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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담 "여성이 연대하는 로맨스를 쓰고 싶었어요"

『괴물 장미 』 정이담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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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특별한 어느 한 명의 경험이 아닙니다. 타인에 의해 너무나 쉽게 왜곡되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어요. (2019. 0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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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로맨스 소설  『괴물 장미』  는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의 제1회 로맨스릴러 공모전에서 “로맨스의 외연을 확장한 격렬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우수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강렬한 여성 서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약자와 강자, 폭력과 차별, 사랑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다. 친부의 폭력에 시달리며 탈출을 꿈꾸는 소녀가 미모의 여성 뱀파이어와 만나게 되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내용을 그렸다.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가정폭력과 아동보호 관련 기관에서 재직 중인 정이담 저자는 가려진 목소리들을 드러내고 싶다는 포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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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서 약자이자 피해자인 여성을 구원하는 것은 같은 여성들입니다. 특히, ‘천 명의 여자가 살면, 한 명의 삶이 돌아온다’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한데요. 여성들의 연대와 구원을 그리시면서 어떤 부분을 가장 담고 싶으셨나요?

 

처음 이야기를 구상할 때에는 사랑과 연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 후 글을 퇴고했을 때에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라고 확신했습니다. 제게 ‘악’은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닙니다. 그건 덜 진화된 야만에 가깝고, 선과 사랑이 훨씬 복잡하고 고도로 진화된 길입니다. 우리는 잔재한 야만의 시절들을 지났거나, 아직도 지나는 중입니다. 선을 발휘하는 방식은 단일하지 않고, 한 명을 살리는 건 한 명의 괴물이 태어나는 일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를 죽이기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는 고민에 힘을 보탰으면 좋겠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색감이 특히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눈부신 황금빛과 선명한 빨간색이 유난히 도드라지고요. 특징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제시하는 작업에 많은 공을 들이신 것 같다고 느꼈는데, 특히 빨간색과 금색으로 대표되는 장미라는 오브제를 중심 소재로 채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지각하는 세상은 극과 극이 뒤섞여 존재하는 곳입니다. 굉장히 밝은 곳에 그림자가 숨어 있기도 하고, 처참한 상황에서도 놀라운 빛을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감각이 주로 색채와 이미지, 상징들로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외연 이면의 다양한 색과 성질들이 우리에게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장미는 역설적인 속성을 가진 꽃입니다. 부드럽고 화려한 꽃잎과 날카롭고 아픈 가시를 동시에 가졌습니다. 마찬가지로 황금도 유사한 특성이 있습니다. 귀하고 영원한 광물이기도 하면서, 탐욕과 천박함, 분쟁들과 관련이 깊습니다. 황금 장미는 종교에서 최고의 정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성의 길을 걸어야 할 종교의 역사는 세속과 가깝기도 합니다.

 

물욕, 야만, 권력, 영속, 영혼, 사랑을 표상하는 황금 장미. 그러나 만약 황금 장미 본인에게 네가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꽃은 어떤 대답을 할까요? 타인에 의해 너무나 쉽게 오도되고 왜곡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황금과 장미, 황금 장미는 그런 대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력적인 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작중 가장 큰 성장을 보이는 캐릭터인 메리는 폭력의 굴레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생의 의지를 다잡는 인물이죠. 바네사는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입니다. 메리와 바네사는 서로를 구원하고 또 서로에게 구원받죠.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어떻게 태어났나요?

 

두 여성 간 연대에 대한 한국 배경의 단편을 쓴 적이 있었고,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제가 목격한 셋 이상의 사람들에게서 유사한 원형이 나타나면 설정으로 차용했습니다.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특별한 어느 한 명의 경험이 아니며, 그들의 생에 대한 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그들의 목소리가 무엇일지에 귀 기울였습니다. 의도적으로 남성들은 대상적 위치에, 여성들은 다채로운 목소리와 욕망을 드러내도록 연출하였습니다.


주인공 메리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름인 ‘메리 제인’에서 그림을 그릴 때 스스로 붙였던 이름인 ‘멜리니’로 선택하고 바꾸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피에르 보나르의 연인이자 자신조차 본명을 모르고 30여년을 살았던 ‘마르트 드 멜리니’의 일화도 흥미로웠고요. 이런 이름의 활용은 처음부터 구상하신 건가요?

 

‘이름’은 가장 구시대적 이름 중 하나인 ‘메리 제인’을 설정할 때부터 활용을 구상했습니다. 가부장제의 폭력으로 상징되는 아버지가 준 이름을 벗고 주체적으로 선택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일. 자신이 선택한 계보를 잇는 일입니다. 그 경계를 넘는다면 다시 본래의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의미는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현실적 소재를 강렬한 환상성으로 풀어내심과 동시에, 독자들이 계속 긴장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는 추리적 요소를 저변에 깔기도 하셨죠. 장르의 적절한 분배나 설정에 대해 고민하셨던 부분이 있었는지요.

 

장르라는 틀, 문법 등은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글이 문단문학이냐 아니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제와 이야기, 목소리가 먼저이고 이걸 잘 담을 그릇을 선택합니다. 과도한 구획화, 카테고리화보다 경계를 넓히거나 흐리고 섞는 시도들이 반갑습니다. 재미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잘 읽혔으면 좋겠고, 인물들의 세계를 체험하도록 매혹하면 좋겠습니다. 구성이나 플롯의 경우, 기술적으로는 좋은 작법에 해당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왜인지 그곳에 넣어야만 했던 장면이나 해결들이 있습니다. 직관을 충실히 따라 작업하였습니다.


저자 프로필 소개에 ‘가려진 목소리들을 드러내기 위해 쓴다.’는 말씀을 전해 주셨어요. 이처럼 우리가 어떤 선언을 할 때 외연이 확장되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요, 작가님께 글을 쓰는 일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혹자는 예술이 위대하다고 하지만 제게는 삶이 더 위대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목소리가 쉽고 큰 세상에서, 가려졌지만 명백히 존재하는 목소리들에 힘을 싣고 싶습니다. 글쓰기는 가장 연약한 방식으로 동참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득권이 선택하고 허락한 목소리 외의 존재 양식을 드러내는 작가가 되길 원합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통해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으셨다면요?

 

아직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한동안은 여성과 퀴어라는 영원한 대상이자 비체로서 느끼는 진실에 대해 표현하고 싶습니다. 세대가 다른 두 여성 간의 관능적 욕망을 표현하는 작품과, 타자화에 대항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문단문학이나 장르문학이라는 틀로 규정하기 어려운 근본 없는 글일수록 좋겠습니다. 읽고 나면 하루 더 살고 싶어지는 작품이면 좋겠고, 다음 세대에게는 보다 잘 사랑할 수 있는 나날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독자들을 만나는 길이 계속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정이담


심리학과 학사 및 석사 졸. 가정폭력 및 아동보호 관련 전문기관 재직 중. 판섹슈얼. 가려진 목소리들을 드러내기 위해 쓴다.

 


 

 

괴물 장미정이담 저 | 황금가지
이야기의 약자이자 피해자인 여성을 구원하는 것은 같은 여성들로,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지닌 여러 여성 캐릭터들이 선보이는 강렬한 서사가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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