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며 떠나는 유럽 예술 기행
어떤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 내게는 피렌체라는 도시가 그렇다.
글ㆍ사진 문갑식 (작가)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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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_보티첼리와 피렌체1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중심에는 링 스트라세라는 장소가 있다. 일종의 순환도로로 슈테판 대성당, 호프부르크 궁전, 부르크 극장 등 도시의 명소를 한 번에 살필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빼놓지 말고 들러야 할 장소가 있다. ‘비엔나’ 하면 커피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처럼 거리 곳곳에 있는 다양한 살롱과 카페다. 가장 유명한 곳은 1876년에 처음 문을 연 ‘카페 센트럴’인데, 이곳이 오랫동안 명성을 얻은 데에는 사실 큰 이유가 있다.

 

레온 트로츠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폴가, 슈테판 츠바이크, 페터 알텐베르크, 아돌프 로스 등 위대한 예술가와 건축가, 철학자를 만나보세요.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은 1876년에 문을 연 카페 센트럴에선 일상이었습니다.

 

카페 센트럴의 소개 문구다.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이들이 한곳에 머무르면서 시간을 보내고 곳곳에 손때를 묻혔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저 외형적으로만 아름답게 보였던 장소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여행지와 관련 있는 예술가와 작품을 찾아보고 떠나면, 단지 눈에 보이는 그 공간의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 여행할 수 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경험을 바라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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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의 전경. ⓒ이서현

 

 

르네상스의 아름다움이 담긴 피렌체의 ‘작은 술통’

 

어떤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 내게는 피렌체라는 도시가 그렇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주의 중심 도시이자 ‘로마의 딸’로 불리며 오랜 번영을 누린 도시답게 화려하게 빛나던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녹아 있다. 피렌체라는 이름은 ‘꽃의 도시’라는 뜻이다. 로마군이 처음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아르노강 주변에 만발한 화려한 꽃밭을 보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로 지금도 ‘Flo’라는 접두사가 붙은 독일어나 영어 단어 중에는 ‘활짝 피어 있다’는 뜻을 가진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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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 베키오 다리에는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서현

 

 

문명의 중심을 신에게서 다시 인간에게로 가져온 ‘르네상스’ 역시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15~16세기 이곳에는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위대한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이 도시에서 싹을 틔운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이내 유럽 전역으로 퍼져 인류 문명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르네상스, 그리고 이 도시 피렌체를 가장 대표할 만한 인물은 누구일까? 무수한 예술가 중에서도 보티첼리를 꼽고 싶다. 그는 생애 대부분을 피렌체에서 활동했으며, 전기 르네상스의 귀족적 화려함과 후기 르네상스의 소박함 그리고 종교개혁의 씨앗을 동시에 품었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탄생 연도에서부터 작품까지 생애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둘러싸여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에게 알려진 보티첼리라는 이름이 사실 별명이라는 것이다.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로서 별명으로 알려진 것은 술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가 바로 이탈리아어로 ‘작은 술통’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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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우피치 미술관 소장)

 

 

피렌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비너스의 탄생>이다.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를 그린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작품인데, 사실 아름다운 비너스에게는 모델이 있었다. 바로 시모네타 베스푸치다. 당시 피렌체의 최대의 축제는 마상 시합과 미의 여왕 선발 대회였는데, 그는 바로 이 대회의 우승자였다. 지금으로 치면 ‘미스 피렌체’였던 셈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기품을 지녔던 그는 보티첼리뿐 아니라 모든 피렌체 사람이 칭송한 살아 있는 ‘미의 신’이었다. 시인 폴리치아노는 “너무 매력이 넘쳐서 뭇 남성에게는 칭송을 받으며, 어떤 여성에게도 욕을 먹지 않을 사람”이라고 노래했다. 피렌체의 지도자 로렌초 데 메디치는 그가 병을 앓자 자기 주치의까지 보낼 정도였다. 그러나 신의 질투라도 받은 걸까. 병을 앓다가 사망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둘이었다. 로렌초는 이 소식을 듣고 몹시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빛나는 별을 좀 보게나. 지금 아름다운 그의 영혼이 저 새로운 별이 되었을 거야.”

 

 

*문갑식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며,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세계 곳곳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산책자. 사진작가인 아내와 함께 예술이 깃든 명소를 여행하고 거기에 담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울프손칼리지 방문 교수와 일본 게이오대학교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1998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월간조선》 편집장 등을 지냈다.


 

 

산책자의 인문학문갑식 저/이서현 사진 | 다산초당
예술가의 이름을 잔뜩 나열하거나 미술 사조나 기법 따위를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도시와 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독자와 대화를 나누듯 작품의 탄생 비화와 작가의 은밀한 사생활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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