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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가서 글을 쓴 남자 김현우

김현우 X 김연수 『건너오다』 북토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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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부분에 있어서 제가 드릴 말씀은 사실 없어요. 그래도 여행이고 출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확인’을 해나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여행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은 타인에게 친절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모두 처음 본 사람이고 다시 볼일은 없겠지만, 그런 좋은 만남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여행은 뜻밖에 힘이 세요.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주변에서 이런 일들을 확인하시고 그 힘을 느껴보라는 겁니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일상을 떠나 본인만의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출장 중에 쓴 글을 엮어 산문집을 낸 사람이 있다. 바로 EBS 교육방송 PD이자 존 버거, 리베카 솔닛의 번역가 김현우. 지난 6일 경의선책거리 공간산책에서 출장 산문집 『건너오다』의 저자 김현우가 북토크 행사로 독자들을 만났다. 다큐멘터리 PD와 번역가라는, ‘읽어내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은 두 직업을 가진 저자 김현우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날 열린 북토크 현장에는 편집자 강윤정과 소설가 김연수가 동행했다. 김연수 작가는 EBS <다큐프라임>에서 ‘김연수의 열하일기’를 통해 김현우 저자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청중들에 대한 인사말로 시작해서 앞선 방송에서 있었던 중국 출장에 대한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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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X김연수 북토크

 

강윤정: 중국에서의 촬영은 어땠어요?

 

김현우: 현지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어요. 환경이 힘들기보다는 중국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어려운 점이 많았죠. 두 번째 출장을 앞두고는 사드 배치 문제가 터져서 일정에 차질을 빚었네요. 김연수 선생님이 쉽지 않았을 텐데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김연수: 저는 오히려 굉장히 편했죠. PD는 총 책임자라 더 힘들어요. 중국에서 상황이 어렵고 공안들이 오면서 곤란한 부분이 생길 때도 저는 아무 걱정이 없었어요. 잡혀가도 김 PD가 잡혀갈 거라고 믿었거든요.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잡혀가진 않았네요.

 

김현우: 잡혀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PD가 여러 자질이 필요한데 순발력도 그 부분 중 하나예요. 저는 그 부분에 취약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김연수 작가랑 한동안 방을 같이 썼다고 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물어도 저는 그런 게 없었어요. 일로 간 출장이란 점에서 해야 할 일도 많고 긴장의 정도가 높다 보니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밀려나게 마련이었죠. PD라는 사람의 자리가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모두가 모두를 좋아하는 팀원들 덕에 좋은 출장으로 남았네요.

 

강윤정: 김 PD님은 방송에서 설정을 그다지 요구 안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김현우: 네, 맞아요.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필요한 장면이 있다면 요구하기보단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 맞는 방식입니다. 인터뷰할 때 ‘이렇게 말해주세요’라고 하는 PD도 있어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스타일의 차이라고 할 수 있죠. 급박했던 두 번째 촬영 때는 김연수 작가님께 대답까진 아니더라도 여쭤볼 것은 미리 말해드리는 정도까진 했던 것 같아요. 알아서 잘 준비해주셔서 감사했죠.

 

강윤정: 중국에 다녀오신 후 쓴 원고가 책에도 몇 꼭지 있어요. ‘경계’라는 단어를 책 전체에서 많이 쓰셨는데요. ‘건너오다’라는 제목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중국이 지리적, 문화적으로 아주 멀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PD님은 유난히 경계에 대해 의식을 하셨단 생각이 들어요.

 

김현우: 지나왔다는 것은 ‘어떤 경계를 지나왔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때부터 의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아마도 이 책은 경계를 지나오는 이야기가 될 것으로 생각했어요. 중국 측에서 그런 생각이 두드러진 이유는 책의 마지막에 들어갈 것이라 그런 거겠죠. 마무리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표출한 것 같아요. 동북지역이 고스란히 역사적으로 경계 그 자체이기도 했고요. 전체 책의 맥락이나 주제라고 할까요. 마지막에서 다 겹쳐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강윤정: 생각하신 것들이 모여서 책 한 권이 나왔어요. 출장 산문집이라는 부제를 마음에 들어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출장을 많이 다니시든 분들도 좋아해 주시고 출장이 많진 않지만 그에 대한 로망을 품고 있는 분들도 좋아하더라고요. 김연수 작가님도 소설가지만, 집필을 위해 외국을 나가실 수 있는데 작가님에게 출장은 무엇인가요?

 

김연수: 출장의 맛은 남의 돈으로 가는 거잖아요. 지원금 같은 걸 받아서 말이죠. 저는 제 사비를 들여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출장의 맛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오로지 일 때문에 가는 건 아니에요. 제가 여행기도 많이 써서 주변 분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줄 아시는 데 아닙니다. 여행 가면 오히려 일을 못 해요. 저는 집에서만 글을 써요. 외국 가면 오히려 일을 못 하고 있는 거죠. 순수하게 여행목적으로 가거나, 그게 아니라면 조사의 목적으로 가죠. 부러웠던 게 김 PD는 회사 돈으로 출장을 가고 어떤 순간이 되면 물리적으로 일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이 있죠.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조사하러 갔다고 조사만 하는 건 아니다. 술도 마시고 그러겠죠. 그럴 때면 오히려 해야 할 일 안 해서 너무 괴롭더군요.

 

김현우: 저는 반대 입장이에요. 제 돈 있으면 그걸로 가지 남의 돈 쓰는 게 너무 부담스럽더라고요. 다큐 하나 제작하는 비용이 우리 집 전셋값보다 비싸요. 한 번은 방송 마치고 사비로 여행을 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느낌이 다르구나 생각했죠. 저는 그래서 제작을 할 때도 가능한 한 예산을 많이 안 짜는 편이에요. 투입량이 많으면 기대도 크거든요. 물론 직업적인 여행에서는 일 사이의 틈이라는 것이 큰 매력이고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좋은 경험인 것은 분명해요. 그래도 출장은 일일 뿐이죠. 그것보다는 자비 들여가는 게 훨씬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앞으론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 보려고요,

 

강윤정: 김연수 작가님이 책을 읽으면서 괜찮았던 부분을 골라주시면 좋겠어요.

 

김연수: 아무래도 이런 부분이죠. 73페이지예요. 안장 높이 때문에 불안한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따라가다 왕복 6차선쯤 되는 자동차 전용 도로를 달리며 헤매는 장면이 나오죠. 제가 말했던 ‘일 사이에 쉬는 시간’에 일어났던 일인데 중간에 보시면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는 입장이 돼요. 저는 독일 있을 때 중고 자전거 산적이 있어요. 안장을 제일 낮게 해도 저한텐 높았어요. 두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신체적 수치감이 들었죠. 어처구니없는 안장 높이였지만, 석 달 정도 잘 타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아빠 자전거 타고 다니는 꼬마 심정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글을 보면서 공감이 많이 됐어요.

 

또, 김현우 PD는 어떤 사람일까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혼자 뭘 하고요. 그런데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넘어지고 헤매기도 하는데, 신경 쓰진 않아요. 삶의 흐름으로 받아드리는 것 같아요. 어떤 시간이든 자기한테 흘러왔다가 지나가는 걸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체념한 사람, 무기력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생활을 잘하는 듯한 느낌도 있어요. 잘 놀라지 않는 사람이에요. 본인은 긴장 많이 하고 힘들다곤 하지만, 공안이 나타나도 그냥 그랬을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강윤정: 선생님 말씀에 공감이 가는 게 김현우 PD를 처음 보고, 그러고 나서 점점 알아갔을 때 삶의 유연성 같은 걸 느꼈거든요.

 

김현우: 누가 옆에서 쳐도 꿈쩍도 안 할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초연해서가 아니라 둔해서 그래요. 실제로 공안이 나타나면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잘 몰라요. 그래서 넋 놓고 있는 것을 사람들은 ‘초연하다, 겁이 없구나’ 생각하죠. 초연한 사람은 아니고요 순발력 없고 어떻게 할지 모르고 그런 것 같아요.

 

한 가지 변화한 점은 이 책을 쓰면서 (말씀해주신) 유연성이 생긴 것 같아요. 제가 무던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근데 신경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죠.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된 듯해요. 예를 들어, 자전거 안장 높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건 자전거 잘못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걸 받아드리기도 쉽지 않은 일이죠. 제가 배운 것은 그런 것들인 것 같아요. 자전거 안장은 높지만, 제가 탈 수 있는 것은 없으니 타고 가야 한단 생각.

 

강윤정: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대목이 있으신가요?

 

김현우: ‘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부분에 있어서 제가 드릴 말씀은 사실 없어요. 그래도 여행이고 출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확인’을 해나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여행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은 타인에게 친절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여행객은 현지인들에게 도움받아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일방적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기꺼이 그렇게 해주죠. 신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점들을 모아서 적어둔 부분이 있어요. 208쪽에 말레이시아 시골 식당 이야기에 그런 내용이 나와 있어요. 모두 처음 본 사람이고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그런 좋은 만남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여행은 뜻밖에 힘이 세요. 다시 여행길로 떠나게 하는 힘이기도 하죠. 사람이 이익만을 위해서 친절한 것이 아니에요. 그대로 친절하게 만들어져 있어요. 그 부분을 여행에서 알게 된 거 같아요. 이 책을 통해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주변에서 이런 일들을 확인하시고 그 힘을 느껴보라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 사실은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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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김현우로서 나누는 이야기

 

강윤정: 이제는 번역가로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얼마 전 타계한 존 버거의 책을 지금까지 총 8권 번역하셨어요. 타계 후 연락을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요.

 

김현우: 늘 보던 분을 못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실감이 나진 않았는데 이곳저곳에서 오는 연락을 받으면서 비로소 실감이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자꾸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존 버거하면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운이 좋았던 만남’이 아닐까 싶네요. 번역을 맡다 보니까 그런 맘이 더 커진 부분도 있고요.

 

강윤정: 책의 205쪽을 보면 존 버거를 직접 만나서 찍은 사진이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의 번역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어요?

 

김현우: 제가 존버거의 책을 많이 번역했다고 해서 친밀한 것은 아니에요. 그 작가에 대해 제가 말했을 때 그 말에 권위가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하나 말씀드리자면 아직 번역할 존 버거의 텍스트가 많이 있고 그럼에도 새로운 것은 이제 안 나온다는 거잖아요. 일 때문에 쫓기고 있지만, 번역하려고 책상에 앉으니 이젠 분량이 정해져 있단 사실에 그 텍스트들이 다르게 보였어요. 존 버거는 떠났지만 그가 살아있을 당시 쓴 작품을 제가 번역해 나가면서 그 속에서 어떻게 존 버거라는 작가를 고정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써나가야겠죠.

 

강윤정: 존 버거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분은 아니지만, 타계 소식을 많은 일간지에서 다뤘어요. 존 버거의 애독자, 혹은 번역자로서 독자분들을 위해 책 추천을 해주시겠어요?

 

김연수: 『A가 X에게』를 읽고 존 버거라는 분이 글을 참 잘 쓴다고 느꼈어요. 연애편지의 내용인데 저한테 맞더라고요. 존 버거 선생님은 낭만적인 상황을 객관적인 필체로 서술하면서도 과도한 낭만에 빠지진 않고요. 저는 그사이에 긴장감 같은 게 좋았어요. 『제7의 인간』 앞부분에 나온 시도 참 좋아해요. 터키 시인의 작품인데 읽으면 가슴이 뛰는 시죠.

 

김현우: 『A가 X에게』는 번역을 하면서 소설인데 정말로 연애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썼어요. 전 추천하자면 김 작가님이 말씀하신 『제7의 인간』이란 책을 추천할 수밖에 없어요. 잘 쓴 책이기도 하지만, 잘 쓴 것 이상으로 ‘책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구나’란 걸 느낄 수 있어요. 책이란 매체가 보여주는 가능성의 차원에서 그 범위를 넓힌 책이죠. 사진작가와 세밀한 공동작업을 하고 내용 측면에서도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하는데 읽다 보면 전 세계가 보여요. 어느 텍스트 간에 어떤 사진이 나와야 하는지 깊은 고민이 들어간 책이에요.

 

접근성이 더 쉬운 책으로는 『A가 X에게』요. 연애편지로만 읽어도 훌륭한 책이고 다른 것들을 볼 수도 있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은 『행운아』겠네요. 시골 마을에서 환자를 돌보는 보건의와 마을 사람의 관계를 보여줘요. 역사적으로 아픈 것을 치유해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본주의 사회의 소외된 곳에서 치유는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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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Q&A

 

강윤정: 네, 준비한 토크는 여기서 마무리 짓고 이제 독자들의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여행을 앞두고 두 분은 어떤 책을 챙기나요?

 

김연수: 출장 갈 때는 일과 관련된 책을 챙기죠. 제가 추천하는 바는 현지와 관련된 책을 챙기면 좋다는 거예요. 해당 여행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있어요. 나가사키에 간다고 했을 때 그걸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가져가서 읽으면 굉장히 잘 읽히죠. 그런 효과를 이용해서 평소 읽으려 했는데 어려웠던 소설을 찾아서 읽으세요. 사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되면 책 읽기는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어요. 그래도 현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한, 두 권 가져가면 좋을 듯해요. 현지에서 선물로 줘도 엄청 좋아하고요.

 

김현우: 준비해 가는 책은 거의 똑같은 것 같아요. 현지를 배경으로 한 소설책이나 평소 처리 못했던 책이겠죠. 3월에 브라질 가는데요. 드디어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읽겠네요.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지 관련 책을 읽으면 가서 보게 되는 풍경을 그만큼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돼요. 오사카 가기 전에 『반딧불 강』을 읽고 간 사람과 아닌 사람은 차이가 있죠. 현장에서 마주치는 사람, 풍경 같은 것들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해줄 거예요. 

 

아, 그리고 기념품처럼 책을 한 권 사오기도 해요. 시간이 나면 현지의 영어 서점을 들러서 해당 지역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고 한 권씩 골라와요. 그렇게 골라온 책이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이에요. 가져가고, 가져오는 책들은 현지와 관련된 책들이네요.

 

강윤정: 김연수 작가님도 여행 가서 꼭 하는 일이 있으세요?

 

연수: 저는 술 먹는 걸 좋아해서 동네 술집 가는 걸 좋아해요. 그 지역 술을 먹어보는 게 목적이죠. 그런데 굳이 여행 안 가셔도 돼요. 그 지역 관련 책이 있으면 구글맵을 통해 같이 봐요. ‘이 동네엔 이런 건물 있고, 이런 사람들이 살구나’ 느끼면서 내용을 쫓아가죠. 그것도 굉장히 훌륭한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속으로 들어가기에 굉장히 좋은 방법이죠. 다만 그 지역 술은 먹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네요.

 

김현우: 세계 주류 백화점에서 술 사셔서 책이랑 딱 놓고 드시면 되겠네요.

 

강윤정: 결국 집이 최고라는 마무리를 하게 됐네요. 다음 질문이에요. 38개 도시를 다니며 세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활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건너오다’라는 책 제목에 관한 PD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김현우: 38개 도시를 다닌 것은 저는 몰랐고요. 여권에 빈칸이 2장 남은 걸 기억해요. 책을 쓰고 나서는 ‘어떤 시기나 어떤 감정들은 더 이상 느끼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실감했어요. 그런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저라고 왜 미련이 남지 않겠어요. 하지만 ‘이제 그것은 없다’라고 이 책을 쓰면서 받아드린 것 같아요. 선생님하고 몇 번 만났을 때 제목이 그래선 안 된다고 하셨지만 버리지 못했죠.

 

강윤정: 추천사에서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나와 있어요. 작가님이 해주실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김연수: 저는 야구를 하다가 다리가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그래도 이틀 동안 일상 생활하다가 병원을 갔더니 십자인대파열이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너무 아픈 거예요. 알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을 정해주면 나와 분리가 돼요. 그것에 대한 ‘어게인트스’가 뒤따르죠. 근데 불평할 수 있는 것이 제대로 치료도 할 수 있는 법이에요. 의사가 십자인대 파열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그대로 살았으면 다리 쓸 수 없게 됐겠죠. 제가 글을 쓰고, 책을 써본다는 경험이 위 경험과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이라는 말이 아닌, ‘다룰 수 있는 능력’ 생긴다는 말이에요. 부끄럽긴 하지만 쓰기를 하길 잘했어요. ‘의사가 증상은 무엇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안에 있는 것을 내놓는 느낌이에요. 유연해지고,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것처럼 뭔가가 치유까진 아니겠지만, 다룰 수 있게 됐죠. 그런 경험이 글쓰기의 경험이었어요. 여러분도 글을 한 번 써보시길 바라요.

 

강윤정: 헤어지기 전에 인사말 한마디씩 하시겠어요?

 

김연수: 제가 뭐 북토크의 달인은 아니고요. 김현우 PD의 일이니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편하게 앉아있었어요.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게 인생 잘 사는 길이란 생각이 드네요. 몇 년 전부터 말로만 책을 쓰자고 했는데 그 말들이 반복되고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책도 나오고 다큐도 나오고 하니까 재미있었어요. 술자리든 어디서든 좋은 말들 많이 하고 계속하다 보면 좋은 일도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김현우: 저는 북토크가 처음이었고요. 책을 썼다는데 홍보해보라고 하면 잘 모르겠어요. 근데 중간단계마다 제가 포기하지 않고 해볼 수 있도록 한 친구의 조언이 있었어요. ‘나한테 분명 도움되는 작업일 듯한데 사람들한테 읽으라고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에서 친구가 ‘네가 그걸 왜 걱정을 하냐, 써 놓기나 해라’라고 말해줬죠. 그 말이 맞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읽어줬으면 좋겠다를 바라고도, 말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저는 잘 써내면 되는 거였어요. 그다음은 읽으시는 분들의 몫이죠. 무책임한 말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아요. 책이란 그런 것 같아요. 오늘은 친구의 말을 확인할 수 있던 자리였던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오늘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건너오다김현우 저 | 문학동네
『건너오다』는 김현우 피디가 다큐멘터리 기획 및 촬영을 위해, 그리고 그 사이사이 여행다운 여행을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기록한 글을 모았다. 많은 출장지 가운데 17개국 38개 도시를 추렸으며,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처럼 익숙한 곳부터 미국의 로렌스, 필리핀 아닐라오 등 다소 낯선 곳까지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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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상연(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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