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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정영목 “『제 5 도살장』은 반전소설 이상의 소설”

커트 보니것 『제 5 도살장』 번역가 정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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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전소설이다’라는 평판이 강한 책입니다. 그런 면이 분명 존재하고 있고, 보니것 자신도 반전적인 행동을 해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설 곳곳에서) 흔히 생각하는 반전 소설과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왜 그런가라는 의문 때문에 번역하는 내내 애를 먹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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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금요일 경의선책거리 공간산책에서는 문학동네 주최로 ‘『제 5 도살장』 북토크’가 열렸다. 반전 소설로도 유명한 『제 5 도살장』은 몇 년 전 절판된 이후 수많은 국내 독자들에 의해 재출판 요구를 받아왔다. 『제 5 도살장』의 뜨거운 인기를 반영하듯 금요일 밤 공간산책 2층 사무실은 북토크에 참여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날 강연자는 『제 5 도살장』을 새로 번역한 정영목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가 맡았다.

 

"번역자로서 원작자를 대변해야 하는 입장에 놓을 때 가장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웃음) 저 역시 책을 읽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소감을 갖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번역했다고 해서 (남들보다) 더 잘 읽었다고 볼 수도 없는 거고, 저도 그저 독자의 한 사람일 뿐인 거니까, 기본적으로 대화식으로 갔으면 하고요. 제가 일방적으로 하는 말은 서두에 조금 짧게 진행하고 그 후에는 함께 읽은 내용을 나누어 보고 저 나름의 답을 드리는 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번역자를 괴롭히는 고민

 

대담 형식을 밝힌 뒤 정영목 교수는 번역 도중 마주쳤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작을 우리 말로 옮기는 번역가들의 고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들의 고민에 비해 번역자들의 고민은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겐 낯선 편이다. 정 교수는 “결국 번역자도 자신이 납득한 방식대로 번역하는 것”이라며 번역 당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입견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제 5 도살장』은 ‘반전소설’이라는 평판을 받아온 책입니다. 그런 면이 또 분명 존재하고, 커트 보니것 역시 실제로도 반적전 행보를 보여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2장 이후 주인공 빌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흔히 생각하는 반전 소설과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빌리의 병실 동료가 전쟁을 옹호하는듯한 발언을 했을 때 빌리가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는다는 점, 그린베레(미군 특수부대)에 입대한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반전 소설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할 것이라는 제 선입견과는 맞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정 교수를 괴롭힌 의문들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제 5 도살장』 2장 도입부에 등장하는 ‘그는 그렇게 말한다’는 한 문장짜리 문단도 번역자에겐 간과할 수 없는 고민으로 다가왔다.

 

"보통의 3인칭 전지적 시점에선 ‘그는 그렇게 말한다’라는 표현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표현은 빼는 것이 가독성에 더 좋을 수 있죠. 이렇게 쓰면 나레이터(화자)인 ‘나’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인지, 대상자인 빌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것인지 오히려 불명확해집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다’는 말은 한 문단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실수라고 보긴 힘듭니다. (작가의) 의도가 있는거죠. ‘나(1장 화자)’가 빌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거라면 ‘나’는 전달자가 됩니다. (화자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빌리가 트랄팔마도어라는 외계에 납치당하고 하는 이야기를 대체 어디까지 믿을 것인가에 대한 혼란이 발생합니다. ‘나’는 그저 ‘(말을) 전할 뿐이다’라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빌리의 이상한 이야기로부터 책임이 없어 집니다. 들은 얘기를 전할 뿐이기 때문이죠."

 

뒤이어 정 교수는 『제 5 도살장』이 지닌 특이한 서사적 설정을 언급했다.

 

"1장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가 책을 쓰려고 옛 전우를 찾아가니까 부인이 굉장히 박대합니다. 부인은 ‘나’가 쓰려는 책이 전쟁 영웅이 등장하는 전쟁을 미화하는 작품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이죠. 그러자 ‘나’가 하는 말이, “그러지 않겠다” 입니다. 그렇게 나온 주인공이 (정신병자인) 빌리라는 것이죠."

 

"빌리는 제정신의 성인이라고 보기 힘든 인물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될만한 인물은 2장의 에드가 더비입니다. 더비가 주인공이었다면 전쟁영웅이 등장하는 흔한 전쟁 서사가 됐을 겁니다. 반전이든지 전쟁미화던지요. 가장 주인공답지 않은 사람은 주인공이 되고 주인공이 될법한 인물은 부조리하게 죽는 부분들. 이런 역전이나 전환이 일어나는 게 (작품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5 도살장』은 전에 없던 등장인물들의 비중도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특히 일반적인 소설 구조상으로는 주인공격인 에드가 더비 대신 ‘제 발로 정신병원에 가는’ 정신분열 환자 빌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부분이 그렇다.

 

"일반적인 반전 소설이었다면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드레스덴 폭격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보니것은 어려운 공경들도 꿋꿋히 헤쳐온 전쟁영웅 에드가 더비가 찻주전자를 훔쳤다는 이유로 처형당하는 장면을 클라이막스라고 말합니다. 지극히 중요한 사건들은 범상하게 넘어가고,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한 내용은 클라이막스가 되는 것들. 주인공격인 에드가 더비는 조용히 죽고 엑스트라급인 빌리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반전소설, 나아가 문화적인 관습을 깨는 것이죠. 단지 좁은 의미의 반전뿐 아니라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낳은 서구 문명 전체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나아가려고 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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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여 분 간의 강연이 끝난 뒤 독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젊은 청년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은 애초 예정되었던 대담 시간이 지나서까지 질문들을 쏟아냈다.

 

『제 5 도살장』을 번역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셨던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1장의 화자인 ‘나’와 2장 빌리의 목소리를 분리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2장의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났다”는 말과 “뭐 그런거지”라는 말들이 빌리의 말일까요 보니것의 말일까요? 여기가 어려운 부분인데. 보니것은 앞에서부터 ‘모든것은 빌리의 이야기일 뿐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작품 곳곳의 서술이 보니것의 목소리인지 빌리의 목소리인지 판단이 어렵도록, 결정을 못 내리도록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보니것이 마련해 둔 이 특이한 장치들을 문맥상 조금 어색해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5 도살장』은 비극이지만 위트로서 비극을 승화시킨 작품이잖아요. 교수님께도 ‘제 5 도살장’과 같은 의미를 갖는 장소나 경험이 있으신지?


없죠. (웃음) 저는 전쟁을 겪지는 않았고, 이런 식으로까지 극단의 경험을 한 적도 없습니다. 제 부모님 세대분들에게는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근데 그걸 떠나서 힘들었던 시간인데 그것과 희망이 공존했던 시기를 묻는 거라면 그건 누구에게나 다 있지 않을까요. 제가 60년생인데 20살 때 80년도, 그러니까 광주학생운동 있을 때거든요. 그때부터 전두환 정권 같은 폭압적이고 암울했던 시대를 지나고 있었어요. 전맹만큼 절망적이지는 않았습니다만 결국 젊었을때랑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다 보니 말을 더듬게 되네요. (웃음)

 

“뭐 그런거지”라는 문장의 원문이 무엇인지와 왜 하필 번역어를 ‘뭐 그런거지’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106번 정도 나오는 말로 아는데, 원문은 “So it goes”일 거예요. 당연히 번역가로서는 엄청난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편집부에서 고쳐주기를 바랬거든요. (웃음) 편집부에서 (다른 번역어를) 주면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뒀더라고요. 어떤 게 더 좋다는 말은 못 드리겠어요. 그중에서 저의 취향이 멋을 부리지 않고 담백한 것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여러 번 바뀌긴 했는데, 마감은 해야겠고요. (웃음) 나중에 편집자가 보고 너무 밋밋하다고 하면 바꿀 용의 있다고 하고 있었는데 그냥 통과시켰더라고요. 나중에 누가 비판하면 편집자 핑계를 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문장에 대해선 보시는 분마다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을 거라고 봐요.

 

번역관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번역가가 번역을 할 때 너무 긴 문장은 임의로 자르기도 하는 등 변형을 가할 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원형을 그대로 살리려 노력하는 편이신지 알고 싶습니다.


아주 유서 깊은 질문이네요 (웃음) 원칙적으로 문장 구조는 그대로 가져오기 힘들다고 봅니다. 영어와 한국의 어법이 다르니까요. 그러나 보니것이 쓰는 특유의 영어 문체가 있고, 이것을 그대로 우리 말로 옮겼을 때 문장이 어색해지는 부분을 감수할 것이냐는 문제에 있어선 저는 당연히 감수하는 쪽으로 마음이 갑니다. 하지만 원작자가 and, and, and 식으로 긴 문장을 썼을 때 그 문장의 길이를 따라가려고 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문장이 길더라도 핵심은 문장의 길이가 아니라 문장의 호흡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연체만의 호흡을 따라가려고 노력해요. 내가 납득하지 못한 긴 문장을 그대로 옮겨오지는 않는 쪽입니다.

 

『제 5 도살장』을 읽으면서 전형적인 반전소설이라기보단 영화 <포레스트 검프>처럼 그저 한 남자의 일생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랑 비슷하게 책을 읽으신 것 같아요. 이 책이 전형적인 반전소설의 형태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 사람이 젊은 시절에 전쟁을 겪고, 그 상처로 인해 정신이 망가지고, 그 망가진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는가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은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동의하는 점은 일반적인 반전소설의 형식과는 다르다는 점이고, 그것이 이 책의 장점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5도살장커트 보니것 저/정용목 역 | 문학동네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 커트 보니것의 대표작.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시간과 시간 사이를 떠돌며 여행한다. 유쾌하고 황당한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비관론과 허무주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희망. 오직 보니것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반전(反戰)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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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선우(예스24 대학생 리포터)

취재한 대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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