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글이 좋다고들 한다. 여기서 쉽다는 건 읽어서 이해하기 쉽다는 뜻이다. 읽어나가면서 실시간으로 글의 뜻이 술술 이해되는 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글이 어떤 사람에게는 쉽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어렵다. 요컨대 글이 쉽거나 어려운 건 읽는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다. 이른바 독해력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쉬운 글, 누구에게나 어려운 글은 없다. 그러니 쉬운 글이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그렇다면 글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뭘까? 첫째, 개념어를 많이 쓰면 어려워진다. 바로 위 단락의 일부를 이렇게 바꿔보자. “평이한 문장을 선호하는 독자가 다수다. 문장이 평이하거나 난해한 건 독자에 따라 상대적이다. 이른바 독해력은 독자에 따라 상이하기 마련이다.” ‘쉬운’으로 쓰면 될 것을 ‘평이(平易)한’이라 썼다. 평이하다는 건 받아들이거나 대하기에 어렵지 않고 쉽다는 뜻이다. ‘다르다’ 하면 될 것을 ‘상이(相異)’라고 썼다. 이러면 글이 어려워진다.
둘째, 글 쓰는 사람이 잘 모르고 쓰면 어려워진다. 자기도 잘 모르는 걸 글을 써서 남에게 전해보려는 노력. 뜻은 가상할지 모르나 성공 가능성이 없는 노력이다. 글 읽다가 괜히 어렵기만 하다는 느낌이 들면 글쓴이를 의심해보는 게 좋다. 잘 모르고 썼을 가능성이 크다. 글쓰기의 정직성은 자기가 아는 만큼, 딱 그만큼 쓰는 것이다. ‘아는 척 글쓰기’의 유혹을 물리치고 ‘아는 만큼 글쓰기’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반성하건대 나도 ‘아는 척’ 자주 한다.
셋째, 높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주제에 관한 글은, 그 분야·주제에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 독자들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입문·개론 수준의 ‘알기 쉬운 철학’ 성격 책은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예컨대 철학자 칸트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서는 그렇지 않다. 철학사, 철학 전문 용어, 철학의 주요 문제, 칸트 철학 등에 숙달되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글, 모든 책이 쉬울 수는 없고,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어려운 건 어려운 것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을까? 나는 가상의 친구를 한 명 두고 있다. 이 친구는 나보다 뭘 더 많이 아는 친구는 아니다. 평소 책도 잘 읽지 않는다. 다만 호기심만은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아 묻기를 잘한다. 나를 만나도 이것저것 물어본다. 내가 제법 아는 주제라면 성의껏 답해준다. 내 답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게 있으면 다시 물어본다. 이 친구의 질문에 계속 답하다보면 내가 뭘 제대로 알고 뭘 잘 모르는지 분명해진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한 일이 바로 그러하다. 무엇을 잘 안다고 자신하던 사람도 소크라테스의 계속되는 질문에 답하려 애쓰다보면, 사실은 자신이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른바 ‘무지(無知)의 지(知)’다. 소크라테스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상대방이 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질문을 통해 돕는다. 아이 낳는 것을 곁에서 돕는 산파(産婆)와 비슷하다 하여 이러한 방법을 산파술이라 일컫기도 한다. 나는 글 쓸 때 가상의 산파를 둔다.
내 글을 읽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끈질기게 물어보는 가상의 독자, 산파가 늘 내 곁에 한 명 있다면? 글을 쓰면서 자꾸 어렵게 흘러간다 싶을 때 그가 지적하고 나선다. “이 문장이 무슨 뜻이지?” “왜 하필 그 개념어를 써야 하지?”, “이 표현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표현을 쓸 수 있잖아?” “문장이 너무 복잡하게 꼬여 있는 거 아닌가? 좀 단순하게 나눠보면 어때?” “글 쓰면서 왜 그렇게 잘 난 척 하고 싶어 하지?”
글 쓰는 내내 이런 질문들이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 글쓰기란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사실은 내 글을 읽을 것으로 예상되는 독자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독자들이 이미 내 곁에 있다. 그 독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글을 어렵게 쓰기가 어려워진다. 내 안에 소크라테스를 두면 여러 모로 도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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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출판 칼럼니스트)
출판 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쓴 책으로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