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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내 안에 검열관이 없어야 해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여기저기 싸우는 사람이 많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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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있는 사람은 일단 자신을 존중하게 되고, 타인도 함부로 하지 못해요. 자기 서사가 없는 사람들을 대개는 무시하거든요. 그냥 투명한 인간처럼 취급하게 되는 거죠.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가질 때 우리는 조금 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글 쓰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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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혼하고도 가끔 록 페스티벌을 다녔는데 그때마다 이웃집 언니들은 음악이나 공연에 관심을 갖기보다 남편의 태도에 감탄해 묻곤 했다. “그런 데 다니면 남편이 안 싫어해?”

 

말은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남편의 입장을 내면화한 말들, 결혼한 여자의 행실을 제약하는 발언이 여전히 아무 때나 아무렇지 않게 통용된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35쪽)

 

‘말은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서사를 가져야 한다고 은유 작가는 여러 번 강조했다. 지난 2월 9일 합정동 비플러스 카페에서 진행된 은유 작가와의 만남은 그의 에세이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출간을 기념해 진행되었다. 자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과 밀도 있는 대화를 원한 작가는 짧게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출간 소감을 이야기한 후 독자들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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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삶은 다 저마다의 최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절판된 『올드걸의 시집』과 그동안 쓴 칼럼을 묶어 출간했다. 은유 작가는 절판된 책에 관한 이야기로 입을 뗐다.


“답답한 일이 많아서, 울컥한 일이 많아서 블로그에 글을 쓰게 됐어요. 자유기고가라는 직업을 갖고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요. 너무 제 얘기가 쓰고 싶더라고요. 밤마다 글을 썼죠. 감정을 솔직하게 쓰지만 블로그에 찾아온 분들에게 뭐라도 하나 들려 보내고 싶다는 심정으로 시를 하나씩 넣었어요. 그 코너명도 ‘올드걸의 시집’이었죠.”

 

책을 내려고 쓴 글은 아니었지만 용기를 냈다.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사람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글이 읽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반응은 미미했다. 그러나 은유 작가는 좋았다고 말했다.


“어쩌다 읽은 분들이 너무 좋았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특히 남자 분들이요. 이 책을 읽고 나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엄마 혹은 아내한테 미안했다, 고 했어요. 평범한 여성의 목소리, 아이 키우고 살림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의미를 두고 있어요.”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온 은유 작가는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만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삶은 다 저마다의 최선”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 있다는 사실. “그냥 사는 사람은 없다”는 깨달음이 보통의 이야기를 전할 용기가 되었다.


“쌓여만 있으면 안 좋았을 감정들이 글을 쓰면서 승화가 된 거죠. 글에는 나쁜 얘기를 많이 쓸 수가 없으니까요. 쓰면서 ‘정말 이렇게밖에 쓸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 욕을 막 쓰다가도 남편이 이상하기만 한 건 아닌데(웃음) 하는 전환이 일어나요.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죠. 그런 작업을 책 한 권을 통해 하고 나니까 제가 조금 더 투명해진다, 는 걸 알았어요.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 뿌옇게 사람을 판단하고, 오해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제 감정을 알고, 다른 사람의 속사정을 헤아려볼 수 있게 되었던 과정이 제게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후 다른 작업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됐죠.”

 

은유 작가는 “용기를 내서 제 책을 읽고 많이 글을 썼으면” 한다며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독려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그런 세상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서사가 있는 사람은 일단 자신을 존중하게 되고, 타인도 함부로 하지 못해요. 자기 서사가 없는 사람들을 대개는 무시하거든요. 『폭력과 존엄 사이』를 출간하고 마련된 자리에서도 한 이야기인데요. 박정희가 왜 이렇게 지금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가를 생각해봤어요. 그 사람은 한국에 경제적인 기적을 이룬 사람으로서의 영웅 서사가 너무 탄탄한 거죠. 많은 잘못을 했음에도 그 서사가 무너지지도 않고요. 그런데 우리가 쉽게 무시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 삶의 서사를 잘 상상하지 못하거든요. 그냥 투명한 인간처럼 취급하게 되는 거죠. 한 존재로 보기보다 도구적으로 보고요. 그러니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가질 때 우리는 조금 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글 쓰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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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답하다


짧은 이야기를 마친 후 이어진 독자와의 대화 시간은 길게 계속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고 했던 말 때문이었을까. 은유 작가는 독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진심으로 답했다. 글쓰기와 여성의 삶에 대한 지금의 이야기였다.

 

표지가 인상 깊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은 건지 궁금합니다.


원래 이미지는 등만 있는 이미지였어요. 목이 없는.(웃음) 그 위에 풍선을 얹었죠. 디자이너 분의 감각인데요. 우리 삶이 되게 위태롭잖아요. 풍선도 그렇죠. 아주 작은 바늘 하나에도 터져버리잖아요. 저는 삶도 늘 그렇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작은 말 한 마디에도 무너지죠. 특히 저는 뒷모습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흔히 뒷모습이 많은 말을 한다고 하는데요. 등이라는 것이 인간의 피부 중 제일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서 몸이 발산하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죠. 이 이미지에 삶의 본질성 같은 것이 많이 느껴져서 저는 참 좋았어요. 미학적으로도 좋고요.

 

글을 쓰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습니다. 조언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일단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쓰려고 하면 글은 잘 안 써져요. 처음에는 엉성해도 초고를 쓴다는 느낌으로 쓰시고요. 그 다음에 계속 고쳐나가는 게 좋은 방법이에요. 한 줄, 한 줄 완벽하게 써서 한 면을 채우겠다고 하면 어렵죠. 나한테 무슨 생각이 있는지 글을 쓰기 전에는 잘 안 나와요. 활자화된 글을 보면 좀 낯설게, 새롭게 볼 수 있어요. 계속 고치는 거죠. 조사 하나도 바꾸고요. 글이라는 것이 조사 ‘은, 는, 이, 가’ 하나에도 느낌이 많이 달라요. 저도 조사 하나, 부사 하나를 틈틈이 읽고 바꿔서 나사를 조이는 느낌으로 집착을(웃음) 많이 했죠.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못 쓰는 글을 많이 써봐야 잘 쓸 수 있어요.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능력이 생기는 데에는 일정 정도의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써야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외로운 시기를 거치시고요. 꾸준히 쓰다보면 독자도 생기고 하니까요.

 

혼자 자유롭게 글을 썼습니다. 한 번은 친구에게 글을 정제해서 보여줬는데요. 알맹이가 빠진 글이 되더라고요. 이런 갈등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안에 검열관이 없어야 해요. 검열관이 있으면 절대 좋은 글 안 나와요. 내가 남한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내가 나를 잘 아느냐가 훨씬 중요해요. 늘 타인에게 보이는 나만 신경쓰다보면 나중에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게 돼요. 거짓말 계속 하면 헷갈리는 것처럼 말이죠. 너무 이리저리 재지 마시고 자유롭게 써보시면 좋겠어요. 사람은 자기 안에 여러 개의 자아가 있거든요. 누구나 다 그래요. 다만 다른 자아들은 비활성화된 거예요. 사회적으로 많이 억압돼서요. 여자니까 얌전해야지, 욕설은 나쁜 거야, 하고 요구받는 태도가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비활성화된 자아들이 있는데요. 글을 쓸 때는 그 애들을 다 활성화시킬 수 있어요. 거침없이 쓰는 게 좋은 거죠. 그래서 글 쓸 때 용기가 필요한 거고요. 글 쓸 때 제일 좋은 건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었나, 하고 발견하는 맛이거든요. 그게 큰 자극이 돼요.

 

결혼을 하고 책을 읽으니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결혼을 하니 가부장적 문화가 크게 느껴졌어요. 작가님은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셨나요?


싸우려면 싸움이 직업이 돼야 해요.(웃음) 그렇잖아요. 일상이란 늘 펼쳐지는 일이고, 싸우다가 지쳐서 못 싸우기도 해요. 싸우는 게 힘들거든요. 제 경우 다 싸울 수는 없으니까 분배를 하죠. 명절은 일 년에 두 번이잖아요. 그건 안 싸워요. 시댁까지 아우르며 싸우면 부모님 생각이 바뀌지도 않는데다가 내가 불필요한 에너지를 많이 쓰게 돼요. 대신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문제가 좀 작아지니까 싸우죠. 예전에는 시댁에 안 가겠다, 고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용기 있는 여성들을 많이 보지도 못했고요.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요. 그런데 의외로 명절에 부모님 댁에 안 가는 사람들도 있죠. 다양한 사례를 많이 접하는 것도 중요해요. 서로 길들이는 것 같아요. 전에는 사흘에 한 번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거든요. 그러다 점점 뜸해졌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까 단련이 되더라고요. 좀 뻔뻔해지고요. 세속적 기준에 맞춰 자신을 닦달하지 마세요.

 

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자주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선택이나 판단을 내릴 때 어떤 기준이 있나요?


기준은 있어야 해요. 없으면 휘둘리는데요. 선택하고 실패하면서 기준이 만들어져가는 거죠. 원래부터 확고한 기준이 있는 게 아니고 말예요. 저도 선택할 일이 많거든요. 강연 요청을 받으면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죠.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다른 조건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이것이 나만 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일인가, 생각해봐요. 의미가 있는 일인가, 새롭고 호기심이 생기는 일인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인가 같은 건데요. 그것이 제 기준이에요. 저는 글을 쓰고,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있죠. 그렇지만 세상을 좀 더 낫게 하고 싶은 활동가로서의 정체성도 있거든요. 때문에 왠지 내가 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있으면 해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시시하게 살다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그러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뭘 하면서 살면 이 허무함을 줄일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선택을 하는 편이에요. 대신 이런 생각은 계속 수정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고요. 절대 해야 하는 일 같은 건 없는 거거든요. 내 조건과 상황에 따라 탄력 있게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직장에서 불쾌한 말을 들었습니다. 막상 그 순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도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그런 게 잘 안 돼요. 그래서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그런 일이 있으면 앞에서는 “네” 해놓고 돌아서서 기분 나쁘다, 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니까 생각해보니까 기분 나쁘다, 다음에 그런 상황이 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 하면서 작전을 짜요. 그런데 닥치면 또 말이 안 나와요. 그렇잖아요, 똑같은 멘트가 오는 건 아니고 조금씩 변형돼서 오니까요.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명백한 성희롱이라는 거죠. 기분이 나쁘면 그 자리에서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결정적인 촌철살인의 한방을 먹이겠다고 하면 말이 잘 안 떨어지잖아요. 그냥 “방금 한 그 말은 기분이 안 좋다”는 식으로나마 말을 해줘야 해요. 그 정보가 상대방에게도 필요한 거고요. 상대방은 호의였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늘 그러잖아요. 그게 상대방이 기분 나쁠 거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남성이 대다수예요. 그걸 자꾸 환기시키는 게 중요해요.


그게 잘 안 되면 꼭 기록을 하라고 많이 조언을 드려요. 상담할 때도 보면 피해자들은 일단 기록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거든요. 도움 받을 수 있는 단체가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식으로든 기록을 해서 전달을 해야 해요. 불편하다면 그 자리에서 한 번 말해보는 용기도 중요하다고 하거든요.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 것 말이에요. 누가 내 허벅지를 만졌다면 “어머, 왜 이러세요”가 아니라 “내 허벅지에 당신 손이 있네요”라고 적시해서 명확히 얘기를 하는 게 중요해요. 자꾸 해봐야 해요. 이 사람이 말하는 주체라고 인식하게 되면 함부로 못해요. 얘기를 자꾸 하는 게 중요하겠죠.

 

지금의 모습이 된 계기가 있나요?


제가 행복해지지 않는 지점까지 갔던 것 같아요. 한계에 이르렀을 때 말을 하게 된 것 같거든요.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직간접적 경험이 많이 쌓이는 게 중요한 거죠. 내가 참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주변에 있느냐가 삶을 되게 많이 바꿔놓는 거죠. 제가 목동에서 오래 살았는데요. 그게 기준이 되었던 거예요. 누구네 엄마는 저렇게 하는데 나도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요. 이런 의식에 시달리다가 시야가 넓어진 거죠. 공부하고 자유기고가로 일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봤거든요. 내가 관계 맺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용기가 생겼어요. 나만 싸우면 내가 미친 사람 같지만 여기저기 싸우는 사람이 많으면 그게 보통이 되거든요. 그렇게 주위가 달라지는 게 자기 삶을 바꾸는 제일 좋은 방법 같아요.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은유 저 | 서해문집
대학물도 먹지 않은 채 ‘글밥’을 먹게 된 문필하청업자이고, 일찍 결혼하여 아내로 엄마로 가사와 육아는 물론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노동계급 여성, 은유. 신간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는 언어가 되지 못하는 일상의 울분을 직시하고 그것을 말하기로 결심한, 한 여자의 분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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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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