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삶을 그럭저럭 잘 돌아가게 하는 연료다. 혹은 정기적인 의식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수영선수 박태환이 경기 전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 나는 내 인생의 경기인 '회사원으로서의 일주일'을 잘 치르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번 혼자 저녁을 먹기 시작한 건, 친구가 퇴근 전 약속 취소라는 만행을 저지른 3년 전 금요일부터였다. 최근 만난 여자 친구의 갑작스러운 호출이 이유여서 나는 더욱 분개했다. 이제는 기억이 흐릿해졌지만 코로나 시국 이전, 금요일 저녁은 직장인들에게 매주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같은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당일 약속을 취소하며 도의를 저버린 친구 덕에 나는 강남대로 한복판을 헤매고 있었다.
다급하게 대안을 찾아봤지만 결국 어느 무리에도 끼지 못했다. 적적한 마음에 집에 들어가지 않고, 평소 눈여겨봤던 집 앞 큰맘할머니 순댓국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순댓국과 소주 한 병을 앞에 놓고 멍하니 가게 앞 길거리를 보며 밥을 먹었다. 마침 구독 채널의 새 콘텐츠 알림이 떠서 유튜브를 볼까 했지만, 일주일 동안 씨름해 온 디스플레이 화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고요한 시간이었고, 밥을 먹다 보니 힘이 나는 시간이었으며, 홀짝거리는 술에 피로가 나른하게 해동되는 시간이었다.
쉽지 않은 한 주이긴 했다. 이직을 했고 새로 맡은 업무와 처음 알게 된 사람들에 적응해야 했다. 어쨌든 나름 잘 보낸 일주일에 뿌듯했기에 떠들 말이 많았던 나는, 친구와 만나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웠지만 별수 없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찾아간 순댓국집에서 금요일 저녁 멍하니 밥을 먹는 느낌을 알게 되었다. 그건 힘든 일주일을 보냈던 나와 금요일 퇴근 후의 내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오로지 내 앞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하며 먹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휴일을 앞둔 나를 축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똑같은 일상에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직장인 10년 차. 노련한 운동선수에게 자신만의 징크스 관리법이 있듯, 내게도 일상을 잘 꾸려나가기 위한 의식들이 있다. 이른 아침의 커피나 자기 전 한편씩 보는 미드 같은 것들. 그리고 그날 이후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의 마무리를 축하하며 혼자 밥 먹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의식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그것은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 일상 속에서 식사는 대체로 '먹기' 보다는 '채우기' 위한 것에 가깝기도 했고, 친구와 함께 하는 자리라도 관계를 위한 매개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대화는 물론 하루 종일 붙들고 사는 카톡이나 유튜브도 보지 않는, 즉 '음식을 먹는 나' 외에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먹는 데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많은 음식의 맛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이 주는 식감, 처음 입에서 느껴지는 맛과 이어지는 재료들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잘 알지 못할 수 있다. 그건 섬세한 미각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온전히 집중하지 않는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음식평론가가 아니라면 시급한 문제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접하는 여러 음식 속 재료들의 맛, 나아가 재료들이 자라면서 만나게 된 햇볕과 빗방울, 흙 그리고 누군가의 솜씨가 더해진 과정을 미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삶은 더 풍성해질지도 모른다.
『미각의 제국』은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가 쓴 미각 입문서다. 한편 이러한 내 의식과 궤를 같이하며 미각이 뾰족하지 않은 내게 즐거운 미식의 가능성을 알려준 책이기도 하다. 소금, 설탕과 같은 식재료부터 라면이나 콜라 같은 일상의 흔한 음식들의 맛에 대해 집요하게 분석한 책이다. 맛에 대해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미각 입문서'를 표방하고 있다.
재미있는 콘텐츠가 가득하지만, 한 달에 한 번쯤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더라도 유튜브를 꺼보는 건 어떨까. 앞에 차려진 밥상 속에도 즐거운 콘텐츠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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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산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게 인생이라던데 슬픔도 유쾌하게 쓰고 싶습니다. kysan@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