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뒤덮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인 시절이다. 그러나 책이란 간접적으로나마 우리에게 머나먼 세계를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었던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한 세상의 도서관들』은 세계 각국의 도서관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미래를 그리며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다. 필자가 직접 방문해서 만나본 도서관의 모습들은 필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도서관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또한 설레게 할 만하다.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서인데, 일하지 않는 시간에 해외의 도서관들을 둘러보신다니 조금은 놀랍습니다. 그렇게 해외 도서관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우연찮게 미국에서 사서 생활을 하면서, 생활 곳곳에 파고들어와 있는 미국 도서관 시스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미국 도서관들을 탐방하면서, 이 나라의 저력이 도서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느꼈고요.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도서관 시스템도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시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에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 귀국했습니다. 위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치른 뒤 어머님 방을 정리하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봉투가 쏟아졌습니다. 매달 드린 생활비였습니다. 결혼하고 한 번도 빠짐없이, 기분 좋으시라고 하얀 봉투에 빳빳한 만 원짜리로 가득 넣어드린 것이었습니다. 매달 은행에 입금하러 가시는 게 어머님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죠. 그러다가 몸이 아프니 은행 가는 게 귀찮아서 여기저기에 봉투를 쑤셔 넣어 두셨는데, 나중엔 어디 두셨는지도 잊어버리시게 된 겁니다. 모아보니 꽤나 큰 목돈이었습니다.
방바닥에 봉투를 쫙 깔아놓고 고민하다가 다짐했습니다. “이건 어머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야.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나만을 위해 아낌없이 쓰겠어.” 한국에 돌아와서 직장이 없었던 당시의 저는 그때 그 돈으로 세계 도서관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여행이라고 하면 놀러 다니는 걸로 오해할지 모르겠는데요. 직장에서 일할 때보다 더 열심히 돌아다니고, 인터뷰하고, 사진 찍고,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글을 씁니다.
이번 책은 중국 도서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중국은 소위 말하는 도서관 선진국으로 거론되지 않던 나라인데요. 세계적인 규모에 최신 시설이 즐비한 도서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니, 무섭게 다가옵니다. 이런 발전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요?
미국과 핀란드 등 도서관 선진국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 도서관이 최근 10년간 놀랄 만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자본이 밑받침되기도 했지만, 도서관이 국가와 문화 발전을 위한 근원이라는 지도자들의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거예요.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여서 의사 결정이 탑다운 방식이기 때문에 막대한 예산을 과감하게 투입할 수 있었고, 관 주도로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가 도서관에 계획적, 효율적으로 반영되었습니다.
미국 도서관들의 다양한 시도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메이커스페이스, 디지털 미디어 스튜디오, 청소년 공간 등으로 서비스의 영역을 넓혀가고,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게 확연하게 느껴지던데요. 이런 저력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중국이 관 주도의 정책으로 도서관을 발전시키고 있다면, 미국은 지역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과 애정이 도서관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재산세에 도서관 세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민들이 재산세 가운데서 얼마를 도서관 세금으로 쓸지 결정해요. 1인당 연간 30달러에서 110달러가 넘는 곳까지 다양합니다. 이렇게 확보된 충분한 예산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거지요. 이와는 별도로 개인들의 기부도 상당합니다. 도서관 건물 앞 보도블록이나 도서관 내부 벽면에 기부자들 이름이 가득 적혀 있기도 합니다. 도서관 소식지에 수록된 기부자 명단에 수많은 이름들이 몇 페이지에 달하게 빽빽이 적혀 있습니다. 큰돈을 쾌척하는 기부자도 있지만, 푼돈을 아끼고 모아 기부하는 이들도 많지요. 물건을 기부하기도 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자원봉사도 활발합니다. 이런 시민들의 지원 덕분에 미국 공공도서관의 혁신이 가능한 것이지요.
책에서 간간히 해외 도서관과 한국 도서관을 비교한 대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건물 크기, 장서 규모, 이용률, 운영 시스템 등에 있어서 아직은 부족한 한국 도서관의 실정을 거론하셨는데요. 선생님께서 바라는, 한국 공공도서관에서 가장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한국에도 새로운 도서관을 건립하고 리모델링하는 곳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드웨어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해요.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재정이지요. 특히 자료 구입비와 인력 구성 면에서 그렇습니다. 오래되고 시대에 맞지 않는 책들로 가득한 도서관 서가에 신간 서적을 더 들여야 합니다.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지역의 공공도서관에서 각종 외국어와 최신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해야 하고, 이용자들이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도 구독해야 합니다. 또한 단기 임시직이나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 사서들을 채용해서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수준에 맞는 공공도서관으로서 지역 사회와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재정이 지원되고 발전적인 국가 정책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어요.
이번 책은 세상의 모든 사서들에게 바친다고 하셨습니다. 해외 도서관의 사서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해주신 내용들도 꽤 흥미로왔고요. 기억에 남는 사서 선생님이 계시다면 그분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해외 도서관을 여행하면서 열정적으로 봉사하는 사서,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사서, 재능 넘치고 개성 강한 사서 등 다양한 사서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분을 꼽으라면, 미국 코네티컷 주 웨스트포트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실 사서입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이분 방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각종 인형과 자료들이 가득했습니다. 어린이 이용자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무언가를 만드는 존재,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 30년 넘게 어린이실 사서로 그런 활동을 해오신 건데요. 공공도서관 사서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이용자들에게 서비스하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사서들이 각종 행정 업무와 대출 반납으로 바쁘고, 인력이 부족해서 어린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은 외부 강사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도서관의 시설, 자료, 서비스, 인력도 중요하겠지만, 이용자 역시 도서관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해외 도서관의 이용자들에게서 받은 인상과 느낌은 어떤가요?
한국의 도서관이라고 하면 딱딱한 책상과 의자가 빽빽한 곳으로 이용자들이 엄숙하게 공부하는 이미지가 떠오를 겁니다. 책을 읽더라도 경직된 느낌이 들지요. 경쟁 사회여서 그런지 중국의 대형 도서관 이용자들도 한국 이용자들과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반면 미국이나 핀란드의 도서관을 생각하면, 넉넉한 공간에 편안한 소파에서 안락하게 책을 읽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이용자들에게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져요. 가볍게 산책 나오듯 도서관을 이용하는 게 평범한 일상 같고요. 하지만 가까운 슈퍼나 동네 목욕탕처럼, 도서관은 이들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공간입니다.
핀란드에서는 마을을 만들 때 경찰서, 은행, 도서관, 학교, 병원을 기본 요소로 상정합니다. 도서관을 한 마을의 가장 기초적인 시설로 본다는 것, 그리고 학교보다 도서관을 먼저 짓는다는 사실이 핀란드를 최고의 도서관 국가로 만든 토대가 되고 있지요.
코로나 시대라 해외 도서관을 가본다는 건 머나먼 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번 책에 소개된 도서관 가운데서 독자들에게 단 하나의 도서관을 가보라고 추천한다면 어떤 도서관을 꼽으시겠어요?
대상에 따라 추천할 도서관이 달라지는데요. 도서관 정책 관련자라면 핀란드의 오디를 추천합니다. 도서관통합관리시스템과 복합문화공간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사서라면 일본의 우라야스 시립도서관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참고봉사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는 일본 도서관계의 교과서입니다. 대출 반납 데스크와는 별도로 참고봉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레퍼런스 데스크가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즉답이 필요한 간단한 질문이 아니라 심층적인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거쳐 전문적인 답변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일반인이라면 대만 가오슝의 리커융 기념도서관을 추천합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외국 여행을 한다면 가까운 공공도서관에 들러보는 것도 권하고 싶습니다. 공공도서관은 방문하기 편한 데 있고, 특유의 위로와 편안함도 느껴지는 곳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서 왔든, 성별, 인종, 계급, 빈부에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환대해줄 겁니다. 이제는 해외 도서관들에 우리나라 책들도 많이 비치되어 있고, 전자 잡지, 신문, 데이터베이스 등 각종 언어로 된 세계 여러 나라의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레퍼런스 데스크에 앉아 있는 사서에게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물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친절하게 제공해줄 거예요. 가장 좋은 점은 이 모든 게 무료라는 것이고요.
*조금주 청소년 시절, 도서관이 없는 마을에 살아 주말마다 책방을 기웃거리며 책을 읽었다. 안 사도 괜찮으니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마음껏 읽으라는 한 책방 주인의 말을 들었을 때부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그리고 뜻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사서가 되었다. 현재 서울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이용자들을 만나고 있다. 틈날 때마다 세계 각국의 도서관에 대한 자료를 조사한 뒤 훌쩍 배낭을 짊어지고 그곳들을 찾아다니며,?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의 도서관을?꿈꾸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힘, 도서관』(2015)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2017)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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