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
『역사와 책임』 출간 기념 강연회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역사와 책임』 안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의 모순과 고통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역사와 책임』은 대답을 대신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들춰 보인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와 책임』은 지나간 대한민국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년간 쓴 열편의 글을 내보일 뿐인데, 그 이야기는 우리를 훨씬 더 먼 곳으로 이끌고 간다. 가깝게는 2012년 12월의 어느 날부터 멀게는 70여 년 전의 어느 때까지, 털어버리고 싶거나 재현하고 싶은 순간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간다. 이곳의 이야기가 이곳만의 이야기로 끝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의 표지에 적힌, 작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하나의 문장이 해답을 말해준다. “바로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책에 실린 글들은 현 정권 집권 2년 차에 벌어진 사건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고, 전시작전권의 회수가 사실상 포기되고, 조작 간첩 사건이 발생한, 그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한홍구 교수가 그러했듯, 우리는 각각의 사건들을 보며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배와 승객들을 ‘버려둔 채’ 홀로 탈출한 선장의 이야기는 국민을 기만한 채 홀로 ‘도망쳤던’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오래 전 사어가 된 줄 알았던 ‘내란음모죄’와 ‘간첩’이라는 단어는 보란 듯이 생환 소식을 알려왔다. 누군가 시간을 되돌려 놓은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문제적 상황에 놓인 존재가 늘 그러하듯, 우리는 묻게 된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던 걸까. 한홍구 교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역사와 책임』 안에서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족속이란 말인가?”라고 묻고 “대한민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민주화 운동은 친일파 민족 반역자들이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며 지배해온 현실을 얼마나 변화시켰을까?”라고 또 묻는다. 그리고 숨어있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저자의 뒤를 따르며 독자들은 궁금했다. 더 뒤로, 더 오래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 그곳에 ‘진실’이 있기는 할까. 그것이 지금의 혼란과 모순을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져야 하나. 이에 응답하듯 한홍구 교수는 독자들을 이끌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속 깊숙한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난 18일,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 1’에서 시작된 여정이었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운명
한홍구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준석 선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대한민국호를 버렸던 선장들’의 역사가 되살아났다. 국민을 버렸던 대통령과 민족을 배반했던 자들은 살아남았고, 삶의 터전에 남아 가족과 이웃을 지켜낸 자들을 몰아내는 데 열중했다. 자신들의 과오를 덮어두기 위함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빨갱이가 되었고, 친일파는 공안권력이 되었다. 그런 순간들이 이어져 현재에 이르게 된 과정을 간단하게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한홍구 교수는 단언했다. “사건이 많은 것 같지만 흐름은 단순한 거예요. 나라 팔아먹은 친일파들이 군사독재 했고,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이 민주화운동 하고 노동운동 하는 거예요.”
그의 말을 뒷받침해주는 역사적 사건들은 너무도 많다. 몇몇 순간만을 추려서 전하는 것이 단편적일 수는 있으나, 저자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입증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독립운동가였던 정정화 선생이 한국전쟁 이후 부역자로 처벌받았다는 사실이나, 당시 선생이 마주했던 경찰 중에는 일제강점기에 고등경찰로 근무했던 자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 백범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를 두고 그에게 지령을 내렸던 김창룡이 ‘의사’라고 지칭했던 일, 안두희의 동생은 연세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는 사실, 최근 재건된 서북청년단의 위원장이 “서북청년단 안두희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다”라는 있을 수도 없는 발언을 한 점 등이 모두 그러하다.
더욱 비극적인 사실은 역사가 진일보하려 했던 순간이 있었음에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한홍구 교수가 들려주는 ‘제헌헌법의 참모습’은 우리가 놓쳐버린 기회들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제헌헌법 제18조에는 노동 3권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헌법과 마찬가지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죠. 그런데 또 다른 권리가 있어요. ‘이익분배 균점권’이라고 해서 ‘기업에 이익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이 함께 나누어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 거예요. 그리고 84조에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적혀있어요.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으면 돈이 없어서 먹지 못하거나 배우지 못하거나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사회정의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내용들을 제헌헌법에 담아놓은 사람들은 좌파가 아니었어요. 우파였어요.”
제헌헌법의 87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이와 관련해 한홍구 교수는 “지금은 이러한 기업들이 민영화가 아니라 사유화가 되었다”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제헌헌법에 대한 해설이 담긴 『헌법해의』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 책을 쓴 유진오는 제헌헌법의 초안을 작성했던 인물로 초대 법제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유진오 박사는 『헌법회의』 초판에서 경제조항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경제 문제에 있어서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국가의 체제를 폐기하고 사회주의적 균등의 원리를 채택”했다고요. 제헌헌법을 만든 이들은 우파인데도 균등을 강조했던 거예요. 임시정부가 약속했던 내용이나 독립운동가들이 간직했던 꿈과 다르지 않죠. 조금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을 뿐이지 기본적인 내용들은 이어받고 있었어요. 그리고 유진오 박사는 헌법안 제1독회에서 제헌헌법안에 대해 제안 설명을 하면서 “이 헌법의 기본 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를 꾀하려고 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어요. 경제 민주화가 갑자기 나온 이야기가 아닌 거예요. 아주 오래된 꿈인 거죠.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게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예요.”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은 이유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예견된 방향과는 다른 곳으로 나아갔다. 한홍구 교수는 남로당 사건과 반민특위 습격 사건, 백범 선생의 암살을 기점으로 친일파가 권력을 확립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멀리 일제강점기 시절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 자들은 권력의 한복판에 서있었다.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반민특위 습격 사건으로 무죄를 선고 받은 박종표는 김주열 열사를 향해 최루탄을 쏘고 바다에 유기했으며, 역시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던 노덕술은 이후 서울지역 부역제의 처벌 책임자가 되었다. 시간이 더 흘러 80년대가 되어서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들의 역사는 계속 이어졌다.
“영화 <변호인>을 본 후에 기분이 참 착잡했습니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는 이곳에 없잖아요. 그런데 차동영(곽도원 분)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현실에서 차동영과 제일 닮은 사람을 꼽는다면 이근안일 거예요. 그 사람은 김근태 전 의원이 죽어갈 때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신은 고문을 하지 않았다고, 빨갱이를 엄하게 심문했을 뿐이라고, 자신은 애국 했다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거라고 말했어요. 영화 속에서 차동영 같은 사람은 최순애(김영애 분) 앞에 무릎 꿇려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아마 그는 사죄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힘이 미약하니까요. 그렇다면 최소한 역사의 법정에는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를 현실의 감옥에 가두지는 못했지만, 역사의 법정에는 반드시 세워야 할 거예요.”
정의는 멀어지고 권력 역시 정의를 위해 기능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홍구 교수는 기록을 택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이들의 행적을 낱낱이 조사해서 기록하는 일. 『역사와 책임』은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력함에 빠져버린 이들을 격려했다. 재현되는 비극과 절망의 순간 앞에서 좌절감과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선장이었고 항해사였고 갑판장이었고 기관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호가 침몰하지 않았어요. 비틀대면서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상당한 복원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선장은 도망갔지만 선원들은 남아서 지켰던 거죠. 세월호가 그랬듯이요. 저는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사는 분명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가 변화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한국 민주주의가 출발한 지점을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온 것도 우리가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자신을 믿고 나아가면 됩니다. 여러분이 역사의 주인이고 대한민국의 주인이잖아요. 대한민국의 역사는 여러분이 몸으로 기억하는 거예요. 그렇게 대한민국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기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홍구 교수는 한 장의 사진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태동을 말했다. 사진은 경산에 위치한 코발트 광산을 촬영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져 폐허로 남은 곳이었지만, 그곳에도 힘겹게 틔운 새싹이 자라고 있었다. 저자는 바로 그 모습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닮았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강조했던 복원력은 어쩌면 끈질긴 생명력의 다른 말일지도 몰랐다. 흔들릴지언정 침몰하지 않고, 척박한 곳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역사와 책임』이 요구하는 책임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 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역사와 책임』 11쪽)
역사와 책임 : 한홍구 역사논설 한홍구 저 | 한겨레출판
이 책은 박근혜 정권 2년차, 구체적으로는 비서실장 김기춘의 등장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까지의 기간 동안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바라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교훈을 찾는 내용이다. 특히 이런 문제의식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기까지는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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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기시감(旣視感)을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1970년대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아니 1940년대, 1950년대와는 또 얼마나 다른가? 왜 부끄러운 역사는 극복되지 않고 반복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 앞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