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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비가 내린 다음날에, 물영아리 오름

갖가지 생명체를 품은 전설의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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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영아리 오름은 맑은 날보다도 비나 눈이 오는 날, 흐리거나 안개가 낀 날이 더 운치 있고 아름답다. 특히 한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설국으로 변한 오름 앞 목초지는 제주 최고의 풍경 중 하나다. (2019.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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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로는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간도로 중 하나이다. 교래사거리에서 서귀포 방면 남자로길로 향하면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렛츠런팜이 나타나고 잠시 후 삼나무로 가득한 사려니숲을 지나 5분 정도만 더 직진하면 좌측에 커다란 오름이 하나 보인다. 희귀한 동식물이 분화구 내 습지에 살아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물영아리 오름이다. 송중기와 박보영이 출연한 영화 <늑대소년>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물영아리 휴게소 앞에 주차를 하고 탐방 안내소에 들러 상주 중인 직원에게 현재 물영아리 오름 내 습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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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영아리오름 입구

 

 

“습지에 지금 물이 많이 있나요?”


“그럼요. 요즘 비가 계속 내려서 습지에 물이 가득하고, 많은 생물도 볼 수 있답니다. 습지에 도착하면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 놓으시고 생명체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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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지 옆을 산책하듯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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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끝에서 오름습지탐방로와 소몰이길로 나뉜다

 

 

탐방 안내소에서 물영아리 오름 초입으로 가기까지 약 700m 길이의 목초지 옆 산책로를 걷는다. 오름 습지로 가는 탐방로에 가기 전에 좌측으로 오름 둘레를 걷는 소몰이길도 있다. 담장 너머 드넓은 목초지에는 수십 마리의 황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지나가는 사람을 멀뚱멀뚱 구경한다. 서너 마리의 야생 노루도 그 사이에서 식사 중이지만 황소 같은 여유는 없이 주변의 작은 소리에도 잔뜩 경계를 하며 언제 어디로 도망칠까 눈치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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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바로 가는 계단길과 우회하는 능선길이 있다

 

 

삼나무가 하늘 높이 우뚝 선 오름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 사이로 경사지며 들어오는 햇볕 덕분에 요정이 나올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다. 곧이어 오름 정상으로 바로 치고 올라갈 것인지, 숲길을 돌아서 완만한 오르막길로 갈지 선택의 순간이 온다. 시간이 촉박하거나 체력에 자신이 있다면, 바로 정상(표고 508m, 비고 128m)으로 가도 좋지만 은근히 가파르기 때문에 각오는 단단히 하자. 그래도 20여분만 오르면 정상이고, 여기서 계단을 조금만 내려가면 습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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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우리는 과감하게 정상으로 향했다. 계단은 소문대로 가팔라서 금세 숨이 찬다. 중간중간 총 세 개의 휴식 공간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 오름은 유난히 습도가 높아서 천천히 걸어도 온몸에서 땀이 솟구친다. 여름철에는 얼린 물이 절실하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걸음 속도가 느려진다. 계단을 내려오던 사람들이 “왜 이 길로 먼저 오시나요?”면서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어쨌든 나무로 둘러 쌓여 전망이랄 게 전혀 없는 정상 부근에 올랐고, 직진으로 계단을 내려가서 분화구 내 습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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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 분화구로 내려오면 습지가 나타난다

 

 

습지에는 물이 항상 고여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건기에는 습지 내 풀이 바짝 말라 있기도 하다. 물영아리 습지는 둘레 300m, 깊이 40m의 산정 화구호이다. 화구의 원형과 전형적인 온대산지 습지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생물과 지형, 지질, 경관의 가치가 우수하여 전국에서 최초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한다. 내가 찾은 날에도 어릴 적 동네에서 듣던 맹꽁이의 힘찬 울음 소리를 양쪽 귀가 따갑도록 들을 수 있었다. 이 습지에는 맹꽁이 외에도 제주도롱뇽, 물장군, 유혈목이, 노란실잠자리, 검정물방개 등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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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영아리오름에서도 산수국을 볼 수 있다

 

 

또한 습지 경계부는 복분자딸기와 좀찔레군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부에는 고마리 군락이 5~10m 폭의 띠 모양을 형성하고 있으며, 물고추나물과 보풀 군락, 송이고랭이 군락, 마름군락 등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그 외에도 사마귀풀, 누운기장대풀택사, 넓은잎미꾸리낚시, 가막사리, 올챙이고랭이바늘골, 꼴하늘지기 등이 있으며, 돌피, 개기장 등은 소수 개체가 서식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물영아리오름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인근 수망리에서 한 청년이 소를 방목했는데 그만 소를 잃어버렸다. 청년은 소를 찾아 수망리 일대는 물론 주변의 오름을 샅샅이 뒤졌지만, 소는 없었고 결국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오름 정상까지 갔다. 그러다가 배고픔과 목마름에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비몽사몽하고 있을 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여보게 젊은이, 소를 잃어버렸다고 상심하지 말게. 내가 그 솟값으로 이 오름 꼭대기에 큰 못을 만들어 놓겠네. 그러면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소들이 목마르지 않게 될 것이고 다시는 소를 잃어버리고 찾아 헤매는 일도 덜어질 것이네. 부디 잃어버린 소는 잊어버리고 다시 한 마리를 구하여 부지런히 가꾸면 분명 살림이 늘어 궁색하지 않을 것이네.”라고 말했다. 눈을 떠보니 갑자기 맑던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눈앞에는 큰 못이 출렁거리고 못 가에는 소 한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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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영아리오름 앞 목초지에는 수십 마리의 소를 방목 중이다

 

 

습지를 빠져 나와 다시 정상으로 올랐다가 물보라길로 향한다. 물영아리 주변을 한바퀴 돌 수 있는 둘레길은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시간이 길다고 생각되면 물보라길 삼거리에서 바로 전망대쪽으로 향해서 삼나무숲을 걷다가 탐방안내소로 복귀하면 된다. 삼나무숲에는 오래 전 조성된 돌담이 길게 늘어서 있다.

 

물영아리 오름은 맑은 날보다도 비나 눈이 오는 날, 흐리거나 안개가 낀 날이 더 운치 있고 아름답다. 특히 한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설국으로 변한 오름 앞 목초지는 제주 최고의 풍경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 접근성 ★★★
◇ 난이도 ★★
◇ 정상 전망 ★★★

 

 

 

오름에 가져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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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과 몽상 1』
스티븐 킹 저

  

무더위에 지쳐갈 때 스티븐 킹의 소설은 탁월한 선택이다. 그의 책은 지금까지 3억 5천만 부가 넘게 팔렸다. 영화와 드라마로만 수십 편이 제작되었다. 이 책에는 스티븐 킹이 칠 년간 쓴 작품 중 탁월하다고 자평한 스물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한두 시간이면 한 편씩 읽을 수 있으니, 시원한 팥빙수와 함께 먹으면 더욱 짜릿할 것이다.

 

찾아가는 방법

 

지도 앱이나 내비게이션에서 '물영아리 휴게소' 또는 '남원읍 충혼묘지'로 검색해서 찾으면 된다. 주차장은 여유롭지만 주말에는 붐빌 수 있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60분 소요된다. 버스로 갈 경우에는 제주공항에서 급행버스(111, 121, 131)를 타고 봉개동 정류장에서 환승(231)하면 된다. 화장실과 식당, 탐방 안내소가 잘 갖추어져 있다.
◇ 주소 : 서귀포시 남원읍 남조로 996 

 

 

 

주변에 갈만한 곳

 

로빙화

김형욱 작가와 김병준 작가 등 사진작가 여럿이 뭉쳐 만든 바닷가 앞에 위치한 갤러리 카페이다. 시그니처 음료인 스칼렛과 수제버거, 피자가 무척 맛있다. 2층 난간에 마련된 해먹은 용기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올레 5코스가 바로 앞을 지나가서 산책하기 좋다.
◇ 주소 : 서귀포시 남원읍 남태해안로 13
◇ 전화 : 070-4643-7069

 

수망농원

레드향과 한라봉 등 제주 특산귤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체험농장도 운영해서 미리 전화로 예약하고 가면 겨울 수확 시기에 직접 귤을 따볼 수 있다.
◇ 주소 : 서귀포시 남원읍 남조로 622
◇ 전화 : 010-5722-2679
◇ 홈페이지 : blog.naver.com/dkkimsun

 

사려니숲 (붉은 오름 입구)
사려니 숲길은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사려니 오름까지 이어져 있다. 교래리와 붉은 오름 사이 구간은 약 10km 정도이다. 조천읍 교래리 방향의 사려니숲에는 주차할 수 없지만, 붉은 오름 입구 부근에는 차를 세우고 숲길 트레킹이 가능하다. 화장실과 관리소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관광객 대부분은 이곳을 선택한다. 사계절 언제 가더라도 아름다운 숲이다.
◇ 주소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158-4

 

 

최경진


4년차 제주 이주민이다. 산과 오름을 좋아하여 거의 매일 제주 곳곳을 누빈다. 오름은 100여회 이상, 한라산은 70여회, 네팔 히말라야는 10여회 트레킹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으며(www.nepaljeju.com), 함덕 부근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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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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