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개하는 지면에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오 자히르』를 읽는 건 사실 허무하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스토리가 있지 않다. 읽는 사람을 흡인력있게 빨아들이지 않는다. 마치 그림을 보듯이 선명하고도 현란한 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오 자히르』의 이야기는 오히려 구태의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지고, 그 사람을 찾아가며 사랑의 본질, 나의 참다운 모습에 눈을 떠간다는 이야기는 흔하지 않는가? 아내의 실종은 『태엽 감는 새』등 무라카미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왜 『오 자히르』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는가? 줄거리는 대략 그렇다. 주인공은 성공한 소설가인 ‘나’. 나는 어린시절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운동에도 소질이 없고, 여자친구도 사귀지 못하는 그런 시시한 아이였다.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히피로 살았던 나는 우연히 노래가사를 썼다가 그 노래가 히트해 작사가로서 명성을 날리며 부를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던 어렸을 적의 꿈을 잊지는 못한 채, 만족스럽지 못한 생활을 한다. 또한 한 인간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데도 서툴러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한다. 그러다가 유명 작사가인 나를 인터뷰하러 온 잡지사의 여기자 에스테르와 사랑에 빠지고 네 번째로 결혼을 한다. 주인공의 아내 에스테르는 종군기자로 일하고 있다. 나는 아내와 무난한 결혼생활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녀에 대한 사람들의 증언은 그녀가 미하엘이라는 젊은 청년과 함께였다는 것. 아내 에스테르는 그냥 평범한 아내가 아니다. 노래가 벌어들이는 저작권료로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풍족하게 살 수 있는 생활. 그 생활을 영위하며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글을 쓸 수 있어.”라고 변명하는 나에게 “당신은 아직 글쓰기를 하지 않았잖아요.”라고 꾸짖었던 아내였다. 그 아내의 도움으로 나는 비로소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부부보다 영혼이 밀착되어 있다고 믿었던 나이기에 아내가 자신을 버린 데 대한 분노는 더욱 컸고, 그와 함께 자신이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면서 아내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회한 등으로 괴로워한다. 자신을 떠남으로써 자신의 ‘자히르’가 되어버린 아내. 나는 결국 그녀를 찾아 먼 나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으로 향한다. 사막을 건너는 험난한 여정 속에서 나는 ‘텡그리(몽골어로 ‘하늘’을 뜻하는 텡그리는 ‘천신숭앙’의 한 형태다)’라는 유목민들의 문화를 배우게 되고 일상의 기적을 찬미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드디어 카자흐스탄의 어느 마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에스테르를 만난다. 먼 길을 걸어서 마침내 서로에게 다다르게 된 두 사람은 그 여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또 상대방을 발견하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의 최고 성공작 『연금술사』도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진정한 보물을 찾는다는 이야기. 그러나 『연금술사』는 뻔한 이야기이지만 어느 순간 마음에 진실되게 와 닿는 어느 종교의 경전처럼 그렇게 삶의 지혜 한 도막을 일러준다. 온 마음을 다해 원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는 인생의 연금술을…. 『오 자히르』역시 『연금술사』처럼 영적인 책이다. 사람을 쥐고 흔드는 재기 발랄한 말솜씨도, 현란한 스토리텔링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플롯도 없다. 하지만 결혼, 일, 사랑, 집착 등 인간이 당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깊게 연구하는 탐구자의 노트와도 이 책은 작가가 깨달은 아포리즘으로 가득하다. 이를 테면… “당신은 그곳에서 중요한 세 가지를 발견하거나 의식하게 될 거요. 첫째는, 어떤 문제에 맞서겠다고 결심한 그 순간 우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 둘째는, 모든 에너지와 지혜는 알려지지 않은 동일한 근원으로부터 연유한다는 것. 보통 그걸 신(神)이라고 하지.(중략) 그리고 셋째는, 고난을 당할 때 우린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좀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 우리와 똑같이 기뻐하고 고통받는 누군가가 항상 존대한다는 거요. 그는 우리가 역경에 더 잘 맞설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존재야.”(p.172) “나 자신을 비우자, 바람이 들어와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와,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사람들을 보내주었다. 나 개인의 과거사에서 해방되자, 예전의 열정이 되돌아왔다. 아코모다도르를 파괴하자, 동료를 출복하는 스텝의 유목민이나 주술사처럼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줄 아는 한 남자의 모습이 내 안에서 발견되었다. 나는 내가 훨씬 더 잘 해내리라는 것을,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능력이 내게 있음을 깨달았다. 세월은 오직 혼자서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는 자들의 발목만을 잡을 뿐이다."(p 436) 과연 이 세상에 진리라는 것이 있을까, 있다고 하더라도 돈오돈수처럼 한번에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 과연 있을까 반문하는 사람들에겐 이 책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수많은 독자들을 보며 이런 질문을 갖게 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누구와 함께이고 싶은가… 어쩌면 이 책은 우리 시대의 구도자라 말할 수 있는 코엘료가 이 책을 읽는 독자 역시 구도자로 만들기를 꾀하는 다소 음모 어린 책일런지도 모르겠다. “파도가 왜 그를 그가 다다르고자 꿈꾸었던 저 섬이 아닌 이 섬으로 데려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략) 계속해서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그 섬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책 속에서 섬을 발견한다.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전하고, 신비로운 연결고리가 이어진다. 이윽고, 작가의 고독한 작업은 하나의 다리, 한 척의 배, 영혼이 순환하고 소통하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폭풍우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 독자들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을 보고 내가 쓴 것을 이해하게 된다. 드문 순간이지만, 그들의 눈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내 영혼이 혼자가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p 102) ----------------------------------------------------- 『오 자히르』는 어떤 책? 『오 자히르』는 『11분』 이후 2년 만에 만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최신작이다. 세계 각지에서 단시일에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한 반면, 이란에서는 판금 조치되는 등 연일 화제를 몰고 온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신작은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자히르」에서 영감을 받아 구상했다고 한다. 아랍어로 '자히르'는 광기 어린 편집증, 혹은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원을 뜻한다. 그것은 난폭한 신과 자비로운 신의 두 얼굴처럼 양면적인 힘이며, 신의 아홉 가지 이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용기와 희망, 사랑과 자유의 메시지로 가득한 『오 자히르』는 『연금술사』의 감동을 이어가는 코엘료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파울로 코엘료는 누구?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17세 때부터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불행한 청소년기와, 록 밴드를 결성하고 연극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히피문화에 심취했던 청년기를 보낸다. 1973년 함께 음악 활동을 하던 라울과 『크링 하Kring-ha』라는 만화 잡지를 창간했으나 잡지의 성향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당시 브라질 군사정권에 의해 두 차례 수감되고 고문당했다. 산티아고 순례여행을 계기로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1987년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의 대성공으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로도 그는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악마와 미스 프랭』 『11분』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자리잡는다. 그의 책은 150개 나라에서 총 6천5백만 부가 팔렸고, 『연금술사』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영적 구도서로 평가되고 있다.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 유고슬라비아의 ‘골든 북’, 독일의 ‘골든 펜’ 등 유럽 각국의 상을 휩쓸었다. 2002년에는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유네스코 산하 ‘영적 집중과 상호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브라질에 ‘코엘료 인스티튜트’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 빈민층 어린이와 노인들을 위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소설 집필 외에도 브라질의 대표 일간지 『노보』를 비롯, 세계 각국의 주요 언론에 사회문제 전반에 관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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