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침묵을 깨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밝혔다. 신작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그는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아버지와의 기억을 하나둘 복원해낸다. 평소 역사적 책임을 강조해온 하루키에게, 아버지에 대해 쓰는 일은 개인과 역사의 연결을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간 중일전쟁에 참전한 아버지가 전범에 연루되었을까 봐 두려움을 갖고 있던 그는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와 자신의 역사와 마주한다. 하루키의 평소 소설과는 다른 문체와 분위기를 지닌 이 에세이는 ‘하루키 월드’를 꾸준히 한국에 소개해온 김난주 역자가 번역을 맡았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계기로 번역의 길을 걷게 된 김난주 역자로부터 하루키와의 인연을 들어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통해 역자님을 번역의 길로 이끌어준 작가이지요. 역자님의 번역 인생에서 하루키는 어떤 작가인지요?
번역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난 30년 가까이 제가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이 잘 안 되네요. 그만큼 30여 년 전의 제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작품에 번역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는 점이 의미가 큰 것 같아요. 또 초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몇 편 계속해 번역하면서 단순히 제 개인의 욕구에서 벗어나, 번역가로서의 자각과 인식을 갖게 되었으니 그런 점에서도 저의 길잡이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난해 일본 <문예춘추>에 발표된 작품이 올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어떻게 이 책을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글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읽어보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거나 읽어온 독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비채 편집부에서 번역 의뢰가 왔어요.
이 책은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해 쓴 논픽션입니다. 그간 하루키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언급해오지 않았지요. 뒤늦게야 아버지의 일화를 꺼내놓은 글을 읽고, 역자님은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본질, 근간에 조금 더 접근한 느낌이었어요.
지명과 역사적 사건이 등장해서, 번역이 까다롭지는 않으셨나요? 번역 과정에서 어떤 보람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자료 조사를 꼼꼼히 해야 하니까 번역의 까다로움이라기보다는 역사 공부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군대 관련 용어 등은 편집부에서 군 관계자에게 자문을 구해 함께 확인하는 작업을 했고요.
보람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3번 대답의 연장선상에서, 작가의 개인사의 한 부분, 그것도 작가가 긴 세월 무겁게 짐 지고 있었던 부분을 알게 되어, 작가와 작품에 보다 깊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꼽고 싶어요. 가령 『중국행 슬로 보트』나 『해변의 카프카』, 『태엽 감는 새 연대기』 등의 작품요.
본문 중 오래도록 눈길이 머문 문장이 있다면요?
거의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고양이 일화에서 아래 대목이 기억에 남네요.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훨씬 어렵다.'
'나는 지금도 때로 슈큐가와 집의 마당에 서 있던 높은 소나무를 생각한다. 그 가지 위에서 백골이 되어가면서도, 사라지지 못한 기억처럼 아직도 거기에 단단히 매달려 있을지 모르는 새끼 고양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저 먼 아래,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가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본문 92-95쪽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임 있는 역사관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책도 ‘역사’에 대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데요. 특히, 1940년대 아버지가 거쳐온 전쟁 시기의 기억은 그 아들인 하루키에게도 각인됩니다. 그것을 기록하는 하루키의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나요?
작가는 마지막에 이 글이 '개인적인 글'이라고 언명했지만, 그 개인의 배후에는 국가가, 그리고 넓게는 인류가 있음을 본문에서 피력하기도 했어요.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본문 93쪽
즉 개인의 집적이 인류이며, 개인사의 집적이 인류의 역사라는 말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 계승의 책무를 개인사의 기록으로 남기되, 상당히 담담하게 마주하는 자세로 임하지 않았나 해요. 기억을 윤색하거나 개인을 미화하지 않고, 또 평가하지도 않고요. 더불어 2008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5년이 지나서야 조사, 역사적 확인 작업에 들어갔고, 그로부터 또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걸 봐도 그렇죠.
번역자의 자질 중 ‘우리말의 감각과 우리말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셨어요. 감각을 유지하시기 위해, 역자님은 평소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나요?
우리말이라서 오히려 더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모국어인데 잘 모른다는 말은 모순되지만, 습관적으로 사용할 뿐이지 실제로는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문법적으로나 언어의 의미, 활용 등을요. 그래서 저는 우리말에 대한 애정은 '알려는, 올바르게 사용하려는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각이란 어떻게 보면 신체적인 것이기도 해서, 저도 사실 잘 모른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몸과 정신이 깨어 있으면, 언어에 대해서도 깨어 있고, 감각도 살아 있지 않을까 해요. 몸과 정신이 널브러져 있으면, 언어도 감각도 사라져버리니까요. 그러니까, 늘 깨어 있으려고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특히 애착을 느끼시는 하루키의 작품 하나를 말씀해주신다면요?
애착을 느끼는 작품은 역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꼽고 싶네요. 이번에 재번역하면서 이 작품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했어요.
역자님이 번역한 책은 믿고 볼 수 있다는 독자들의 평이 많은데요. 최근 주목하시는 작가를 소개해주신다면요?
국내에 워낙 많은 작가가 소개되어 꼽기가 어려운데요, 아직 읽지 못한 오가와 요코의 작품을 읽어보려고 해요. 순전히 개인적으로요. 그러니까 주목하고 있다거나 번역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좀 더 살펴보고 싶은 작가라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신작을 기다려온 하루키의 팬분들이 많습니다. 그간의 ‘하루키 월드’를 사랑해온 독자분들이 이 책을 더 즐겁게 읽을 팁을 주신다면요?
즐거운 책은 아니라서요. 작가도 말했다시피 지금까지 그가 쓴 글과는 '결'이 달라서 즐기기보다는 생각하면서 읽으면,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맥'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지 싶어요. 또 그의 작품의 한 키워드인 '결락'의 의미도 좀 더 뚜렷해지지 않겠나 싶습니다.
*김난주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87년 쇼와여자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오오쓰마여자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했다. 현재 대표적인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다수의 일본 문학 및 베스트셀러 작품을 번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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