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생은 어려서부터 인터넷과 컴퓨터를 끼고 살았던 세대이며, 또한 스마트폰이 나오자 즉각 적응하며 새로운 스마트폰 기반의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창조해낸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는 1980년대생들보다 더욱 뼛속 깊이 ‘포노 사피엔스’ DNA를 심고 사는 새로운 호모족이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인류)는 이제 새로운 인류의 표준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이미 36억 명을 넘었고 우리나라도 인구의 90%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 중이다. 2007년 아이폰, 그리고 2010년 갤럭시S가 처음 등장한 이후 스마트폰에 기반한 새로운 소비 방식은 우리 사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신문과 TV는 네이버,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으로 대체되었고 은행 업무는 스마트폰 뱅킹이 상식이 되었다. 오프라인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모바일 쇼핑이 더 편리하다는 소비자가 늘면서 포노 사피엔스를 위한 유통 기업 아마존이 세계 1위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모든 변화는 포노 사피엔스라는 새로운 인류의 자발적인 선택에서 시작되었고, 이미 세계 시장의 30%를 교체해버렸다. 기존의 소비 방식을 지켜내려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매출의 절반이 날아가는 엄청난 위기에 몰린 것이고, 새로운 포노 사피엔스 시장에 도전하는 기업들에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위기와 기회, 이것이 시장 혁명의 본질이자 두 얼굴이다.
90년대생은 바로 새로운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창조자들이다. 포노 사피엔스도 엄연한 호모(Homo)족이어서 똑같이 뇌를 통해 생각을 만든다. 인간이 생각을 만드는 방식은 복제(meme)다. 정보를 보고 뇌에 복제해서 생각을 만드는 방식은 같은데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정보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인류를 뿌리째 바꾼 원인이 될 줄이야. 90년대생들의 부모는 신문과 TV로 정보를 공유하던 세대이다. 무려 70% 이상의 국민이 아침이면 신문을 보고 저녁이면 TV를 보며 유사 정보를 뇌에 복제해 견고한 대중 의식을 만들던 세대다. 무려 50년간 지속되던 이 패턴이 90년대생들에 의해 깨져버렸다. 그들은 신문과 TV를 끊고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보의 선택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중 매체가 만들었던 견고한 대중 의식이 부서지고 개인의 뇌는 개인의 선택에 의한 자유로운 생각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동시에 사회와 조직에도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생각이 변화한 인류는 관계도 바꾸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쥐고 SNS로 소통하면서 그들은 새로운 인간의 관계망을 만들었다. 90년대생은 이전 세대들과 생각이 달라졌고 인간의 관계가 달라졌다. ‘생각하는 힘’과 ‘관계를 통해 협력하는 힘’은 인류가 지구상에 번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천이다. 그 근원이 통째로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90년대생은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종족, 새로운 포노 사피엔스(포노족)로 봐야 한다.
그들은 대중 매체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은 채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만의 문명’을 만들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사회와 조직’을 가장 중시한다. 그래서 조금 불합리하더라도 조직의 안위를 위해서는 개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포노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행복과 권리’다. 그래서 개인의 행복을 침해하는 어떤 불합리한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 미투 운동, 젠더 이슈 등은 사회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문명 교체의 상징이다. 어떠한 권력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행복을 침해할 수 없다는 그들의 생각은 이제 사회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가장 급격한 변화는 소비의 방식이다. 우선 미디어 소비가 달라졌다. TV를 끊은 90년대생들은 유튜브를 보고 인스타그램으로 소통한다. 뉴스도 끼리끼리 관심 있는 것만 검색하며 즐긴다. 그리고 그들의 미디어 소비 방식이 전 세대로 서서히 확대되면서 미디어 산업 생태계에 급격한 변화가 왔다. 지상파 방송사의 매출은 절반으로 추락했고 모바일 동영상의 유튜브 점유율은 80%를 넘어버렸다. 미국에서는 지상파 방송사 거의 전부가 M&A를 완료했고 100년 전통의 『타임』지도 결국 적자를 못 견디고 인수되어버렸다. 그 사이 개인 방송을 만드는 크리에이터 생태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도티, 이사배, 대도서관, 벤쯔 등 엄청난 팔로어를 보유한 유튜버들이 탄생했고, 인스타그램에서도 수십만 팔로어를 보유한 인플루언서들이 소비의 팬덤 현상을 주도하고 있다. 유튜브와 SNS 생태계 확산을 보여주는 혁명의 상징은 방탄소년단, 바로 BTS다. 유튜브 방송으로 데뷔해 세계 최고의 아이돌 스타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년. 이들을 성공시킨 건 SNS 관계망으로 똘똘 뭉친 팬클럽 ‘ARMY'였다. 90년대생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미디어 소비 방식은 방송가도, 음악계도, 광고업계도 혁명적 변화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는 멸망의 위기로, 누구에게는 백년 만의 절대 기회로 각인되면서.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가 언급했듯이 미디어 소비 변화는 미래 소비 패턴 변화의 선행 지표다. 결국 소비 방식의 변화와 이에 따른 산업 생태계의 혁명적 변화는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이 시스템에서 소비자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방송사가 모든 미디어 생성과 보급, 그리고 스타를 만들어내는 절대 권력이었다. 반면 유튜브와 SNS 생태계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이 미디어의 성공과 스타 탄생을 결정한다. 그들이 클릭하고 함께 퍼뜨리면 유튜버가 되고 아이돌이 된다. 이제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90년대생 포노 사피엔스의 소비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이제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한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의 경영 철학은 고객 중심 경영, 아니 고객 집착 경영으로 유명하다.
바야흐로 고객이 진정 왕이 된 시대이다. 그리고 90년대생들은 이 신문명의 창조자이며, 따라서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이 시대의 왕이다. 모든 기업은 명심할지어다. 90년대생 포노 사피엔스, 새로운 왕이 탄생하셨다. 그를 진심으로 영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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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최재붕 저 | 쌤앤파커스
신인류의 등장과 특징과 그들이 ‘축’이 된 새로운 문명의 실체, 산업군별 시장 변화와 소비행동의 변화,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성공 전략과 새 시대의 인재상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다.
최재붕(『포노사피엔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