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광 “이우 왕자가 살았다면 분단으로 갔을까”
『왕자 이우』, 소설로 조선왕조를 마무리하다 다양한 소재로 세상을 묘사해온 김종광 작가
나도 왕자, 공주라는 말을 들으면 분노하고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최대한 좋게 본다면 대통합의 매개체가 되어서 독립운동가를 다 모으고 정부 형태가 갖춰지면 깨끗하게 물러나는 멋진 사람이기를 바란다. 이우도 군대를 조직할 능력이 있었고 이 사람 신분 자체가 지지를 어느 정도 형성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으니까 이끌 수 있지 않았겠나.
역사소설 『왕자 이우』를 봤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의외였다. 왜 그런가는 김종광 작가가 쓴 작품을 비교하면 알 것이다. 먼저 『왕자 이우』에 나오는 장면이다.
일본 황족들은 울었다. 조선 왕 이은도 울었다. 이건과 이우는 울지 않았다.
황족들의 의견도 항복과 항전으로 갈렸다.
천황은 조선 왕공족들도 의견을 말해보라고 했다.
이은은 “저희는 그저 천황폐하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했다. (중략)
이우 차례가 되었다. “항복은 필연적입니다. 항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든 사람을 경악시키는 말을 했다. “일본이 항복하기로 했다면, 조선은 즉시 독립되어야 한다.” (중략) “일왕은 서양제국에 항복하기 이전에, 우리 조선의 독립을 승인해야 한다. 구 대한제국 황실(왕공족)에 통치권 반납 등을 문서로써 확약해야 한다.” (김종광, 『왕자 이우』)
『왕자 이우』는 제목 그대로, 조선의 왕자였던 이우를 쓴 소설이다. 그는 1912년 광무제(고종)의 5남인 의친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원군의 장손 이준용이 사망하자 이준용의 양자로 운현궁의 4번째 주인이 되며 ‘이우공 전하’라는 공족 칭호를 받는다. 식민지 시절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인으로 교육받았으나 민족의식이 투철해 일본을 향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소설가 김종광이 쓴 『왕자 이우』에서도 그런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소설의 절정 부분에 해당하는 저 장면에서 이우는 일본 천황을 향해 조선 독립을 요구하는데, 비장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기서 잠시, 김종광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을 보자.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정상에 선 똥개를 본 일이 있는가? 인간과 끝없이 투쟁하는 호구산의 똥개! 나는 똥개가 아니라 천연기념물 개이고 싶다. 어디에서나 대접받는 태평천국의 그 천연기념물이고 싶다. (중략) 바람처럼 왔다가 보신탕으로 갈 순 없잖아! 우리 개들이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갈비 수육으로 가뭇없이 먹혀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중략) 개로 사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개로 사는 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우리 개들의 투쟁 때문이다! (중략) 인간들은 개고기를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개들은 사람고기를 먹지 않는다. 인간들은 보신탕을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개들은 사람탕을 본 적도 없다. 인간들은 애완견을 사랑한다고 했다. (김종광, 『똥개 행진곡』)
눈치를 챈 독자라면 알겠지만, 가수 조용필의 <킬리만조로의 표범>을 개의 처지에 맞게 고쳐 썼다. 평론가 김만수는 그를 가리켜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입담을 가진 소설가’라고 표현했다. 『똥개 행진곡』에 쓴 문장을 보면 김만수의 지적에 ‘아!’ 하고 동의할 것이다. 『71년생 다인이』처럼 예외도 있지만 등단작 『경찰서여 안녕』에서부터 근작인 『처음의 아해들』, 『군대 이야기』, 『똥개 행진곡』 등 김종광이 쓴 작품은 능청스러웠다. 『왕자 이우』를 읽는다면 다소 의외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래서 의례적이면서도 꼭 묻곤 하는 ‘집필 계기’가 이번에는 정말로 궁금했다.
김종광이 왕자 이우에 주목한 이유도 결국은 풍자하기 위해
지금까지 쓴 소설과 다소 다른 소설이다. 『왕자 이우』를 쓰고자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하다.
내가 쓴 소설과 많이 다른가? 2년 전만 해도 쓰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 책 속 ‘작가의 말’에도 밝혔듯, 정범준이 쓴 『제국의 후예들』을 읽었다. 왜 조선 왕조는 깨끗하게 청산되었을까, 그렇게 사람이 없었나, 하고 의문을 품었다. 『제국의 후예들』을 보니, 딱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뭘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그게 바로 이우 왕자였다. 마침 출판사에서 내자고 제안도 와서 썼다.
역사소설이 잘 쓰면 재밌으나 쓰기 힘들다. 역사소설에는 항상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 사이에 긴장이 있고. 작가의 상상이 역사 왜곡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독자가 어떻게 읽었으면 하고 썼나.
100명이 읽으면 99명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감동하는 소설이 있다. 이를테면 가족 간의 사랑이라든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오는 이야기. 그런 책도 좋지만 공감하지는 않는데 계속 그 책을 비판하면서도 생각하는 책이 있다. 『왕자 이우』도 이 책을 매개로 역사에 관해 생각하고 비판적인 관점을 세우도록 유도하는 소설이 되었으면 한다.
역사소설은 자료 조사를 해야 하지 않나. 어느 정도 했나.
책에 공개한 게 전부다. 이우 왕자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다. 신문기사를 보면 어린 시절에는 자세한데 뒤로 갈수록 조선에 입국했다, 신궁을 참배했다, 이 정도밖에 없다. 우선 이우가 스스로 남긴 기록이 없고 앞으로 나올 자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더는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부가 ‘이우 실록’이고 2부가 ‘이우 외전’인데 말이 실록이지 절대 실록이라고 할 수 없다. 순종 장례식날 현금 180원과 트렁크가 없어졌다, 오사카에서 납치 모의하다 검거된 무리가 있다, 기차를 탔는데 충돌 사고가 일어나 정차했다, 이 정도만 사실이다. 나머지는 다 꾸몄다. 실록은 아닌데 어차피 조선왕조실록도 사실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 사관이 쓴 소설이다. 2부 ‘이우 외전’은 죽은 사람을 산 것으로 가정한 완전 허구다. 그래서 둘을 가르긴 해야 할 거 같아서 앞은 실록, 뒤에는 외전이라고 표현했다.
김종광, 하면 풍자다. 이번 소설에는 풍자가 별로 없던데.
이 소설도 풍자의 관점으로 쓰려고 했다. 조선 왕가가 나라를 빼앗기고도 귀족처럼 살았다. 방탕하고 부정 저지르면서 친일한 왕족이 많다. 순종도 그랬고. 파렴치한 왕가였다. 이우는 그렇게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조선 왕조를 풍자하는 관점에서 쓰긴 했다.
이우가 살았다면 분단으로 갔을까
이우가 살았다면 어땠을까?
해방을 맞고 내전까지 갔다. 대통합 정권을 세웠으면 어땠을까. 혼란스러웠겠지만 전쟁까지는 안 가지 않았겠나. 분단도 안 됐을 테고. 누군가가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우가 그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나도 왕자, 공주라는 말을 들으면 분노하고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좋게 봐서 대통합의 매개체가 되어서 독립운동가를 다 모으고 정부 형태가 갖춰지면 깨끗하게 물러나는 멋진 사람이기를 바란다. 신문에서 윤동주가 쓴 조서를 봤는데, 그가 이렇게 썼더라. 지금 해방이 된다고 했을 때, 독립투사만으로는 혼란스럽고 나폴레옹이나 가리발디처럼 강력한 군인 장교가 나서서 이끌어야 한다고. 이우도 군대를 조직할 능력이 있었고 이 사람 신분 자체가 지지를 어느 정도 형성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으니까 이끌 수 있지 않았겠나. 단적으로 지금도 대통령의 따님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니 1945년은 더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소설을 2년간 쓰면서 이우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웃음)
소설가 김종광, 진담보다는 농담이 편한 사람
『똥개 행진곡』 작가의 말에서, 개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사실인가?
15살 때 친구 집에 가서 이외수 작가의 『들개』를 3시간 동안 쭉 읽었다. 읽고 나니까 소설가가 되고 싶더라. 소설이 뭔지 느낌이 뭔지 딱 왔다. 소설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진짜 그렇게 됐다.
이문구 작가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향도 똑같고 작품에 사투리를 쓰는 시골 사람이 나오니까 그런 평을 받았다. 나에게는 과분하면서도 굴레다. 아무리 잘 써도 내 소설은 이문구 소설의 아류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문구 선생님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굉장히 강했다. 사실 이문구 선생님 작품과 내 소설이 다르다. 나는 이문구 선생님이 좀처럼 안 쓰는 욕설이나 저속한 표현을 많이 쓰기도 하고. 참 희한한 게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은 여성 작가의 작품인데, 독자와 평론가는 그 여성 작가의 다름을 봐준다. 그런데 농촌을 소재로 하면 다 이문구다. 한창훈, 이시백, 백가흠, 김종광이 다 다른데 모두 이문구의 아류다. (웃음) 어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론가 대부분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일까?
나는 소설만 15권 정도 냈다. 작품 수가 많으면 보기 힘드니까 아예 보지 않는다. 3~4권 되면 오늘은 그 친구를 연구해볼까, 하고 연구할 수 있는데 엄두를 못 낸다. 『군대 이야기』도 기대를 하고 썼는데 잘 안 팔린 모양이다. <진짜 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높고 『군대 이야기』는 전혀 안 읽는데 이 역시도 이해가 잘 안 간다.
문장이 능청스러우면서 재미있다. 글을 보면 평소에도 장난 많이 칠 것 같은데, 어떤가.
진담은 잘 안 하고 나는 농담만 한다. 집에서도 만날 아이에게 농담만 건넨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내가 굉장히 싫어했다. 이제는 적응해서 괜찮다. 충청도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에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경상도 사투리는 직설적인데, 충청도 사투리는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욕하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헷갈리니까. 글도 그렇다. 풍자의 관점으로 쓴다.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서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느낌이 많이 들어간다. 알아들을 분은 알아듣고, 웃을 사람만 웃어요, 이렇게 쓴다. 그런데 전혀 이해 못하는 분은 화낸다. 『왕자 이우』의 리뷰를 쓴 몇 분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더라. 다소 야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대목을 굳이 쓴 이유가 로열 페밀리로 살면서 그 사건을 계기로 밑바닥 계층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왕자라고는 해도 사람이 본능이 있으니 자연스럽기도 하고.
『71년생 다인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다. 진담보다는 농담이 익숙할 텐데, 이 작품을 쓰면서 힘들지 않았나?
내 작품 중에는 유일하게 진지한 소설이다. 생각해 보니 힘들었던 것 같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1971년생인데, 『71년생 다인이』에 어느 정도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넣었나?
지질하고 못나고 멍청한 남자 나오지 않나. 그건 다 나다. 다른 단편에도 꼭 나 같은 사람이 있다. 『처음의 아해들』이 담임 선생님을 모시고 노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보면 선생님을 빼도 10명 정도 아이가 나온다. 다른 단편도 대개 그런 식이다. 단편인데도 사람이 많이 나오고 주인공이 누구라고 할 수 없다. 그중에 내가 꼭 있다.
올해도 다양한 소재로 독자를 찾아갈 것
『군대 이야기』, 『똥개 행진곡』 등은 먼저 연재하고 책으로 나온 작품이다. 예스24 e연재, 네이버 웹소설 등 만화 단행본이 웹툰으로 갔듯, 소설을 인터넷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작가가 느끼기에는 어떤가.
내 작품에는 무반응이었다. 조회수도 낮았고 댓글도 안 달렸다. 그럼에도 독자의 눈치를 보는데 문제는 독자의 성향이 천차만별이라 쓰는 내내 혼란에 빠져 연재하게 된다는 점이다. 웹진에 연재하더라도, 작가가 자기가 처음에 쓰려고 작정했던 것을 거리낌 없게 쓰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인 듯하다. 라이트노벨을 읽는 것보다는 괜찮은 연재소설을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웃음) 그리고 나도 전자책이 좋다. 나무에 미안하다. 전자책으로 전환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웹진 이런 쪽에 독자가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다.
아마존이 한국에 진출한다. 아마존 진출이 문단을 중심으로 짜여있는 한국 문학의 분위기를 바꿀까?
그런가? 아마존이 진출하더라도 명품, 화장품 이런 쪽이 경쟁력 있지 책은 글쎄. 다음과 네이버가 살아남지 않았나.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이 강해서 방어될 것 같다. 영화도 살아남은 데가 우리나라밖에 없지 않나.
앞으로 나올 작품은?
책 한 권 내면 3~4개월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이번에는 빨리 쓰고 있다. 『똥개 행진곡』 느낌으로 담배를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려는 사람 사이에서 담배 혁명이 탄생하는 작품. 그리고 조선 통신사에 관한 소설. 고전 야담집을 보면 청소년이 주인공이 있는데 이걸 현대소설로 각색하는 작업. 이 3가지를 조금씩 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종광, 하면 농촌과 시골이 떠오른다. 농촌을 다룬 소설은 언제 나올까? 아니나 다를까 계획 중인 작품이 있다고 한다. 『관촌수필』처럼 연작소설이고, 지금까지 썼던 농촌소설의 집대성이 될 예정. 생태계가 건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김종광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소설의 생태계를 건전하게 하는 작가다. 어느덧 변방으로 밀린 농촌을 여전히 다루는 작가이기에. 그래서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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