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쯤 진료실 앞에서 내 이름이 호명되길 한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진료를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잡지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제주의 해녀들을 다룬 기사를 접하게 됐다. 문단 하나와 가로, 세로 5센티짜리 할머니 사진이 전부인 기사였다. 사진 속에서는 한 해녀가 젖은 잠수복을 입고 뚫린 얼굴 부분으로 얼굴을 내민 채 수확물을 자랑스럽게 치켜들고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사진이 실린 지면을 뜯어서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해녀에 매료된 나는 언젠가 그들에 대한 책을 쓰리라 다짐했다.
지금까지 나는 사라지거나 잊힌 여성들, 혹은 고의로 숨겨진 여성들의 이야기에 항상 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해녀들에 관한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존재했다가 이제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여성들의 문화 전체에 관한 것이었다. 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다른 책을 집필 중이었고 『해녀들의 섬』 에 착수하려면 다른 두 권의 책을 먼저 마쳐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나한테는 이런 상황이 그리 특별하진 않았다. 나는 무언가?여성들의 비밀스러운 언어, 17세기 중국의 문인 여성들, 중국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하는 미국 가정들이 늘어나는 현상?를 발견하면 오랫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 다음 “그래, 이걸 써 보자”라고 이내 결정을 내린다.
책을 쓰고 싶은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그 이야기가 필요로 하는 어두운 곳들에 갈 용기가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준비됐어? 내가 『사랑에 빠진 피어니』에서 다뤘던 17세기 중국 여성 작가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분명히 밝히지만 내가 아침에 눈을 떠서는 “오, 이런. 오늘은 진짜로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을 한 사람 죽여 치워버려야겠군!” 하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장면을 쓸 때면 마음이 아프다. 실제로 그런 장면을 쓰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괴롭다. 그러나 그럴 때면 자주 나는 그렇게 쓰도록 영감을 불어넣어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경험에 경의를 표하려고 애쓴다.
다른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제주 해녀들을 인터뷰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는) 물질(잠수)의 실질적인 측면이나 위험요소와 연관된 질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질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은 어땠어요? 여자들이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에 대해 남편들은 어떤 식으로 반응하나요? 해녀들은 물질하다가 물속에서 아이를 출산했나요? 아니면 배 위에서요? 아니면 바닷가에서요? 출산 후에는 얼마나 있다가 다시 물질을 시작했나요? 혹시 누가 죽는 걸 본 적이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죽을 뻔한 위험에 처해본 적은요?
다음으로는 제주도 사람들이 겪었던 더 큰 역사 문제가 있었다. 『해녀들의 섬』 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2차 세계대전을 거쳐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적색공포)가 휩쓸었던 시기로 이어진다. 제주에서 이 모든 것은 4.3사건 때 정점에 이르렀다. 친구가 친구에게 등을 돌리고 가족들끼리 등을 돌렸으며 경찰과 군대는 주민들에게 등을 돌렸다. 4만 명(그 당시 인구의 10%)이 목숨을 잃었고 8만 명의 중산간 사람들이 피난민이 되었으며, 많은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다. 50년 동안 제주 사람들은 이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모든 역사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얻기 위해 그곳 사람들과 여러 번 차를 마셨고, 신뢰와 친밀한 관계를 쌓으면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을 만들어나가야 했다.
또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을 모아놓은 755쪽짜리 문서, 『제주 4.3사건 보고서』도 공부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나는 기밀문서에서 해제된 미군과 한국군의 서류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보고서에는 힘들고 잔인했던 그 시절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직접 겪은 목격자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특히 북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군인들이 나누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앰뷸런스 기사의 회상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회상은 『해녀들의 섬』 에도 인용됐다.
제주는 용서라는 힘든 일을 받아들였고 이제는 평화의 섬으로 간주되고 있다. 제주도에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많다. 그러나 혹시라도 제주도를 방문하고 싶다면 4.3평화공원에 꼭 가보길 추천한다. 그곳에는 4.3사건 때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박물관에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의 끔찍함뿐만 아니라 평화와 용서를 찾는 법도 알려주고 있다. 소설 속의 허구적인 인물인 영숙과 미자처럼 개인이건,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뉘었던 마을이건, 제주 사람들은 용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 함께 애써왔다. 이것은 특별하고도 감동적인 일이다.
우리 모두 그 순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다 해도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 큰 역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일은 내 가족에게도 일어났고 여러분의 가족에게도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여러 사회와 문화 속에서,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혹은 각 나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 조국인 미국은 지금 분열되어 있다. 화해로 향하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하거나 협상하는 일에 사람들은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 그 결과 나는 다시 용서라는 주제와 이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용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다. 내게, 혹은 내 가족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용서할 것인지 고민하고 과연 용서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을 가졌던 때가 많았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영숙과 미자의 관계는 용서라는 것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왜 용서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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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의 섬리사 시 저/이미선 역 | 북레시피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바다와 함께하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꽃피어나는 그들의 우정과 유머와 용기를 엿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소설은 세월의 비밀을 간직한 채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