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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생애 최후의 작품 <현악 4중주 16번 F장조 op.135>

베토벤, 그가 음악으로 남겨놓은 ‘마지막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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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한 줄기 햇살을 그리워했던 것일까요? 어찌 보자면 이 곡은 모차르트적입니다. ‘고난과 투쟁’으로 표상되는 삶을 살았던 베토벤은 생애 마지막 곡에서 역설적으로 유머를 보여줍니다.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대표하는 장르는 9개의 교향곡, 또 ‘피아노의 신약성서’라고까지 일컬어지는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현악4중주입니다.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4중주를 남겼습니다. 그 16곡 외에 단일 악장으로 출판된 <현악 4중주를 위한 대푸가 B플랫장조>도 현악4중주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겠습니다. 한데 <내 인생의 클래식 101>을 꾸준히 읽어온 분들은 아시겠지만, 베토벤의 교향곡과 소나타들 중에서 주요 곡들을 모두 언급했음에도 아직까지 현악4중주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고자 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필수적인 걸작들을 소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지난해 9월 12일자에 게재된 ‘내 인생의 클래식 101, 첫발을 내딛습니다’라는 글에서였지요. 한데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즐기는 애청곡들, 혹은 한국인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클래식 명곡들을 간추려보겠다는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벌써 1년 넘게 연재해오고 있는 이 칼럼의 목적은 단순합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보고는 싶은데 아직 좀 낯설게, 혹은 어렵게 느끼는 분들을 위한 일종의 ‘지상 강의’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최대한 친근하게, 말하자면 이 글을 읽을 당신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듯이 음악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의 현악4중주는 사실 쉽게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습니다. 듣는 이에게 음악적 쾌감을 전해주는 감각적인 장면들이 별로 없거니와, 짜릿한 테크닉을 구사해 강렬한 인상을 새겨주는 대목도 별로 없지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대중적이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베토벤의 후기 걸작으로 손꼽히는 현악4중주 다섯 곡은 ‘심오한 명상’이라는 평가가 말해주듯이 작품의 내면적 스케일이 매우 크고 깊습니다. 그러다보니 음악이 왠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변화무쌍한 속도의 세상, 모든 것에 순식간에 반응해야 하는 풍조 속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출처: 위키피디아]

오늘은 조심스럽게 미뤄뒀던 베토벤의 현악4중주를 듣겠습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현악4중주는 베토벤의 음악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흔히 전기ㆍ중기ㆍ후기로 분류되는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유난히 잘 드러내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지요. 물론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정리된 이런 식의 시대 구분은 때때로 ‘이론화’의 오류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적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생애를 셋으로 쪼갠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불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악4중주만큼은 이런 식의 시기 구분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측면이 많습니다. 베토벤은 작품번호 18에 속하는 여섯 곡을 1798~1800년에 썼습니다. 라주모프스키 백작(훗날 공작)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3곡을 중심으로 한 중기의 다섯 곡은 1806~1810년에, 만년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후기의 다섯 곡은 1822~1826년에 작곡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후기의 다섯 곡은 말년의 베토벤이 오로지 집중했던 음악들이지요. 그 중 첫곡인 12번 E플랫장조의 작곡에 착수한 것은 1822년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중기의 작품으로 분류되는 11번 f단조로부터 10년이 넘게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12번의 작곡에 일사분란하게 매진할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다른 숙제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당시의 베토벤은 “내 생애 최고의 작품”으로 자부했던 <장엄미사>의 작곡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향곡 9번 <합창>의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장엄미사>를 1824년 4월에, 교향곡 9번 ‘합창’을 같은 해 5월에 초연하고 나서야 현악4중주를 위해 다시 펜을 들 수 있었지요. 그리고 마침 이 무렵에 러시아의 니콜라스 갈리친 후작(1794~1860)이 현악4중주를 작곡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말하자면 현악4중주 작곡에만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던 셈입니다.

애초에 현악4중주는 유희적 장르에 속했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초기까지만 해도 그랬지요. 하지만 베토벤의 두 선배는 현악4중주를 점차 진지하고 순수한 실내악으로 자리매김했고, 베토벤의 시기에 이르게 되면 그 진지함은 한층 고조됩니다. 특히 베토벤 말년의 현악4중주에서는 장난치는 듯한 유희성을 찾아보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작곡가의 진지한 내면 고백, 아울러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악음악이라는 특징이 한층 커집니다.

베토벤이 현악4중주에 몰입했던 시기는 그의 나이 50대 초반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의 약 5년간이지요. 유혹적인 리듬과 선율, 혹은 테크닉의 과시 같은 요소들은 이 시기의 베토벤 음악과 무관합니다. 중기 시절의 작품에 빈번히 등장했던 강력한 추진력은 사라지고, 그 대신 무엇인가를 스르르 놓아버리는 듯한 모호함이 자리를 잡습니다.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 등장하는 문장을 인용하자면 “(베토벤의 말년작들은) 절대적 고독 속에 자리 잡은, 완전한 개인적 자아의 영역으로 들어섰던” 것이지요.

지난 여름에 상영됐던 영화 <마지막 사중주> 덕택에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 c샤프단조를 듣는 분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현악4중주 14번은 7개 악장을 쉬지 않고 약 40분간 연주하는 곡입니다. 오늘은 이보다 분량이 훨씬 적은 ‘현악4중주 16번 F장조 op.135’를 듣겠습니다. 1826년 7월에 작곡을 시작해 10월에 완성한 곡입니다. 연주시간 약 25분이지요. 베토벤이 남긴 현악4중주의 마지막 곡인 동시에, 지상에서 57년을 머물다 간 그의 생애에서도 최후의 작품으로 자리해 있습니다. 물론 베토벤은 이 곡을 작곡한 직후에, 초연 당시 반응이 좋지 않았던 ‘현악4중주 13번 op.130’의 마지막 악장을 더 쓰기는 했습니다만, 한 곡의 온전한 작품으로 생애의 방점을 찍은 곡은 ‘16번 F장조 op.135’였습니다.

마지막 곡을 쓸 무렵, 베토벤이 처해 있던 상황은 매우 나빴습니다. 일단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베토벤이 독신으로 살았다는 점, 다시 말해 가족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겠습니다. 게다가 평생 겪어야 했던 창작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했을까요. 그는 작품에 한번 몰입하면 주변을 거의 의식하지 못할 만큼 에너지를 쏟았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기 일쑤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게다가 그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평균 수명을 감안한다면, 베토벤의 육신은 앙상한 낙엽처럼 쇠잔해진 상태였을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조카 칼이 속을 태웠습니다. 베토벤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의 아들이었던 칼에게 매우 집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생의 아내와 칼의 양육권을 놓고 법정 투쟁까지 벌여가면서 결국 이겼지만, 어머니와 강제로 헤어지고 완고한 큰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던 칼은 1826년 7월에 급기야 권총 자살을 기도하지요. 하지만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소동을 벌인 칼은 거의 두 달간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베토벤은 퇴원한 조카를 데리고 그나이센도르프에 있는 또 다른 동생 요한의 집에 머물면서 마지막 현악4중주를 완성했지요. 아마 그는 이 시기에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베토벤은 12월 1일 칼을 데리고 빈으로 돌아오던 길에 감기에 걸렸는데 그게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폐렴에 걸렸던 것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사람에게 폐렴은 치명적입니다. 알려져 잇듯이 이듬해 3월 26일, 베토벤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지요.


베토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한 줄기 햇살을 그리워했던 것일까요? 어찌 보자면 이 곡은 모차르트적입니다. ‘고난과 투쟁’으로 표상되는 삶을 살았던 베토벤은 생애 마지막 곡에서 역설적으로 유머를 보여줍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베토벤은 후기의 현악4중주들에서 매우 성찰적이고 명상적인, 아울러 웅대한 정신적 깊이와 넓이를 보여줍니다만, 이 마지막 현악4중주에서는 밝고 투명한 분위기의 악상들이 지배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도하게 밝은 것은 아닙니다. 아, 인생이 꼭 이 만큼만 안온했으면 좋겠다 싶은, 딱 그런 정도의 밝음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알레그레토(allegretto, 조금 빠르게) 템포로 문을 여는 1악장의 입구부터 그렇습니다. 밝고 따사로운 분위기의 선율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적절한 템포로 펼쳐집니다.

2악장은 비바체(vivace)로 생동감이 넘칩니다. 베토벤적인 추진력과 직진성이 마침내 등장하지요. 잘게 쪼개지는 음형들이 매우 빠른 리듬을 타고 상승과 하강을 반복합니다. 베토벤이 악보에 표기해 넣지는 않았지만 스케르초(농담)의 성격이 짙은 악장입니다.

반면에 3악장은 앞의 두 악장과는 대조적으로 슬프고 장중합니다. 느리고 무거운 노래가 자유로운 환상곡 풍으로 펼쳐집니다. 베토벤 말년 양식의 특징이랄 수 있는 ‘절대적 고독, 개인적 자아의 영역’이 두드러지는 악장이지요. 철학자 아도르노가 베토벤의 ‘말년성’으로 꼽고 있는 ‘객관적 세계를 뛰어넘은 모호함’이 바로 이 세번째 악장에서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음형들을 바이올린이 고음역으로 연주하면서 끝납니다.

4악장은 느리고 음산한 서주로 시작하지요. 이 마지막 악장에는 ‘어렵게 내린 결정(Der Schwergefasste Entschluss)’이라는 표제적 문구와 함께 ‘그래야만 할까?(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는 말이 수수께끼처럼 적혀 있어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습니다. 물론 베토벤이 직접 써넣은 문구입니다. ‘그래야만 할까’라고 비올라와 첼로가 무겁게 물으면, ‘그래야만 한다’라고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대답하는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음악이 흘러가고 있지요. 처음에는 좀 머뭇거리다가 점점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의 강도가 세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매우 강렬하고 확고하지요. 그것이 베토벤이 음악으로 남겨놓은 ‘마지막 말’입니다.

p.s. 이 글을 쓰면서 반복해 들은 음반은 알반 베르크 4중주단(Alban Berg Quartett)이 1989년 빈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가졌던 실황(EMI)이었습니다. 이 4중주단은 역시 EMI에서 스튜디오 녹음(1978년~1983년)으로도 음반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두 연주 모두 좋습니다. 현대적이고 객관적인 해석을 만날 수 있는 연주들입니다. 아쉽게도 국내 매장에서 ‘품절’이라고 나오는군요. 추후에라도 구입해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부쉬 4중주단(Busch Quartet)/1936년/EMI

역사적 녹음이다. 베토벤의 현악4중주를 음반으로 처음 구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다. 1930년대의 모노 녹음인 까닭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현악4중주를 거론하면서 부쉬(부슈로도 표기함) 4중주단의 연주를 추천음반 목록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대푸가’를 비롯해 11번부터 16번까지를 3장의 CD에 수록한 음반이다. 강렬한 개성으로 음악에 깊이 몰입하고 있는 연주다. 낭만성이 강한 해석이어서 느린 악장이 특히 인상적이다. 최근의 현대적인 연주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16번의 3악장은 고색창연한 절창이다.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Budapest String Quartet)/1960년/SonyMusic

필청 음반이다. ‘대푸가’를 포함한 베토벤의 현악4중주 전곡을 8장의 CD에 담았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그러니까 스테레오 녹음 초창기에 콜럼비아 스튜디오에서 진행했던 녹음이다. 국내 매장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엄격한 앙상블, 베토벤 음악의 정신성을 전해주는 연주라고 할 만하다. 음악의 아이러니한 측면, 특히 16번에서는 베토벤의 유머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은 1940년대에도, 또 1950년대에는 워싱턴 국회도서관에서 실황연주로도 베토벤의 현악4중주를 녹음했으나, 아무래도 모노 녹음보다는 1960년대의 스테레오 녹음을 택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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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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