠죠. 연산만 할 줄 아는 사람이 다루는 경험의 깊이와 방정식까지 풀 줄 아는 사람의 경험의 깊이는 전혀 다르죠. 문명이 연산 범위에 있는 것과 기하학 범위에 있는 건 전혀 다르죠. 고고학 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있죠. 영국입니다. 고고학적 유물은 이집트에 가장 많습니다. 어째서 이집트보다 영국이 더 강한 전성기를 구가해 왔을까요. 이집트는 유물만 갖고 있지만 영국은 고고'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죠. 왜 학(學)이 중요한가요. 학을 가졌다는 것은 경험을 통지할 수 있는 종합적 능력을 갖췄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게 시선의 높이입니다.

 

질문을 더 잘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아울러 독서가 그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소리가 음악이 아니듯이 모든 독서가 좋은 독서는 아닙니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데 절대 속으시면 안 됩니다. 책 속에는 길이 없습니다. 길은 나한테 있는 것이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 써놓은 걸 읽는다는 것이죠. 한데 이 사람이 읽기만 한다는 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읽을 때 남의 생각에 감동하기 위해서 읽는 것은 좋은 독서가 아닙니다. 나도 언젠가는 나도 글을 쓰리라는 배짱을 가진 채 읽는 것만이 좋은 독서입니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을 많이 했지만 그건 여러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도 언젠가 말하기 위한 듣기만이 유의미합니다. 읽을 때는 언젠가 쓰기 위해서, 들을 때는 언젠가 말하기 위해서. 이 점을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최진석 저 | 21세기북스
2015년 건명원(建明苑)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철학 강의를 묶은 이번 책은 건명원의 초대 원장인 최진석 교수가 개인과 사회를 날카롭게 관찰해온 사유의 결정체다. 저자는 나라를 이끌어갈 개인을 각성시키고 함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혁명가이자 문명의 깃발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며 인문적, 지성적, 문화적, 예술적 차원으로의 선진화를 철학을 통해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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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선우(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취재한 대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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