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한일 무역전쟁, 이기려면 냉정해져야”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언제까지나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는 없습니다. 장단기 파급효과가 있는 사업에 돈을 써야 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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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무역전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바로 와세다대학교 국제학술원 박상준 교수다. 20년간 한일 경제 전문가로 활동한 박상준 교수는  『불황탈출: 일본 경제에서 찾은 저성장의 돌파구』  에서 일본이 과감한 무역도발을 행한 배경에는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고 진단한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받더라도 소정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자국 경제가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혹자는 ‘한국이 곧 불황에 접어든다’라고 말하지만, 박상준 교수는 ‘한국은 이미 불황의 한 가운데 있다’라고 단언한다. 각종 경제지표가 한국이 불황인 사실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무역전쟁에서 승리하고 불황에서 탈출하려면 우리보다 한발 앞서 ‘무역전쟁’과 ‘불황’을 경험한 일본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일본 최고의 명문 사립대 와세다대학교의 교수이자 20년간 한일 경제 전문가로 활동한 저자는  『불황탈출』  을 통해 객관적이고 실리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해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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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무역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데요. 일본이 이렇게 무역도발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나면서,한국에 있는 일본 기업의 자산이 압류된 것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표시라고 봅니다. 아베 정권이 과거 역사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와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징용공에 대한 배상은 이미 완결되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주장이고, 따라서 일본 기업의 자산이 압류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한일관계를 바꾸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고 봅니다. 언제까지나 ‘가해자 일본’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배상도 사죄도 했다’는 주장을 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경제에 대한 자신감,아베 정권 지지율에 대한 자신감도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불황이란 말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일본이 정말 호황인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본 경제의 현황은 어떤가요? 그리고 무역전쟁 이후의 일본 경제 전망은 어떤가요?

 

일본의 경우 2013년부터 2018년까지 5년 동안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는 367만 명이나 줄었지만, 정규직 취업자는 183만 명, 비정규직 취업자는 214만 명이 늘었습니다. 비정규직 일자리뿐만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도 증가한 것입니다. 같은 기간 20대 인구는 60만 명이 감소했는데, 20대 정규직 취업자는 33만 명 증가한 반면 비정규직 취업자는 오히려 8만 명 감소했습니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나 20대 인구는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 실업은 2000년대 초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최악을 기록했었습니다.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청년 인구 감소가 청년고용 개선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걸 유추할 수 있습니다. 여러 지표를 들 수 있지만, 고용상황이 개선됐다는 것만으로도 지난 5년 동안 일본 경기가 상당히 좋아졌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러나 2019년 들어 ‘미중마찰’이 지속되면서 일본 기업들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되고는 있습니다.일본 기업은 해외 현지 생산을 통한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과 중국 경기가 악화되면 영향이 크죠. 게다가 올해 10월에는 소비세가 8%에서 10%로 인상됩니다.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소비세 인상의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지만, 최근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소비세 인상의 충격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난 5년이 일본이 ‘불황 터널’에서 탈출한 시기였다면 현재는 다시 터널로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상태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여전히 ‘소니’를 조사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삼성이나 LG에 밀린 ‘몰락한 전자 왕국’이었던 소니를 한국 기업들이 주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간단히 말해 소니가 부활했기 때문입니다. 소니는 2014년도 결산에서 주주에게 배당금을 주지 못했습니다.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 경제가 한창 힘들 때인 1997년 결산에서도 5,200억 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회사였기 때문에, 소니의 무배당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2017년과 2018년 결산에서는 2년 연속 과거의 영업이익 기록을 갱신하는 최고의 실적을 거두었습니다. 망한 줄 알았던 회사가 화려하게 부활하자 한국 기업들이 소니의 변신을 주시하게 된 것입니다.  


고령화, 청년 인구 감소, 사회 복지비용 증가 등 현재 한국이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일본이 앞서 겪은 바 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처 중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을까요?

 

일본은 오랫동안 불황 터널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채무가 증가한 데는 불가피한 면이 있었지요. 그러나 재정지출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정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좋을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불황이 닥쳤기 때문입니다. 연금을 너무 방만하게 운용한 것과, 복지지출에 비해 국민의 조세 부담률이 너무 낮았던 것도 실패 요인으로 꼽힙니다. 

 

한국은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40% 정도로 재정이 무척 탄탄한 편입니다. 따라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빌릴 수 있는 자금의 규모를 고려하면, GDP의 80% 정도가 한계로 보입니다. 일본은 정부부채가 GDP의 50%에서 100%로 늘어나기까지 10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한국도 언제까지나 재정지출을 통해 경기를 부양할 수는 없습니다. 단순한 아르바이트 형식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돈을 쓰기보다는, 장단기 파급효과가 있는 사업을 선정해서 그런 곳에 돈을 써야 합니다.

 

예컨대 벤처 창업 지원이나 청년의 해외 취업, 중견기업 취업 지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도 적지 않은 재정을 쓰고는 있지만, 더 과감한 지원과 정책 효과에 대한 엄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정책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계속해서 정책 효과를 검증하고 정책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 인력의 활용을 위해 육아시설과 인력을 확충하고, 방과 후 돌봄 등의 사업을 지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장단기 계획을 분명히 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해가야 합니다. 50~60대 직장인의 전직 혹은 직장 재배치를 돕기 위한 직업 훈련 등도 더 많은 정부 재정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실업 문제는 한국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정부에서 많은 돈을 쏟아 붓는데 왜 해결되지 않는 걸까요? 불황에 빠진 저성장 국가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0대의 직장 커리어가 전 생애에 걸친 소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국내외 많은 연구에서 입증된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은 처음부터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좋은 직장이 많지 않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처음부터 자기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월급 받는 것을 선호하죠. 임금 근로자가 되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임금 근로자 비중은 75% 정도에 불과합니다. 임금 근로자 비중이 한국보다 낮은 OECD 국가는 그리스, 터키, 멕시코뿐인데 이 나라들 역시 청년실업률이 높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대기업 일자리가 적습니다. 일본은 취업자 100명 중 8.7명은 관공서에서 일하고 92.3명은 민간에서 일하는데,민간에서 일하는 92.3명 중 22.3명은 종사자가 1,000명 이상인 대규모 사업체에서 근무합니다. 한국은 취업자 100명 중 7명만이 종사자 1,000명 이상의 대규모 사업체(정부기관 포함)에서 근무합니다. 대기업 취업 경쟁이 한국에서 훨씬 심할 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큰 문제입니다.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반면, 지난 20년간 한국 청년의 교육 수준은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한국의 25~34세 인구에서 차지하는 대졸자 비중(2년제 포함)은 70% 정도로 관련 통계를 발표하고 있는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습니다. 높은 교육 수준과 교육에 투자된 돈과 시간을 고려하면, 노동시장 신규진입자의 눈높이가 높을 수밖에 없을 텐데, 좋은 일자리는 적고, 중소기업에 가려니 임금 격차가 너무 심하니 구직 기간이 길어지고 청년실업률이 높은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 구조가 진화하지 않는 한, 청년실업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습니다. 정부도 청년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확한 현실 인식 위에서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중견기업의 청년 채용을 보조하는 형식으로 구직자와 구인 기업의 미스매치를 줄이고 벤처 창업, 해외 취업, 직업 훈련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정도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중견기업의 육성을 국가적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기적”이라는 말은 정권에 관계없이 국가적 과제로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본에서 명문대로 손꼽히는 와세다대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다녔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가 다녔던 곳이기도 하고요. 와세다대에도 한국 청년들이 많을 텐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간에 다른 점이 느껴지시나요?

 

한국 학생들도 일본 학생들도 모두 우수하지만, 한국 학생들이 훨씬 더 열심입니다. 일본 학생들은 취업이 쉽다 보니, 3학년 2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취업 시즌만 바쁠 뿐, 그 외에는 대학 생활을 즐기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학점을 관리하고, 스펙을 쌓느라 훨씬 더 바쁘게 대학 생활을 합니다. 타고난 자질은 비슷하다 해도 노력과 태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더 뛰어난 실력을 보입니다.


한편, 일본 학생들에 비하면 한국 학생들은 공동체에 대한 배려에 있어서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일본 학생들은 바쁜 일이 있어도 졸업생 환송회 등에 잘 참석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불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치열하고 여유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런 면에선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 정부의 무역도발로 인해 한국에선 ‘NO 재팬’ 운동이 일어났고, 반일감정도 어느 때보다 심한 상황입니다. ‘NO 재팬’ 운동을 일본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한국이 앞으로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 다양한 의견이 있듯이 일본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베 정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아베의 태도나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NO 재팬’의 원인을 아베 정권으로 보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정치적 견해가 없거나 우익에 경도된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섭섭하거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갈등의 원인을 한국이 제공했고, ‘NO 재팬’도 국민 감정을 선동하는 한국 정부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굳이 일본과 경쟁할 필요도 일본을 이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살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면 그걸로도 충분하지요. 다만 지금은 ‘무역분쟁’이 진행 중이니, 한국 경제가 타격을 입지 않고 이 분쟁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일본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일본은 20년이 넘는 불황을 겪고 나서야, 효율성과 안정성의 어느 한 극단만을 추구하는 것은 경제에 해가 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정치적 진영싸움을 멈추고, 한국을 위해 가장 좋은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박상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일본 국제대학에 조교수로 부임하면서 일본 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 와세다대학교로 옮겼고, 현재 와세다대학교 국제학술원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0~2011년에는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한국 경제를 강의했다. 거시금융이 전공으로 환율이나 경제 주체의 합리성에 관한 논문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최근에는 한국과 일본 기업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 『불황터널: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을 출간하여 일본 경제 전문가로 주목을 받았다. 〈동아일보〉에 한국과 일본 경제에 관한 칼럼을 정기 연재 중이며, 논문과 인터뷰, 강연 등을 통해 일본의 경험이 한국의 개인과 기업, 정부에 주는 시사점을 알리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불황탈출박상준 저 | 알키
세계적인 기업들이 삼성과 LG에 역전당하고, 20년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은 어떻게 부활했을까? 한국은 일본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한국 경제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일본을 통해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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