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저런 희한한 머플러를 누가 하고 다닌담?’
그는 주황색 바탕에 갈색 점박이가 박힌, 꽤 화려한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잠깐 사람으로 변신한 목도리도마뱀처럼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안경을 썼고 꼽슬꼽슬한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파마를 한 적이 한 번도 없고, 타고난 곱슬머리라고 했다. 그 사실을 안 것은 시간이 꽤 지나서지만. 저렇게 이상한 머플러를 한 남자와는 5분도 같이 걷지 못할 거라며, 나는 큭큭 웃었다. 그는 ‘소설 창작’ 수업을 맡은 강사였다.
나는 강사나 교수라 해도 그들이 하는 말을 전적으로 믿는 편은 아니었다. 그들의 말 중 반은 듣고, 반의반은 믿고, 반의반은 믿지 않았다. 스스로 납득하기 전엔 누구로부터 온 ‘가르침’이든, 얼마간 의심하거나 회의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한 학기 동안 읽어야 할 열 권의 도서 목록을 알려주며, 읽은 순서대로 리포트를 제출하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아홉 권의 책을 읽고 리포트를 써냈지만, 한 권은 읽지 않았다. 리포트도 제출하지 않았다. 그 한 권은 바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였다. 나는 글로 누군가를 유혹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에 (멍청하게도) 그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유혹하는 글쓰기』 를 읽고는 탄식했다. 조금만 빨리 이 책을 읽었다면, 멍청한 짓을 덜 할 수 있었을 텐데!
소설 창작을 가르치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이었다. 그는 내게 소설을 더 열심히 쓰라고 야단이었다. 재능이 있다는 거다. 수업시간에 발표한 내 소설을 따로 디스켓에(그때는 디스켓을 사용하던 시절이다) 담아오라고 해서 ‘어머, 그래도 보는 눈은 좀 있으시네’, 멋대로 생각하게 했다.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작가가 될지도 몰라!)을 기대하게 해놓곤 일언반구도 없어 나를 실망시켰다. 내가 소설보단 시를 열심히 쓰고 있다고 하니 ‘너는 시가 아니라 소설을 써야 한다’고 설득했다. 나는 그를 ‘시인들의 나라에서 탈주한 시인’으로 생각하며 예의주시했다. 당시 나는 ‘오직 시만 쓰겠다’는 생각으로 뭉친, 우둔한 주먹밥 같은 애였으니까. 그는 많은 부분 나와 맞지 않았고, 종종 나를 불편하게 했다.
지금 나는 그와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며 그를 ‘당신’, 혹은 ‘여보’라고 부른다. 그렇게 됐다. 뒤통수에 뜬 머리, 어깨에 떨어진 비듬도 가장 가까이에서 본다. 사람의 일이 사람의 일만은 아닌 걸까? 대학 때 나는 당신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면, 그도 지지 않고 말한다. 소설을 조금 잘 쓰던 것을 빼면, 나 역시 너에 대해 기억나는 게 별로 없노라고. 기분이 상해 ‘사실 당신은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고 말하면, 그는 눈도 끔뻑하지 않고 자기 역시 그렇다고 대꾸한다. 그 이상한 목도리? 지금 내 목을 감싸고 있다. 아무리 봐도 예쁘다고 볼 순 없어서, 어울리는 옷을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그의 머플러를 두르고 길을 나서는 것을 좋아한다. 십수 년 전 그와 내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을 때,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때, 그의 목에 감겨 여기까지 따라온 물건이니까. 애틋하다.
알 수 없는 세월이 흘렀고, 알 수 없는 세월이 도래할 것이다. 나는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그의 머플러를 두르고 길을 나설 것이다. 산책길에 도토리가 ‘딱!’ 소리를 내며 내 머리통을 맞추면, 앞서 가던 그가 배꼽을 잡고 웃을 것이다.
내 책상 위에 도토리 몇 알이 있다. “혹시, 영감이 올까 해서.” 라고 말하며, 그가 두고 간 도토리. 중요한 건 첫인상이 아니다. 지금 내가 당신을 어떤 마음으로 그리고 있는가. 그게 더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됐을까’ 중얼거리며, 도토리를 가만히 만져보는 시간.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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