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로 80세. 몸만 20대로 돌아간 것 같다. 온몸이 활기에 넘친다. 머리도 한층 맑아진 것 같다. 그렇다. 이 귀한 기회에 반성과 함께 꼭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1960년대 미국의 젊은 대통령이 못 마땅했었다. 이 사람은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참신한 이미지로 인기를 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별로였다. 후일 이 사람이 불행히도 비명에 간 후 각급 학교에서 이 사람에 관하여 글짓기나 웅변대회도 연다고 듣고는 냉소 섞인 비난도 했다.
이 사람에 관해서 특히 싫었던 점이 있었다. 그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모두가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국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이 말에 특히 식상 했다. 자신은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산 사람이 다른 사람들 보고 국가를 위해서 더 봉사하라고 권하다니! 가볍고 경솔한 만큼 경우를 모르는 인사네!
그 후 거의 두 세대의 세월이 흘렀다. 세계는 엄청 넓어졌다. 아니 좁아졌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리들의 세계가 넓어진 것과 반비례해서 객관적인 현실에서 세계는 졸아들었다. 그만큼 우리의 운명은 이 세계 안에서. 자기 나라이건 이웃 나라이건 혹은 어떤 지역이나 지구적인 차원에서 크게 결정이 된다. 20대에 관심은 그저 나에 관한 것이었다: 보고 싶은 책을 어떻게 구할까, 어디 일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 없을까, 유학을 갈 수 있는 장학금 기회는 없을까? ....
그보다는 나라를 위해서 세계나 인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여야 하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는 것이 자신의 문제에도 가장 훌륭한 시작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라종일 (국방대, 가천대 석좌 교수)
1940년 12월 5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학사와 석사를, 그리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1972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으며, 미국의 스탠포드대, 미시간대, 남가주대, 프랑스의 소르본대, 그리스의 아테네대 등에서 연구교수와 교환교수를, 그리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펠로우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