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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소설 쓰기, 질문을 가지고 시작해요”

예스24와 문학동네가 함께한 소설학교 2편 은희경 작가 "끝까지 개인으로 늙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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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소설작법부터 그가 좋아하는 작중 인물, 작가의 나이듦과 그가 듣는 음악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모든 것을 묻고 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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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진희의 내밀한 이야기에 마음 빼앗긴 문학소녀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혹은 어른인 척 하게 되어 버린 소녀의 날선 독백에 가슴 찌릿하게 공감하던 기억.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삶의 이면’을 ‘일찍부터’ 보게 된 강진희의 내면에 작가 은희경이 있으리라는 생각 또한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터다.

 

예스24와 문학동네가 함께 주최하는 소설 학교 2회의 주인공은 은희경이었다. 지난 4월 6일, 작가 은희경을 만나러 온 100여 명의 독자 가운데는 진희와, 『새의 선물』과, 은희경의 소설, 문학 세계, 그리고 은희경 그 자신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안고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은희경의 소설 작법부터 그가 좋아하는 작중 인물, 작가의 나이듦과 그가 듣는 음악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모든 것을 묻고 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오은 시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사전에 독자들이 보낸 질문으로 진행되었고, 약 2시간에 걸친 시간 동안 은희경의 어린 시절과 가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폭넓게 오갔다.

 

근황을 묻는 오은 시인의 질문에 은희경 작가는 "최근 계간지에 발표할 소설을 쓰다가 결국 중단했다"고 답했다. 그 외에 서울성곽 일주를 마친 근황을 전하기도 했는데 소설이 너무 안 써져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있었다는 것. 작가는 ‘소설 학교’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행사에 대해 그저 소설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고민하는 것을 이 자리를 통해 하소연하고 싶다며 웃었다.

 

은희경, 내가 작가가 되기까지

 

오은 시인의 첫 질문은 언제, 어떤 이유로 작가를 꿈꾸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알려졌듯이 은희경은 30대에 데뷔를 했다. 작가가 되기 전까지의 공백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히 일어났다.

 

은희경: 작가가 된 지 21년째인가 그럴 거예요. 그동안 어쩌면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직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제게는 다른 꿈이 없었어요. 꿈같은 게 아예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순서에 맞게 부모의 기대, 선생님의 기대, 모든 이데올로기나 기득권의 기대에 맞춰 살려는 소심하고 틀에 박힌 인간이었기 때문에 말이에요. 책도 많이 읽고, 글 쓰는 데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다른 잘하는 게 없으니까 그냥 작가가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고요.

 

작가가 되기 전에도 글과 관련된 일들을 계속 하고는 있었어요. 외국 영화를 소설로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책 광고가 영화 광고보다 값이 싸니까 영화 포스터를 책 광고처럼 낼 수 있어서 영화사에서 책으로 만들어 영화 광고를 했었거든요. 두 권 쯤 외국 영화를 보면서 소설로 만들었는데, 너무 잘 써버린 거예요.(웃음) 야단맞았어요. 없는 장면을 넣고 그래서요. 아무튼 그런 걸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욕망을 조금씩 해소했던 것 같아요. 그런 건 모아두었다 내 글을 쓸 때 써야 하는데 그때 그런 욕망을 소비해버렸지 않나 생각도 들어요. 글과 가까이 있었지만 소설가의 꿈은 너무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했었죠. 30대 중반이 되니까 ‘이게 내 인생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도 내가 선택한 건 없고, 숙제하듯이 산 것 같았어요. 내 인생은 긴 숙제를 한 것뿐이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뭔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강하게 들었죠. 쓰다가 늘더라고요. 어느 독자가 『새의 선물』이 제일 좋다고 하면, 계속 썼기 때문에 계속 늘어서 최근작이 제일 좋은데, 속으로 생각하기도 해요.

 

역시 『새의 선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운 작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은 시인은 『새의 선물』을 멀리 하고 싶진 않은지 물었다. 

 

은희경: 제가 써온 이야기의 원형 같은 게 있기 때문에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책이고요.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도록 경제적인(웃음) 부분을 마련해주는 책이기도 하기 때문에 제게 중요한 책인데요. 처녀작은 그런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이렇게 안 썼겠다, 싶은 장면도 있긴 한데 그렇기 때문에 더 힘이 있다는 느낌은 있어요. 서툴고, 진심이 보이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거기서부터 계속 나만의 방식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왔고요. 그래서 항상 최근작에 가장 큰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남의 시선을 싫어하게 된 것은. 한동안은 누가 나를 쳐다보고 수군거리기만 해도 엄마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했으며 남에게 그것을 눈치채이기 싫어서 짐짓 고개를 숙여버리곤 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남에게 관찰당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나는 누구보다 일찍 나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했다.


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중략)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
-『새의 선물』23쪽

 

작가는 진희와 닮은 사람이었을까. 청소년기를 묻는 질문에 “제 청소년기를 싫어해요.”라고 답한 은희경. 동의하지 않는 규범들에 순응하고 협조했던 자신의 모습 때문이었다. 

 

은희경: 『소년을 위로해줘』에서 싱글맘이 나오는데 엄마가 자녀의 학교에 가는 장면이 있어요. 학교 가기 싫다, 고 하면서 저의 감정이 많이 나왔었는데요.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협조하고, 그 이데올로기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던 그때의 ‘나’가 싫은 거예요. 그런 세계에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었죠. 칭찬 받으려고 했고요. 한 번은 동창회를 갔어요. 작가가 된 후 내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성취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는데 그곳에 가니까 옛날 교실로 그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때의 ‘나’, 규칙 같은 건 싫고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규범을 따르고 열심히 좋은 학생이 되려고 노력했던 모습 그대로 돌아가더라고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생각했어요. 동창들 만나는 걸 두려워해요.

 

하지만 작가의 싹이 트던 그 시절, 은희경은 책에 푹 빠져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고, 일찍부터 글도 많이 썼다.

 

은희경: 책을 많이 읽었죠. 그런데 티를 너무 많이 냈어요.(웃음) 허세가 많고, 글을 써도 굉장히 아는 척 하고, 이상한 용어 써가면서 나만 아는 걸 쓰고 그랬어요. 마음에 안 들어요. 흑역사예요.(웃음) 질문이 없는 아이였어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읽은 것도 별로 없는데 포장되어 있다고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들킬까봐 질문하기를 굉장히 두려워했어요. 또 어떤 것을 주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그런 친사회적인, 교육 받은 틀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내 생각으로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여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진정한 수긍도 없고 진정한 부정도 없었고 내가 아니었던 거죠. ‘나’인 척 하는 ‘나’인 거죠. 제 소설의 주된 흐름 중 하나가 이게 진짜 ‘나’냐, 보이기 위한 ‘나’냐, 남의 기준에 맞춰 사는 것을 너라고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이 좀 많은데요. 결국 그때 ‘나’를 싫어했던 것조차 제 문제의식이 된 거겠죠.

 

학창시절 작가에게 글을 쓰는 데 큰 영향을 주었던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은 꾸미기 좋아하고, 화려한 글을 썼던 작가에게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이끌었다.

 

은희경: 만 5살에 학교에 들어갔어요. 전북 고창이라는 조그만 읍에서 자랐는데, 부모님이 굉장히 교육열이 높으셨어요. 저를 정식으로 입학시킨 것이 아니라 체육시간에 아이들이 운동장에 뛰어노는데 가서 같이 뛰라고 저를 밀어 넣으면서 학교생활이 시작됐어요. 정서적으로 결락이라고 할까 이런 것을 못 채웠던 것 같아요. 성년이 될 때까지 모든 집단에서 가장 어렸고, 내가 나를 이해시키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 것 때문인지 처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었고 친구들에게 따돌림도 좀 받았어요. 함께 뭘 하면 규칙을 잘 못 익히고 그런 것 때문에 겁을 많이 내고, 타인을 두려워하다보니 제 소설집 제목 『타인에게 말 걸기』도 결국 그런 의미에서 시작된 거였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었어요. 책을 읽을 때 자유로웠어요. 철든 것처럼 보여야 하고, 선생님께 칭찬 받고, 그렇게 보여진 인생에서 해방되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말이에요. 그때 선생님이 글짓기를 시키셨어요. 그 선생님이 굉장히 의욕적으로 시키셨는데 알고 보니 박범신 선생님과 대학 동창이라고 하셨어요. 실패한 문학청년 같은 분위기였어요. 제가 좋아했죠. 하라는 대로 열심히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수업 후에 남아서 한 장 씩 뭔가 쓰고 가고 그랬어요.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선생님이 “바람은, 바람은, 요술쟁이, 이렇게 쓰는 애들 맞는다.”(웃음) 하시곤 했어요. 그 시대의 이오덕 선생님 같은 분이셨나 봐요. 글을 꾸미지 말고 진짜 쓰고 싶은 얘기, 마음에 있는 얘기를 쓰라고 가르치셨어요. 제게는 이야기가 많으니까 시가 아니라 산문을 써야 한다는 말도 해주시고요. 선생님이 만족할 때까지 고쳐 쓰고 그랬어요. 직접적인 글쓰기 선생님이라고 하면 그 선생님이었을 거예요.

 

제가 소설가 되면서 철저하게 걸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중에 제가 너무 감정적인 사람이라 건조하게 써야겠다, 이런 부분을 스스로에게 강조하곤 해요. 화려하게 쓰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간명하게 써야 한다, 이런 것을 스스로 많이 다짐을 주려고 하는 편이에요.

 

작가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 덕에 이른 나이에 학교를 들어갔지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소설가가 되기까지 온 세계가 다 도왔”다고 생각한다.

 

은희경: 부모님이 교육열이 높으셨어요. 젊은 부모님이시고요. 동갑이에요. 집안 분위기가 상당히 민주적이고 애정 표현도 자유로운 편이었어요. 아버지가 책을 많이 사다주셔서 아버지 올 때까지 잠 안 자고 기다리고 그랬어요. 얼마 전 고모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사주셨느냐하면 처음 문자 익힐 때 문자의 내용도 같이 들어온다,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 라고 생각을 하셨다는 거예요. 교과서만 보고 자라면 안 된다, 다른 생각을 골고루 할 수 있는, 이른바 텍스트를 이야기에서 찾게 하셨던 거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내가 소설가가 되기까지 온 세계가 다 도왔구나(웃음) 생각했어요.

 

책을 통해 세계를 알아갔지만 일찍부터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인식하게 된 작가. 작가는 또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보다 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 흥미롭고 좋았다. 
 
은희경: 작년에 저희 어머니가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이라는 조금 민망한 상을 받으셨는데요. 큰 효도잖아요.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받았어요. 새 옷을 사고, 새 구두 신고, 시상식 전날 미용실에서 머리 하시고, 예쁘게 하고 아침 일찍 시상식장에 갔어요. 그 상이 여러 분야가 있었어요. 어떤 분 어머니가 지방에서 차를 타고 레슨 뒷바라지를 했던 얘기며, 장애 있는 자녀를 뒷바라지 한 감동적인 스토리들이 나오더라고요. 그럴수록 저희 어머니는 점점 고개를 숙이시고요. 하지만 미안한 생각은 많이 안 들었어요. 왜냐하면 문학이라는 것은 그런 뒷바라지가 아니라 제발 가만히 놔두는 게 도와주는 것이잖아요. 책을 사주고 가만히 놔뒀으면 그게 최고의 뒷바라지인 거니까요.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죠. 혼자 내버려둔다는 것도 부모로서는 굉장히 힘든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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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은희경에 대해


이어 ‘소설 학교’에 맞게 쏟아진 독자들의 질문에 대해 작가는 깊이 있고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먼저 ‘처음’에 대한 질문. 소설을 처음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답은 “스토리를 구상하고 쓴다. 하지만 사라져버린다.”였다.

 

은희경: 쓰기 전에 굉장히 구상을 많이 해요. 소설 쓸 때 처음이 제일 힘들어요. 첫 단계에서는 소설을 다시는 못 쓸 것 같아요. 매번 그래요. 20년을 쓰고도 처음 소설을 시작하려면 너무나 막막하고요. 플로베르의 책을 보니까 ‘너무 완벽한 자식을 만들려다 아기가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줄거리나 캐릭터가 정해져야 쓸 수 있거든요. 하지만, 구상대로 쓰는 법이 절대 없어요. 수많은 구상을 하지만 그게 필요한 건 발 내딛을 명분, 도움닫기일 뿐이지 그대로 가는 일은 없어요.

 

첫 문장도 수없이 많이 생각하지만 그 문장을 그대로 사용한 적은 거의 없거든요. 하지만 그 첫 문장이 없으면 다음 문장은 생각해 낼 수 없잖아요. 많은 걸 구상하고 이제 됐다 싶어 책상에 앉지만 결국 다른 얘기가 나오는 것, 그게 소설 쓰기의 재미 같아요. 다른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 처음 쓰려던 얘기를 그대로 쓰려고 하면 재미가 없고요, 얘기가 풀리질 않아요. 안 풀린다는 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아직 안 나온 거예요.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발견하기까지가 구상하는 그 과정이에요. 이야기를 쓰다가 원래 내 마음 속에 있던 그런 얘기와 딱 만나면서 그때부터 막 흘러가요. 그런데 마주치기까지가 너무 고통스러워요. 때로는 결국 그걸 못 만나서 어느 정도 썼다가 덮어버리는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야기가 사라지진 않는다. 이야기들은 작가에게 쌓여 있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와 만났을 때, 다시 이야기가 되어 작품 속에 모습을 드러낸다. 은희경에게는 소설의 주제 또한 ‘처음’과 마찬가지다. 질문으로 시작할 뿐이다.

 

은희경: 저는 주제를 정해서 쓰는 게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 시작을 해요. 나는 왜 이런 문제로 계속해서 고통 받을까, 왜 우리는 계속 어긋나는 것일까,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는데 왜 그런 걸까, 그런 질문을 가지고 소설을 시작해요. 저는 그냥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뭘 쓰게 될지 잘 모르고 그냥 쓰는 거예요. 다 쓴 후도 주제를 부각시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제 작품에 대해 설명을 못하겠어요. 가끔 외국 작가를 만날 때도 ‘그럼 선생님은 무슨 소설을 쓰십니까?’라고 하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최근 조진주라는 음악가와 인터뷰를 했었어요. 같은 예술가로 통하는 지점이 재미있어요. 대화가 즐거워서 오랫동안 얘기를 했는데 그 분 하는 말이 제 소설은 줄거리는 생각나는 게 거의 없는데 캐릭터와 상황은 너무나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말하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줄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어요. 줄거리는 경우의 수로 만들면 돼요. 그보다 어떤 상황에서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 감정의 결들, 그런 것들을 따라가 보고 싶은 거거든요. 저는 계속해서 질문하는 소설가에 가까운 것 같아요. 단답형으로 말하자면, 스토리를 구상하고 쓰지만 사라져버린다. 도움닫기만 시켜주고 사라지는 것이 제가 구상을 하는 이유예요. 구상을 하지 않으면 시작이 안 되니까요.

 

소설을 쓰기 전에 작가는 어디서 영감을 얻을까? 은희경에게 소설쓰기는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질문이 생기는 순간, 특별한 지점이 있을 것이다.


은희경: 상투적일 수 있는데, 열심히 살아요. 자기를 방치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떤 게 소설이 될지 모르니까요. 새로운 것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있고, 정리 안 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항상 질문을 품고 있고, 되도록 많은 일을 겪어 보려고 하고요. 그런 것이 어떤 태도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작가의 말에서 ‘소설가의 삶이 소설이 된다’고 말을 했는데요. 어떤 소설을 썼다면 그건 현재 내 삶에서 내가 이른 지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늦게 소설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한편으로는 제가 서른다섯 살까지 세상에 대해서 할 얘기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정답만 맞추려는 사람에게는 질문도 없고, 나만의 관점이라는 것도 없겠죠. ‘이게 아니었구나, 그럼 뭐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부터 그러한 나에 대해, 질문에 대해 이야기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소설가가 되려고 하는지, 당신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그걸 먼저 아는 게, 확실한 할 말이 있는 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아요. 제 경우 소설을 쓰게 만드는 것은 글솜씨도 아니고, 자기불행도 아니고, 고통만도 아니고 결국은 할 말이 있었다는 거예요. 소설이 어떤 이야기를 옮기는 게 아니잖아요. 자기 관점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은희경 작가는 ‘왜 그러는 걸까?’하는 질문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삶을 늘 관찰하고, 자연스럽게 주변 인물들을 관찰한다.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이다.


은희경: 어떻게든지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해야 하잖아요.(웃음) 타인을 통해서 내 속에 있는 욕망이나 문제를 보고 이야기를 만드는 건데 타인으로부터 그런 영감이 없으면 안 되니까요. 되도록 다른 캐릭터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도 있어요. 자신의 고향 반경 얼마를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보고 겪어온 친근한 이야기를 썼다는 작가들을 보면 묻고 싶어요. 앨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같은 이야기를 보면 자기 주변에 있었던 일들을 소설로 만든 느낌이 들잖아요. 이런 얘기 써도 될까?(웃음) 싶어져요. 그럴 때는 더 세게 써야 돼요. 절대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하려면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든지 자유분방한 여성들을 쓸 때 시댁에서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서 오히려 더 과감하게, ‘설마 이게 자기 얘기겠어?’ 할 정도로 쓰는 바람에 소설이 더 과격해진 부분이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처음 글을 쓰겠다고 집을 떠나와서 나를 여러 개의 나로 나눠봤어요. 여자로서의 나, 딸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나, 그런 식으로 좁혀서 쓰는 거예요. 어려운 건 좁히는 거예요. 많은 게 한꺼번에 나오면 흐름이 안 만들어지거든요.

 

실제 많은 작가들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작품에 녹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자신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고 작품과 거리두기가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희경: 쓰다보면 얘기가 많이 늘어져요. 초고는 창피할 정도예요. 사후에 초고가 발표되는 악몽을 꾸기도 해요. 초고는 상당히 유치한데 유치하다는 것은 자기 절제를 못한다는 얘기잖아요. 제 소설에 남성화자가 많이 등장하는 건 거리를 조절하기 위해서기도 해요. 대상화자라고도 하죠. 그런 인물이 많아요. 『아내의 상자』처럼 아내가 주인공인데 남편 입장에서 이야기를 끌어간달지 거리 유지를 하려고 여러 가지 장치를 생각하는 편인데요. 저에게는 쓰고 나서 ‘말이 되나?’ 이게 가장 중요해요. 마지막 질문이 그거예요. 그것은 치우치지 않았느냐는 뜻이죠. 객관화되었느냐는 뜻이에요.

 

많은 걸 생략해야 해요.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얘기는 다 생략해야 하거든요. 좀 서툰 작품을 보면 일상적인 것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대화를 다 써요. 그러면 이야기가 상당히 늘어져요. 빼면 뺄수록 이야기가 더 잘 통해요. 설명을 안 해도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을 잘라낸다는 것이 오히려 주인공 편을 들어주게 돼요. 독자를 개입하게 하니까요. 다 설명해주면 독자의 개입이 안 돼서 인물에 대한 호감이 잘 안 생겨요.

 

사물에 대입하는 방법도 있잖아요. 『태연한 인생』이라는 장편에서 사용한 장면인데요. 굉장히 여러 상황이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인데 거기서는 설명을 하면 안 돼요.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죠. 대신 바깥을 보는데 커다란 나무 그림자가 아주 아름답게 레이스를 펼친 것처럼 잔디밭에 펼쳐져 있다가 스러지는 오후의 장면만 썼어요. 절박한 심정을 다 쓰고 싶지만 다른 장면으로 돌리는 것, 그런 것들이 문학에서 ‘낯설게하기’ 이런 말로도 표현하는데요. 책을 많이 읽으면서 다른 작품을 통해 배우는 거죠.

 

소설을 쓰려면 경험이 풍부해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소설가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들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까? 작가의 방법이 궁금했다.


은희경: 어떤 글에서 ‘소설을 쓸 때 30%의 직접 경험과 70%의 간접 경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어요. 간접 경험이라는 것은 결국 독서죠. 읽는 것밖에 없어요. 돈도 제일 적게 들고, 시간도 제일 적게 드는 것이 책을 읽는 거죠. 누군가가 완전히 알아낸 것을 좋은 편집자가 잘 다듬어서 만들어놓은 책을 읽는 것만큼 경제적인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뭔가 막혀 있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싶을 때는 무조건 읽어요. 소설을 처음 쓸 때 제일 먼저 하는 것도 일단 집을 떠나는 것, 익숙한 공간에서 떠나는 것과 무조건 읽는 거예요. 다른 정도(正道)가 없는 것 같고요.

 

가끔 생각의 사생활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소설 쓰는 사람은 굉장히 바빠요. 시간이 없어요. 일단 많이 읽어야하기 때문에 남들과 똑같이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읽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니 바쁘기도 하지만 그보다 시급한 건 혼자 있는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혼자 있는 시간, 자기 자신과 독대하는 시간이 적으면 뭘 만들어낸다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종종 얘기해요. 더불어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일들, 쓸데없는 일, 가령 무지개를 찍는달지 내가 좋아서 꽃을 한참 보고 있는달지 그런 것들을 할 때 어쩐지 자기 자신이 숭고한 존재 같지 않나요? 이런 은밀한, 자기만의 사적인 내가 있다, 그런 순간이 저는 참 좋아요. 공원에 가서 혼자 멍청하게 앉아 있거나 하염없이 꽃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요. 인간이 원래 아등바등 어떻게든 뭘 성취하려고 하는 것 말고 저런 쓸모없는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저 사람의 고유성일 텐데 하는 생각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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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은희경에 대해


내 인생은 평범하지만 특별하고 결국 전혀 특별할 것 없대도 있는 그대로 좋다’라는 문장은 독자가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통해 정립한 인생관에 가까운 문장이다. 작가의 인생관, 여성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속 인물에 대해 물었다.

 
은희경: 저 말, 저런 얘기는 쓰고 싶었고요. 특히 저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게 『소년을 위로해줘』를 쓸 때였어요. 드물게 해피엔딩이고요. ‘위로’라는 말은 좋아하지 않는 말이긴 해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서툰 위로, 미봉적인 위로는 우리를 자꾸 오답에 적응하게 만들고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소년을 위로해줘』를 쓸 때는 까다롭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 인생인 채로 받아들이자, 하는 생각이 강했을 때였어요. 그래서 그런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어느 독자께서 ‘선생님 소설은 열심히 살라고 채찍질하지 않아서 위로가 된다’는 그런 말을 하셨어요.


여성관이랄까 그런 부분은 특별히 구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느 인터뷰에서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 묻기에 ‘네, 저는 휴머니스트입니다’라고 답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페미니스트가 제게 싸우지 않는다고 비난한 적도 있었어요. 저는 구분 짓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런 입장이에요. 구별은 있겠지만 차별은 어떤 규정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라서 ‘여성다운 것’, ‘남성다운 것’ 모두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인간이고, 하나의 개인이라고 생각하려고 애를 써요. 예전에는 ‘여성작가 특집’ 같은 게 있었어요. 특별한 일이라는 거잖아요? 그런 차별이 싫다는 뜻에서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작품을 제 나름대로 페미니즘적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녀가 술을 따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것은 누가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반면 나는 잔이 돌 때마다 별 거리낌 없이 병을 들어서 잔을 채웠다. (중략)학과장은 내게도 의견을 물어왔다.


“강 선생은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술도 잘 따르고 술값도 잘 냅니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79~80쪽

 

글쓰기가 잘 되지 않을 때가 궁금했다. 작가 역시 사람이니 언제나 꾸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작가만의 방법이 있을까?

 

은희경: 안 될 때는 다른 것을 해요. 바꿔보는 거예요. 렌즈를 간다고 할까요? 그때 억지로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결국 소설쓰기는 발견이라고 생각해요. 억지로 하는 건 내가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일단 피해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죠. 소설을 쓰다보면 ‘이때 지면 안 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여기서 포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기가 참 어려운데 그런 촉이라는 게 쓸수록 조금씩 발달하는 것 같아요.

 

포기했다가 나중에 다시 쓰는 경우도 많아요. 버렸던 건데 다시 쓰게 되면 그건 다른 얘기가 되죠.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는 소설은 남자가 다이어트 하는 이야기예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들이기 때문에 자기 몸을 거부함으로써 제 몸에 새겨진 아버지를 거부하는 면이 있죠. 처음에 그 얘기를 단순히 다이어트만 갖고 시작했었어요. 아이러니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다이어트라는 것이 우리 몸과 현대 문명 사이에 벌어지는 딜레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를 하려고 썼는데 나가지지 않는 거예요. 덮고 다른 소설을 썼죠. 그러다가 어떤 영화를 봤는데 꼬마가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내용이었어요. 그 순간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의 이야기와 연결해야겠다는 것이 딱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얘기가 풀렸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의무감에 책을 읽는 경우가 있다. 책, 그 중에서도 소설을 읽어야 하는 뭘까? 소설가로서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은희경: 소설은 패러다임을 바꿔준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왜 이걸 문제 삼아야 하지?’ 이런 생각은 하게 해요.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요. 그런데 ‘행복이 대체 뭐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내가 갇혀 있는 세계 안에서 뭔가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 그곳을 잠시 벗어나 다른 질문을 하게 한다는 거죠. 전반적으로 좋은 결정을 내리고 나라는 사람이 원활한 인생을 사는 데, 내가 누군지 아는 데 많은 힌트를 준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안 읽는 사람과 다른 점이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하죠.

 

은희경 작가에게 나이, 늙음이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모든 생물은 필연적으로 늙게 마련이지만 작가에게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은희경: 끝까지 개인으로 늙고 싶어요. 나이가 몇 살이고, 누구의 엄마고, 아내고, 작가고 이런 나를 규정하는 것들 말고 그냥 나이고 싶어요. 나이와 상관없이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한 사람이고 싶어요.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잖아요. 매일이 새롭고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맥락에서 늙음, 나이 이런 것을 많이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정말로 나이를 잊어버릴 때도 있어요.

 

자연인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죠. 기능이 떨어지는구나, 이런 느낌이 들 때 그건 내가 스스로 다뤄야 되는 방식이 있고, 그런 것을 소설 속에 쓰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여러 가지의 ‘나’ 중에서 평화시 가장 중요시하는 ‘나’는 소설가로서의 ‘나’예요. 비상시에는 물론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나’죠. 소설가로서의 내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소설가로서 늙는다는 것에는 공포가 있어요. 너무 내 세대의 일반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굉장히 괴로워요. 작가로서는 언제나 한 사람의 작가이고 싶어요. 붙는 수식이 하나도 없이 그냥 작가이고 싶어요.

 

『그것은 꿈이었을까』『소년을 위로해줘』 등에서 보여준 음악과 소설의 조화는 독특한 면이 있다. 작가가 즐기는 음악이 있는지 물었다.

 

은희경: 음악을 들으면서 글을 쓰지 못해요. 굉장히 예민해요.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듣는 음악이 있었어요. 『그것은 꿈이었을까』 경우에 비틀즈 앨범 하나를 계속 들었어요. 『소년을 위로해줘』를 쓸 때는 힙합을 좋아하는 소년이기 때문에 힙합을 많이 들었죠. 저는 음악 취향이 별로 없어요. 기본적으로는 장식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담담한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해요. 장르에 관한 취향은 별로 없고 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누가 어떤 음악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틀어주는 음악 좋아한다고 말해요.(웃음) 『그것은 꿈이었을까』 때 들었던 비틀즈는 남편이 아주 좋아하는 뮤지션이라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소년을 위로해줘』때 들었던 힙합은 저희 아들이 좋아하는 음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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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은희경 저 | 문학동네
2009년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 출간됐다. 김기홍의 장편소설 <피리부는 사나이>로, 정체 모를 남자의 피리 소리를 따라 진실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다. 엇갈리는 청춘의 사랑, 컴컴하고 단단한 알에서 깨어나게 하는 진하고 운명적인 우정을 그린다. 여기에 연쇄실종사건과 테러라는 장르적 감각이 덧입혀지면서 소설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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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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