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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책]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2월, 금주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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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는 인지 혁명, 농업 혁명, 인류의 통합, 산업 혁명의 무대 네 개로 이루어져있다. 무대마다 주연이 바뀌지만 극의 전개는 놀랄 만큼 비슷하다.

한 권만 뽑으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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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은 젊다 못해 어린 학문이다. 인간에게 신화 이외의 기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종으로서 변천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모두 19세기 후반의 아이디어들이다. 이처럼 어린 인류학이 번듯한 빅 히스토리를 완성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물리학이 2,600년 걸려 제출한 숙제를 인류학은 고작 200년 만에 끝냈으니 말이다.

 

현대 인류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7만 년 전 고향 땅 아프리카를 벗어나서 지구 전체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고고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이들이 향했던 유라시아,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는 텅 빈 땅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이미 호모 사피엔스의 사촌 격인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솔로엔시스 등 적어도 6종 이상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치명적인 종이었다. 그들이 이르는 곳마다 살고 있던 사촌들은 사라졌다. 여기에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가설들이 있다. 교체설과 교배설이 그것이다. 현대 유전학은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와 호모 에렉투스 등의 유전자가 약간 섞여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두 종이 적어도 분기 초기에는 유전자를 섞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지구 전체에서 수렵 채집으로 생활하던 호모 사피엔스는 또 한 번 대규모 이동을 시작한다. 이때에도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는 치명적인 종이며, 이번엔 호모 사피엔스 간 경쟁에서 한 편의 사피엔스가 거의 멸종하는 지경에 이른다. 바로 유라시아 인류의 신대륙 침략이다. 고작 한 무리에 불과한 유럽인의 도착과 함께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투항, 죽음, 질병과 함께 사라졌다.

 

어지간한 독자라면, 이쯤에서 이 책이 기존의 연구 성과 특히 『총, 균, 쇠』의 내용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것을 환히 알 수 있다. 저자 역시 미리 밝히고 있는 것처럼, 『사피엔스』가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한 인류, 또는 한 문명이 다른 인류나 문명을 만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두 무리 간의 어떤 문화사적인 차이점이 이런 의외의 결과를 만들었는지 밝히려 노력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저자의 통찰이 빛나는 대목이 많다. 일반적으로 수렵채집민의 생활은 농경민의 생활보다 고단했을 것으로 짐작하곤 한다. 농업혁명은 문명의 탄생에 필수적인 사항이며, 농경민은 수렵채집민의 진화한 형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진화의 역사는 이런 방향이 맞았지만, 농경민이 수렵채집민보다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더 진화했다고 해서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생물의 진화가 개체의 행복과 무관하듯, 문명 진화는 행복과 무관하다.

 

수렵채집 생활에서 인류는 하루 서너 시간의 노동으로 충분했다. 평균 수명이 짧았지만, 높은 유아 사망률을 감안하면 농경민에 비해서 짧은 인생을 살지도 않았다. 수렵채집민 중 일부가 단지 자연재해 등 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경작을 시작하고 이를 위해 정착할 곳을 찾은 순간부터 일종의 악순환이 시작됐다.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은 확장되었다. 수렵채집인은 다음 주나 다음 달에 대해 생각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농부들은 미래의 몇 해나 몇십 년이라는 세월 속으로 상상의 항해를 떠났다.”

 

가축을 기르고 한 곳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질병이 유행했다. 어느 해에는 식량이 남는 행운이 있었지만 이는 사회 계층화의 시작점이 된다. 땅과 집 개념이 생기고, 이렇게 공간에 매이면서 삶은 더 깨지기 쉬워졌다. 수렵채집민은 재해를 만나면 텐트를 옮기는 해결책이 있었지만, 농경민은 생활 기반에 매여 굶어 죽기까지 했다. 생산성이 늘면서 인구가 늘고, 그래서  생산성은 더 좋아져야만 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발전 단계를 꿰뚫는 단어는 ‘좀 더 큰 행복’이 아니라 ‘좀 더 빠른 성장’이었다.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건설을 통해 들여다 본 수렵과 농경의 전환점에 대한 가설도 흥미롭다. 터키 남동부 괴베틀리 테페에서 높이 5미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돌기둥이 발견된다. 건설 연대가 기원전 9,500년 전, 즉 수렵채집 시절의 유적이다. 괴테틀리 테페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은 작물화된 밀의 변종인 외알밀의 원산지이다. 이제까지는 농경이 발전하고 잉여 식량과 노동력이 생기면서 거대 건축이 시작됐다고 생각해왔다. 괴베틀리 테페의 증언은 반대이다. 인류는 거꾸로 지극히 비실용적인 거대 건축을 위해 농경을 시작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기존 인류학의 성과에 새로운 근거와 성찰들을 추가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로 유라시아인의 성공을 설명했다면, 유발 하라리는 여기에 화폐와, 종교, 근대 금융을 추가한다. 이를 통해 이 책 600여 쪽이 아주 선명한 일관성을 얻는다. 그리고 인지 혁명, 농업과 산업 혁명을 통해 무대는 바뀌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호모 사피엔스의 특성도 이 한 권을 꿰뚫고 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동물에 불과했던 인류를 지구 지배자로 이끈 비범한 능력은 바로 상상(想像)이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 게다가 이를 의사소통을 통해 집단적으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인류의 확장 비결이다. 상상은 공통의 신화가 된다. 화폐는 물건으로서 거의 쓸모가 없지만 그것이 적혀진 숫자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집단적인 상상을 통해 힘을 발휘한다. 도시, 국가, 화폐, 금융을 먼저 상상했던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흡수하는 것이 7만 년 동안의 역사였다.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 농업 혁명, 인류의 통합, 산업 혁명의 무대 네 개로 이루어져있다. 무대마다 주연이 바뀌지만 극의 전개는 놀랄 만큼 비슷하다. 곳곳에 들어앉은 저자의 해설은 일관되고 급진적이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모두 현대인의 삶에 투영된다. 무대는 객석까지 넓어지고, 책을 읽고 앉았던 호모 사피엔스는 처음으로 인류사 전체를 내려다봤다고 느낀다.

 

더 읽는다면…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저/김진준 역 | 문학사상

『총, 균, 쇠』를 읽은 후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와 마빈 해리스를 다시 펼쳐봤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류학은 이 책을 경계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이라고 느꼈다. 풍부한 현지 조사 경험, 문화권을 아우르는 넓은 시야를 함께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참 드문 일이다. 여기에 자기 주장의 근거를 언어학, 생물학, 지질학에서 능숙하게 끌어다가 들이미는 해박함도 놀랍기까지 했다. 이 책이 2016년 어느 기업의 신년 하례식에서 자주 언급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의 현실에 주는 메시지가 그만큼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넓게 과거를 살피는 데에 더해 현재에 영감을 주는 놀라운 책이다.

 

 

 

 

야노마모

나폴레옹 샤뇽 저/양은주 역 | 파스칼북스

'안락의자 인류학자'라는 말이 있다. 현지 조사가 부족한 인류학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 나폴레옹 샤농을 이렇게 비판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마존 야노마모족을 30년 동안 방문, 함께 생활하며 가족 관계, 촌락 간의 대립 관계, 생활상을 연구했다. 샤뇽은 '미개하지만 때 묻지 않은 윈주민'이라는 일부의 선입견과 선을 그으면서 책을 시작한다. 야노마모족은 사나운 부족이며, 남자들의 상당수가 결국 부족 내외의 갈등과 폭력 때문에 죽는다. 문명 이전의 생활을 통해 인간 전체에 대해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으며 찬찬히 살피는 시선이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해서 아주 잘 읽힌다.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제카리아 시친 저/이근영 역 | AK(이른아침)

제카리아 시친의 지구 연대기 3부작 중 첫번째 책이다. 제카리아 시친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인류사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이라는 평과 함께 '기발한 공상과학소설'이 평이다. 바퀴, 고층 건물, 의학, 조각, 보석, 도시, 법률, 문자, 달력은 모두 수메르 문명이 남긴 것들이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불쑥 솟았다. 수메르의 문헌, 유적, 신화를 통해 제카리아 시친이 내린 결론은 "수메르 문명은 OOO의 문명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당신의 판단이 어떨지 예상하기 힘들다. 아마 '해답을 얻었다', 혹은 '정신 나간 헛소리'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거나 30페이지쯤부터 책에 빠져들 당신을 위해, 시친의 해답은 'OOO'으로 적었다. 스포일러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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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금주(서점 직원)

chyes@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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