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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다르고 속 다른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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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투명하고 솔직한 사람이 마냥 좋게 보이지도 않는다. 가끔은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게 낫다. (2018.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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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그렇게 안 봤는데, 너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어.” 이런 말은 칭찬보다 실망했을 때 더 자주 쓴다. 실망을 넘어 배신감을 느끼면 “네가 그럴 줄 몰랐다!”라며 목청을 높이게 된다. 직장 동료가 나를 물 먹일 가능성이 있는지, 직장 상사가 나를 밀어줄 의사가 있는지, 애인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지…… 

겉만 보고 알 수 없다. 말만 듣고 진짜 마음을 알 수가 없다.

 

겉만 보고 속마음까지 알 수 있으면 인간관계로 고민할 일도 없고, 누군가를 의심할 필요도 없을 거다. ‘무슨 꿍꿍이가 있나?’라거나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애써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될 테니 편할 거다. 사람이 언제나 한결 같다면 관계가 꼬일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잘 알고,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은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편할 거라 여긴다. 현실이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이걸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나는 항상 뻔한 말에, 뻔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건 결말이 정해진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서 싫다. 호기심이 생길 리 없고 금방 싫증날 것이다. 안개 속을 걷는 듯 뿌옇고 모호한 느낌, 보려 해도 다 보이지 않는 알 수 없음이 나는 더 좋다.

 

도박을 싫어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재미있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쉽게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숨겨진 것을 찾아 떠나는 모험심 같은 게 발동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추측하고, 예측하고, 포커페이스 이면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려는 노력이 도박의 묘미 아닌가? 세상이 스릴 넘치는 재밌는 곳이라면, 그것도 이 세상 사람들이 겉만 봐선 알 수 없고, 오히려 겉 다르고 속 다르기 때문일 거다.

 

너무 투명하고 솔직한 사람이 마냥 좋게 보이지도 않는다. 가끔은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게 낫다. 엉큼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속은 적당히 감춰두는 게 필요하다. “회사 동료나 상사에게 내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걸 알려야 하나요?”라고 종종 물어오는데……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한다. 겉으로야 “가족 같은 회사, 힘 드는 일이 있으면 상사인 내게 다 털어 놓아”라고 하겠지만, 이런 말에 꼴까닥 넘어가지 않는 게 좋다. 냉정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돌아가는 곳이 회사인데, 그런 곳에 내 전부를 밀어 넣으면 언젠가 압사 당한다.  

 

“내가 그 사람을 잘 알아!”라고 큰소리치거나 “그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척 하고 알 수 있지!”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피하는 게 좋다. 누군가가 당신을 “무슨 무슨 성격”이라거나 “어디 어디 출신이지”라거나 “누구와 친하지”라는 식으로 꼬리표를 달아 설명한다면, 경계해라. 경직된 틀로 당신을 구속하려 들거나, 자기 뜻에서 벗어나면 “너는 틀렸다”라며 비난할 테니.

 

겉보기에는 부지런하지만, 속은 매우 게으른 사람도 있다. 일에는 성실하지만 내면을 돌보는 데는 게으른 사람, 세상 이야기는 열심히 듣지만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에는 한없이 게으른 사람, 자기 욕구를 채우는 데는 부지런을 떨면서도 다른 사람 돌보는 일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커리어는 부지런히 쌓아 올리면서도 인격 쌓는 데는 느려터진 사람도 넘쳐난다. 이성은 빠릿하게 돌리면서 감정의 흐름은 막아 버리는 사람도 흔하다. 

 

겉으로 부지런을 떠는 것이 내면에 숨겨진 두려움을 감추려는 행동일 수도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멍 하니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의 동굴로 들어가 자기 무의식을 탐색하는 중일 수도 있다. 노력과 게으름은 동전의 양면이다. "나는 부지런하다"라고 단언해서도 안 되고 "너는 게으르다"라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겉으로는 부지런해 보여도 내면적으로는 무척 게으를 수 있고, 겉으로는 게을러 보여도 속으로는 부지런히 인격을 다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정신과 전공의 시절, 지금은 은퇴하신 원로 교수님께 자주 들었던 가르침이 무엇인가 하면 “환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마음을 잃지 말라”였다. 지금은 나도 세상 때가 많이 묻어서 심리를 해석한답시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지만, 그럴 때마다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린 학생처럼 죄책감을 느낀다. 진짜 훌륭한 정신과 의사일수록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라는 우물은 들어가도 들어가도 끝이 없고, 깊어질수록 어둡고, 그 끝은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데 일개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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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병수(정신과의사)

정신과의사이고 몇 권의 책을 낸 저자다. 스트레스와 정서장애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9년 했고 지금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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