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의 측면돌파] 여자 인생, 퀘스트는 끝없이 추가된다 (G. 이진송 작가)
오늘 모신 분은 국내 최초 비연애칼럼니스트입니다. 연애지상주의 사회에서 ‘연애 하지 않을 자유’를 외치고 계신데요. ‘전방위. 무정형.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를 만들고, 책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쓰셨습니다. 최근에 출간하신 에세이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에서는 “여자를 너무나 쉽게,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미워하도록 설정된 세계”의 면면을 들춰내셨어요. 이진송 작가님 모시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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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인터뷰.jpg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강도가 나온다. 그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힌 후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을 잘라내고,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 제멋대로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기 때문에 행인이 길이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했단다. 우리 사회가 여자들을 우겨넣고 자르고 늘이며 맞추려는 이상적인 ‘여성’의 틀 역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지 않을까? 기준도 그 침대처럼 늘 바뀌기 때문에 어떤 여자든 일단 그 자리에 눕기만 하면, 부족하거나 넘치는 부분이 출력된다. 그곳에서 여자는 언제나 기준 미달이거나 규격 초과의 존재이다.

 

이진송의 에세이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자이기 때문에 하면 안 되는 것들과 여자니까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견고한 틀이 되어 여성들을 가두고 짓누릅니다. 이진송 작가는 이 말도 안 되는 기준에 함께 돌을 던지자고 제안합니다. 같이 손을 잡고 휘적휘적 달아나자고 손 내밉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이상적인 여성의 틀, 거기에 맞지 않는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인터뷰 - 이진송 편집장 편>


김하나 : 책의 제목이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인데요. 앞에 빈칸이 있고, 여기 들어갈 수많은 말들이 각 챕터가 되는 거죠?

 

이진송 : 네, 그렇습니다.


김하나 : 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이진송 : 일단은 편집자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이예요. <계간홀로>를 통해서 만났는데요. 그 분이 결혼을 하실 무렵에 같이 대화를 하면서, 며느리나 아내로서 의무가 추가되면 여자의 삶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생기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면서 여자의 인생은 끝없이 어떤 퀘스트가 추가되면서 그걸 안 하면 나쁜 여자가 되거나 아예 여자도 아니라고 부정 받는 삶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20대가 소위 말하는 연애 시장에서 가장 각광 받는 존재잖아요. 제가 가끔 ‘핫매물’이라는 표현도 쓰는데요. 나이가 들면 ‘상폐녀’라는 표현을 쓰고, 여성을 나이에 따라서 상품 가치를 평가하는 연애 시장을 비꼬면서 쓰는 말이에요.


김하나 : ‘상폐녀’라는 게 ‘상장폐지녀’라는 뜻이죠?


이진송 : 네, 상장폐지됐다는 뜻이에요. 서른 살이 되면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김하나 : 저는 처음에 ‘상폐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트로피 와이프’ 같은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거더라고요.


이진송 : 그렇죠. 저도 처음에는 약간 그렇게 생각했어요. 상상도 못한 조합의 언어니까요.


김하나 : 그 말 안에 다 들어가 있죠. 상장폐지라고 하는 것 자체가 가격을 매기는 것이고 가치가 떨어진다는 내용이잖아요. 너무 기분 나쁘죠.


이진송 : 네, 맞아요. 하나의 언어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셈인데요. 그렇게 한참 연애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 포착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잡지를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저와 제 친구들이 결혼적령기에 들어가거나 지나가거나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이 추가가 되고 어렸을 때 해야 한다고 했던 것들이 상대적으로 살짝 느슨해지는 경험들을 했어요. 예를 들면, 나이가 들면 화장을 어떻게 하면 나이에 안 맞는다거나 하는 것들 있잖아요.


김하나 : 아, 긴 생머리도 그렇고...


이진송 : 네. 제가 고등학교 때 나이가 조금 많은 선생님이 긴 생머리였을 때, 심지어 저희가 여고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을 공주병이라고 불렀어요. 나이가 많은 여자한테는 긴 생머리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마찬가지로) 20대 초중반에는 말라야 한다는 압박이 강했는데 결혼적령기가 지나니까 사람들이 ‘이제 아이를 낳을 건데 그렇게 마르면 어떻게 하느냐’라든가 영양제 이야기를 한다든가, 그런 ‘고나리질’을 하는 걸 보게 되더라고요. 생애 주기 변화에 따라서 자기들 입맛대로 시시각각 상대를 재단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그대로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결핍이고 어떤 면에서는 부적격이고 어떤 면에서는 과잉이라고 재단되는 거예요. 그런 경험을 돌아보게 되면서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김하나 : <계간홀로>가 몇 호까지 나왔죠?


이진송 : 지금 현재 12호까지 나왔고요. 5월 28일에 12호를 냈고, 이게 5주년 호예요.


김하나 : 5주년이라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진송 : 네, 그래서 저의 친구들이나 오랜만에 소식 듣는 친구들은 모두 경악하며 ‘아직도 나오냐’고 해요. 아직도 나옵니다(웃음). 저도 제가 이걸 아직까지 하고 있을 줄이야...(웃음).


김하나 : 5월 28일에 5주년인데 지금까지 12호가 나왔다는 건, 정말 비정기적으로 나왔다는 이야기잖아요.


이진송 : 그렇죠. 이름은 <계간홀로>인데, 제가 처음부터 저를 알았기 때문에 밑밥을 좀 깔아놨죠. ‘전방위, 무정형’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뒤표지에 보면 “내키는 대로 만들고 땡기는 대로 냅니다”라고 써놨는데요. 사실 창간하면서 알았어요. 내가 계간지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슬픈 예감은 맞아떨어져서, 일 년에 두 번 나오면 선방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 어떤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에 대해서 관심을 안 가질 수는 없는 운명”이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어요. 어떤 뜻일까요?


이진송 : 어떤 영웅탄생 설화처럼 구라를 친 건데요(웃음).


김하나 : (웃음) 벌써 웃겨요.


이진송 : 일단 제가 1988년생이잖아요. 86년, 88년, 90년생이 1980~1990년대의 젠더사이드가 가장 심하던 시기에 태어났어요. 호랑이, 용, 백말 띠 여자들이 드세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여아감별낙태가 굉장히 심했거든요. 또 인구감축정책 때문에 둘 이상은 못 낳게 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아들이 많이 못 태어나던 시기였는데요. 저는 둘째 딸이에요. 상대적으로 장녀들의 회한과 슬픔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는데 차녀 이야기는 많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항상 차녀들의 힙합을 무시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웃음).


김하나 : (웃음) 나는 차녀였지~


이진송 : (웃음) 네.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건, 차녀인 사람들을 만나면 ‘또 딸이야?’ 이런 이야기를 한단 말이에요. 약간 실망과 낙담 속에서 태어난 분위기가 있는데요.

김하나 : 차녀를 낳은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건가요?


이진송 : 아뇨, 차녀가 태어나는 환경이 주로 ‘또 딸이다’라고 의사가 비통하게 이야기한다든가, 친척들이 돌아가 버린다든가 한다는 거죠. 저희 할머니가 저를 굉장히 예뻐하셨으나 (어머니가 저를) 낳았을 때는 굉장히 상심하셨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듣고 컸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 88년 용 띠에 차녀이고 경상도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싶은 아이로 큰다는 것은 매일 매일이 인정투쟁과 사투의 연속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여자 애가...’라는 말도 그렇고요. 어쨌든 세대차이의 격차가 있잖아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저를 예뻐하는 것과 동시에 제가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들 친척들에 대한 미미한 차별 같은 게 있었고요. 저는 그 편차가 없는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느꼈는데...


김하나 : 이를테면 어떤 예가 있을까요?


이진송 : 제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인가, 그 즈음에 저희 집에서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뭔가를 하면서 돕고 있을 때 사촌 남동생들은 누워서 TV 보고 있고... 그 순간에 ‘새끼 메갈’은 대각성을 하게 된 거죠(웃음). 왜 나만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


김하나 : (웃음) 새끼 메갈... 정말 탄생설화네요.


이진송 : 네, 새끼 메갈은 각성을 하죠(웃음). 그런 동시에 일하는 엄마가 너무 안쓰러우니까 안 도와줄 수가 없는 거예요. ‘왜 나와 언니는 일을 해야 되고, 집안의 어떤 사람들은 저걸 안 하고도 당연하게 인정을 받지?’라는 생각도 들고, 외가에 갔을 때 ‘어른들이 왜 장손에게만 용돈을 주지? 우리도 뒤에 서 있고 심지어 우리 언니가 더 나이가 많은데? 왜 쟤한테만 돈을 주고 쟤만 누구 집 아들이고 손자라고 이야기를 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굉장히 의구심이 있고 분노가 많은 아이였던 거죠. 초등학교에 가서는 ‘선생님, 왜 여자 아이들한테만 운동장 청소 시키세요?’ 했다가 벌을 서고. 그런 환경들이 있었죠. 사실은 굉장히 평범하고, 누구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하나씩은 있는 경험들인데...


김하나 : ‘88년생 이진송’인 거죠. 『82년생 김지영』 처럼 누구에게나 빼곡하게 있는.

 

김하나 : 한국 여자들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환경이죠. 그렇지 않나요?


이진송 : 그렇죠. 자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삶의 면면이나 본인의 선택이나 욕망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 어떤 부분들은 분명히 페미니즘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누가 페미니스트이냐 아니냐를 타인이나 본인이 인정을 하거나 안 하거나, 그건 크게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요.


김하나 : 제가 생각하는 게 딱 그 부분이었어요.


이진송 : 타인의 삶이나 어떤 가치관이나 학문은 인정받기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저도 아까 농담으로 ‘새끼 메갈’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 전까지 어느 정도는 아버지에게서 자식으로 인정받으려는 투쟁이 있었어요. 그리고 책에서 20대 초반에 다이어트 했던 이야기를 하면, 인터뷰어나 독자 분들은 제가 어떤 계기로 각성하게 됐는지 물어보세요. 그런데 살을 15kg 넘게 빼고 되게 괴로워할 때조차도 저는 낙태죄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모성애에 관한 인터뷰를 하겠다고 세브란스 병원 산부인과를 쫓아다녔고, 여성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거든요. 관심사가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내용을 보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이 사람은 그전까지는 억압돼 있었던 사람, 이전에는 각성이 덜 됐던 사람’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은 굉장히 다양하고 입체적이고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기도 하거든요. 어떤 사람이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삶의 중요한 계기나 선택이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구조 속에 있다 보면 얼마든지 반페미니즘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누가 보기에는 너무 답답하고 구식 여성이라고 생각되는 여성들에게도 의미 있는 실천과 행동이 있거든요. 저는 이 맥락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봐요.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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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의 댓글
    User Avatar

    찻잎미경

    2018.07.03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제목이 유혹을 합니다.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 여자임을 왜 강조하는가? 라고 저돌적으로 유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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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